매년 6,000명 정도의 아이들이 집을 잃거나 버려진다. 그 중 부모를 찾아 입양되는 아이들은 해외, 국내 입양을 합쳐서 4,000명 정도. 나머지 2,000여명의 아이들은 보육시설이나 기관으로 보내지고 있다. 그동안 '세계적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을 얻은 우리나라에서 최근들어 국내 공개입양이 부쩍 늘고 있다. 국내입양 중 공개입양이 2001년 20%에서 지난해 30%로 증가했다. 특히 공개입양이 높게 증가한 이유는 결코 입양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인식의 확산과 입양아들의 정체성과 장래를 감안할 때 떳떳하게 사실을 밝히는 게 바람직하다는 인식 전환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사회 유명 인사들의 떳떳한 공개입양이 과거 입양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한몫 했다.
두배의 기쁨 국내 입양 급속 증가
◇또 하나의 새로운 가족
가족이란 가족 구성원이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공동체이다. 가족이라는 개념은 비단 혈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구성원을 가질 때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경우를 보자. 최근 탤런트 김민 씨는 아기를 키우고 있다. 은석이라는 이름의 돌이 갓 지난 남자아기다. 미혼인 그녀가 아기를 키우게 된 이유는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사랑의 위탁모" 라는 코너에서 전도연, 엄정화의 뒤를 이어 제 3대 위탁모(委託母)로 선정이 되었기 때문.
약 보름간의 시간이었지만 그녀는 진짜 엄마가 된 듯 은석이를 돌보며 엄마로서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와 은석이가 모자로 지낸 시간이 불과 2주정도에 불과했지만, 다행히 은석이는 국내입양이 결정돼 사랑이 넘치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운 부모를 만나 입양 되어가는 자리에서 "사랑할 줄 아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하는 는 '2주간의 엄마'는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기가 제 삶에 이렇게 깊숙이 와 닿을 줄 몰랐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는 스타로서의 과장되거나 카메라를 의식한 멘트가 아니라 2주동안 아기를 직접 키운 엄마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진 말들이 흘러 나왔다.
◇입양은 가정의 새로운 형태
우리나라에서 입양이 시작된 것은 지난 1960년대부터. 전쟁 후 "외국 군인들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들을 되도록이면 해외로 입양을 시켜야 한다"는 정책 아래 시작된 해외입양이 일반 고아나 요보호아동을 대상으로 실행됐다. 한국 전쟁이후 우리나라의 아동복지는 '가정보호우선' 정책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정책이 입양 의존도를 높이게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정책적으로 해외입양이 국내입양보다 먼저 시작된 것이다.
올해로 국외입양이 시작 된지 50년이 되었다. 5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입양에 대한 다양한 정책대안들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여러 사회 복지 단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요보호아동에 대한 정책 중 해외 입양의존도는 한국이 가장 높다. 그 원인은 우리나라의 낮은 아동 권리에 기인한다. 입양은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입양되는 아동을 위한 아동복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낮았던 것.
반면 해외 선진 각국의 경우 입양은 매우 활성화 되어있다. 어려움에 처해 있는 요보호아동을 가족으로 만들어 제대로 된 인격체로 성장시키는 가정의 순기능이 강조된 아동중심의 입양이 자리를 잡은 탓이다. 그렇기 때문에 해외 입양이 된 아이들 대부분은 많은 사랑을 받고 풍족히 자란 덕에 성공한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정체성 혼란에 대한 문제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해외입양은 지양되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입양이 한 국가의 사회·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나눈다는 긍정적 기능과 함께, 특히 국내 입양의 경우, 낮아진 출생률에 대한 사회적 부담감과 불임 부부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 극복방안으로 새로운 가족 형태로서의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이다.
사랑으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최근 홀트 아동 복지회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손모 씨는 장애아동 어린아이를 딸로 공개 입양했다. 봉사활동을 하던 중 천진한 아이의 모습에 사랑을 느껴 입양을 결정했다. 그녀가 정상아동도 아닌 장애아이를 입양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족의 성원이 큰 힘이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아동을 입양한다는 것은 고생길이 훤히 보이는 가시밭길이다.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많지 않고 아이의 장애 정도에 따라 병원을 오가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손모 씨의 가족은 그저 행복하기만 하다. 아빠 엄마와 언니 오빠에게 천사와 같은 기쁨을 주는 아이가 있기에 그 어떤 장애도 힘들지 않다.
한편으로는 바램도 있다. 정부차원의 제도적 지원책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것이 바로 그것. 일례로 아이가 아플 경우, 복지관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는 시간적·금전적 한계가 있다. 경제적 부담이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나마 진료를 받으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도 여간 힘든 곤욕이 아니다. 때문에 손 씨의 경우 입양된 장애아동을 위한 전문 치료시설이나 기관이 좀더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게 가장 커다란 소망이다.
◇국내입양은 해외입양의 대안이 아니다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양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의 입양은 단지 요보호아동을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인식이 고작이었고, 국내에서 입양이 되지 않는 아동들에 대한 차선책으로 해외입양을 선택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즉 국내입양이 활성화되지 않기 때문에 해외입양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국내입양을 해외입양의 대안으로 볼 경우, 국내입양의 증가를 수치에만 의존하게 되어 아동을 독립된 인격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복지 시혜의 대상으로만 보게 하는 악순환을 내포하게 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아동은 사랑받고 보호받으며 좋은 가정에서 자랄 권리가 있는 존재다. 아동은 더 이상 입양서비스의 대상이 아니라 입양으로 인한 새로운 가정 형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제 국내입양은 요보호아동을 위한 최선이 대안이 되는 아동복지로서 발전 시켜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개입양이 우선 과제
입양이 일반화된 서구사회에서는 공개입양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회 성숙도를 가늠케 하는 한 요소인 공개입양은 공공기관의 지원과 입양후 관리를 용이하게 만드는 효과도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나 비밀입양이든 공개입양이든 입양 자체에 대한 장애요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부진하다는 게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혈통주의와 가부장제의 상징인 호주제 폐지에 관한 문제인데, 지난해 국회 상정도 하지 못한 채 표류 상태다.
전문가들은 호주제 폐지와 이를 통한 새로운 가족개념의 정립은 입양에 대한 편견과 부정적 시각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진단한다. 또한 '입양은 새로운 출산 방법의 하나'라는 인식을 가지고 입양가정에 유·무급 휴가를 주는 외국처럼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에도 클린턴 전 대통령 정부시절 입양의 달(11월)을 제정한 이후 입양이 증가했다는 보고가 있다. 입양에 대한 긍정적인 홍보와 입양 가족들의 모습을 알리는데 힘써서 일까. 그래서 홀트 아동복지회는 최근 입양에 대한 인식 개선과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 '입양의 날'을 제정하기 위한 '걷기대회'를 벌였다. 사실, 입양은 늘었지만 전체 입양사례 중 절반 이상은 아직도 해외입양이며 국내입양은 그 절반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또한 아직 공개입양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전체 입양 중 60% 정도에 그치고 있다. 특히 장애인 대상의 복지와 사회 제도가 미흡해 장애아 입양은 좀처럼 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일부 지자체가 시범사업 차원에서 보조금 지급 등을 통해 활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이제는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 전반의 적극적 노력과 동참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동은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성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홀트 아동복지회 이종윤 회장 일문일답
지난 5월 28일 인천에서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한 인천시민 대토론회가 열렸다. 인천시에서 발생된 요보호아동에 대해서 가능한 국내에서 입양, 양육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슬로건 아래 전국 최초로 국내입양 활성시범화 사업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이번 행사는 지자체에서 자연 발생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시단위로는 최초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이번 행사는 인천광역시와 홀트 아동복지회 그리고 여러 복지 단체들의 협찬과 후원이 모여 진행되었다.
- 홀트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대부분이 해외입양 단체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홀트는 모든 아동은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모토 아래 요보호 아동에 대한 해외, 국내 입양과 그 사후 관리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아동 복지단체 입니다. 또한 미혼모 등의 이유로 버려지는 아이들을 예방하고 결손가정을 보호하는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입양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이전에 입양될 아이들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 입양은 어떤 것인가요
아동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랑 받으며 자라야 하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이를 위한 아동복지의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요. 부모가 없는 아동을 위해서도 아이가 없는 가정에서 또는 사랑을 나누고 싶은 가정에서 서로 의지가 되는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의의이죠.
- 국내입양이 어려운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참 오랫동안 홍보도하고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요즘들어 인식이 많이 전환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동안 입양은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편견과 입양된 아동들에 대한 문제들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국내 입양이 잘 이뤄지지 않았죠. 입양은 떳떳이 공개된 밝은 곳에서 사랑하는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많은 어려움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족구성원간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제일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 입양에 대한 언론의 역할은 어떤가요
그간 국내입양에 대한 정부나 매스컴 등은 입양의 필요성이나 중요성보다는 국내 입양가정의 문제점이나 국외입양이 갖는 폐단이나 그 비율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것이 국민에게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역할도 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를 수정하기 위해 입양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현재 입양의 숭고한 목적에 초점을 맞춘 보도내용이 많아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해외입양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점에 대해선
해외입양은 차선책이었습니다. 제일 좋은 방법은 친부모가 키우는 것, 그 다음은 국내 입양이고, 해외입양은 우리가 어렵던 시절 아동복지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아기 수출국이라든가 하는 발언은 한국의 입지를 폄하하기 위해 북한에서 먼저 쓴 말이었죠. 우리는 좀더 거국적인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설이나 보호시설이 아니라 가정을 찾아 주는 것입니다. 시설의 아이들은 끝없는 애정결핍에 시달리게 됩니다. 정말 따듯한 가정을 만나는 것이 아동에겐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죠. 그것이 국내면 더할 나위 없지 좋겠지만 해외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바르고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부모는 아이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에 애착을 가지게 되고 다른 면에서 생각해보면 아이들은 민간 외교사절의 역할을 하고도 있는 것입니다. 아기의 입장을먼저 생각하게 하면서 입양아를 통해 한국이라는 나라를 더 가까이 느끼게 하는 것이지요.
-이번행사를 통해 기대할 만한 것은복지회 차원에서 이루어진 여러 입양 관련 사업은 많았지만 지자체에서 자치적으로 관할 지역내의 요보호 아동을 위한 사업은 없었습니다. 인천시에서 특별히 아동복지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많은 지자체의 아동복지 수준이 한단계 높아 질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