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경기동향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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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경기동향 점검
  • 글/최승호 기자
  • 승인 2004.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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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내외적 악재 속 하반기 경제 성장률 '시계제로'
요즘, 감자탕에 소주나 곁들이려는 주당들은 십여 년 단골집이라도 시중에서 파는 감자탕에 감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 섞인 푸념을 늘어 놓기 일수다. 감자 값이 예년에 비해 껑충 뛰면서 감자탕의 주인공 감자가 실종(?)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뿐인가, 가정에서나 아이들의 단골 도시락 반찬이던 볶은 감자 찾아보기가 하늘에 별 따기가 되는 등 고공행진 가격대의 감자가‘금(金)자’로 이름을 바꿔야 할 판이다. 서민들의 단골 식단인 돼지고기 삼겹살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가운데 올 2분기 안에 뚜렷한 내수 회복이 힘들다는 경기지표와 조사자료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고유가와 내수 부진 같은 대내외적 악재와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하반기 경제성장률을 낮추겠다는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조차 가볍지 않은 주름진 서민경제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2분기 회복론’꼬리내려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장관 간담회에서“소비와 투자가 좀체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성수기인데도 건설, 제조, 서비스업은 물론 농업 부문에서도 고용 증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 2∼4월 월평균 52만명씩 늘어나던 일자리가 5월 들어 37만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박승 한은 총재도 시중·국책 은장들과의 금융협의회에서 종전의 낙관론을 거둬들였다.
한은이 배포한‘국내외 경제동향’자료는 수출과 제조업 생산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2분기 내수 회복이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우선 민간소비와 설비투자의 움직임을 보여주는 소비재 판매액과 설비투자 추계액이 4월 들어서도 각각 3.2%와 2.5%씩 줄어 2분기 전체로도 역시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1년 넘게 내수 침체가 계속되는 셈이다.
지난해 내수경기를 지탱했던 부동산 경기도 올 들어 싸늘하게 식어 2분기에도 회복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 5월 전국 어음부도율은 0.1%로 11개월만에 가장 높았다. 법인 신설(8대 도시 2318개)은 주춤한 대신 건설업체를 중심으로 부도업체(374개)가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창업의 활력을 나타내는 신설·부도법인 배율(13.4)이 6개월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 하반기 경기도 안개 속 공공요금 인상 압력
중앙은행과 민간 경제예측 기관들도 하반기 경제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정부나 한은이 3분기 정도면 경기가 꽤 호전될 것으로 예상하는 것과 정반대다.
한은은 올해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2월 5.2%로 제시하면서 상반기(4.8%)보다 하반기(5.6%) 성장을 높게 예측했지만 빗나갈 공산이 커졌다.
한은은‘국내외 경제동향’자료를 통해“체감경기가 호전되지 못하는 가운데 하반기에도 여러 가지 대내외 불확실성이 잠재해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증권은 하반기 성장률을 상반기(5.4%)보다 낮은 5%로 추정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조만간 하반기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이 연구원의 배상근 박사는“내수 부진과 고유가 뿐 아니라 가계 부채 문제, 미국의 금리인상 가능성, 중국의 긴축 등 주변 여건이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성과 LG경제연구소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다소 보수적으로 낮춰잡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물가 부담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유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교통,도시가스 등 공공요금의 인상 압력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생산자물가는 올 들어 5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의 상승률(1.2%)을 훨씬 웃돌아 4.4%나 뛰었다. 생산자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전가된다.

숫자와 양이 줄어든 식당의 인심 체감지수 실감
농협 하나로클럽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100g기준으로 삼겹살은 1,430원에 목살은 1,240원으로, 평소보다 각각 20∼30%정도 올라 꾸준하게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식당에서 시켜먹는 삼겹살 1인분에서 고기의 숫자나 굵기가 부지불식간에, 그만큼 줄어들고 있는 셈이다. 노릇 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마늘 한쪽 된장에 푹 찍어 서너번 먹다 보면 어느새 상추나 마늘이 바닥나고 만다. 상차림에 나오는 기본 수량이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공공요금 줄줄이 인상 대기식당 주인 아줌마에게 상추와 마늘 등 야채를 더 달라고 보채기가 무섭게 째려보는 주인장의 야박한 태도에서 이들 가격이 얼마나 높이 올랐는 지가 피부로 실감된다. 깐 마늘의 경우 kg당 5,000원으로 예년보다 1,493원 정도, 상추는 4kg 상자 당4,750원으로 500원 정도가 각각 오른 상태다. 고객의‘더 달라’는 요구에 주인장의 눈꼬리가 올라가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노릇이다.
여기다가‘서민의 술’인 소주 세율을 연내 올리겠다는 방침을 최근 정부가 발표하면서, 그러잖아도 모퉁이에 서 있는 서민 경제가 한층 휘청거리고 있다. 일단 주세가 인상되면 소주값은 오르기 마련. 재정경제부는 현행 72%인 소주 세율을 연내 90∼100%로 연내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현재 소주의 공장 출고 가격은 740원. 1999년까지만 해도 세율이35%로 출고가격은 510원이었다. 하지만 현행 세율을 90%로 올릴 경우 주세는 300원, 100%로 인상하면 347원이 각각 된다. 공장 출고 가격 역시 832원(90%), 884원(100%)으로 인상된다.
지금껏 소매점에서 1,000원, 일반 술집에서 3,000원 정도에 마실 수 있던‘소주’가 소매점은 1,100∼1,200원, 술집은 4,000원까지 각각 오르게 된다. 이제‘소주 인심’도 옛말. 담뱃값도 올 하반기 가격 인상을 앞두고 있어 서민 애연가들의 쓰린 가슴을 벌써부터 불안하게 만든다. 최근 한 설문 조사에서 담뱃값을 5,000원으로 올리면 100명 중 절반 이상인 56명이 담배를 끊겠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 인상의 여파로, 타의에 의해 금연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벼랑으로 내몰리는 셈이다. 복지부는 올 하반기에 담뱃값을 500원 올린 뒤 매년 500원씩 추가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 중에 있다.

◆국제 유가상승에 따른 공공요금 줄줄이 인상
최근 국제 유가의 잇따른 상승 여파로 정유 회사들이 일제히 석유 제품 가격을 또 한 차례 인상해‘오르는 기세는 결코(?) 꺾일 줄 모른다’는 새로운 진리를 새삼 실감해야 한다. SK㈜는 휘발유의 경우 리터당 8원을 더해 1,303원, 경유는 18원을 더해 841원으로 각각 올렸다. 몇년전만해도 기름값 5만원 대에 충분히 주행할 수 있었던 이동 거리가 이제는 7만원 대에도 어렵다. 승용차와 버스, 지하철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서울시가 이달부터 시내버스 체계를 전면 개편하면서 버스, 지하철, 택시 등 대중 교통요금 인상을 추진하고 있어 총선을 앞두고 억눌려온 공공 요금이 줄줄이 오를 움직임이 예사롭지가 않아 보인다.
물가불안 지속, 내수시장 초호화 지경물가불안 속에서 썰렁하기는 시중 백화점이나 재래시장이나 수도권 상가지역이나 매 한 가지다. 총선이 끝나면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했던 봄 경기는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썰렁함만이 상점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최악의 내수 부진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으면서 서민들이 주로 찾는 내수 시장은 말 그대로 직격탄을 맞은 꼴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진단하기 위해 새로 개발한 시장경기실사지수(MSI)에 따르면 2분기 MSI는 45로 기준치(100)를 크게 밑돌았다. MSI는 서울과 6대 광역시 재래시장 상인 720명을 대상으로 체감경기 전망을 면접, 조사한 결과를 지표화한 것.
지수가 100이상이면 향후 경기가 지난 분기보다 호전됐다고 보는 상인이 더 많다는 뜻이며, 지수가 낮을수록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는 의미다. 서울의 경우 MSI 48, 부산 38, 인천 20, 대구 46, 광주 81, 대전 24 등 전 지역이 모두 기준치를 크게 밑돌며 재래시장의 체감경기는 최악의 국면을 맞고 있다.

백화점 업계도 불황 늪에서 허우적

봄 정기세일 행사를 마친 백화점 업계 역시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지난4월에 17일간 세일행사를 가진 백화점들의 1일 평균 매출이 지난해 보다 9.8%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백화점의 핵심 품목인 남녀 정장류와 잡화 등은 매출이 큰 폭으로 줄어들어, 내수침체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내수불황의 골이 너무 깊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 백화점의 경우, 일 평균 매출이 지난해 대비8.9% 줄었다.
현대백화점은 같은 기간 9.8% 떨어졌고 신세계 백화점은 6.7% 감소했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세일기간 일평균 매출이 지난해 대비 4.5% 줄었다. 백화점은 최근‘포스트 세일전’에 다시 돌입하면서 연중세일이라는 거침없는 그들만의 위력을 과시하고 나섰다. 혼수 특수를 노리는 판촉 행사가 한창이다. 그러나 예상 결과는 그렇게 신통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백화점 업계의 고민이다.
여야 모두 유가?원자재가 급등과 공공요금 인상 등으로 물가 불안에 떨며 어두운 터널 속에서 끝모를 경기침체에 허덕이는 서민경제를 챙겨야 할 때이다.

◆최악의 경기에 달라진 생활풍속도
교통수단은 지하철, 점심은 도시락, 휴대폰 대신 삐삐‘절약테크’
‘사람이 우째 좁쌀 같아서…’ 실눈 뜨고 쳐다볼 것 없다. 절약은 지지리 궁상맞고 초라한 것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돈 안 쓰는‘절약테크’가 돈 버는 재테크보다 인기가 높다. 또 대학생들 사이에는 소위‘쿠폰족’이 뜨고 있다. 어디를 가든 꼬박꼬박 챙겨가는 쿠폰 지갑안에는 음식점, 미용실, 까페 등 종류별 쿠폰이 가득하다. 과거에는 계산할 때 쿠폰을 내면 민망해 하기도 했지만 요즘엔 도리어 쿠폰을 쓰지 않으면 바보 취급을 당한다. 가게들도 매출이 준다는 이유로 박대하기는커녕 반기는 분위기이다. 또 남녀가 데이트할 때는 꼭 할인카드를 이용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영화관에 가서 TTL 카드를 내면 1,500원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두 명이면 3,000원의 돈이 굳어 유용하다.
불황이 끝을 보이지 않으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쿠폰이나 할인카드 하나 없이 소비를 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제 값을 모두 주고 사면 바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쿠폰북에서 쿠폰을 오려두는 것은 기본이고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쿠폰을 다운로드 받기도 한다.
얇아진 남편의 지갑만큼 절약해야 하는 주부들에게는 할인점 등에서 생활용품을 싸게 살 수 있는 삽지용 쿠폰이 인기다. 업소에 따라 정가의 15∼20% 선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갈수록 호응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게 관련업계의 설명이다.
휴대전화에 밀려 자취를 감췄던 삐삐도 부활할 조짐이다. 무선호출서비스(012)를 제공하는리얼텔레콤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삐삐 신규 가입 고객이 월 평균 700∼800명씩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달에는 1,000명을 돌파했다. 리얼텔레콤 고객만족팀 차순진 팀장은 “휴대폰은 적어도 월 평균 3만, 4만원 정도는 요금이 나오는데, 삐삐는 월 8,000원이면 사용이 가능하니까 통신요금을 줄이려는 목적으로 가입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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