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에 부는 변화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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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부는 변화의 바람
  • 글/편집부
  • 승인 2004.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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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언행 막강파워 초선의원‘누가 좀 말려줘’
17대 국회의 주역은 단연 187명의 초선의원이다. 152명의 우리당 의원 중 70%가 넘는 108명이 처음 국회에 발을 들여놓았고, 한나라당 역시 소속의원 121명의 절반이 넘는 62명이 초선의원이다. 초선의원들은 개혁과 변화의 중심에 서는가 하면 권위에 대응해 전쟁도 불사할 태세를 보인다. 17대 국회가 개원한 뒤 의원들 사이에서 숨은 진주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개혁과 변화의 중심에‘우뚝’권위와의 전쟁도 불사
실력으로 승부하는 의정활동에 부정적 평가도 뒤따라

국회 입성 첫 일주일 동안 톡톡 튀는 언행으로 경쾌한 파열음을 일으킨‘기(氣) 센 초선들’의 파워는 의정활동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여야 의원 22명이‘파병추진 중단 및 원점 재검토 권고 결의안’을 내기로 결정한 것은 17대 국회의 앞날을 짐작케 한다. 초선의원을 중심으로 정파적 이해를 떠나 소신과 성향에 따라 한배를 탈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무서운 아이들‘초선의원’
우리당에선 여당 특유의 일사불란함이 사라진 지 오래다.‘김혁규 총리카드’를 둘러싸고 초선의원들이 반발한 게 대표적 사례. 이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특보 문희상 의원은 특보직을 사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초선의원들은 문의원을‘제2의 권노갑’,‘총독’으로 부르며‘공공의 적’으로 묘사했다. 문의원은“내가 무슨 권노갑이냐”며 반발했지만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다.
임종인 의원은 한 모임에서“어떤 재선의원이‘군기 잡겠다’고 해 모욕을 느꼈다. 앞으로 두 번 다시 군기 잡겠다고 하면 그 사람을 물어뜯어버리겠다”고 말했다. 군기를 잡겠다던 김부겸 의원은“초선 무서워서…”라며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한나라당 역시 초선들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두드러진다. 이재오 홍준표 의원 등이 주축인 당내 최대 모임인‘국가발전연구회’의 준비위원장과 간사를 초선의원들이 맡았다. 특히 정책전문가 위주로 짜인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향후 현안마다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면서 이슈 경쟁을 이끌어갈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들은 최근 정책 현안 연구를 위해 모임을 꾸렸다.
‘모이라’는 외침에 민감한 초선의원 특유의‘신입생’정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당직자들이 모임에 참석해달라고 연락하면“일정을 살펴보고 결정하겠다”는 초선의원이 적지 않다. 우리당 한 당직자는“초선의원 모임 중에 108번뇌라는 게 있다던데, 요즘 우리들이 의원들에게 연락하는 게 꼭 108번뇌를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수도권 출신의 한 초선의원은 “1학년 모이라는 식의 모임엔 안 갈 것”이라며“초선의원을 거수기로 보는 선배들도 이젠 없지 않느냐”고 밝혔다.

권위 파괴와 변화의 주역
초선의원들의 권위 파괴와 변화는 우선 승용차에서 두드러진다. 초선의원인 우리당 이계안 의원은 9인승 트라제, 이인영 의원은 카니발을 타고 등원한다. 민노당 권영길 대표는 뉴EF쏘나타, 노회찬 의원은 싼타페를 등록했다. 국회사무처에 등록된 의원 승용차 170여대 중 2000cc 안팎의 중형차가 70대나 된다. 과거 주류이던 검은색 대형 세단은 어느새 비주류로 전락했다.
기자와 정치인은 악어와 악어새에 곧잘 비유된다. 그런 양측의 관계에도 변화의 흐름이 느껴진다. 군 출신 A의원은 젊은 국회 출입기자들을‘이등병’쯤 되는 직급이라고 여긴다. 정당 출입기자 중 연차가 가장 낮은 기자를 기자세계에서는‘말진’으로 부르는데,‘말진’이라는 표현을 들은 A의원이 이를‘이등병급의 언론사 직위’로 받아들인 것.
우리당 임종인 의원은 한 기자가“임선배”라고 부르자“내가 왜 당신 선배냐”며 무안을 주면서“‘의원님’이라고 부르고,‘기자님’이라고 서로 존대하는 게 맞다”고 맞받았다. 3성장군 출신인 한나라당 H의원은 기자가‘선배’라고 호칭하자“혹시, 육사 나왔느냐”고진지하게 되묻기도 했다.
초선의원들은 잘못된 기사에 항의하는 방법도‘신세대’답다. B초선의원(여성)은‘허리 사이즈’때문에 모 스포츠신문과 부딪혔다. 모 스포츠신문이 B의원의 허리둘레를 36인치로 적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 허리둘레가 31인치인 B의원은“이러니까 스포츠신문이 문제란 얘길 듣는 것 아니야. 당신 꺼 3cm라고 하면 기분 좋으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초선의원 187명이 연출하는‘새로운 흐름’이 어색하기는 기자들도 비슷하다. 초선의원들이 모이는 곳이면‘이름’과‘생김새’를 맞춰보느라 기자들도 눈을 바쁘게 돌려야 한다. 한나라당과 우리당은 이런 기자들이 안쓰러웠던지 이름과 사진을 함께 실은 조그만 책자를 펴냈다. 기자들은 연찬회 등에서 이 책자로 겨우‘이름과 얼굴을 맞추는’퍼즐을 풀어나갔다.

될 성부른 초선의원은 누구
과거 국회가 정권의 들러리이던 시절 초선의원은 거수기 노릇에 만족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톡톡 튀다가는 다음 공천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7대 초선들은 달라도 사뭇다르다. 외부 평가와는 달리 초선의원 자신들이 바로 곁에서 보는 시선이 더 날카로울 수 있다. 당선자 워크숍이나 의원총회를 통해 몇몇 의원은 이미 될 성 부른 떡잎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들 숨은 진주들은 의원들의 연구모임에 가입을 요청받거나 방송 토론 출연자로 부상하며 서서히 몸값을 올리고 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는 변호사 출신인 최재천 의원이 단연 돋보인다. 통일외교통상위원회로 가고싶다는 본인의 희망과는 관계없이 당에서는 최 의원을 법사위원회 간사로 점찍고 있다. 의원 총회에서 최 의원의 발언을 들은 동료 초선의원들은 부러움 반, 시샘 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방송에서도 출연요청이 쏟아지고 있다. 부유세 신설와 같은 경제문제, 이라크 파병-주한미군 재배치와 같은 외교-국방문제 등 법률 이외의 분야에도 최 의원의 해박한 지식과 토론 실력이 드러난다. 최근 한나라당의‘토론 저격수’로 불리는 전여옥 의원과의 방송토론에 차출돼 한판 대결을 벌이기도 했다.
최 의원의 측근은“최 의원이 특히 국제외교 쪽에 관심을 갖고 억척같이 공부를 한다”며 “본인이 여러 분야를 깊이 이해하고 토론에 나서기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는 듯하다”고 말했다. 같은 율사 출신인 정성호 의원도 초선들 사이에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정 의원 역시 법사위 차출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다. 방송 토론에도 출연하지만 본인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것이 최 의원과 다른 점이다. 정 의원은“의원총회에서 거의 발언하지 않는다”며“적어도 올해까지는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런 그에 대해 역시 초선인 최재성 의원은“충분한 실력을 갖추고 있어 후반기에 뜰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핵심브레인으로 뜬다
특히 최근 선거법 위반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 동료 초선의원들이 정 의원을 찾고 있다. 정 의원은 선거법 관련 사건을 많이 수임했던 이력을 바탕으로 세심하게 법률 자문을 하고 있다. 전대협 1기 의장인 이인영 의원은 전대협 세대 의원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상징성이 커 여러 정책 연구모임에 가입을 권유받기도 한다.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우상호 의원도 기대되는 초선 의원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정책기획비서관-정무비서관을 지냈던 전병헌 의원은 이미 능력을 인정받아 원내 부대표로 활약중이다. 김재홍-이경숙 의원은 언론개혁 분야에서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주 제네바 대사와 국제노동기구 의장을 지낸 정의용 의원과 미국 라이스대학 경제학과 교수출신인 채수찬 의원은 최근 한-미관계에 대한 방송토론에서 실력을 발휘,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나라당에서는 공성진 의원의 활약이 돋보인다. 초선으로서 재선-3선 의원들이 수두룩한 국가발전전략연구회 공동 대표를 맡았다. 한 초선의원은“초선이 공동대표를 맡은 것도 신선하지만 공 의원이 이미 그 능력을 평가받은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의원들도 공 의원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미래학자로 통하는 공 의원은 한양대 교수 출신으로 이회창 전 총재의 외곽지원 그룹이던 북악포럼 대표와 한백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방송 토론과 시민단체 토론 초청이 줄을 잇고 있다.
박형준 의원도 언론-방송 분야에서 차분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토론으로 만점을 얻어 동료 의원의 칭찬이 자자하다. 특히 여당의 언론개혁에 맞설 적임자로 일찌감치 낙점돼 당내 언론개혁특위 간사를 맡았으며 수도이전 특위 등 5개 특위에도 간여하고 있다. 박 의원은 “원래 일을 맡기면 거절하지 못하는 편이라 그냥 한다”고 말했다. 상임위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언론-방송 개혁을 전담할 문화관광위원회에 배정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한나라당에서는 비례대표 의원들 중 숨은 진주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계진 의원은 “한나라당이 비례대표 의원 선정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비례대표 의원 중 유승민 의원은 경제분야에서 돋보인다. 유 의원은 여의도연구소장으로 이회창 전 총재의 핵심브레인이었다. 경제 분야 방송토론에서도 실력을 드러내 유시민 의원과의 팽팽한 토론으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경제분야에서는 윤건영 교수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인기 위주 행동’부정적 평가도
총선 당시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은 박세일 의원은 중진급 초선의원이다. 박 의원이 상임위로 교육위를 선택하자, 열린우리당내 교육위 지망 의원들이 긴장하고 있다는 소문이다. 비례대표인 진수희 의원은 여성분야에서 큰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율사 출신으로는 대구-경북 지역의 주호영-장윤석-주성영-정종복 의원이 기대주로 떠오르고 있다. 야당인 만큼 율사 출신에게 거는 기대가 좀 다르다. 여당의 비리를 캐고 비판하는 역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홍준표 의원은“주성영 의원에게 야당적 기질이 충분하다”며 그에 대한 기대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민주노동당에서는 심상정-조승수 의원이 차츰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다. 심 의원은 방송토론에서도 노회찬 의원에 못지않은 실력을 드러냈다. 노동전문가로서는 다소 힘겨울 재경위를 배정받았지만 국회 개원을 전후해 상당한 준비를 해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조승수 의원도 지역구 의원으로 선거기간 내내 중앙 무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지만 구청장을 지냈던 이력이 서서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원내 부대표로서 대여-대야 협상에 참여, 당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최근 언론에서 거론되는 이슈메이커 신인들에 대한 동료들의 시선은 여야를 막론하고 싸늘하다. 무조건 앞에 나서는 것을 비판적인 눈으로 보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의원은 “의원총회에서 뻔한 이야기를 자꾸 하는 의원들이 눈에 거슬린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의원도“발언을 하는 의원보다 가만히 앉아서 남의 말을 열심히 듣는 분 중에 능력 있는 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초선의원들의 이런 결기에는 부정적 평가도 뒤따른다. 지나치게 이미지 관리에만 열중한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소신과 철학도 중요하지만 국정을 먼저 생각하는 거시적 시각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도 원로 정치인들은 숨기지 않는다. 김원기 신임 국회의장은 공개적으로 초선의원들의 진중함을 요청하기도 했다. 17대 초선들의 튀는 행보와 소신껏 일하겠다는 각오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15, 16대 초선들과 17대 초선의원의 차이
처음엔 개혁 그러다 흐지부지 현실과 타협

갈등과 투쟁이 내재하게 마련인 정치판. 그 험한 정치판이 그래도 유지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게임 법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정치판에서는 그런 게임 법칙이 너무나 자주 무시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기존의 정치질서가 통째로 흔들리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것은 17대 들어 눈에 띄게 많아진 초선의원들의 파격 행동에서도 알 수 있다.
지난 1996년 12월11일 신한국당 의원총회장. 청와대가 통과를 원했던 노동관련법에 대해 성토가 벌어졌다. 15대 국회 초선으로 첫 등원한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 신한국당 초선의원들은“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면서 당지도부의 노동관련법 처리방침을 거세게 비판했다. 홍의원은 당시“국민들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당지도부의 처사에 저항했다.
당지도부는 반발하는 초선의원들을 각개전투로 무력화한 후 그 해 연말 법안을 통과시켰다.
극렬하게 반대했던 초선의원들은 이후 꿀 먹은 벙어리로 전락했고 정치권에서는 초선의원들이 제도 정치권의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홍의원의 지적처럼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면서 레임덕으로 빨려들어갔다.
273명 중 111명이 새로 국회에 입성한 16대 국회 때도 사정은 비슷했다. 16대 국회 초기, 초선의원들은 소신과 양심에 따라 자유투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모임을 만드는 등 신선한 충격을 줬으나 권노갑 당시 민주당 고문의 마포사무실 등을 드나들면서 기존 정치권 문화에 동화, 흡수됐다. 187명의 17대 국회 초선들은 선배들의 이런 무덤 위에 둥지를 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소신과 양심을 지켜야 하는 당위성도 그만큼 크다.
인내와 눈치가 미덕이었던 여당의원의 생활을 잘 아는 선배의원들에게 이들 초선의원들의 행동은 분명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정치판은 그렇게 파격을 행하는 X세대와 기존의 관행에 익숙한 구세대로 세대구분이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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