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동영계는 당분간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으로 보이지만, 바닥 조직이 건재하고 반(反)손학규 진영 당권주자를 지지하면서 운신의 폭을 넓힐 수도 있다. 열린우리당 마지막 의장을 지내며 당 안팎에서 신망이 두터운 정세균 의원과 총선 지원유세에 ‘올인’한 강금실 공동선대위원장, 3선 중진 추미애 전 의원 등 중진그룹의 세 결집도 관심거리다.
박상천 대표 등 옛 민주당계는 지분유지를 위해서라도 박 대표가 직접 경선에 나서거나 박주선 당선자 등이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박 당선자는 4월 10일 “손학규 대표는 총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며 손학규계를 향한 ‘친근 모드’로 전환했다. 여기에 강봉균, 이시종 의원 등 중도 실용파의 ‘김한길 그룹’도 상당수 살아남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가까운 김효석, 이낙연 의원 등과 ‘당선 뒤 민주당 복귀’를 선언한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결합할 경우 민주당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한편, 통합민주당은 당초 계획보다 다소 늦은 오는 7월 6일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당 대표 및 최고위원 등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개최키로 결정했다. 통합민주당은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18대 개원 이후인 7월 6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개최하기로 확정했다. 민주당은 당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전당대회 일정을 확정하고 전대위원장에 김원기 의원을 선임했다.
이번 전대는 지난해 대선과 올 총선 패배를 반성하고 2010년 지방선거를 대비하는 포석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여 누가 당 대표로 선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정치권이 보수 일색으로 재편된 가운데 민주당의 정체성도 모호하다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제기된 상황이어서 ‘강성’ 지도부가 구성될 지도 관심이다.
당 대표 경선에는 열린우리당 의장을 지냈던 4선의 정세균 의원과 구 민주당 출신으로 3선에 오른 추미애 당선자의 양강구도가 우선 그려지지만 4선이 된 천정배 의원과 김효석 원내대표와 4.9총선에서 전국 최다 득표율로 재선에 오른 박주선 당선자, 원외의 정균환 최고위원 등도 물망에 오르고 있는 상황이어서 섣부른 예측이 어려운 상태. 이 때문에 전대를 앞두고 상당히 적극적인 당 대표 경선 분위기가 조성될 전망이다.
이와 함께 민주당은 18대 개원에 앞서 원내대표를 선출할 예정이어서 이 선거 과정이 전당대회의 전초전이 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다만 당대표 및 최고위원 출마 예상자의 경우 향후 민주당이 지도부 선출방식을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선택지 변경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현행 당헌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을 분리선출해 당 대표의 위상을 높이는 ‘단일성 집단지도체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투표를 동시에 실시해 1위가 당대표, 2위부터 최고위원을 맡는 방식으로 다수의 리더십에 따르는 ‘순수 집단지도체제’로 변경하자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세력이 통합한 결과로 민주당이 탄생했다는 현실을 반영하고, 전당대회의 흥행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동시 투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전당대회 앞서 합종연횡 움직임
한편, 통합민주당이 전당대회를 앞두고 조직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당 대표, 최고위원 경선을 둘러싼 계파간, 지역간 합종연횡이 본격화될 조짐이다. 크게 보면 열린우리당계-구민주당계, 호남-수도권 출신으로 나눠져 각자 세력규합을 시작한 것.
당 대표 경선의 경우 정세균 의원과 추미애 전 의원 등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고 있다. 정세균 의원은 견제세력이 많지 않고 당내 주요 인사들과 관계가 원만하다는 것이 강점. 손학규계가 정세균 의원을 지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반면 추미애 의원의 경우 동교동계의 신임을 받고 있고 정동영계와도 가까워 호남지역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고, 강력한 추진력도 야당 대표로서 장점이라는 평가다. 이 밖에 손학규계 인사인 송영길 의원과 개혁성향의 천정배 의원 등은 각각 ‘새 진보’,‘중도 진보’로 당 정체성 논쟁을 통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당내 주도권 다툼의 진앙지인 호남과 비호남 출신간 ‘당 대표-원내대표’ 역할 분담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세균(전북)-원혜영(경기)’ ‘추미애(서울)-강봉균 또는 이강래(전북)’ ‘천정배(경기)-홍재형(충북)’등의 시나리오가 당 안팎에서 돌고 있다. 이처럼 당권경쟁이 호남과 수도권간 양자대결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영남권이 상대적으로 ‘제 몫’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와 관련, 부산·울산·경남(PK)에서는 현재까지 최철국 의원과 정오규 시당위원장이 최고위원 경선에 도전할 뜻을 내비치고 있는 상황이다. 전당대회 준비와 관련, 민주당 박홍수 사무총장은 “중앙당 차원에서 당원 정비가 끝나면 최소한 5일까지는 각 지역당으로 당원명부를 보내 검증을 하는 작업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당내 정체성 논란 불거져
한편, 통합민주당 내에서는 선거 참패 이후 중산층과 서민의 이익을 지향하는 본래 모습을 강화하자는 논의가 한 축을 이루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도와야 한다는 적극적 ‘우향우’ 논리까지 제기되는 형편이다. 17대 마지막 임시국회가 열린 지난 4월 25일에도 당내에는 이 두 가지의 엇갈린 풍경이 연출됐다.
당내 ‘재야파(김근태계) 의원’들이 주축을 이룬 ‘민평련(민주평화국민연대)’은 18대 총선 당선인들 위주로 아침 모임을 갖고 “외연을 더욱 넓히고 (모임의) 문호를 개방하는 한편 새로운 진보의 내용을 적극적으로 채워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유선호 의원이 전했다. 총선 이후 두번째인 이날 모임에는 최규성, 유선호, 문학진, 노영민 의원 등이 참석했고, 앞으로는 장세환 당선인도 참여하기로 했다. 모임이 끝난 뒤 문학진 의원은 보도자료를 내어 “본래의 지향점인 서민과 중산층을 대변하는 당”으로 정체성을 확립하자고 제안했다. 문 의원은 “최근 상황을 보면 당이 총력을 기울여 통과시킨 출자총액제한제나 공정거래법 등 개혁법안들을 한나라당이 폐기시키겠다고 공언하는데도 우리 당은 반대 목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며 “심지어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려면 더욱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문 의원은 “내용 없는 계파정치나 모호한 정체성으로는 결코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며 “당내에 존재하는 몇 개의 스펙트럼을 하나로 모아 일관된 정책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우리 당의 지도체제는 합의에 기초한 집단지도체제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민평련은 이에 앞서 지난 4월 21일 저녁 김근태 의원 등이 참석한 전체 모임에서 “뜻을 같이 하는 18대 당선인과 원외 낙선자들에까지 문호를 넓히고,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심을 잡고 힘을 보태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장세환 당선인이 전했다. 그러나 정반대 쪽 목소리도 나왔다. 지난해 옛 민주당과 통합하기 전 대통합민주신당의 정책위 의장을 지낸 김진표 의원은 이날 각 의원실에 돌린 당선인사에서 “지금 모든 국민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는 경제문제”라며 “경제 살리기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는 만큼,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 최대한 협조하는 상생의 정치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반(反) 쇠고기 협상’을 기치로 내건 통합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민주노동당 등 야권이 본격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민주당과 선진당은 서로 상반된 이념 성향에도 불구하고 쇠고기협상은 물론 대운하와 국토균형정책 등 상당 분야에서 같은 입장을 취해 18대 국회에서 거대 여당 견제를 위한 양당의 ‘야권 연대’ 가능성이 가시화된 것으로 주목된다. 민주당 김효석, 선진당 권선택, 민노당 천영세 등 야 3당 원내대표는 지난 4월 23일 오전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쇠고기협상 청문회 개최에 대한 의견을 모으기 위해 원내대표회담을 가졌다. 김 원내대표가 제안한 청문회는 한?미FTA 무효를 요구하는 민노당은 물론 선진당도 국정조사 등 강도 높은 검증을 요구하는 상황이어서 개최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졸속 쇠고기협상 청문회 개최에 선진당도 긍정적인 것으로 안다”고 했고, 선진당 관계자도 “선진당으로서도 청문회 개최를 못 받아들일 이유가 없어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17대 국회 말미에서 쇠고기 문제를 계기로 민주당과 선진당이 연대 움직임을 보이면서, 18대 들어 과반의석의 한나라당에 맞서는 양당의 연대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민주당으로선 선진당과 연대할 경우 이념을 뛰어넘어 독주하는 여당을 함께 견제하는 구도로 비쳐지면서 ‘발목잡기’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선진당도 교섭단체 구성조차 못하고 이념적으로 한나라당과 차별화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과의 연대가 야당 정체성을 세울 유효한 방안이다. 권 원내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참여정부 때 추진했던 국토균형정책의 유지.발전을 위해 18대 국회에서 민주당과의 적극적인 정책공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밝혔다. 양당은 향후 한반도 대운하나 행복?혁신도시 등 정책 추진과정에서 상당 부분 공조를 이룰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