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둠엔지니어링 / 서신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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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둠엔지니어링 / 서신자 대표
  • 글_ 김윤경 기자
  • 승인 2004.06.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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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앞선 제품으로 승부하는 기업
“직물디자인을 선도할 수 있는 쟈카드 직기 부품 생산에 앞장서겠습니다”
국내 최대의 섬유기계박람회인 한국국제섬유기계전이 지난 5월 11일 대구전시컨벤션센터에서 개막됐다. 14일까지 4일간 이루어진 이 전시회에는 독일, 일본, 영국 등 16개국 214개사가 참가해 모두 567개 전시부스를 열었다. 국가별 참가업체 수는 우리 나라 143개사를 비롯, 독일 118개사, 이탈리아 15개사 등으로 국내업체 143개 중 대구업체가 77개사로 54%를 차지했다. 국제섬유기계전은 지난 28년동안 격년제로 서울에서만 열렸으나 대구의 전시컨벤션 인프라가 서울에 못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올해부터 섬유도시 대구에서 열리게 되었다. 본지에서는 이번 섬유기계박람회에서 쟈카드 핵심부품의 국산화로 주목받는 기업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내륙공업지역인 대구는 섬유, 기계, 공업 부문의 발전이 두드러진다. 그 중 섬유산업은 대표적인 대구경제의 기반이다. 1918년 일본자본에 의한 큰 공장이 설립되면서 전국 제일의 섬유도시로 발달하기 시작한 대구는 6·25전쟁으로 경인공업지대의 섬유공장이 가동되지 못하자 1950년부터는 전국 섬유공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1960년대 이후 전국 경제의 규모가 확대되고 수출이 증대함에 따라 더욱 번창했으나 1980년대 시설이 낙후되고 수출부진 등으로 생산성이 낮아졌고 대구전체의 경제까지 침체되는 연쇄반응을 가져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구의 섬유산업을 그리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대구 전체 사업체 중에서 섬유가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섬유공업에 편중된 구조로 섬유산업은 대구 경제의 기반이자 지역 경제를 위해 살려야 할 산업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구시는 섬유산업 위주의 산업구조 개편 등 섬유산업을 통해 지역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많은 섬유산업 업체들이 고품질의 제품으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이에 수입에만 의존해오던 쟈카드 핵심부품들을 국산화하는데 성공, 축적된 기술과 끊임없는 연구로 섬유산업 발전에 앞장서 온 모둠엔지니어링의 서신자 대표를 만나보았다.

40여년의 섬유외길 인생
대구가 섬유공업의중심지로 급부상한 것이 1950년대. 50여년의 세월동안 대구는 섬유도시라 불렀다. 서신자 대표는 40여년간 섬유산업에 종사한 ‘섬유도시 대구’의 산증인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 일이 섬유산업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일밖에 몰랐고 계속 하게 되었죠. 처음에는 일당을 받고 일을 했습니다. 이 일을 오래 하다보니 저만의 노하우가 생겼고, 그런 기술을 인정받으면서 부탁하는 곳도 점차 늘었죠. 결혼 후, 남편과 함께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기술은 있었지만 경영은 처음이었기에 좌절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또한 저의 기술을 쌓는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직접 개발과 경영에 눈을 돌린 후, 한 번의 사업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또한 경험이라 말하는 서 대표는 1984년 모둠엔지니어링을 창업했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이 섬유산업 역시 다양한 기술이 들어오면서 고품질의 제품으로 승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그녀는 쟈카드 핵심부품에 관심을 가졌다. 쟈카드 핵심부품인 통사, 각종 스프링, 스판셋트, 메디판, 화이트 부도 등은 당시 수입에만 의존해왔기에 국산화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창업 이래 자카드 핵심부품 분야만을 연구해온 서 대표는 축적된 기술과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결국 국산화에 성공했다. 100% 수입에만 의존해온 제품이기에 국산화에는 더 큰 의미가 있다. “쟈크드의 핵심 부품을 국산화에 성공으로 섬유업계의 발전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뿌듯해집니다. 더욱이 IMF를 전후하여 제품을 개발했습니다. 당시 수입이 아니면 제품을 구할 길이 없었고 IMF 이후, 수입품을 사용하기에는 가격 등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꼭 필요한 시기에 제품 개발에 성공하였죠” 모둠엔지니어링과 마찬가지로 자카드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국내에 두 군데 뿐이라고 말하는 서 대표는 40여년간 섬유업계에 종사하며 기계가 원하는 것을 먼저 알 수 있는 노하우로 그녀와 그녀의 제품을 찾는 업체들에게 최상의 만족도를 주기 위해 오늘도 노력중이다.


고품질의 제품으로 승부
대구의 섬유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섬유산업 자체를 힘들게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러나 서 대표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어떤 산업이든 발달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섬유 또한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서 조금씩 발달하고 있죠.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아주 영세한 업체들은 받아들일 능력이 없어 신기술보다는 낙후된 환경에서 작업을 합니다. 그러니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섬유를 계속 할 사람들은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다시 섬유산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섬유산업의 발전은 물론 중국시장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서 대표는 고품질의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가품으로는 중국 시장과의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중국 제품이 우리 제품에 비해 아직 품질은 따라오지 못하지만 가격은 훨씬 싸기 때문이죠. 똑같이 저가품으로 승부하기보다는 고품질의 제품으로 제품 자체의 차별화를 통해 경쟁해야만 승산이 있습니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품질이 좋으면 팔리기 마련이니까요.” 실제로 얼마 전, 중국에서 한 차례 전시회를 가진 후 중국 등지에서 수입문의 전화가 종종 온다고 한다. 수입에만 의존해온 제품을 이제 우리 기술로 수출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현재 중국을 비롯하여 일본은 물론 다른 영어권 지역과 유럽 등으로 수출을 계획중이다. 그녀의 이러한 계획은 그녀의 두 아들과 함께 이어갈 것이다. 든든한 아들이자 후원자이면서 이제 동업자로 함께 사업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니 더욱 자신감이 생긴다는 서 대표는 아이들의 몫으로 남겨진 부분은 그들이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일단 열심히 한다면 안 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돈 욕심이 있어서 돈에 파묻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 욕심으로 열심히 한다면 자연스럽게 돈은 벌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잘되는 사람에게는 이유가 있다는 서 대표는 일 자체를 즐길 줄 안다면 누가 아무리 힘든 일이라고 말해도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 또한 섬유산업이 힘들기에 여러 번 포기하라는 주위의 충고를 들었지만 스스로가 즐기며 한 일이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며 주위의 환경보다는 스스로의 노력이 중요한 것임을 강조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만은 일을 즐기는 사람도 몇이나 될까? 40여년의 세월동안 한가지 일만을 즐기며 지내온 서 대표. 여성이기에 힘든 일이었지만 한 길만을 고집해온 그녀가 이뤄낸 성과는 결코 작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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