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그림 속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캔버스 위에서 거침없이 펼쳐지는 붓의 향연은 작가의 인생관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고뇌가 담긴 그림은 더 진중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 폭의 그림을 보다 보면 작가의 인생이 문득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웃는 예수’ 화가 홍준표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인생 이야기가 문득 궁금해지는 건 아마도 당연한 것일 것이다.
▲ 경희대학교 사범대 미술과졸2012년 브레이크뉴스 늦깎이 인물화가 특집. 2013년 오늘의 한국 새로운 인물화가 특집2013년 모르니카 타임즈 웃는예수 화가 특집 2014 동포투데이 화제의 인물화가2014년 브레이크뉴스 웃는 화가 특집.2014년 브레이크뉴스 김승연 회장 선행작품 소개2014년 브레이크뉴스 이건희 회장 쾌유기원 부부화 소개2015년 브레이크뉴스 웃는 예수를 그리는 홍준표 화백에게 다가온 기적2014년 통일문화제 서양화부문 예총회장 대상2014년 제4회 대한민국 성공대상 서양화부문 대상2015년 대한민국 최고기록 인증상(성화)2015년 국회의원 나눔대상2015년 대한민국 신지식인 문화예술부문 수상2016년 시나브로 ‘사랑과 축복을 전해주는 삶’ 특강
인생의 고난과 시련은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지만 아주 혹독한 경험을 해야만 했던 홍준표 화백에게 있어 고난과 시련은 그를 또 다른 세상에 눈을 뜨게 해 준 특별한경험이 되었다. 고난과 시련으로 그는 늦깎이 화가로, 그리고 ‘웃는 예수’를 그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그가 그린 ‘웃는 예수’는 그의 인생 이야기가 함축적으로 담겨있다.
“사람은 살면서 세 번의 기회를 얻는다고 하지요. 저 역시 두 번의 기회는 아주 혹독하고 쓰라린 경험을 했습니다. 이젠 기회란 말도 두려웠던 시절, 결국 주님의 웃는 모습을 만나게 되고 그 모습을 작품으로 완성시켰습니다.”
어린 시절 화가의 꿈, 고난과 시련으로 이루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었던 홍준표 화백은 어린 시절 집에 종이만 보이면 그림을 그려대던 아이였다. 하지만 꿈을 맘껏 펼쳐보기엔 그의 집안 사정은 넉넉하지 못했다. 경찰공무원으로 너무나 청렴하고 남 도와주기를 좋아했던 부친 때문에 가난했던 그런 그의 어린 시절은 땅을 빌려 키운 감자로 끼니를 해결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을 보이던 홍 화백은 초등시절 여러 미술대회에서 입상하며 명문중학교에 무시험 특기생으로 미술반에 입학하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재료비 감당이 어려웠던 어린 홍 화백은 결국 미술반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특기생으로 뽑은 학생이 미술반을 그만 둔다 하니 너무 아쉬워하시는 미술선생님께 죄송하다는 간청 외엔 기억나는 게 없습니다.”
그에게 가난은 알 수 없는 안개 같은 미래를 늘 가슴속에 간직하게 해주었다. 그래서 미술선생이나 하자는 생각으로 미대에 입학했고, 당시 용돈이라도 벌려고 대학신문에 기자로 응시했는데 여기서 홍 화백의 인생 역전이 시작되었다. 학교 신문사에서 대기업 둘째 딸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그의 인생에 또 다시 역경이 찾아 왔다. 처가 경영에 위기가 닥치고 그 여파로 독립을 한 홍 화백은 출판사를 시작했지만 이마저도 파산했다. 그 사이 아내와 이혼하는 아픔까지 겪게 되었다. 홍 화백에게 지원을 해주던 부모의 재산까지 경매로 넘어가게 되는 쓰나미를 맞게 되면서 그 에게 또 다시 고난이 시작됐다.
“저 때문에 집까지 잃으신 부모님을 모시고 나와 소도시 근처 방 2개 달린 지하 월세방을 얻었죠. 치매 환자였던 부친의 나이는 84세였고 모친은 78세였죠. 과거 꿈 많던 저는 가정부역할 호스피스역할 요양원 간호사로 변신해 혼자 몸으로 두 분을 모시고 살면서 생활비라도 벌자는 생각에 밤에 두 분이 주무시면 예수님 얼굴을 그렸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 60세, 화가로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 존경의 부부 30F(72.7㎝×91㎝). 법정스님이 병원비를 못내 퇴원 못한다는 소식에 거금 몇 천만 원을 선뜻 내준 라움 미술관 홍라희 관장의 기사에 감동을 받아 그렸다.
고난 속에서 시작된 예수그림은 그에게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었다. 어릴 적 꿈이 고난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되어 피어나게 된 것. 처음엔 유화를 그리는 방법도 몰라 어릴 적 친구가 사다준 책과 물감, 그리고 붓, 캔퍼스 등 유화에 필요한 재료들을 구해가면서 한 점 두 점 예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절 인물화에도 도전하기 시작했다. 박근혜, 정몽구, 이재용, 김승연, 박지성 등 유명인사 80여 명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람을 그리면 잘 그렸는지 여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유명한 연예인들과 유명인사들을 주로 그렸다.
“인물화의 경우는 행복하고 기쁘고 잘 되기를 기원하면서 그립니다. 아름다운 풍경을 그릴 때는 ‘어머님을 모시고 갔어야 했는데’라며 회한의 마음으로 그리죠.”
홍 화백의 인물화는 사진기가 없어 복사하듯 그려야 했던 초상화 시대를 넘어 철학이나 영혼이 담긴 인물화의 새로운 장르를 열고 있다.
세상 속으로 나오게 한 ‘웃는 예수’
그의 명함엔 ‘웃는 예수 화가 홍준표’라고 되어있다. 그는 ‘웃는 예수’를 그리면서 삶의 희망을 찾았다.
“웃는 예수께서는 아무데도 갈수 없었던 세상과 멀어져만 갔던 제게 다시 세상 속으로 나오는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 웃는예수 10F(45.5㎝×53㎝). 기존의 고통 받는 예수를 웃는 예수로 새롭게 변화시켜 보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홍 화백이 웃는 예수를 그리기 시작한 건 작은 바람에서였다. 모친의 지인이 홍 화백의 예수 그림을 보고 방에 걸어 두고 싶다며 한 점 부탁을 해왔고 당시 우울증이 있었던 그 지인을 위해 어떤 예수의 얼굴을 그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꿈속에서 본 예수의 활짝 웃는 얼굴을 그려 주었다. 모친의 지인은 웃는 예수 그림을 통해 기분이 좋아졌다고 전해왔다. 기존의 고통 받는 예수를 웃는 예수로 새롭게 변화시켜 보는 사람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를 웃는 예수 화가로 만든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그는 웃는 예수작품을 많이 그려 목회자들과 많은 교인들에게 안식과 평안을 주고 있다. 2년 동안 그가 그린 웃는 예수작품은 60점에 이른다. 웃는 예수를 제일 많이 그린 신기록 기네스북에 올라 도전한국인협회 ‘도전 한국인 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신지식인 연합회가 주는 화가로서의 신지식인 상을 받게 되면서 제 웃는 예수작품의 위상도 높아지게 되었다.
출판사를 도산하고 치매 걸린 부모를 수발하면서 부모님이 잠든 새벽에 그림을 그리면서 쌀값을 벌어 입에 풀칠을 해야 했던 지독히도 가난에 진저리가 났던 화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실패와 고난이 모두 어떤 거역할 수 없는 뜻에 따라 이루어졌다. 홍 화백은 여건이 좋았다면 화가로서의 새로운 인생도 웃는 예수도 탄생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일까. 홍 화백이 그리는 웃는 예수는 그 만의 독특한 색감과 터치가 살아있다.
인생의 고난과 역경 속에서 힘들게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서양화가 홍 화백. 그의 인생 이야기는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을 통해서 웃음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