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억 4,200만 원의 기부 재산은 이명박 대통령의 아호를 딴 재단법인 ‘청계’를 통해 쓰여진다. 주위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간 경험이 있는 이 대통령은 일찍부터 장학사업에 관심이 많았고 서울시장 재직시에도 월급 전액을 내놓은 경험이 있다. “저를 도와주신 분들은 하나같이 가난한 분들이었다.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을 돕고 싶다”고 밝힌 이 대통령의 뜻을 이어 재단법인 ‘청계’는 소외계층을 위한 장학 및 복지 사업을 주로 하게 될 것이다.
이 대통령 재산의 사회 기부를 위해 만들어진 재단설립추진위원회 송정호 위원장은 7월6일 청와대에서 브리핑을 갖고 법인설립 허가서를 받는 즉시 대통령이 기부한 재산을 법인 명의로 소유권을 이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대선공략 중 하나였던 재산기부 약속을 지킨 것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지만 방법에 있어 진정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국가에서 운영하는 사회복지재단을 통한 기부를 하지 않고 굳이 직접 재단을 설립할 필요가 있었는지 그리고 재단에 관여하는 이사진들이 MB측 인사임을 봤을 때 진정한 기부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게 한다. 과정은 어찌됐건 재단이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이러한 마음이 한낱 기우에 불과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현 위한 기부 되기를
우리나라는 아직 기부문화가 낯설다. 일부 연예인들이 아름다운 기부를 실천해 알려지고는 있으나 개인의 기부는 왠지 생소하고 어색하다.
아름다운재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 국민 10명 중 6명은 기부경험이 있다. 꽤 많은 것 같이 느껴지지만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아직 멀었다. 1인당 평균기부액은 5만 7,000원이고, 자원봉사는 17%만이 경험했다. 89%의 가정이 수입의 3%인 1,620달러(202만 원)를 기부하고, 국민의 44%가 주당 3.6시간 씩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미국과 확연히 비교가 된다.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 기부문화의 현주소다. 선진국의 경우 기부문화의 성숙도가 그 나라의 문화수준으로 여겨질 만큼 중요한 잣대로 인식되고 있다.
사실 남을 위해 자신이 어렵게 모은 것을 내놓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재산의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다. 부자들의 기부는 금액보다 기부에 대한 믿음과 마음이 더 귀하다. ‘강철왕’ 앤드류 카네기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처음 실천한 부자다. 그는 일생을 통해 모은 재산을 내놓으면서 “부자로 생을 마감하는 것은 가장 수치스런 일이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의 이러한 선행은 동시대인인 존 록펠러와 헨리 포드에게 영향을 끼쳐 그들로 하여금 거액 기부 대열에 동참하게 했고,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의 테드 터너와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에게로 면면히 이어져 이제는 부자만이 아니라 전 미국인의 85% 이상이 참여하는 기부문화로 승화됐다. 전 재산 4,000억 원을 기부한 홍콩의 액션스타 청룽(성룡)은 “아들에게 능력이 있으면 아버지 돈이 필요치 않을 것이며, 능력이 없다면 헛되이 탕진하지 않겠나”라고 말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천문학적인 재산이 있으면서도 더 많이 갖고 싶어서 불법을 자행하는 부자들도 있다. 엄청난 액수의 기부를 하면서도 왠지 뒤가 개운치 않은 사례들도 많다. 이러한 때 대통령의 재산 기부는 큰 의미를 갖는다. 이는 대통령이 모범을 보인 재산의 사회 환원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와 제도를 돌아보게 하는 한편, 항후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 사회지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주 정신을 실현하는데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온라인상에서는 사회지도층의 기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은 물론 이들에게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국무위원 중 재산(지난 3월 공직자 재산공개에서 116억 8,289만 원을 신고)이 가장 많은 유인촌 문화관광부 장관이 대표적인 타깃. 뿐만 아니라 재산이 53억 5,000여만 원에 이르는 오세훈 서울시장, 1조 6,397억 7,500만 원을 신고한 정몽준 의원, 조진형(834억 500만), 김세연(300억 9,100만), 정의화(174억 1,100만), 김무성(150억 7,600만), 강석호(140억 5,100만), 임동규(110억 2,100만), 이상득(82억 2,800만원) 의원은 대표적인 ‘부자 국회의원’으로 이들에게 이 대통령의 기부가 나비효과를 발휘하기를 온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기부라는 것이 원래 자발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 사회지도층에 기부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그들에게 ‘억지기부’라도 바라는 것은 그렇게 해서라도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 한 번이라도 따뜻한 말을 듣기를 바라는 희망에서다. 이명박 대통령처럼.
기획재정부는 이 대통령의 기부에 따른 긍정적인 분위기를 이어나가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기재부는 지난 7월8일 ‘민간의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 세제지원 제도’를 발표, 기부금 공제한도를 소득의 15%에서 20%로 확대하는 등 이 대통령의 결단을 계기로 기부 바이러스를 확산시킬 수 있는 기폭제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다. 모처럼 따뜻한 뉴스가 진정성을 잃지 않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 돈이 진정 장학 및 복지사업에 쓰여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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