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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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 최윤규 기자
  • 승인 2021.08.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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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2021년 8월 14일 오후 1시경 별세, 향년 83세

[시사매거진/광주전남]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광산농악 꽹과리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이 지난 8월 14일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고인은 1939년 10월 20일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농악에 흥미를 느껴 정동을, 유흠선, 전경환 등에게 꽹과리를 사사받았다.

1991년과 1992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광산농악」으로 참가하여 농악부분 2년 연속 최우수상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였고, 1992년 광주광역시 무형문화제 제8호 광산농악 상쇠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그 후로 매년 정기발표회와 광주 당산굿, 배움터교실 개최 등 후진양성과 농악을 대내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한평생을 바쳐오다 14일 오후1시 향년 83세의 나이로 영면에 들었다.

빈소는 광주광역시 서구 국빈장례문화원 201호이고, 발인은 2021년 8월 16일(월) 오전 8시30분이다.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고인은 생전에 가락 쪼개기와 일목요연한 가락정리를 잘하였다. 특히 예능보유자의 위치에 있지만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광산농악의 가락과 농악의 진법 및 구성내용들을 후진들에게 물려 주기위해 연구하고 보존하려는 의욕이 남 달라 광산농악을 대내외적으로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고인은 1939년 10월 20일 전라남도 함평군 월야면 응월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농악에 흥미를 느껴 마을에서 열리는 농악대를 하루 종일 따라 다니며 흉내를 내게 되었고, 이런 행동을 정동을 상쇠가 보고 초등학교 6학년이던 그에게 쇠가락을 가르쳐 주게 되면서 예술의 길을 걷게 되었다. 25세가 되던 1963년 근처에 유명한 치배꾼(농악을 잘 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장성군 동화면에 유흠선 상쇠를 찾아가서 사사를 받았다. 36세가 되던 1974년에는 건설업을 하던 작은 형님의 제주도 현장에서 우연찮게 농악판을 기웃거리다가 그곳 농악대원과 함께 연습을 하여「한라문화재」에 출연, 개인상을 수상하였다. 42세가 되던 1980년 5·18이 있었던 그해, 광주고속 운전원으로 입사를 하였고, 운전원들과 「광주고속 운전원 농악대」를 창설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운명적인 예술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광주공원에서 구성진 농악을 연주하는 모습에 빠진 후 부터였다. 아는 분의 소개로 만난 그분들은, 작고하신 전경환(全敬煥-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 꽹과리 예능보유자-作故)과, 김오채(金五彩- 본명 金明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17호 설장구 예능보유자-作故)이었다. 그 후, 1985년부터 영광으로 다니면서 전경환에게 가락과 진법 등을 배우고, 농악 판을 함께 뛰면서 전경환의 뒤에서 영광 우도농악을 배웠다. 이러한 활동들을 인정받아 영광우도농악 보존회 이사에 추대되어 선생님들을 보살펴 드리고 열심히 배우는 와중에 광산농악을 복구하려는 전경환 선생과 지춘상박사(광주직할시 문화재위원)의 고증으로, 광산 농악단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 광산농악의 부쇠로 활동하게 된다. 이때 상쇠는 전경환의 친동생 전경석이 1대 상쇠로 정득채는 부쇠로 활동하면서, 1989년 제2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광주직할시 대표로「광산소촌농악」으로, 제30회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는「광산마륵농악」으로 참가했고, 1990년10월 제31회 전국 민속예술 경연대회와 1991년32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광산농악」으로 참가하여 농악부분 2년 연속 최우수상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정득채는 전경환과 전경석 두 분의 기량을 한꺼번에 배운 운이 좋은 전문예능인의 길을 걷게 된다.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광산농악 예능보유자 정득채 선생 별세

광산농악을 열심히 배우고 활동하던 중에 제1대 광산농악 상쇠 전경석이 지병인 폐암으로 세상을 뜨자, 1991년 53세의 나이에 제2대 광산농악 상쇠를 맡은 그는 광산농악의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잡다한 소품과 기물까지 만들어 가며 광산농악의 발전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다. 이와 같은 노력으로 그의 나이 54세인 1992년 3월16일에 설장구에 김종회(藝名-金會烈 2000년 작고), 설 북에 서창순(藝名-서대석 1900년 작고)과 함께 광주직할시 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받았다.

주요 프로필

○ 본적 : 전남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 478번지

○ 주소 : 광주광역시 광산구 마륵동 572-4번지

○ 학력

_ 1952. 3 함평월야초등학교 졸업

_ 1956. 3 광주사범 병설중학교 졸업

_ 1959. 11 광주사범학교 3년 중퇴

○ 예능학습 과정

_ 13세 함평군 월야면 용월리 정동을(作故-당시 59세)에게 입문

_ 16세 함평군 월야면 계림 노창덕(최화집 상쇠의 제자-作故)에게 전수 - 16세 함평군 월야 면민체육대회 상쇠로 출연

_ 20~21세 제주도 제 1․2·3회 한라문화재에 종쇠와 설장구출연

_ 25~30세 전남 장성군 동화면 유흠선( 최 화집의 상쇠 전수)에게 전수

_ 32~38세 (주)광주고속 운전원 농악부 상쇠활동

_ 42~53세 ※ 전경환(영광출생- 전라남도지정 무형문화재 제17호

꽹과리 예능보유자-作故)에게 사사

※ 전경석(영광출생- 전 경환의 친동생 - 作故)에게 사사

_ 45~53세 남도 문화재, 전주대사습놀이,

전국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종쇠, 부쇠로 출연

_ 54세 ※ 1992년 3월16일 광주직할시 무형문화재 제8호

상쇠 예능보유자 지정 받음

○ 수상경력

_ 1962~1963 제주한라문화재 설장구 개인 인기상 수상

_ 1987 영광우도농악보존회 이사

전남국악협회 지부장상 수상

_ 1988 남도문화재 광산농악으로 출연 공로상 수상

_ 1990 제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광주지할시 대표

「광산농악」부쇠로 출전, 농악부분우수상 단체수상

_ 1990 광산농악단 부쇠역할 광산구청장 공로패 수상

_ 1990 광산농악단 상쇠선임후 광산구청장 감사패수상

- 1991. 3 광주직할시 광산구청장 감사패 수상

- 1991. 10 제31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문화부 장관상 단체수상

- 1992. 4.20 제1회 광산구민의날 광산구 문예진흥상(표창)수상

최윤규 기자 digitalac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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