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옥죄는 ‘빚잔치’ 회생의 길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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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 옥죄는 ‘빚잔치’ 회생의 길은 없나
  • 신혜영 기자
  • 승인 2009.07.0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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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문턱 넘지 못한 저소득층 불법 사금융으로 몰려, 제도권 금융권의 서민 지원 절실

지난 5월28일 금융계 등에 따르면 신용회복 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하거나 상담한 사람은 5월26일 기준 모두 64만 5,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상담자수는 22만 8,183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113% 증가했고, 신청 접수자는 3만 6,374명으로 작년 동기보다 72% 증가했다.
올해 이자 감면과 장기 분할 상환 등의 혜택을 주는 ‘채무재조정’에는 총 2만 7,000여 명이 몰렸으며 금융채무 이자를 3개월 이상 연체해 이자감면 등을 해주는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한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는 4만 188명으로 작년 연간 신청자의 절반을 넘어섰다.
이자 연체 기간이 3개월 미만인 사람이 신청할 수 있는 ‘프리 워크아웃(사전 채무재조정)’ 프로그램에도 개시 1개월 여 만에 4,344명이 몰렸다.

지출은 늘고 수입은 줄고… 저소득층 저축은 ‘옛말’
이처럼 빚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구조 요청이 잇따르는 것은 경기 불황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좀처럼 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하위 10%의 가계지출은 10만 1,109원 증가한 126만 6,478원에 달해 소득에 비해 지출이 2.77배 많았다. 소비는 6만 4,421원 늘어난 106만 5,778원이었다.
지난 6월4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월평균 소득이 하위 10%인 가구는 한 달 동안 전년에 비해 14% 감소한 45만 6,487원을 벌었다. 정부 등에서 나온 지원금이 3만 7,097원 줄어든 20만 원으로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 차지했다. 반면 상위 10%의 월 소득은 934만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2만 원 늘고 지출은 569만 원으로 26만 원 감소하면서 월 저축액이 365만 원으로 확대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저소득층은 최소한의 것만 소비하기 때문에 지출이 늘 수밖에 없어 이들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소비가 확산된다”면서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더라도 오히려 소비를 줄이는 게 불황기의 일반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경기악화로 자영업자 수는 지난 달 576만 5,000명으로 작년 같은 달 603만 4,000명보다 26만 9,000명 감소했다. 실업자 수는 지난 달 93만 3,000명으로 1년 전보다 14만 9,000명(19%) 늘어나면서 100만 명에 육박했다.
한편, 한국은행이 지난 6월16일 발표한 ‘4월중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 동향’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519조 7,910억 원으로 전월보다 2조 4,542억 원이 증가했다. 반면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393조 4,000억 원으로 전달보다 증가폭이 6,000억 원 줄어든 1조 3,000억 원에 그쳤다.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8조 5,000억 원으로 지난 3월보다 1조 2,000억 원이 늘어났고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은 지난 2월 전월대비 3조 3,000억 원이 늘어났다. 지역별로는 수도권의 가계대출이 284조 562억 원으로 전월보다 1조 2,324억 원 증가했으며 비수도권은 109조 3,696억 원으로 752억 원 늘었다.
예금취급기관은 예금은행과 상호저축은행, 신용협동기구, 우체국 등 비은행금융기관을 합친 것이다.

은행 외면 받은 서민들 불법 사금융으로 몰려
정부는 신용등급이 낮은 중산 서민층을 위해 제도권 금융회사들에게 ‘저(低)신용자 대출’ 상품 판매를 독려하고 있으나 금융권들은 쉽게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은행에서 외면 받은 서민들이 대출이자율이 높은 2금융권으로 속속 발길을 돌리면서 서민 경제의 악순환은 지속되고 있다. 현재까지 저신용자 신용대출 상품을 선보인 은행은 12개에 달하지만 지난 5월22일 현재 이들의 대출실적은 2,243억 원에 그쳐 대출한도 1조 1,700억 원의 19%에 그치고 있어 실효성을 잃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장 지배력이 큰 대부업체에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 에이앤피파이낸셜과 산와, 웰컴크레디라인, 리드코프 등 8개 대형 등록 대부업체가 금감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들 업체의 2008 회계연도 영업수익은 9,798억 원으로 전년보다 28% 증가했다. 제조업체의 매출액에 해당하는 영업수익의 대부분은 대출이자 수익이다. 이와 함께 불법 대부업체들이 그 틈새를 파고들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불법 대부업체를 이용한 서민들 대부분 이자를 제때 상환하지 못해 높은 이자율에 빚만 더 지게 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는 것. 현행법상 등록 대부업체의 최고 이자율은 연 49%, 미등록 대부업체는 30%로 제한돼 있으나 불법 대부업체들은 높은 이자율에 서민들을 더욱 옥죄고 있다. 이렇다 보니 불법채권추심에 고통 받고 있는 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6월11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사금융피상담센터의 상담 건수는 지난 해 2분기 962건에서 3분기 973건, 4분기 1,040건으로 증가했으며 올 1분기에는 1,055건으로 늘었다. 사금융 피해 내용은 고금리와 불법채권 추심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최근 2년간 접수된 불법 사금융 피해상담 사례를 분석한 결과, 사금융 피해가 발생한 1,501건의 93%가 미등록 대부업체에 의한 것이었다. 상담 건수의 81%가 연 100% 이상의 대출금리 문제였다. 지난해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를 틈타 불법 사금융업이 기승을 부리면서 사금융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고금리와 불법 채권추심에 대한 민원은 등록 대부업체보다는 미등록 업체에서 대부분 발생하고 있다”며 “불법 대부업체에 대한 적극적인 단속과 제도권 금융회사의 서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환대출로 이자 부담 최대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
이에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생활공감정책의 일환으로 지난해 12월19일부터 ‘신용회복기금 전환대출 신용보증 제도’(환승론)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서민의 이자부담을 줄여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최근 한국자산관리공사 신용회복지원센터에는 하루 평균 5,000여 건의 전화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센터를 찾아와 어려움을 토로하는 경우도 일평균 300여 건에 달할 정도로 저소득층 금융상태는 그야말로 바닥을 치고 있다.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8곳에서 1,800만 원을 빌린 A씨는 한 달에 70여만 원의 이자를 지출했다. 그러나 저렴한 금리의 대출로 전환해 주는 ‘환승론’ 제도를 통해 지금은 32만 원 수준의 이자를 갚고 있다.
환승론 제도는 대부업체, 저축은행 및 캐피탈 회사 등에서 대출을 이용하는 3,000만 원 이하 고금리 대출자 가운데 신용등급 7~10 등급인 저신용 계층이 은행권의 저금리 대출로 갈아탈 수 있도록 자산관리공사가 신용보증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 하반기 이후 경기 침체와 금융위기 등으로 어려워진 서민들이나 금융소외자들이 이자도신용회복위원회가 지난 4월13일 프리워크아웃(사전채무재조정)을 개시하자 신청자들이 급증했다. 이날 하루 신용회복지원과 프리워크아웃 신청 건수는 840건으로 평소 420건 보다 훨씬 많았으며 이 중 프리워크아웃 신청건수는 538건에 달할 정도로 생활경제에 어려움을 겪는 시민들이 많았다. 갚지 못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어 한국자산관리공사는 지난 6월1일부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하고 금리도 더 낮췄다. 금리가 연 30% 이상 대출 이용자만 대상이 됐지만, 앞으로는 연 20% 이상 이용해도 전환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환대출을 받으면 이자는 연 12% 내외로 조정되고, 5년간 원금과 이자를 합쳐 균등분할상환 할 수 있다. 신용보증재단중앙회가 95%의 보증을 통해 신용등급별로 차등적용 해 1인당 최대 500만 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다. 전환 대출은 작년 12월 말부터 지난 6월11일까지 7,150명이 신청했다. 현재까지 5,500명 정도가 심사를 통과해 지원을 받았다. 현재 자산관리공사 등에서 신용회복지원을 받고 있는 사람도 1년 이상 정상적으로 빚을 갚고 있으면 신청 가능하다. 이처럼 전환대출 확대시행으로 이자 부담은 최대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자산관리공사는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저신용층의 이자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요건을 가능한 한 대폭 완화했다”면서 “특히 금융채무불이행자 중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해 상환중인 분들도 지원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금융소외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전환대출은 콜센터(1577-9449)에 문의해 자격조건과 필요서류 등을 확인한 후 한국자산관리공사 본·지사에 방문해 신청하면 된다. 1,000만 원 이하 채무는 인터넷(www.c2af.or.kr)으로 편리하게 신청할 수 있다.
또한 정부는 프리워크아웃(사전 채무조정) 제도를 시행, 이 제도는 여러 금융기관에 빚을 진 다중채무자 중에서 1개월 초과 3개월 미만 연체자들이 채무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가 되기 전에 채무 재조정을 해주는 프로그램이다. 프리워크아웃 대상자 자격 기준은 ▲2개 이상의 금융기관 채무액이 5억 원 이하이면서 ▲1개 이상의 금융기관 연체기간이 30일 초과 90일 미만이고 ▲보유 자산가액(부동산)이 6억 원 미만이어야 한다. 또 ▲신규 발생 채무가 총 채무액의 30% 이하이고 ▲부채상환비율은 30% 이상이면서 ▲실업·휴업·폐업·재난·소득감소 등으로 사전채무조정 지원 없이 정상적으로 채무를 갚기 어렵다고 인정돼야 한다. 그러나 대부업체에서 빌린 채무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프리워크아웃 대상자에 선정되면 채무감면과 이자부담 완화 등의 지원을 받게 되지만 원금은 감면받을 수 없다. 프리워크아웃 프로그램은 내년 4월12일까지 1년간 시행된다.
신용위 관계자는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 방지를 위해 고의로 채무를 연체하거나 보유 부동산을 허위로 신고한 사람은 추후 지원 대상에서 배제키로 했고 사전 채무조정 신청횟수도 1회로 제한했다”고 말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 생계형 범죄 급증
 
깊은 불황으로 생활고를 이기지 못한 서민들이 생계형 범죄자 내몰리고 있다. 최근 실직 후 생활비 마련을 위해 강·절도범으로 변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납치범이 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9월 초순부터 올해 4월까지 총 32차례, 266만 원 상당의 두부를 훔쳐 판 4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올해 3월에는 헌옷 수거함에서 집게를 이용해 헌옷 40㎏을 훔친 혐의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불황은 청소년들까지 생계형 범죄자로 내몰고 있다. 지난 6월7일 법무부에 따르면 전국 9개 소년원에 수용된 소년범들 가운데 생계형 범죄 성격인 절도 혐의로 소년원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범의 수는 2007년 75명에서 지난해 155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최근 소녀범 수용 인원이 늘어난 것은 어려운 경제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구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강·절도 검거건수는 2,24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545건보다 44.9%급증한 2,240건으로 나타났다. 이중 범죄를 처음 저지른 초범은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모두 71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672명보다 6.4% 늘어난 715명으로 집계됐으며 직업이 없는 무직자 수도 645명에서 768명으로 19% 증가하는 등 지난해부터 계속된 불경기와 실업자 증가로 인해 ‘생계형 범죄’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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