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매거진278호] 더불어민주당 대선경선 구도가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2파전 구도를 깨려는 다른 4명의 주자들의 비판도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원팀 협약’이 무색하리 만큼 본 경선 첫 TV토론을 거치면서 충돌 수위가 한층 고조되고 있다. 대권 주자 간 갈등이 갈수록 점점 심해짐에 따라 경선 이후 당과 후보 간 ‘화학적 결합’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의 후보들의 ‘원팀 협약식’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이 네거티브를 지양하고, 감정적 앙금을 해소하기 위한 ‘원팀 협약’을 지난달 28일 체결했다. 6명의 후보들은 국민을 위한 민생선거, 미래지향적 정책 제시, 정정당당한 선의의 경쟁 등 당 선관위가 제시한 5개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서약했다. 후보들은 함께 “우리는 원팀”이라는 구호도 외쳤다.
또 “우리는 국민을 위한, 대한민국을 위한 미래 지향적인 정책 대안 제시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우리는 민주당 대선 후보로서 품위와 정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후보들은 짝을 지어 ‘원팀’ 문구가 새겨진 배지를 서로의 옷깃에 달아주기도 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정책기조 발언에서 “오늘 원팀 협약식을 우리 당이 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 점에 대해 후보 한사람으로서 깊이 성찰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우리는 경쟁하는 것이지 전쟁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낙연 전 대표도 “우리는 원팀을 선언했다. 선언을 최고로 잘 이행하겠다”며 “동지 후보들이 내놓은 모든 좋은 정책을 수용한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송영길 대표는 협약식에서 “최근 경선 과정에서의 공방에 대해 당원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이라며 “가시 돋친 말은 결국 그 주인을 찾아온다는 세상사 이치를 기억해 달라”라고 당부했다.
이어 “과거 지향적이고 소모적 논쟁을 키우는 것은 당 단합을 해치고 지지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퇴행적 행태”라며 “한 분이 대선후보가 되면 나머지 다섯 분은 선대위원장이 돼 함께 뛰어야 할 동지라는 생각으로 임해달라”고 호소했다.

‘원팀 협약’ 후 바로 세운 가시
행사가 끝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후보들은 “검증은 불가피하다”며 긴장감을 연출했다. 이 지사는 기자들과 만나 “예비경선 때 부당한 공격을 당해도 원팀 정신을 지키다 보니 ‘김빠진 사이다’라는 말 들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고 밝혔다. 이어 “허위 사실을 방치할 순 없을 것”이라며 “내부 갈등을 노린 고의적인 이간책들이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잘 가려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오늘 이후가 아니라 저는 어제부터도 얘기를 안 하고자 노력했다”며 “잡음을 내지 않기 위해 최대한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지지자들께서도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세균 전 총리는 ‘네거티브 공방이 계속되면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질문에 “저는 네거티브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면서도 “도덕성 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은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TV 토론에 이어진 설전
이 지사와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8일 오후 생중계된 첫 TV토론회에서도 소위 ‘백제 발언’을 두고 두 후보는 설전을 이어 갔다. 이 전 대표는 ‘최후의 한마디’ 코너에서 “발언 녹음을 보내셨는데 그 녹음이 전체가 아니었다”고 이 지사를 지적했다.
이에 이 지사는 “저를 공격하기 위해 지역주의 망령을 끌어낸 데 대해서는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며 “사실을 왜곡해 공격하는 것, 이것을 흑색선전이라고 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총리도 “인터뷰 원문을 여러 번 읽었다. 은연중 호남불가론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읽혔다”며 국민과 당원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정 전 총리는 ‘노무현 탄핵 입장’을 꺼내 이 지사와 이 전 대표 간 벌였던 공방을 이어 갔다. 정 전 총리는 “국민들은 이 전 대표의 (탄핵에 반대했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탄핵 찬성파와 함께했던) 그때 행동을 믿어야 할지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대표는 “이재명 후보가 재난지원금과 관련해선 ‘날치기’라 말씀하셨는데 국회에 대한 온당한 주문이냐”고 쏘아붙였다. 이어 “이 지사는 국회에 대한 태도가 오락가락하는 듯하다”며 “야당이 여야 합의를 번복할 때는 야당을 비판하더니 법제사법위원장에 대한 여야 합의는 (여당에) 철회하라고 요구했다”고 모순을 지적했다.
이 지사는 “제 말이 바뀐 게 아니라 상황이 바뀐 것”이라며 “이 전 대표는 법사위원장 양보한 것을 존중해야 한다고 했지만, 전 권한이 없기 때문에 당원으로서 의견은 낼 수 있다”고 반박했다. 공격을 받은 이 지사는 이 전 대표의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사면 발언을 거론하며 “오히려 이 전 대표가 상황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게 문제다. 참여정부 때는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자고 주장했다가 이후에는 전직 대통령을 사면하자고 했다가 상황 바뀌면 사면하지 말자고 했다. 언론개혁도 반대하다가 또 태도를 바꿨다”고 꼬집었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는 ‘경선 과정에서 나를 서운하게 한 후보가 있냐’는 질문에 대해 둘 다 ‘○’ 푯말을 들기도 했다. 이 지사는 그 후보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굳이 집어서 말씀드릴 순 없을 것 같다”고 웃었고, 이 전 대표도 “말 안 하겠다. 나중에 또 야단맞을 거 같다”고 했다.
토론회에선 이 지사의 기본소득, 김두관 의원의 균형발전, 정 전 총리의 경제회복, 이 전 대표의 공공주택, 박용진 의원의 국부펀드, 추미애 전 대표의 지대개혁 공약 등 정책 토론도 이뤄졌지만 네거티브 공방에 묻혔다.

계속되는 후보간 난타전
이 지사는 지난달 29일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이 전 대표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표결 논란에 대해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는 게 문제”라며 “똑같은 상황에서 이중 플레이한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백제 발언’ 논란에 대해선 “지역주의를 깨자는 선의의 발언을 가지고 내가 조장했다는 식”이라며 “황당할 정도로 답답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표에 대해선 “없는 사실을 지어내거나, 있는 사실을 왜곡해 음해하고 흑색선전하면 안 된다”며 “공직 비리 문제는 국민들께서 절대 용인할 수 없는 문제이고 친인척, 측근, 가족 등 부정부패는 국민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표와 캠프 측은 “정당한 문제 제기를 흑색선전이라고 하는 게 바로 흑색선전”이라며 즉각 맞받았다. 이 전 대표는 라디오방송에서 “상대 후보가 오히려 이쪽이 흑색선전이다, 책임져야 한다고 해 문제가 계속되는 상황이 됐다”며 “경쟁의 속성이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 자제가 될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측근의 ‘옵티머스 사건’ 연루 의혹에 대해선 “그 사건의 조사에 대해서 아직도 미심쩍은 것이 있다”며 “검찰이 균형 있게 봤느냐, 제대로 봤느냐에 대해서 저는 의심을 갖고 있다”고 검찰의 편파 수사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 자신의 총리 및 당 대표 시절 성과를 거론하며 "그걸 애써 눈감으면서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하는 건 정치 공세"라고 역설했다.
정 전 총리는 이 지사에 대해 “국정 경험이 부족하고 경제를 모른다”라고, 이 전 대표에 대해선 “총리 시절 부동산도 제대로 못 하고, 집권 초기 지지율 덕을 본 것이지 내로라할 성과가 뭐가 있냐”고 각각 비판했다.
깊어지는 민주당의 고민
리얼미터가 JTBC 의뢰로 지난 17~18일 전국 성인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이 지사 지지층의 63.2%는 이낙연·윤석열 양강 구도가 될 경우 이 전 대표를 지지하겠다고 했지만, 이 전 대표 지지층 가운데 이재명·윤석열 양강 구도에서 이 지사를 지지하겠다는 비율은 33.5%에 불과했다(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이처럼 경선이 과열되어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경우 민주당은 지난 2012년 대선 경선 후유증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당내 분열에 문재인·안철수 후보 간 야권 단일화 갈등까지 겹치면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2012년 대선은 뼈아픈 과거로 남아 있다. 결국 이 갈등이 당시 대선에서 패인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고,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의 씨앗이 됐다는 평가가 많다. 지지층 간의 반목은 민주당에서 반드시 피하고자 하는 가장 위험한 ‘암초’일 것이다.
이 지사와 이 전 대표가 ‘탄핵’과 ‘백제’ 논란 등 연일 격렬한 공방을 벌이면서도 양측 모두 “네거티브 공세가 아닌 검증”이라고 말하고 있다. 반면 캠프 내부적으로는 상대방을 몰아붙일 수 있는 공격 소재를 찾고 방어 논리 구축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 대선 경쟁에서 도덕성 검증은 피할 수 없고 이를 네거티브와 구별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실에 입각한 논쟁이 필요하고 서로 공격하면 앙금만 남는다면 결국 독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희윤 기자 bond00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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