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 "새 광화문광장에 존치해달라"
서울시의회 “기억공간 이전 문제에 관한 협의체 구성하자”
[시사매거진278호]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를 둘러싸고, 서울시와 세월호 유족들 간의 첨예한 대립각이 좁혀지지 않던 가운데, 27일 서울시의회가 광화문광장에서 옮겨온 '세월호 기억공간'의 전시물을 2주간 전시하기로 밝혔다.

'세월호 기억공간’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 내 설치한 천막과 분향소를 철거하는 대신 전시공간을 마련키로 하고 서울시가 2019년 4월 조성한 공간이다. 당시 서울시와 유가족은 기억공간을 2019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키로 합의했으며, 지난해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착공 시기가 늦어지면서 지난해 말까지 철거를 미뤄왔다.
서울시는 지난 5일(7월)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에 세월호 기억공간을 철거하겠다고 '4월16일 약속 국민연대'(이하 4·16연대)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공사를 이유로 철거 통보를 한 것으로 파악됐으며, 서울 시측이 밝힌 철거 시작 날짜는 26일로, 21일부터 25일까지 세월호 기억공간에 있는 사진과 물품 등을 모두 정리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4·16연대는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를 위한 단계별 공사진행 계획으로 인해 지난해 7월에도 서울시로부터 세월호 기억공간을 이전해달라고 요청을 받은 바가 있다.
이후 4·16연대측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기억 공간을 이전할 수 있지만 공사가 끝난 뒤엔 광화문 광장에 다시 안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서울시에 전달했으며, 이후 서울시와 7차례 면담을 진행했지만 서울시로부터 공사 이후 기억공간을 존치할 수 없고, 철거도 진행하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다만 서울시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식수 또는 표지석 설치에 대해선 협의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철거 예정일인 26일 오전과 오후 3차례에 걸쳐 광화문 광장에 있는 세월호 기억공간 현장을 찾아 세월호 유족 등을 상대로 철거를 위한 설득에 나섰지만 유족 측은 이를 수용하지 않으며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은 잇달아 현장을 찾아 유족 측과 면담을 진행하면서, 서울시 총무과장을 비롯한 서울시 관계자 3명이 세월호 기억공간을 찾아 유족 측과 면담 시간을 가졌지만 입장차가 좁혀지는 등의 진전은 없었다.

<서울시, 광화문광장은 모든 시민의 광장.. 철거는 불가피해>
서울시는 광화문광장 공사를 조속히 마무리해 시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해서는 8월 초부터 '세월호 기억 및 안전 전시공간' 일대 부지 공사를 본격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사 진도에 맞춰 7월 중 해체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유족 측에 철거 협조를 부탁한 것이다.
새 광화문광장은 박원순 前 시장 재임 때부터 구조물 없는 열린 광장으로 계획됐기 때문에 기억공간 철거는 불가피 하다는 것이 서울시의 입장이다. 기억공간 내 물품은 서울기록원에 임시 보관한 뒤 오는 2024년 경기 안산 화랑공원에 조성될 예정인 세월호 추모시설로 이전하겠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지상에 구조물없는 '열린 광장' 형태로 계획된 것은 전임 시장 때 확정된 사안으로 서울시가 일관되게 유가족들에게 안내한 사항"이라며, "새 광장은 모든 역사적인 사건과 순간을 아우르는 시민들의 공간이어야 한다. 세월호 기억공간을 다른 장소로 이전 설치하거나, 광화문 광장 조성 후 추가 설치하는 것은 협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유족 측, “새 광화문광장에 존치”, 송영길 대표 “보존할 가치 있는 공간”>
세월호 유족 측은 서울시의 일방적인 철거 통보가 소위 ‘세월호 지우기’로 판단된다며 강력 반발했다. 4·16연대는 "공사 기간에는 (기억공간을) 임시 이전할 수 있고 완공 후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취지에 맞게 위치를 협의할 수 있다"며, "서울시는 이에 대한 대안 마련은 전혀 검토하지 않았고 서울시장의 면담 또한 추진하지 않은 것에 유감"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세월호 가족들은 표지석이나 식수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광화문 광장 세월호 기억공간은 시민들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서울시의 일방적인 철거 통보는 세월호 지우기라 판단된다"는 입장을 전했다.
유족들은 크기를 줄이거나 위치를 달리해서라도 광장에 기억공간을 다시 설치해달라는 입장인 것이지만, 서울시는 어떠한 구조물도 설치하지 않는 보행 광장으로 조성할 것이라며 '수용 불가'의 뜻을 분명히 전했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은 서울시의 철거계획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26일 유가족과 면담을 갖으며, "기억의 공간은 우리 아이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 기억의 공간일 뿐 아니라 1700만명의 수 많은 국민이 촛불을 들고 세계에 유례없는 야간 평화적 집회를 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면서 “유럽과 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위대한 국민의 역량을 보여준 공간이 광화문”이라며, “광화문은 세월호 뿐 아니라 그 속에 전 세계 헌정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헌법적 절차에 따라 정권이 교체되고 단죄를 받고 새 정부가 탄생한 혁명적 공간”이라고 말했다.

송대표는 "유가족들이 철거에 반대한 것은 아니다. 공사를 하려면 철거를 해야하니까.. 공사 완료 후 어떻게 기억 공간을 다시 설치할지에 대해 서울시와 협의할 것"이라며, 이는 여야의 문제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헌정사의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을 잘 보존하는게 서울시의 명예를 높이는 일이라고 철거 요구 철회를 촉구하는 입장을 내비쳤다.


<7년만에 광화문서 철거.. 김인호 의장 ‘세월호 기억공간 협의체’ 구성 제안>
이처럼 세월호 기억공간 철거를 두고 서울시와 극한 대립을 이어갔던 세월호 유족 측은 서울시의회 등의 중재로 물품을 시의회로 옮기기로 하고 27일 자진 철거했다. 시의회는 27일 시의회 1층 전시공간과 담벼락에 세월호 기억공간 내 사진 등을 임시적으로 전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서울시와 유족 측이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중재 역할을 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29일 김인호 서울시의회 의장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조찬회동을 갖으며, 세월호 기억공간 관련 협의체를 구성하자는 뜻을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이에 오세훈 시장은 전향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조찬회동 이후 해당 주무부서에 의회 의장단이 건의한 내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실상 서울시의 입장 변화가 크지 않아 해결까지는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비록 시의회가 임시 이전을 제안하면서,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중재 역할을 하기로 했지만, 서울시는 그동안 새 광화문 광장에는 어떠한 지상 구조물도 설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기 때문에, 다시 새 광화문광장으로의 이전을 원하는 유족과의 협의 성사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밝혀온 행정원칙에 따라 세월호 기억공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에서 달라진 것은 없다는 서울시와 중재 역할을 맡은 서울시의회, 그리고 그에 대응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김민건 기자 dikihi@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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