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학부모, 학교 반발 목소리 커지는데 정부는 애써 외면

올해 3월 30개 학교를 시작으로 2011년까지 100개 자율형 사립고를 지정할 계획이지만, 일부 시도의 경우 신청학교가 아예 없거나 대부분 서울에만 치중돼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교육청의 자료를 종합해보면, 6월19일 13개 시도가 신청을 마감한 가운데 전국적으로 43개교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나마 30개교가 신청한 서울을 제외하면 그 이외 지역에선 13개교에 불과하다.
시도별로 살펴보면, 경기도에서 동산고 하나만 신청했고, 대구가 3개교, 부산(해운대고는 자립형사립고에서 자율형사립고 전환 신청)과 광주, 전북이 2개씩, 경남, 경북이 하나씩 신청했으며, 충남의 천안북일고는 (자율형사립고가 아닌) 자립형사립고를 신청했다.
신청이 마감된 인천, 전남, 제주, 울산은 신청학교가 하나도 없으며, 진행 중인 강원, 충북, 대전도 현재까지 신청 학교가 없어 앞으로도 자격을 갖춘 신청학교가 거의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서울의 미림여고, 대원여고, 인창고 3곳이 자율형 사립고 전환 신청을 포기했다. 대구에서도 영진고가 자율형 사립고 전환 계획을 백지화했다.
자율형 사립고 전환 정책이 발표된 시초에는 많은 학교들이 관심을 가지고 자율형 사립고 전환 신청을 희망했으나, 현재는 신청률이 저조하고 신청 철회 학교들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자율형 사립고 추진을 큰 맥락에서 보자면 학생 선택권 확대와 학교 다양화라는 두 가지 명분을 내세우고 있고 자율형 사립고 설립을 계기로 고교에 자율권을 대폭 부여해 수월성·경쟁 위주의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정부의 취지라면 자율형 사립고 신청을 희망하는 학교들이 많아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교들이 자사고 전환을 꺼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또한 자율형 사립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 것일까?
자율형 사립고 전환 신청을 철회한 미림여자고등학교 고세연 교장은 “재단전입금도 부담스럽고, 아직 준비 부족한 것 같다고 판단 돼 자사고 신청을 철회하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고, 또 대원여자고등학교 연용희 교장은 “학교 등록금이 인상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학부모님들께 너무 큰 부담을 안겨주는 것 같고 지역여건을 고려한 결과 자사고 전환 신청을 철회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라고 밝혔다.
자율형 사립고 전환 신청 철회를 요청한 학교의 의견을 취합해 보면 대표적인 이유로 재단전입금이 부담된다는 것과 학생 선발권을 제한한 것, 학생들 간에 위화감 조성을 꼽았다. 그 밖의 의견에는 평준화의 해체, 고교입시 부활, 고교등급제의 합법화, 교육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사교육비 증가, 창의적 인재 양성보다는 학교 서열화가 형성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학교운영비의 5%(수업료 및 입학금 총액의 3%) 이상을 재단전입금으로 내야 학교를 자율형 사립고 전환 대상이 된다. 2007년 서울 자율형 사립고 신청학교의 전입금 5% 충족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에서 신청학교 30개 중 5% 기준을 충족시키는 학교는 12개 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의 계획대로 ‘1 구에 1 자율형 사립고’ 원칙으로 따져본다면 강남구, 서초구 등 9개 구에는 자율형사립고를 설치할 수 있지만 도봉구, 노원구, 금천구 등 16개 구에는 하나도 설립할 수 없다. 애당초 1구 1 자율형 사립고를 설립한다는 원칙은 도저히 지켜질 수 없는 것이었다.
지방은 사정 더욱 심각하다. 현재 진행 중인 대전, 강원, 충북을 제외한 모든 시도에서 신청을 마감한 가운데, 인천과 울산, 제주, 전남은 신청 학교가 하나도 없어서 전국적으로 13개교 밖에 안 된다. 이들 13개 신청 학교 중에서 자율형 사립고 기준을 만족시키는 학교는 대구 계성고와 부산 해운대고가 유일하다. 그나마 부산 해운대고는 현재까지 자립형사립고로 운영되다가 재정 부담 때문에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는 경우이므로 실제로는 한 학교밖에 없다. 충남 천안북일고는 자율형사립고가 아니라 자립형사립고를 신청하였으므로 재단전입금 최소 기준이 25%인데 여기에 미달인 것으로 나타난다.
부산 동래여고, 대구 소선여고(중), 전북 익산고 등은 등록금 대비 재단전입금이 0.1%밖에 안 되고, 대구 경산고, 전북 중앙고, 경북 김천고, 경남 창신고 등은 0.5%도 안 되는 등 10개 학교가 최소 기준에 미달이다.

정부는 서울 자율형 사립고의 경우 중학교 내신 성적 중간 이하의 일정 기준만 통과하면 추첨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방안을 서울시교육청에 제시해놓은 상태다. 교과부는 당초에는 면접, 서류전형 등으로 정원의 일정 배수만큼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자율형 사립고 대비 사교육을 최대한 억제하겠다는 의도에서 방침을 바꿨다.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ㄷ고등학교 이모 교장은 “자율형 사립고는 다양한 교육 수요를 수용하기 위해 특색 있는 학교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려면 학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교육과정에 맞는 학생을 뽑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율’이라는 이름과 달리 신입생 선발에 있어 제약이 많은데다, 현 제도에서 우수학생을 뽑기 힘들기 때문에 자율형 사립고를 추진해야할 특별한 무언가가 없는거죠”라고 학생선발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노원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신청한 대진고 이태열 교장은 “보다 좋은 환경에서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학교 자율성이 확대는 것은 찬성하지만, 학사운영의 자율권을 보장한다면서 학생 선발권을 제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더구나 기존의 특목고나 자립형 사립고와 경쟁해야 하는데 단순히 추첨을 통해 학생을 선발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학생 선발 자유권을 보장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학생들 간 경쟁심화, 위화감 커져
올해 4월 참교육연구소가 수도권지역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자율형 사립고가 귀족학교가 되어 위화감이 심화될 것이라는데 동감하는 의견이 68.2%, 일반학교 학생의 소외감이 심화될 것이라는 데에도 동감하는 의견이 69.4%로 나타나고 있다.
전교조 경기지부 박효진 지부장은 “여전히 우리 아이들은 정부의 정책실험을 위한 실험실의 쥐가 되고 있고, 학교현장은 적자생존·약육강식의 밀림법칙이 관철되고 있으며, 공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정책담당자들은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는 현실”을 강하게 성토하는데 이어 “자율형 사립고는 평준화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이명박 정부의 특권교육·차별교육의 결정판이며, 결국 평준화 해체와 공교육붕괴로 귀결 될 뿐이다”면서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된 학교는 교육과정의 왜곡을 통한 학과개편이 필연적이고, 국가가 책임져야 할 공교육을 자율이라는 미명 아래 학부모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교육위원회 김순종 부의장은 이에 대해 학생들은 중학교 내신 성적을 바탕으로 선발하고, 20%의 해당하는 학생은 사회적인 약자의 몫으로 배려하기 때문에 돈 있는 집안자제들만 오는 곳이 아니다”라며 “이러한 자율형 사립고를 만들기 위해 국가에서 제한하던 사학의 자율권을 최대한 허용해 사학이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건학이념에 맞는 운영을 할 수 있고, 학생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분히 수용할 있다”고 말했다.

학교가 자율형 사립고로 선발되면 학부모들의 부담감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교육청에서 지원되는 재정결함보조금이 없어지기 때문에 이를 학생등록금 인상으로 보충할 수밖에 없다. 이럴 경우 현재 재정규모를 유지하는 조건으로 계산해 보면, 신청 학교들은 등록금을 평균 3배를 인상하여야 하고 학부모들은 등록금만 현재의 3배를 부담해야 하는 일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자녀를 둔 이춘자(45,주부) 씨는 “일반 사립고교 학생 납입금도 가계 부담의 원인인데 자율형 사립고의 경우엔 학생납입금을 학교장 자율로 종하면 대부분의 학부모가 교육비 부담으로 자녀의 자율형 사립고 진학을 반기지 못할 것이다. 실제 자율형 사립고에 입학생들은 유복한 가정의 자녀만 진학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자율형 사립고 설립에 대한 의문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우수한 학생들이 자율형 사립고에 지나치게 몰리면 일반계고교와의 학력차가 벌어지는 등의 문제로 고교에서도 1류와 2류, 3류 등으로 학교간의 서열화가 우려되는 점도 있다. 만약 학생납입금을 경기도교육청처럼 일반사립고교의 2배로 정해 자율형 사립고 전환 신청공모를 받았으면 신청교가 현저히 줄어들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희망교육연대 관계자는 “자율형 사립고 찬성 입장도 반대 입장도 아니다. 자율형 사립고는 분명 충분히 교육계에 미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에 수분되는 문제점도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형 사립고는 제대로 된 토론회나 공청회 없이 밀어붙이는 졸속행정의 사례가 아닌가 싶다. 급하게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다. 조금 더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우는 중요한 곳인데도 불구하고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고, 시범적인 운영도 없이 자율형 사립고가 운영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자율형 사립고를 반대하는 여론에도 귀 기울여 그들이 우려하는 점이 무엇이고 실제 자율형 사립고 가 운영됨에 따라 교육에 미치는 악영향은 없는지 충분히 검토한 후 보다 선진화된 교육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라며 자율형 사립고 추진에 대한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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