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아세안의 대화관계 20주년을 기념하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가 제주에서 열렸다. 1989년 처음 대화관계 수립 이후 상생의 관계를 걸어온 한국과 아세안은 20주년을 기념해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욱 심화시키는 새로운 계기로 거듭나고 있다.
이 정상회의는 주기적으로 열리는 ASEM, APEC 등의 국제회의와는 다른 차원의 특별한 회의다. 이명박 대통령은 10개국 정상과 연쇄적인 개별 양자회담을 갖는데, 우리 정상이 한 국제회의에서 아세안 10개국과 연쇄 정상회담을 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의 대(對) 아세안 외교사에서 기념비적이라 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주요국은 1980년대 후반 이후 7~8%에 이르는 경제 성장을 기록하면서 동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흥시장으로 성장하였다. 1990년대 초반 선진국의 보호주의 강화와 지역주의 대두, 중국 경제로의 투자확대 등에 따른 새로운 국제환경에 직면해 아세안은 역내 통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기존 회원국 6개국으로 구성되었던 아세안은 1995년 베트남이 신규 가입한 후 미얀마, 라오스에 이어 1999년 캄보디아가 가입함으로써 동남아 10개국 모두 회원국이 되었다.
우리에게 아세안은 시장 개척, 투자 진출, 자원개발 및 경제개발 지원 등 각 분야에서 협력 잠재력이 무한한 지역이다. 교역규모는 중국, 유럽연합에 이어 3대 교역시장으로 부상했고, 우리 기업의 제2의 투자진출 지역이기도 해서 이번 정상회의의 결과에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
아세안은 상생과 공영해야 할 경제적·인적·문화적 동지
이번 정상회의는 정부의 ‘신(新)아시아 외교’ 추진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신아시아 외교 추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아세안 10개국 정상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협력관계를 증진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된 어젠다인 개발협력 확대,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협력, 범세계적 이슈에 대한 협력강화는 신아시아 외교의 추진방향과도 같다. 또한 아세안 간 협력관계를 한 차원 더 높게 강화시킴으로써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대 아세안 무역 및 투자를 증진시키고, 동남아시아 유력기업의 대 한국 투자 및 동남아 관광객의 우리나라 방문 증대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활동하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긍정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이렇듯 아세안은 우리에게 중요한 외교적 협력대상이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국제관계지만 특히 근접해 있는 아세안은 상생과 공영해야 할 동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세안 10개국은 모두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며, 아세안이 주축이 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북한이 참여하는 안보협의기구로서 북한 핵문제 등 지역안보 문제를 논의하는 중요하고도 유일한 장이기도 하다.
더불어 아세안은 우리나라 국제 경제의 핵심 파트너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아세안은 3대 교역대상 지역(902억 달러 규모), 2대 투자대상 지역(58억 달러 규모), 2대 해외건설 수주 지역(91억 달러 규모)이다.
뿐만 아니라 인적·문화적 교류도 경제 못지 않게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는 13만 명의 외국인노동자, 4만 명의 이주결혼자가 있으며, 지난해 이들 국가를 방문한 우리 국민이 320만 명으로 제2위 방문 지역이었고, 25만 명에 달하는 우리 동포가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따지자면 아세안은 결국 하나의 큰 국가인 셈이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 또한 내 나라만의 부흥이 아니라 아세안 공동의 민주화와 사회경제 발전을 이뤄나가자는 취지에서이다.
‘신(新) 아시아 구상’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
이명박 대통령과 아세안 10개국 정상들은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에서 정치·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공동체 구축을 골자로 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을 채택했다.
양측 정상은 이날 공동성명에서 “아세안은 ‘신(新) 아시아 구상’을 통해 아세안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한국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한국이 2015년까지 정치·안보 공동체, 경제 공동체, 사회·문화 공동체 등 3대 공동체를 구성한다는 (아세안의) 목표에 지지를 표명한다”고 밝혔다. 양측은 북핵 실험과 관련, “6자회담 과정을 통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포함해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시키고 대화를 촉진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양측은 경제 및 개발 협력 강화와 관련, “한·아세안간 물류를 포함한 모든 교통수단을 포괄하는 협력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한·아세안 교통협력 양해각서가 2009년도 말까지 양측 관련 정부 부처간 신속히 체결되기를 기대했다”며 “승객 및 항공화물을 포함하는 한아세안 항공협정에 관한 논의가 2010년 초까지 시작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근로기준, 노사관계, 고용평등, 직업능력 개발 등의 분야에 있어 연수 및 전문가 교환방문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며 “한국은 아세안 인력 송출국가와의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한국내 아세안 근로자에 대한 지원을 확충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범세계적 이슈에 대한 협력과 관련해선 “기후변화와 환경, 최근의 국제금융위기 및 세계경제 침체, 식량 안보, 에너지 안보, 신종 전염병과 같은 범세계적 도전에 공동 대응해나가기로 했다”며 “역내 식량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아세안+3 긴급식량비축제도(APTERR)’가 설립되도록 노력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날 특별정상회의에서 양측은 상호 투자 및 투자자 보호를 골자로 한 자유무역협정(FTA) 투자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투자협정에는 ▲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를 부여한 ‘투자의 일반적 대우’ ▲투명성 제고 ▲투자와 투자자에 대한 손해 발생시 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 절차(ISD) 도입 등의 규정이 담겨있다.
아세안 국가들이 힘을 모아 녹색성장에 앞장설 때
앞서 이명박 대통령은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동아시아 기후 파트너십’을 통해 아세안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2억 달러를 지원할 예정”이라며 “아세안이 녹색사업을 통해 신성장동력을 창출해 경제성장과 기후변화 대응간 선순환을 이루어내도록 적극 지원해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국은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공동대응 방안의 하나로 ‘아시아산림협력기구’ 창설을 제안하며 이에 대한 아세안 국가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또 ‘신용보증투자기구’ 설립과 ‘아시아 산림 협력 기구’ 창설을 제안하고 아세안을 녹색협력의 동반자로 삼겠다는 말대로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아세안 국가들에게 2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특별정상회의 전후에 열린 ‘한·아세안 CEO 서밋’ 등 관련 행사를 통해 대(對) 아세안 세일즈 외교를 펼친 것은 또다른 성과다.
정상회의 개막 전날인 5월31일 이 대통령은 서귀포시 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한·아세안 CEO 서밋’ 기조연설을 통해 무역·투자, 문화·관광, 녹색성장 등 3대 협력방안을 제시하면서 아세안 기업인들의 투자를 유도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연초 내건 ‘신 아시아 외교구상’에 대해 아세안 정상들이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특별정상회의는 한국이 글로벌 리더 국가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 도약대가 됐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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