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라노 이윤지 리사이틀 ‘사랑의 시’ (Poetry of Love)
피아노 한미연, 플루트 서지원

[시사매거진] ‘사랑’이란 무엇일까? 신의 속성이기도 하지만, 역사 이래 수많은 문학작품들과 예술작품들의 주요 소재로 늘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그것. 누구에겐 천국의 문이겠지만 또 다른 누구에겐 헬게이트가 열리는 바로 이중성의 얼굴이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나오는 헨델의 오페라 <Alcina> 중 ‘Tornami a vagheggiar(내게 돌아와 주오)’ 등 사랑에 관한 여러 테마들을 구성해 관객을 기다리는 소프라노 이윤지, 그가 8월 18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사랑의 시(Poetry of Love)’라는 주제로 리사이틀을 펼친다.
소프라노 이윤지는…
소프라노 이윤지는 초중고 그리고 대학과정을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를 했다. 초등학교 때 가족들과 함께 미국 생활을 시작한 그는 처음에는 언어적 소통이 자유롭지 못해 힘든 시기를 보냈다. “너무나 외롭던 시절이었고 대화가 안 되니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기 어려웠습니다. 더군다나 그곳에선 외국인이라는 존재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들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대화가 원활해지면서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고, 유학 생활이 차츰 안정되어 갔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플루트를 배웠는데, 어릴 적 미국 생활을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어 준 악기였습니다. 그 시절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가 있는데, 어느 날 레슨 곡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곡 끝부분에 카덴차(즉흥연주)가 나오길래 오선지에 바로 받아 적어 연주했습니다. 이것을 선생님께서 보시고 적잖이 놀라셨습니다. 당시엔 이런 일이 저에겐 자연스러웠던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이후 알게 된 것이지만 이게 바로 ‘절대음감’이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의대생이시면서도 성악에 푹 빠져 거의 음악대학에서 살다시피 하셨다고 합니다. 오빠 또한 여러 악기들을 다루고 절대음감을 지닌 음악 애호가이기도 합니다. 어머니에 관한 재미있는 추억이 있는데, 어릴 적에 저희 아버지께서 ‘음치여서 애들 앞에서는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굉장히 유쾌한 성격으로 가정을 화목하게 만드시는, 분위기 메이커인 저희 어머니가 바로 음치셨던 겁니다. (웃음) 이렇게 음악에 대한 정성과 열정이 대단하신 아버지께서 저의 성악 재능도 발견하셨습니다. 따뜻한 가정환경과 음악 애호가인 가족들 덕분에 응원과 함께 모니터링을 받고 있는 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인생의 멘토가 되어준 이윤지의 스승들
저에겐 모두 네 분의 선생님이 계십니다. 입시 때 인연이 된 최훈녀 선생님, 이화여대에서의 신애경 선생님, 그리고 미국에서의 패트리샤 와이즈(Patricia Wise)와 베스 로버츠(Beth Roberts) 선생님입니다.
최훈녀 선생님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스승과 제자 간의 격이 없이 대해주시는 따뜻한 선생님이시고, 성악의 첫 걸음마를 잘 이끌어주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에 만난 신애경 선생님은 한 마디, 한 음표를 제대로 해야 그다음으로 넘어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만큼 소리와 음악을 세심히 지도해 주셨습니다.
매네스 음대에서의 베스 로버츠 선생님은 늘 잘 하고 있다는 말로 격려와 칭찬을 많이 해 주셨던 분이었고, 인디애나 음대에서 석사과정 동안 사사했던 패트리샤 와이즈 선생님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표현할 수 있도록 음악과 연기 전반적인 부분을 코칭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용기를 갖도록 북돋아주셨고, 음악뿐만 아니라 친구처럼 삶에 있어서 많은 부분들을 공유하고, 인생의 선배로서도 지혜롭게 조언해 주셨던 분입니다. 성장하는 걸음마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의 애정과 가르침을 받은 덕분에 현재의 제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탱글우드와 현대음악, 그리고 인연
지휘자 세르게이 쿠세비츠키(Sergey Koussevitzky)가 창설한 미국 매사추세츠 주 최대 음악제, 탱글우드 뮤직 페스티벌은 마치 파라다이스에 온 행복 그 자체였습니다. 매년 6월에서 8월 사이에 열리는 이 페스티벌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서머캠프에 온 학생들의 연주만으로도 두 달간의 축제는 늘 성황을 이뤘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아쉽게도 모든 축제가 사라졌지만, 당시 탱글우드 숲은 24시간 내내 지저귀는 새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음악으로 가득히 채워지곤 했습니다.
2013년에 참가한 페스티벌에서 저에게 여러 미션이 주어졌는데, 그곳에서 부른 많은 노래들 중에 현대음악으로는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18명의 연주자를 위한 음악>과 이번 리사이틀에서도 부르게 될 조셉 슈완트너(Joseph Schwantner)의 <아게다 핏자로의 두 개의 시> 중 ‘Shadowinnower(쉐도우위노어)’ 그리고 탱글우드 오디션에서 불렀던 우도 침머만(Udo Zimmermann)의 <Wenn ich an Hiroshima denke>(히로시마를 생각하며)가 인상 깊었습니다.
미국 유학시절 중요한 오디션마다 저를 합격하게 만들어 준 침머만의 곡 <히로시마를 생각하며>는 저에게 특별합니다. 만나본 적 없었던 작곡가 침머만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어 연락을 취했는데, 2년 전 드레스덴 국립음대의 초청을 받아 우도 침머만 헌정 기념 학술 콘서트에서 그의 곡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제가 연주한 음원을 행사 주최 측에서 사용허가를 위해 연락이 왔었는데, 그때 제가 직접 연주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연주 후 침머만의 아내분께서 남편이 눈물을 흘리며 들었다고 하시면서 “나의 이 곡이 마치 이윤지를 위해 쓰인 것 같다. 매우 힘든 곡인데도 불구하고 완벽한 감정 표현에 큰 감동을 받았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번 연주 때 피날레 곡으로 선택한 <쉐도우위노어>라는 곡은 탱글우드 때 그 매력에 빠져 제가 언젠가 다시 한번 불러보고 싶었던 곡입니다. 이 곡은 내용의 해석 자체가 난해한 스페인 시였고, 성악가가 불꽃이 튀는 듯한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직접 휘파람도 불고, 크로탈레스(여러 개의 작은 심벌즈)를 연주하는 멀티태스킹을 요해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선 순간 공연장 너머 잔디밭에 앉은 청중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경청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때에 마치 대자연을 보며 숨통이 트이듯 저의 마음도 놓였습니다. 그리고 곡이 끝난 후 갈채가 쏟아졌고, 피아니스트와 함께했던 긴장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도 다시 한번 이 곡을 청중께 선사하고 싶습니다.

어렵지만 그래도 현대음악
많은 음악들이 있었지만 ‘환희’라는 의미를 가진 <쥬빌러스>(Jubilus)가 가장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 곡은 줄리아드 교수였던 게오르게 코스티네스쿠(Gheorghe Costinescu)의 가장 난이도 높은 곡들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 악보를 받고 한자리에 꿈쩍 않고 앉아 악보를 파악하는데도 8시간이 넘게 걸릴 만큼 어려운 곡이라 작곡가도 별 기대를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악보에는 이 세상에 없는 발음을 기호화해서 복잡한 리듬과 연속되는 변박, 어려운 음정 간격, 휘파람, 그리고 들숨에 노래를 해야 하는 등등 페이지마다, 아니 각 마디마다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연주 결과는 ‘현대음악의 맛을 잘 표현해내는 학구적인 성악가’라는 호평을 받았습니다. 연습 과정은 고통의 여정이었지만 새로움을 발견한다는 기쁨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저에겐 악보를 초견에 금세 읽어내는 강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음악에 제가 특별히 관심이 많은 이유는 초연 곡들은 나의 해석이 새로운 기준이 되는 점과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은 나만의 해석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또 다른 자유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어떤 음악가가 되고 싶은가
주변에서 저를 가리켜 ‘배려’의 아이콘이라는 말을 하는 소리를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마치 현악 사중주에서 ‘비올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요? (웃음) 바이올린처럼 화려하지는 않으나 저음의 첼로와 고음의 바이올린 중간에서 서로를 중재하며 조율해 주는 게 저의 성격과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성정들을 연주에 담아 청중들이 제 노래에서 따스한 위로와 용기, 희망을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가가 되고 싶습니다.
작곡가 전예은이 말하는 소프라노 이윤지
국립오페라단의 <레드슈즈>와 <브람스…>의 작곡과 편곡으로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있는 작곡가 전예은이 이윤지와 2013년 탱글우드 페스티벌에서 특별한 인연이 있었다는데…
“저희가 2013년 탱글우드에서 만났으니 벌써 8년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매년 탱글우드 페스티벌에 기악 전공한 한국인이 다수 있지만, 작곡이나 성악의 경우 거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소프라노 이윤지 님을 처음 만났을 때 놀라웠고 특별히 호감이 갔습니다. 마침 제가 탱글우드에서 연주한 곡 중 하나가 인성곡(L’invitation au voyage ‘여행에의 초대’)라는 곡이었는데, 이 곡을 이윤지 님과 함께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다소 차분해 보이던 첫인상과는 달리, 새로운 음악을 익혀가는 모습에서 굉장한 열정과 에너지를 느꼈고, 현대음악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수용력에 무척 즐겁게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함께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한 아티스트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마치 영화 <카핑 베토벤>에 나오는 “공기의 떨림은 인간의 영혼에게 이야기를 하는 신의 숨결이야. 음악은 신의 언어야”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전달자가 되고 싶어 하는 소프라노 이윤지.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과 함께 자신의 길을 침착하게,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음악가 이윤지!
이번 리사이틀 주제 ‘사랑의 시’는 소설 <주홍글씨>의 저자 나다니엘 호손(Nathaniel Hawthorne)의 말들 중에 “행복은 나비와 같다. 잡으려 하면 항상 달아나지만 조용히 앉아있으면 스스로 너의 어깨에 내려와 앉는다”라는 글귀를 떠올리게 한다. 이처럼 사랑은 조급함보다는 ‘기다림의 미학’이라는 의미로 다가오듯 아름다운 선율이 귓가를 간지럽히며 나비처럼 어깨에 내려앉는 사랑의 순간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연주회를 “나비처럼 내려앉은 8월의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