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렸을 적부터 남달랐던 영적능력
서울 출신인 김현정 원장이 처음 영적능력을 발휘하게 된 때는 10살 때 학교에서 시험시간 도중 시험지가 백지로 보인다고 선생님에게 말을 했는데, 선생님은 김 원장이 아프다고 판단, 양호실에 보내줬다고 한다. 양호실에서 잠을 자다가 어떠한 힘에 이끌려 잠에서 깨고 10세 소녀가 가기엔 힘든 거리인 한성대학교 뒤편 낙산에 갔다고 한다. 낙산에 올라가 보니 바윗돌 사이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는데 이 물을 마시게 되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세상이치를 다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이러한 일들을 말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후 한동안 특별한 일이 없던 그녀에게 13세 때 다시 한 번 이상한 일이 일어나게 되었다. 김 원장은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그려진 지폐로 총을 만들어 ‘자유당은 곧 무너질 것’이라는 말과, 후에 5.16혁명 때 사형당한 사람들 이름을 거론하며 ‘너희들은 다 총살이다’라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영적능력이 소문이 나게 되면서 동네어른들 너나할 것 없이 그녀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고, 그녀도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해주었고 그녀의 이러한 말이 사실이란 것은 시간이 증명해 주었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던 부모님은 이사를 결정하게 되었고, 이사 후에 그녀는 남들처럼 고등학생 신분으로 여느 학생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게 되면서 한동안은 이상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국가중대사 예언 통해 영적능력 인정받다
고등학교 졸업 후, 결혼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김현정 원장이 다시 신과 만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기게 된다. “아들을 출산하고 난 뒤부터 아들이 계속 아팠습니다. 병원에 데리고 가도 별다른 호전을 보이지 않아 남산약수터에서 물을 떠놓고 100일을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이후 점차 아들의 병세는 호전되어 갔으며, 저에 예언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고 말하며 신과 다시 조우하게 된 계기를 밝혔다.
100일 기도 후 김 원장이 한 첫 예언은 바로 베트남전쟁이 일어난다는 내용의 예언이었다. 이 예언이 코리아헤럴드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능력을 믿게 되었고 이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이후 중국정세변화,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 서거, 대통령 당선자 등 국가중대사들을 예언하게 되면서 더욱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10년을 국가중대사 및 개개인의 답답함 해소 등에 힘써오던 김 원장은 아들의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 살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 이유는 김 원장의 아들이 “많은 사람들의 어머니가 아닌, 저에 어머니로 살아주세요”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에 모든 것을 청산하고 미국으로 건너가고자 했던 그녀에게 시련이 다가오게 되었다. 미국으로 가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 남편이 크게 다쳐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들을 겪은 김 원장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이 해야만 일이라 생각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였고, 현재는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현정 원장의 현재 관심은 40~50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김 원장은 “경기침체로 인해 불투명한 미래에 불안함을 안고 있는 그들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싶습니다. 사람에게는 미래가 중요합니다. 그들의 운명을 알아본 후 함께 고민하고 가장 적합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제가 돈을 벌고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 할아버지 신은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정말 어렵고 삶에 지친 사람들이 온다면 보수 없이도 좋은 방향을 제시해 주고 싶습니다”고 전하며 “삶에 지친 사람은 언제든지 예언의 집으로 찾아오십시오”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김현정 원장은 “지나간 일은 퇴색한 회색빛, 다가올 내일의 인생이 중요한 것, 분노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라는 말을 강조하며 늘 미래에 대비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