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눈과 귀가 디지털기기에 혹사당하고 있다
상태바
내 눈과 귀가 디지털기기에 혹사당하고 있다
  • 신혜영 기자
  • 승인 2009.06.10 1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디지털 치매’ ‘거북목’ 등 신종 현대병 늘어… 자신의 상태 파악 후 관리가 중요

▲ 전문가들은 매일 15분씩만 음악을 들어도 소음성 난청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지적한다. MP3 등 지속적인 자극에 따른 ‘난청’은 보청기를 착용하는 등 치료수단도 있지만 영원히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서울 수유동에 사는 신모 씨(31)는 요즘 부쩍 눈이 침침하고 어깨 결림과 귀에서 ‘윙~’하는 소리 때문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유인 즉은 음악과 게임. 그녀는 “출퇴근 시간에 버스에서 휴대폰으로 게임이나 음악을 들었던 게 원인인거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모 씨(34)는 최근 영화 등 동영상을 저장해 볼 수 있는 PMP(휴대형멀티미디어플레이어)를 구입한 뒤 출·퇴근 할 때뿐만 아니라 쉬는 시간에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것도 모자라 밤에도 PMP로 영화를 보다 잠들기가 일쑤, 그러다 보니 아침이면 눈곱이 많이 끼고 눈도 빨갛게 충혈 되어 있다. 급기야 최근에는 PMP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지경이 돼 안과를 찾아야 했다.
휴대폰의 문자메시지와 게임에 중독된 일명 ‘엄지족’인 회사원 김모(27) 씨. 그녀는 출·퇴근 시간을 이용해 휴대폰 게임을 하는데 어느 순간 엄지손가락이 저리면서 경련이 일어났다. 이후부터는 게임을 할 때 마비되거나 저리는 느낌이 더욱 자주 찾아왔다. 김 씨처럼 휴대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할 때 엄지손가락만 자주, 반복적으로 이용해 나타나는 증상을 ‘손목터널 증후군’이라고 한다.
최근 신 씨나 이 씨, 김 씨처럼 눈이나 귀, 손 등 한 가지를 혹사 시켜 증후군 증상이 나타나는 이른바 ‘디지털 혹사 증후군’ 환자가 날이 갈수록 늘고 있다.

“뭐? 안 들려 더 크게 말해봐” ‘청소년 사오정’ 심각
디지털 증후군 환자 중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바로 청력장애다. 여기엔 이미 필수품이 되어버린 MP3의 영향이 가장 크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한 학생은 “MP3 등은 이미 청소년들의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며 “친구들은 이미 초등학생 때부터 MP3를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지난 2006년 3월 ASHA(미국말언어청취협회)는 성인과 고교생을 대상으로 휴대용 음향기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미 고교생의 절반 이상이 청력 장애 증상을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TV나 라디오 볼륨을 자꾸 올린다’질문에 고교생이 28%, 성인이 26%를 차지하며 ‘대화도중 무슨 말을 했는지 자꾸 되묻는다’엔 고교생이 29%, 성인이 21%를,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는 고교생, 성인 각각 17%, 12%를 차지했다. 이러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 데에는 바로 MP3 등 휴대용 음향기를 너무 크고, 오래 듣는 게 그 원인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증상은 비단 미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서울의 고교생 김모 양은 “상당수 반 친구들이 청력이 떨어져 큰 소리로 얘기를 해야 알아들을 정도”라며 “일부 학생들은 ‘사오정’으로 통할 정도로 청력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MP3 같은 디지털 기기 등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나타나는 난청 현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MP3 플레이어는 볼륨을 최대한 높일 때 100dB 수준까지 올라간다”며 “이런 상황에서 매일 15분씩만 음악을 들어도 소음성 난청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또 MP3 등 지속적인 자극에 따른 ‘난청’은 보청기를 착용하는 등 치료수단도 있지만 영원히 원상회복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했다.
최근 디지털 기기가 범람하면서 청력손실은 물론 성격도 난폭하게 변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실제로 56세의 한모 씨는 지하철에서 20대 초반의 한 남자에게 헤드폰으로 세어 나오는 소리가 거슬려 음량을 줄여달라고 했다가 몸싸움까지 하게 된 일도 있었다.
세정난청연구소 박해정 소장은 “디지털 기기로 인한 청력장애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고통으로 작용 한다”면서 “청력이 약해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전화번호 등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디지털 치매 증후군’
컴퓨터, 휴대전화, PDA, MP3 등 디지털기기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자신이 기억하고 있던 전화번호나 기념일, 중요한 약속, 계산법 등을 잊어버리는 이른바 ‘디지털 치매 증후군’도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33살의 이모 씨는 유선전화를 이용해 고향집에 전화를 걸려다 갑자기 전화번호가 떠오르지 않는 일을 경험했다. 26살의 백모 씨는 휴대전화를 잃어버려 가족, 친구, 집 전화까지 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입력된 번호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증후군은 나이가 든 사람보다 이 씨나 백 씨처럼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20대나 30대의 연령층에서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기다. 최근에는 디지털 문화의 보편화로 10대에서도 이런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치매 증후군의 신호탄은 번호건망증으로부터 시작된다. 디지털 기기를 쓰게 되면 복잡한 숫자나 기념일 등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지털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 간단한 암기를 기피하면서 뇌 능력 쇠퇴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일본에선 최근 이 같은 증상을 ‘IT 건망증’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을 ‘IT 멍청이’ 등의 신종 질환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의 디지털 치매현상을 살펴보면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어디인지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같은 사람에게 명함을 두 번 이상 건네거나 전화를 해놓고도 왜 했는지 잊어버리는 것 등이 디지털 건망증으로 비롯된 증세다. 또 인터넷을 하다가 검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때가 있는데 이 역시 디지털치매의 한 현상이라도 할 수 있다. 계산능력도 마찬가지. 아무리 쉬운 계산이라도 머릿속에서 계산한 것을 믿지 못해 꼭 전자계산기를 사용해야 마음을 놓는 사람도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강원대 병원 신경과 김광기 의사는 “간단한 정보기억을 디지털 기계에만 의존하는 습관은 단기기억 능력퇴화로 이어져 생활의 장애를 가져올 수 있다”며 “수첩 등을 활용해 일상생활에서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 거북목증후군을 예방하려면 항상 어깨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똑바로 펴는 것이 좋다. 그 밖에 시간 날 때마다 목을 가볍게 돌리거나 주물러 주고,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등 꾸준히 운동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혹시 나도 거북목증후군?” 꾸준한 운동이 가장 효과적
지하철이나 버스 등을 이용할 때면 손에 하나 씩 들려있는 DMB(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 단말기로 TV나 영화를 보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이로 인해 눈높이보다 낮은 화면을 내려다보는 자세가 습관적으로 반복되다 보니 이른바 ‘거북목증후군’이 나타나고 있다.
거북목증후군이란 컴퓨터 모니터의 높이가 눈높이보다 낮을 경우, 이를 오랫동안 내려다보는 사람들에게 흔히 일어나는 증상으로 장시간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소형 액정화면에 몰입하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목이 앞으로 향하면서 점점 직선에 가까워지는 증상을 말한다. 만약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앞으로 향한 채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자세를 하고 있는 사람은 거북목증후군에 걸렸거나 증후군 증세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면 틀리지 않는다. 원래 목 척추는 옆에서 봤을 때 C자형 곡선이다. 따라서 거북목 자세를 장시간 유지하면 근막통증증후군이 오게 된다.
이 증후군을 예방하려면 먼저 모니터의 높이를 눈높이에 맞게 올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항상 어깨를 뒤로 젖히고 가슴을 똑바로 펴는 것이 좋다. 그 밖에 시간 날 때마다 목을 가볍게 돌리거나 주물러 주고, 팔굽혀펴기나 윗몸일으키기 등 꾸준히 운동을 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산업의학과 오상용 교수(근골격계특수치료센터 소장)는 “휴대용 비디오 등을 이용할 때는 바른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정 시간 사용 뒤에는 목을 돌려주는 스트레칭 운동으로 목이 쉬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손목터널증후군’은 자판을 치거나 마우스를 굴리는 등 컴퓨터(PC)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디지털족들이 자주 겪는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로 장시간 PC를 사용하거나 핸드폰으로 문자를 자주보내는 사람들에게서 자주 생긴다.
엄지족이라면 ‘손목터널증후군’ 의심
통계청이 발표한 한 자료를 보면 15~19세 사이 청소년이 이용한 문자 메시지는 하루 평균 무려 60.1건으로 6세 이상 전체 인구의 평균 사용건수 16.9건의 4배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흔히 주부병이라고 알려진 ‘손목터널증후군’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급증하고 있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자판을 치거나 마우스를 굴리는 등 컴퓨터(PC)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디지털족들이 자주 겪는 대표적인 증상중 하나로 장시간 PC를 사용할 경우 생긴다. ‘손목터널증후군’은 손으로 가는 힘줄, 신경 및 혈관들이 손목의 좁은 부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압박을 받아 발생하는 마비현상으로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컴퓨터 마우스 조작 같은 반복 동작으로 이 관의 외피가 두꺼워지면 정중신경이 압박을 받아 손이 저리게 된다.
증상은 손가락이 저리거나 감각이 둔화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주부들의 손목터널증후군은 손이 저린 증상만 있는데 반해 청소년들의 손목터널증후군은 손이 저리면서 엄지손가락의 관절 통증까지 함께 나타나는 게 특징이다.
이 증상을 예방하기 위해선 손목에서 각이 생기지 않도록 PC 자판과 의자의 높이를 적당한 높이로 맞추는 게 중요한다. 모니터를 눈높이에서 10~20㎝ 정도 아래로 향하게 하고 손목 받침대를 사용하면 좋다. 일정시간마다 손목을 상하좌우로 돌리며 근육을 풀어주는 게 효과적이다.

정부, 기업, 소비자가 함께 해결해야
사실 장기간 헤드폰·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경우 청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국내외 전문가들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연구 보고서는 몇몇 학위논문 등이 전부일 정도로 전무한 실정이다. 8년 전 세정난청연구소 최순희 객원연구원은 당시 논문을 통해 “특별한 조치 등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디지털 기기로 인한 청소년들의 소음성 난청은 앞으로 사회적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 바 있다.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의모임 김정자 소비자권익 실장은 “디지털 기기 등에 따른 난청 등 피해사례와 연구결과가 전무해 구체적인 실태를 현재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난청 해결을 위해서는 특정 기업이 나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자체에 정부와 기업, 소비자가 함께 공동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