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하루경영이라는 말이 있다. 하루가 모여 한 달이 되고, 한 달이 모여 1년이 되고, 1년이 모여 십 년이 되고, 그것들이 모여져 한 평생이 된다.
하루를 초로 환산하면 86,400초가 된다. 이 시간은 동서고금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자산이자 비전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한 체 홀로 쓸쓸히 외로운 길을 가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어나고 있다.

지난 200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총 사망자 수는 24만 5,000명으로 하루 평균 671명이 세상과 이별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씁쓸한 사실은 사망 원인으로 자살이 암, 뇌혈관 질환, 심장질환에 이어 4위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는 외환위기 당시인 10년 전에 비해 90%나 늘어난 것으로 OECD 가입 국가 중 최고 수준의 수치이다.
생명보험사들 자살급증에 보험금 지급율도 높아져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중 ‘자살율 1위’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현재 우리나라의 자살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자살은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는 것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 범사회화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어느 국회의원은 자살위험성이 높은 사람을 조기에 발견하고 정신과 전문의 등이 작성한 계획에 따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 문화조성을 위한 법률안’을 발의했을 정도다. 그러나 법만으로는 늘어나는 자살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특히 요즘과 같이 경기가 불황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상황에서 금전적인 이유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례들이 늘고 있다. 이로 인해 생명보험사의 자살 보험금 지급액도 증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최근 연예인 자살 및 동반 자살 건수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삼성·대한·교보생명이 지급한 자살 관련 사망보험금은 지난 2008 회계연도 기준 1,924억 원으로 전년 대비 9.8% 증가하였고, 보험금 지급 건수도 1,606건에서 1,685건으로 4.9% 늘었다. 특히 지난해 9월 이후 탤런트 안재환과 최진실 등 유명 연예인의 자살 소식이 이어지면서 자살 관련 지급 건수가 급증하는 모습을 보였다.
삼성생명의 경우 지난해 4월부터 8월까지 자살 보험금 지급 규모가 전년 동월 대비 10~40% 감소했다가 9월에는 17.1%, 10월은 24.8% 증가했다. 이어 11월과 12월에도 각각 73.7%와 97.7%의 증가율을 기록했으며, 올 2~3월에는 50% 이상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전까지 생명보험사들은 종심보험 가입자가 가입 후 2년 이내에 자살로 사망할 경우 보험금을 지금하지 않지만 이후에는 일반 사망과 똑같은 보험금을 지급한다. 이는 보험금을 노리고 보험에 가입한 후 목숨을 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최근 자살로 인한 보험지급율이 높아지면서 일부에선 보험금을 노린 자살을 막기 위해서라도 보험금 지급 시점을 기존 가입 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부 “인터넷 통한 자살확산 원천 봉쇄하겠다”

복지부 등이 마련한 대책은 전파성 강한 집단자살증후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인터넷상의 자살유해정보 차단 및 단속을 강화하는 걸 골자로 상담이나 사례관리 등을 바탕으로 해 자살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구조토록 하는 내용이다. 중장기적으론 자살예방과 생명존중의 사회분위기 조성을 위해 예방교육과 홍보 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관련 인프라도 확충키로 했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구체적 실천 방안으로 복지부 등은 자살관련 금칙어를 확대 지정하는 동시에, 관련 정보나 사이트가 발견될 경우 곧바로 삭제나 폐쇄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또한 자살예방 및 방지 수칙을 담은 스티커를 전국 숙박업소 부착하고, 자살예방 포스터와 청소년 교육용 시청각 교제를 전국 관공서와 학교 등에 배포하는 한편, 전국 경찰서 및 156개 광역·지역 정신보건센터와 연계해 24시간 무료 자살예방 상담을 운영해 지속적인 예방활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중장기 대책으로는 자살예방 정보제공 사이트를 개설하는 동시에, 언론매체를 통한 홍보와 학생 및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활동을 강화할 예정이기도 하다.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의 관계자는 “가족 중 자살자가 생기면 유가족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에 시달릴 수 있기에 관련 지원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히며 “자살예방 대책을 추진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해결책을 찾아야 하기 때문에 유관기관 협력회의를 정례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집단자살 막으려면 ‘인터넷 상담’ 늘려야
최근 한 달사이 강원도 지역에서 동반자살 사건이 잇달아 일어나 우리 국민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경찰은 이들의 자살 수법과 이동 방법이 유사해 자살사이트를 통한 공모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펼치고 있다.
집단 자살은 많은 수의 사람이 동일한 목적 하에 자살하는 것을 말한다. 집단 자살은 종교적 환각 상태 등에서 잘 일어나며, 연인들 사이의 동반 자살도 작은 의미의 집단 자살로 본다. 그렇다면 최근 이들은 왜 집단 자살을 선택하고, 왜 자살사이트들이 계속해 생겨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연세대의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김어수 교수는 “집단 자살의 원인과 과정은 복잡하지만, 혼자 죽는 것에 용기를 내지 못하던 사람이 여러 사람이 함께 죽는다고 하면 죽을 용기가 날 것 같다는 동질의식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자살에는 무의식의 환타지가 존재하는데, 저마다 갖고 있던 중대한 소망, 소중한 대상, 중요한 일 등을 잃으면 그에 대한 반응으로 우울증이 나타나고, ‘현실에서 이루지 못했던 것은 다음 세상에서 이룰 수 있다’는 무의식이 생긴다”고 말하며, 이렇게 자살 판타지 성향을 갖게 된 사람들은 자기 혼자 가기는 두렵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과 죽음에 대한 공유를 통해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된다고 이야기 했다.
특이한 점은 극단적 선택에 뜻을 같이 한 사람들끼리 ‘협정’을 맺는다는 것인데, 이 협정은 4가지 요소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한 가지 이상의 자살동기가 확실히 있으며, 두 번째로 저마다 현실에서 겪던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다가 죽음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세 번째로 죽을 장소를 정하고 유언을 남기는 등 일종의 의식화 단계를 거치게 되며, 마지막으로 동일한 방법으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죽어 다른 사람과 일체화되는 과정이다. 이번 강원도 집단자살에서도 ‘타의가 아니라 자의로 간다’는 내용의 유언 등이 남겨져 있는 등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 해준다.
전문가들은 집단 자살을 막는 방법으로 자살사이트에 대한 철저한 단속을 한 목소리로 주문했다. 자살 사이트의 경우 자살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 자살을 실행으로 옮기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으로 김 교수는 “자살 사이트가 없어도 ‘죽을 사람은 죽는다’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자살사이트를 통해 자살에 대해 세뇌 당하는 위험을 당장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률은 한 나라의 행복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요즘 자살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2004년 이후 OECD 국가 중 1위인 데다 그 수도 1만 2,000명 수준으로 산업재해나 교통사고 사망자 수 7,000명 수준보다 훨씬 많다. 특히 교통사고·산업재해 사고에 의한 사망자 수는 감소세인 데 비해 자살 사망자 수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파산 등 경제적 문제와 이혼 및 배우자 사별 등으로 인한 충격과 사회적 고립에 의해 발생하기도 하고, 정신적 허무와 황폐감 등으로 갑자기 목숨을 끊기도 한다. 정치적·이념적 자살 테러에 의한 죽음도 있다. 어떠한 경우든 잘못된 개인선택의 결과이지만 이런 선택을 낳게 한 경제·사회·문화적 요인에 대한 심각한 성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살의 증가는 산업화·세계화와 관련이 있다. 비교적 안정된 농경사회와 달리 산업화는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수밖에 없다. 또 도시화에 따른 가족의 해체는 물론 정규직의 감소로 직장의 안정성도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경쟁체계에서 뒤처지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고 이때 자살의 원인이 되는 사회적 고립은 증가할 수 있다. 1998년 IMF 경제위기 시 자살률이 급속히 증가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특히 소득분배의 편중도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결과를 과정보다 중시함으로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은 생명경시 풍조로 발전할 수도 있다.
삶의 질을 나타내는 여러 지표가 있지만 자살률은 한 나라의 행복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의 하나로 평가된다.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그 사회 사람들의 삶이 팍팍함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사회적 책임을 유기해 왔음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는 산업재해나 자동차 사고의 발생을 낮추기 위해 만반의 노력을 기울이고 사회적 비용의 지출을 아끼지 않아 왔지만 자살에 대해선 국가 차원의 대책이 미흡했다. 그나마 2008년 말 자살예방 종합대책을 수립하고 범정부적 대처를 시작했지만 예산 등 실행을 뒷받침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형편이다.
자살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사회경제적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선 긴 시간이 요구된다. 따라서 자살의 원인 자체를 감소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자살경로를 효과적으로 차단함으로써 자살을 감소시킬 수 있는 용이한 방안부터 찾아 대처하는 일이 시급하다.

자살 없는 나라는 없지만 우리의 자살률은 유난히 높다. OECD 24개국 중 1위의 자살국이며 젊은층 자살률도 최고다. 20대 자살자는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배나 많고 10대 청소년 자살률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자살자들의 상당수는 전조 증상으로 우울증을 앓는다. 우울증은 소속감 상실에서 비롯되는 병으로 심리학자들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결정적 원인은 사회적 환경이 아니라 내면적 소속감 결여 때문이라고 말한다. 겉으로 번듯한 직업을 가졌고 직장과 가정생활에 별 문제가 없어도 자기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소속감이 약한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인간은 발달 단계에 따라 심리적 소속감을 느끼고 타인과의 친밀감을 경험할 때 건강하고 성숙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우리 사회의 높은 자살률은 구성원들의 낮은 소속감과 연관된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인은 언뜻 국제사회에서 소속감과 응집력이 강한 민족으로 통한다. 월드컵이나 WBC 등 국제대회 때의 단합된 응원 모습을 보면 그렇게 비쳐질 만도 하지만 실생활은 전혀 다르다. 사회와 직장, 가정에서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사회는 겉으론 ‘우리’라는 명제에 함께 묶여 있는 듯하지만 실제론 ‘나와 또 다른 그들’로 분화되고 고립돼 있다. 이는 낮은 사회통합지수에서 입증된다. 사회통합은 일종의 국민적 결집력으로, 사회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갖고 비전을 공유하며 긍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사회통합지수는 OECD국가 중 19위. 자살률, 이혼율, 출산율 등 가족영역지수에선 24위로 그만큼 우리 사회는 분열되고 흩어져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의 낮은 소속감은 소통의 문제와 직결될 수 있는데, 전체 자살자의 33%를 차지하는 40∼50대의 경우 정작 자신들의 문제를 상담하는 비율은 가장 낮다고 한다. 또 자신의 고민을 타인과 나누고 도움 받는 데 익숙지 않은 문화 탓도 있다.
절망과 우울에 가득 찬 젊은이들도 우리의 미래임에 틀림없다. 자살하겠다는 각오가 있다면 그런 용기로 살아남아야 한다. 결코 끝은 절망이 아니다. 그 끝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고, 그 출발선은 본인 스스로 긋는 것이다. 만약 지금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 빠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터널의 끝에는 분명히 밝은 빛이 있음을 믿고, 지금을 기점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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