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과 인권 보호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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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과 인권 보호돼야 한다
  • 남윤실 기자
  • 승인 2009.06.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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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도 없고, 권리도 인정받지 못하는 아이들, 정체성 혼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2세도 자연히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현황 파악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그들의 2세 문제는 애써 외면하고 있어 현황파악 조차 되고 있지 않다. 정부가 외면하는 사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2세들은 한국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 어두운 그늘에서 성장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이들을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여기지 않고 있으며 몇 년 정도의 단기 교육만 맡아주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에 제대로 된 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인의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이 마련 돼 있지 않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문제 심각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통계에 의하면 2008년 3월 기준 16세 미만 체류 외국인은 3만 8,466명에 달하지만 이중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 아동 약 1만여 명을 제외하면 나머지 2~3만 여명의 저개발국 출신 외국인 아동들로 이들 대부분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자녀들로 추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더구나 가족 동반이 허락되지 않는 국내 외국인국근로자 사이에서 태어 난 아동들은 아예 통계에도 잡히지 않고 있다.
18세 이하에 한국에 들어온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무국적인 상태가 되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태어나면서 무국적이 된다. 국적이 없기 때문에 권리 또한 인정받지 못하며 정부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한국 생활에서 여러 가지 제약 또한 많다. 온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며 전화가입, 인터넷 등록 등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한 모든 공공 서류 등록이 거부된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입국해 살아온 세월이 자신의 인생에서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들의 자녀들은 인생에서 사실상 절반 이상을 한국에서 산 것과 같다. 더구나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을 자신들의 모국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아이들은 이렇게 ‘돌아갈 이주민’이 아니라 ‘살아갈 한국인’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미성년인 그들을 부모는 보호해주지 못하고, 한국도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는다.
결국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은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지만 한국에 있다가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가족 모두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이들만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혹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이 빨리 커서 함께 돈을 벌어주기를 희망하기도 한다.

▲ 18세 이하에 한국에 들어온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무국적인 상태가 되며,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는 태어나면서 무국적이 된다. 국적이 없기 때문에 권리 또한 인정받지 못하며 정부의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한다.
정체성 흔들리는 아이들, 거리로 내몰다.
학교교육으로부터 소외된 이주 아동들은 그러면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 부모가 미등록 이주 노동자이므로 단속에 걸리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는 집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못한다. 학교에 간다고 하여도 눈치를 보고 방과 후에는 집에서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게다가 국적, 비자가 없기 때문에 대학 진학, 취업을 할 수가 없다. 일부 아이들은 공장이나 거리로 나가 아동 노동 시장에 편입되고 있기 한다.
‘아시아의 창’ 이영아 상담소장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경우는 자녀들의 교육문제 보다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더 시급한 문제이기 때문에 부모 모두 맞벌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설을 보내기에는 비용이 만만치 않고 무료로 운영하는 보호시설의 부재로 대부분이 집에 방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들만 집에 있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아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채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과 모여 놀거나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아이들이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대물림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일부 사람들이 이것을 악용해 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아이들은 비행 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 불만을 품고 범죄를 일으킬 가망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실제적으로 프랑스에서는 이민자 2·3세의 사회통합문제, 실업, 빈부차, 주택문제, 청소년 범죄 등 사회가 안고 있던 내부 모순이 한꺼번에 폭발해 프랑스소요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적 의식,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 미비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국적 찾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주노동자 쉼터를 운영하는 이성호 소장은 “본국에 돌려보내 질까봐 국적 찾기를 꺼려하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국적 찾기에 등록을 하면 해당 미등록 이주 노동자의 자녀가 교육을 받을 동안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가족에게 비자를 내주어 아동들이 안전한 상황 속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학습권에 대한 법적 효력 미약
영국은 영국에서 태어나 10살까지 거주한 아동에 대해 부모의 체류 신분에 관계없이 국적을 부여한다. 독일도 1990년 이후 독일인이 아닌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동에게 독일 국적을 부여한다. 프랑스는 11살 이후 5년간 거주하면 국적을 부여한다. 성인 이주민에 견줘 아동에 대해선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려의 바탕에는 유엔 아동권리협약이 있다.
외국인의 귀화와 정착에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일본조차도 일본에서 생활한 지 오래되어 본국으로 귀환했을 때 오히려 적응이 어려울 것이 확실한 몇몇 불법 체류 아동의 경우 그 부모의 체류 자격을 합법화하는 ‘재류특별허가’(在留特別許可)를 해준 적이 있다.
우리나라 출입국관리법에는 ‘특별체류허가’라는 동일한 권한이 법무부 장관에게 주어져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녀를 둔 불법 체류자’에 대해 특별체류허가를 내준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1991년 이주아동의 권리를 규정한 <UN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함에 따라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 아동의 체류안정과 교육을 위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기초적인 권리인 이주아동의 교육권조차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은 이주아동의 권리를 침해해 유엔의 권고를 받기도 했다. 2003년 1월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이주아동의 교육권을 보장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모든 외국인 어린이에게도 한국 어린이들과 동등한 교육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했다. 그 후로 미등록 이주아동의 초등학교 입학이 허용됐지만 이주아동이 중등교육을 받을 권리는 여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이에 182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주아동 합법체류 보장촉구 연대(이주아동연대)’가 지난 2006년 ‘이주아동 합법체류보장 촉구연대’가 국내에서 태어난 이주아동에게는 부모의 체류 신분과 상관없이 국적을 주고, 외국에서 태어난 이주아동이라 하더라도 국내에 들어와 3년 이상 머문 사실이 인정되면 영주권을 주는 것을 뼈대로 한 ‘이주아동권리보장법’의 입법을 시도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자녀에게 국적을 줘야 한다는 주장은, 이를 통해 그들이 한국에서 안정적 체류 기반을 마련하고 교육·의료와 같은 기본권을 국내 아동과 동등한 수준으로 받게끔 하는 게 목적이다. 하지만 이 법안은 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국회 문턱을 넘는 데 실패했다.

▲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은 한국 생활에서 여러 거지 제약을 받으면서 살아간다. 온전히 학교에 다니지 못하거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다.
지난 2008년 8월6일 국내에 불법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의 자녀도 국내 학교에 입학,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교육기본법 개정안과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한나라당 김세연 의원은 “정부에서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이들의 학교입학을 위한 절차를 용이하게 하였으나, 학습권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효력이 미약하고, 그나마 초등학교에 한해 이를 인정하고 중학교 이상은 전적으로 학교장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 입학을 거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을 비준, 합법체류 여부를 불문하고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외국인 아동의 체류 안정과 학습권을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함에도 이를 뒷받침할 법적인 근거가 없어 법안을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인권센터 함보은 관계자는 “이주노동자 자녀들의 교육 문제는 한국의 공교육 내에서 해결하는 방향과 그들의 정체성에 맞는 대안학교 설립, 이 두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은 인구부족, 노동력부족과 더불어 급격하게 노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에서 점점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들어오면서 말 그대로 다인종, 다문화사회가 되고 있다. 이주노동이라는 것이 자본주의 하에서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것이라면, 정부는 하루빨리 이들의 신분을 합법화하고 아이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차원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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