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정동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선거결과였다. 4.29 재보선에서 전주 덕진구에서 당선된 정 의원은 재보궐 선거 사상 가장 많은 득표인 5만 7,423표(72.27%)를 획득, 당당하게 지역의 품으로 돌아왔다. 자신의 출마를 두고 친정인 민주당과의 내홍을 겪으면서 마음고생도 많았던 그다. 하지만 탈당 기자회견 때 눈시울을 붉히며 “꼭 돌아오겠다”고 했고, 이제는 그 약속을 지키려 한다.
당내 비주류와 원로들 “정동영 안고가자” 한 목소리
하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다. 민주당에서 정동영은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인 셈이다. 정 의원의 시나리오 대로 ‘당선 후 복당’이 된다면 민주당 지도부의 체면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다. 민주당은 수도권 사수라는 명분을 세웠음에도 DY 거취에 대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정세균 지도부는 당선 전부터 선거로 인해 탈당한 당원은 1년 뒤에 복당신청이 가능하다는 당헌·당규를 근거로 “복당은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막상 대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동영을 안고가자는 것이다.
우선 당내 비주류인 민주연대와 국민모임은 '민주개혁세력대연합'을 내세우며 정동영 복당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걸 의원(민주연대 공동대표)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10월 재보선 전에는 복당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당을 위해서는 정동영뿐 아니라 이해찬, 김근태, 손학규 등 역량 있는 인사들도 모두 힘을 합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 원로들도 가세하고 있다. 지난 5월6일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 및 상임고문 연석회의에서는 정동영 복당 요구가 공개적으로 나왔다. 정대철 상임고문은 “(정동영-신건 당선자를) 통 크게 받아들여라”며 “어쨌든 당의 대선후보였고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낸 사람(정동영), 법률고문을 오래 지낸 사람(신건)인데, 이제 와서 원칙이니 뭐니 얘기해봐야 더 초라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당 대표와 지도부가 눈 꼭 감고 통 크게 받아들여 주라. 그러면 아무 말썽이 없어진다”고 거듭 강조해 정 대표를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한광옥 상임고문도 따로 성명서를 내고 “4.29 재보선은 민주당이 승리했지만, 당 지도부가 크게 반성해야 할 선거다. 전주 덕진, 완산갑에서의 공천 실패가 민주당 후보의 낙선 원인이었고, 당 지도부는 대오각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누구든, 어떤 세력이든 민주당의 분열을 모색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회의 비공개 부분에서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한다면 적절한 시점에서 해야 하고, 영원히 안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말해 정동영 의원의 복당에 대한 복선을 깔았다.
초심으로 돌아가 겸허한 마음으로 시작할 터
4.29 재보선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둬 복귀한 정동영 의원. 하지만 그에 대한 눈길이 그리 곱지만은 않다. 대통령 선거에 나온 사람이 재보궐 선거에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초라해 보인다, 당론을 져버리고까지 국회의원이 되어야겠느냐, 서울을 피해 고향에서 출마하는 것은 이름값 못하는 것이다 등 그를 향한 비난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게 소신을 펼쳤다. 민주당의 공천배제 파동으로 탈당, 꼭 돌아오겠다던 정동영 의원에게 안타까움과 대견함이 섞인 덕진의 민심이 그에게 올인한 것이다.
‘어머니, 정동영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성공에 한몫했다. 어머니의 품으로 다시 돌아와 초심으로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었고 정치적 의식이 높은 전주지역이 정동영이라는 ‘큰 인물’을 믿고 밀어준 것이다.
정동영 의원은 “민주당이 재집권하기 위해서는 쇄신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당은 민주성, 투명성, 개방성을 확보해야 하며,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재집권 할 수 있다”라며 “이번 선거를 치르기 위해 ‘귀국 결심’, ‘무소속 출마’, ‘신건 당선’ 등 3번이나 힘든 고비를 넘기며 절박한 마음뿐이었다. 변함없이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신 전주시민을 위해 전주가 소유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문화산업에 연결시키는데 주력할 계획이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전북 발전에 대한 청사진에 대해 “전주가 발전하려면 북진 정책과 문화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던 10년 전 전망이 지금 현실로 나타나 있다. 전주의 4대문을 복원하고, 한복 한지 한옥 한식 등 전주가 소유한 가치를 재발견하고 이를 문화산업에 연결시키는데 주력할 계획이다. 특히 4대문을 복원해 전주를 조선역사 도시로 바꿔 관광산업을 발전시켜야 한다. 또 800만 해외동포는 소중한 자산이며, 러시아 중국 일본 미국 등 4대 강국에 자리한 입지도 무궁한 기회다. 이 같은 구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더 큰 힘을 키울 수 있는 정치를 하는데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건 의원과 연대, 민주당 복당해 소신정치 이끌겠다
DY가 금배지를 단 것은 6년 만이다. 갖가지 여론이 무성했던 가운데 72.27%라는 경이로운 득표로 당선, 전북이 낳은 인물임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2007년 12월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지난해 4월의 서울 동작구 국회의원 선거, 이번의 선거까지 1년반 사이에 선거만 3번 치르고 8개월 동안 미국까지 다녀온 정동영 의원. 그의 정치 인생도 그리 순탄치 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호남지역의 맹주인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실상 출마반대라는 대형 악재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로 DJ의 영향력을 넘어섰다는 것도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그만큼 ‘정동영이 컸다’는 말이다.
이는 신건 후보를 당선시킨 것으로도 충분히 증명된다. 신 의원은 후보등록 마지막 날 가까스로 등록해 선거준비 기간이 짧은데다 인지도도 부족했다. 하지만 신 의원은 DY의 공동유세 전략으로 판세를 뒤집었다. 정동영 의원은 선거기간 내내 덕진과 완산갑 선거구를 오가며 “신건 후보가 당선돼야 정동영이 산다”며 지지를 호소했고 그의 파워가 두 곳의 선거구를 승리로 이끌어 낸 것이다. 정 의원은 선거 막판은 사실 완산 갑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그는 솔직하게 “정동영이 민주당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신건 후보가 당선되는 것”이라 호소했고 전주시민은 이를 들어 준 것이다. 정 의원은 “이번 선거의 승리는 정동영-신건 개인의 승리가 아니라 나라를 걱정하는 전주시민의 승리, 또 민주당에 변화와 쇄신을 열망하는 전주시민의 승리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어깨가 배로 무겁다. 이렇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밀어준 지역민들에 대한 보답은 ‘전주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것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경선에서 ‘아름다운 꼴찌’를 했던 그를 기억한다. 갖가지 곱지 않은 시선을 뒤로하고 초심으로 돌아가 지역구 국회의원이 된 오늘의 모습도 생생하다. 그의 정치적 소신은 뚜렷하다. 남의 눈치를 보거나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하지만 화합하고 상생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러한 정 의원의 소신 정치인 이미지, 승부사적 행보가 이번 선거를 계기로 어떠한 통합 리더십을 발휘할 지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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