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30년 만에 이란에 화해의 손짓 ‘봄날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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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30년 만에 이란에 화해의 손짓 ‘봄날 오나’
  • 신혜영 기자
  • 승인 2009.05.18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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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스마트 외교’ 본격 가동… 미국·이란 양국 해빙을 위한 시동 걸릴까

이란의 이 같은 행보로 일단 미국과 대화의 물꼬를 튼 셈이다. 이번 미국과 이란 당국자의 회동은 지난 1979년 불거진 이슬람 혁명과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을 겨냥한 인질 사건으로 외교관계가 단절된 이후 30여 년만이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고립시키는 전략을 펼쳤던 것과 달리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이 끊임없이 화해의 신호를 보낸 데 대한 화답이라고 분석했다.

美 ‘스마트 외교’ 본격화… 이란과의 ‘새로운 출발’ 제의
지난 3월20일 이란의 최대 명절인 이란력(曆) ‘노루즈(새해)’를 맞아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 국민에게 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30년 동안 두 나라 관계가 순탄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영상을 통해 이란 측에 수십 년 간 지속해 왔던 적대 관계를 접고 ‘새로운 출발’을 제의하는 메시지를 전달, 군사력과 경제력 등을 앞세운 하드 파워와 외교와 문화교류 등의 소프트 파워를 함께 활용하는 ‘스마트 외교’ 정책의 본격화를 알렸다.
이에 앞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2월9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통해 “이란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수개월 안에 직접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이는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조지 W 부시 전임 정부의 ‘이란과의 직접 대화 불가’라는 금기를 깨고 이란 핵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다자간 협의에 참여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마무드 아흐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미국이 내민 손이) 진실에 근거한 것이라면 이란 국민은 환영할 것”이라며 “미국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변화를 보여준다면 우리는 대화를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해외 언론들은 미국의 이 같은 행동에 즉각 “오바마, 이란에 올리브 나뭇가지 내밀다(AFP)” “오바마, 이란에 새로운 시대 제안(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등의 제목 아래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지난 3월24일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에 대한 관계 개선 제의는 중동 지역의 안보를 증진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며, 특히 “오바마가 전제조건 없이 직접적인 교섭을 제시했다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이란 또한 미국에 손을 내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도 “이란과 국제사회의 관계에 새 장을 열 매우 건설적 메시지”라고 높이 평가했다.

美, 이란과 30년 만에 공식 접촉 ‘해빙 위한 시동 걸리나’
이런 가운데 지난 3월31일 미국의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특사와 이란의 무하마드 메흐디 아쿤자데 외무차관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아프가니스탄 국제회의에서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첫 공식 접촉을 가졌다. 이날 접촉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일련의 화해 제스처들이 나온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지난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미국-이란 관계는 그해 말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 젊은이들이 난입해 들어간 뒤부터 꼭 444일 동안 지속된 ‘이란 인질 사태’로 파국을 맞았다. 그 뒤 두 나라는 공식적인 외교관계 없이 지내왔던 터라 이러한 미국과 이란의 행보에 세계 언론은 주목하고 있다.
당시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미국의 리처드 홀브루크 아프간·파키스탄 특사와 모하마드 메흐디 아쿤자데 이란 외무차관이 예정에 없던 우호적인 양자 대화를 가졌다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두 사람이 본질적인 특정 사안을 두고 이야기한 것은 아니지만 성심 어린 대화를 나누었다”며 “계획한 만남은 아니었으나 두 사람은 계속 접촉하자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의 리처드 홀브룩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특별대표와 무하마드 메디 아쿤자데 이란 외교차관은 회의 뒤 별도로 만난 자리에서 향후 지속적으로 만나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협의해 나가는 데 동의했다”며 “같은 회의에 참석했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현재 이란에 억류된 미국인 세 명의 석방과 관련해 ‘인도주의적 도움’을 요청하는 외교서한을 이란 측에 직접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회동에서는 미국과 이란이 아프간의 마약거래 확산억지, 아프간 재건사업 참여 등과 관련해 같은 의견을 보임으로써 공통의 명분을 찾았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왔다. 마약 거래를 최악의 범죄 중 하나로 취급하고 있는 이란은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국인 아프간에서 최근 마약 생산·거래량이 급증하자 이들 마약이 자칫 자국으로 유입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던 차였다. 미국 역시 아프간 내 마약 거래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아쿤자데 차관은 이날 회의에서 “이란은 아프간의 안정과 마약 퇴치 프로젝트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 대미 적대 관계를 개선할 의향을 내비쳤다.
AP통신은 “미국과 이란이 회의석상에서 아프간 재건과 마약 문제에 관해 의견 차이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관계 개선의 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란은 마약의 유통과 거래를 최악의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며 “세계 최대의 마약 생산국인 아프간에서 최근 마약 생산과 거래가 급증하면서 이란은 자국으로 마약이 유입되지 않을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 “미국이 변하면 우리도 바뀔 것”… 경계심 풀지 못해
그러나 아직까진 이란이 화해와 대립의 기로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최근 발언들을 보면 이란은 여전히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21일 하메네이는 오바마 대통령의 제의는 ‘구호’에 불과하다며 30년 간 지속된 적대정책의 변화를 촉구, “미국이 이란에 대한 적대정책을 해소하고 외교정책에서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 한 이란-미국 사이에는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오바마 대통령은 ‘새로운 시작’을 말했지만, 지금까지 이란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바뀐 것은 전혀 없다”고 꼬집었다.
특히 하메네이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의 새해를 축하하면서도 이란의 테러리즘 지원과 핵무기 개발 의혹을 어떻게 동시에 얘기할 수 있느냐고 반문하고 오바마 대통령도 부시 전 대통령과 다를 게 없다고 비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대통령 언론고문 알리 악바르 자반페크르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는 기고문에서 “3월 페르시안력에 따른 새해인 ‘누루즈’에 오바마 대통령이 축하메시지를 보낸 것은 양국 관계에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며 미국의 유화적인 태도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이어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합법적인 이란 정부에 지속적으로 붕괴 위협을 가하고 비난을 퍼부어 왔다”며 “(차라리)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이란에 적대적이었지만 겉과 속이 같다는 점에서 솔직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그동안 친미성향의 팔레비 정권을 지원하고 미국과 유럽 내 이란 자산을 동결하는 등 미국 필요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랐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특히 이란은 “아프간 주둔 미군의 병력 증강은 지역 내 평화와 안정을 이끌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급진주의’를 조장한다”며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아프간 전략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시, 앞으로 양국 간 아프간 문제를 비롯 여전히 뛰어넘어야 할 이견이 산적해 있음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또 이란은 미국이 1953년 이란 쿠테타 지원 등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고,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재고하는 동시에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월6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카자흐스탄 순방 중 기자회견을 통해 “나는 변화와 개혁을 환영한다”며 “이란은 미국이 (말로만 그칠 게 아니라) 다음 단계를 밟아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에 대한 미국의 변화를 언급했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어떤 것이 부족하다”며 “우리는 변화는 환영하지만 아직 그와 같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입장 변화가 실제로 있다면 우리도 중대한 진전을 이룰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美 이란 핵 문제와 관련한 직접 대화에 나서다
특히 최대 쟁점인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싼 미-이란 사이의 간극 역시 쉽게 좁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양국관계 개선에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은 이란이 비밀리에 핵개발 계획을 추진해오고 있다면서 지난 2003년부터 국제적 압력을 주도해왔다. 미국은 추가적인 화해조치의 일환으로 이란에 대한 여객기 부품 판매금지 해제, 미국 내 이란자산 동결 해제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란은 자국의 핵 개발은 평화적 용도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중단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4월6일 오바마 대통령은 터키를 방문, 의회 연설을 통해 “상호 이익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 (핵개발 의혹) 대응을 추구하고 있음을 이란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분명히 해왔다”면서 “지금 이란의 지도자들은 핵무기 제조를 시도할 것인지, 국민을 위한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할지를 선택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 야욕을 버린다면 중동지역 평화가 진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지난 4월12일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미국과 열린 자세로 대화에 임하겠지만 국제사회의 핵 활동 중단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덧붙여 “미국은 5,400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사용할 수 없느냐”고 반문하면서 “핵에너지의 평화적 사용은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권리라는 것이 우리의 분명한 논리”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이 계속해서 핵무기 개발과 테러활동 지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한 실질적인 관계 개선은 이뤄지지 힘들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싼 양국 간 갈등은 쉽게 가라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 개선에 여전히 커다란 걸림돌로 남아 있다. ‘실질적이면서 구체적인 정책 변화’를 요구하는 이란과 ‘핵을 포기하라’고 압박하는 미국 사이의 간극이 워낙 커 미-이란 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은 여전히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특히 유럽연합은 미국의 지지 속에 지난해 6월 이란 최대 은행인 멜리 은행의 자산을 동결하는 한편 핵과 미사일 개발에 연루된 이란 인사의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이란의 요구는 또 있다. 미국이 이란에 부과한 각종 경제 제재를 철회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이란이 테러 집단을 돕고 핵개발을 한다면서 이란의 주요 은행과 미국 금융 간 거래를 차단하는 초강경 제재를 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양국의 관계가 어느 정도까지 개선될 것인가는 아직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아직까지 미국의 태도 변화가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단은 오바마 대통령이 전임 부시 대통령과 달리 이란에 직접 대화를 주창하면서 관계 개선을 위한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과 이란 관계가 해빙될 수도 있다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편, 이란은 미국 석유회사들의 투자 유치를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월8일 이란 석유부의 Hossein Noghrehkar Shirazi 국제관계 담당 차관은 미국 석유회사들의 자국 내 투자를 환영한다고 언급했다.
미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이란으로부터의 원유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1996년에는 ‘이란-리비아 제재법(ILSA)’을 통해 미국 석유회사들의 이란 석유산업 투자를 금지하는 것은 물론, 이란 석유산업에 투자한 외국기업에게도 불이익을 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2004년 리비아에 대한 제재가 해제되어 현재는 ‘이란 제재법’으로 불린다.
이란은 최근 유가 하락과 세계 금융위기로 석유산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면서 국가 석유수입(收入)이 감소하여 재정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이란 정부의 미국 석유회사 유치 추진도 이러한 배경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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