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시의 발전에 뚜렷한 족적 남긴 ‘김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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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의 발전에 뚜렷한 족적 남긴 ‘김종해’
  • 신현희 차장
  • 승인 2009.05.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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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0주년 소회 “그동안 문학세계사 아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

   
우선 출판산업을 들여다 보자. 국내 출판산업은 대외적으로 세계 7위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실상은 많이 곪아 있다. 최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출판산업은 지식기반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다양한 지식과 콘텐츠를 창출하는 원천이고 감성과 창조성이 중시되는 문화의 시대를 선도해 나갈 핵심적인 기간 문화산업”이라고 강조하면서 “사회·경제적 환경 및 우리 출판지식산업의 현황에 대한 정밀 진단을 바탕으로 출판 지식산업 육성을 위한 4대 추진 전략과 10대 과제를 도출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흐름에 편승해 <시사매거진>에서도 ‘책이 세상을 살린다’는 주제로 국내 유수의 출판사 관련 기획기사를 준비함으로써 책읽는 국민만들기에 일조하고자 한다.

문명이 발달하고 인터넷 문화가 세계를 하나로 묶어놓았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은 우표를 붙인 편지를 쓰지 않게 되었다. 이메일이나 실시간 채팅으로 모든 업무를 해결한다. 편리해지고 업무가 수월해 진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문명의 혜택이 없었더라면 세상이 이만큼 발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단 등단 46년, 문학세계사를 이끌어 온 30년 소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마음을 넉넉하게 해 주는 것은 책이고 글이다. 어느날 문득 나에게 손수 쓴 편지가 배달되어 온다면… 그 사소함이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가 가슴이 따뜻해지는 책을 선물했다면… 그 내용이 삶의 희망으로 느껴질 것이다. 이렇듯 우리가 살면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아련함에 대해 들어보기 위해 문학세계사를 찾았다. 문을 여는 순간 코 끝을 간지럽히는 종이 냄새. 이 끈끈한 종이의 향과 함께 반 백 년을 살아온 문학세계사와 계간 <시인세계> 김종해 발행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문단 등단 46년, 문학세계사를 이끌어 온 30년의 소회를 밝혔다. 우리나라 시의 발자취를 그대로 간직한 그의 걸죽한 입담이 나를 30년 시의 세월 속으로 여행하게 했다. 그는 “지금은 그 때만큼 낭만이 없습니다. 처음 우리 문학세계사는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삼삼오오 모여 시를 이야기하던 그리고 시대를 논하며 쓴 소주를 마시던 사랑방이었습니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우리들만의 보금자리였지요. 나라가 어려우면 나라를 걱정하는 시를 쓰고, 학생이 울면 그들을 보듬는 시를 썼습니다. 함께 나누고 고민하는 속에서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지요”라며 지난 시간들을 회상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그의 표정이 시대의 흐름을 고스란히 반영했다.

죽을 때까지 시를 품고 책 속에 시를 심자
1979년 5월, 중구 장교동 친구의 사무실 한 귀퉁이를 빌어 ‘문학세계사’라는 출판사를 등록하고, 첫 번째 간행한 책이 스승인 박목월 시인의 유고 수상집 ‘내 영혼의 숲에 내리는 별빛’이었다. 창립할 당시 김종해 발행인의 마음은 이러했다고 한다. “시에 길이 있다. 시와 함께 가자. 죽을 때까지 시를 품고 책 속에 시를 심자. 이 시대에 소외된 시의 전령사, 시의 사도가 되자.” 그리고 그는 30년 전 자신과의 약속을 성실히 지켜내고 있다. 누가 묻지도 않는데, 누가 기억해 주지도 않는데 그는 오로지 시를 위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문학세계사 창립 30년이 되는 동안 어느덧 1,000권이 넘는 책을 만들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도서가 시집이요 시에 관련된 시인연구 논저 및 문학평론집이다. 그의 고집이 느껴진다.
시를 떼어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삶이라 말했다. 시로 문단에 등단한 지는 46년 째, 반 백년에 가까운 세월이다.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목월, 조지훈 선생을 스승으로 모시고 시인 ‘김종해’로서의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시를 말했다. 행여나 철없는 기자가 시에 대해 올곧지 못한 기사를 쓰지는 않을지 염려스러운 표정이었다. 여느 인터뷰 자리였으면 기분이 상할 법도 했다. 하지만 시에 대한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자부심이 오늘날 우리나라 문학계의 발전을 이끌어 왔음을 알았기에 소중한 충고로 받아들였다.
어떤 시가 좋은 시냐는 질문에 그는 “시란 자기 표현입니다. 접시 위에 바다를 담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만큼 함축적으로 자신이 뜻한 바를 표현해야 하는 것입니다”며 “나의 시로 하여금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좋은 시입니다. 구구절절 어려운 용어를 늘어놓는 것이 수준 높은 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시는 진정한 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와 닿는 시, 독특한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시, 가장 절실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가 되어야 합니다”고 말했다.

   
▲ 문화세계사 주최, <현대시를 위한 실험무대>의 이형기 시인의 시낭송 장면.
<시인세계>만이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다
그는 시를 쓰는 시인의 장인정신과 책을 만드는 출판인의 장인정신 모두가 소중하다고 했다. 어느것 하나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길이 자신이 기쁘고 행복하게 걸을 수 있는 숙명이라고 했다. 그가 발행하는 계간 <시인세계>는 통권 28호를 발행하며 시인들 사이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하는 매개가 되고 있다. 오로지 좋은 시와 좋은 시인을 섬기기 위해 발행되는 <시인세계>는 그에게 보람이고 자부심이다.
혹자는 그렇게 생각할 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베스트셀러나 소위 돈 되는 책을 발행하는 것이 낫지 않냐고…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만이 내가 만들고 싶은 잡지다.” 시 한편 한편의 울림이 메아리가 되어 그에게 돌아올 때,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문학세계사가 낳은 불후의 명작도 많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30년 세월이 있을 수 없다. 김초혜 시집 ‘사랑굿’, 김소엽 시집 ‘그대는 별로 뜨고’가 베스트셀러를 기록했고, 이어령 교수가 등단 50년 만에 낸 첫 시집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도 큰 관심을 모았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 ‘오페라의 유령’, ‘북회귀선’, ‘적의 화장법’, ‘살인자의 건강법’, ‘강풀 만화 시리즈’ 등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2010년 아홉번 째 시집 출간을 앞둔 시인 김종해
그는 내년에 자신의 아홉번 째 시집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00년 여덟번 째 시집 ‘풀’을 출간했을 당시 기자들이 언제 다음 시집이 나오냐고 물었고, 그는 십 년 쯤 뒤가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정확히 10년 뒤인 내년에 다음 시집이 출간된다. 그는 두 달에 한 편 정도의 시를 쓴다. 가장 절실한 문제에 대한 시를 쓴다고 했다. 시가 벽을 무너뜨릴 만한 위대한 힘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 ‘김종해’. 그래서 그는 천상 시인이다.
그는 개인의 울림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울림이 있는 시를 쓴다. 생명력이 있고 메시지가 있어야 진정한 시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그. 어지간히 시를 썼으니 이제는 나라사랑의 시를 써 나라가 바로 서고 국민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시를 쓰고자 했다.
시인은 말했다. 시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내 삶이 이렇듯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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