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꾸라지 몇 마리를 잡는다고 흙탕물이 깨끗해지지는 않는다. 한국거래소는 올해 중소·벤처기업들의 요람인 코스닥 시장에 매서운 칼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부실기업을 털어내고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올해로 14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코스닥시장은 상장기업 수가 1,043곳, 시가총액 66조1,630억 원으로 신산업발전과 경제 성장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불량기업들의 장으로서 대주주 비리·횡령 등의 의혹도 모자라 일명 ‘작전’이라는 머니게임이 판치고 있다고 혹평한다.
한국거래소가 올해를 ‘클린 코스닥 원년으로 삼겠다’며 부실기업 퇴출작업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코스닥의 낡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진정한 중소·벤처기업의 요람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거래소의 퇴출작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경영부실, 자본잠식 등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기업은 70여 곳으로 코스닥 상장사 전체 중 6%의 규모로 이들이 모두 퇴출된다면 1999년 코스탁 시장 개설 후 최대다.
“설마하다 퇴출” 사상 최대 퇴출 대란 후폭풍
최근 주식시장에서는 부실기업과 일부 머니게임만을 일삼던 기업들에 대한 퇴출이 이뤄지고 있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이번 기회에 ‘클린 주식시장’을 만들겠다며 강력한 시정 조치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폐지 실질심사에 포함되는 경우 대부분은 퇴출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금융당국과 거래소에서 세부 방안이나 가이드 라인을 먼저 세우고 이에 대해 투자자들에게 사전에 지속적인 주의를 줬어야 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코스닥기업에 자금줄이던 사채업자들과 머니게임을 일삼던 세력들도 손해를 본 상황이니 당연히 개미투자자들의 손해도 막심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부실 코스닥 상장사들은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더라도 실질심사를 거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실질심사제도에서는 상장폐지 요건을 해소했더라도 횡령·배임, 분식회계 등 도덕성에 문제가 있거나 형식적 증자 등으로 상장폐지를 모면하는 시도를 한 기업들을 걸러낸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상장폐지 실질심사대상 결정에 따라 15일 이내에 상장폐지 실질심사위원회가 개최되며, 심의결과 상장폐지 사유에 해당될 경우 해당기업의 이의신청를 거쳐 상장폐지여부가 결정한다고 밝히며, “상장폐지 실질심사대상에 포함된 상장사들은 대부분이 퇴출될 것”이라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금까지 상장 폐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국거래소를 상대로 법원에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던 상장사들 중 대부분이 시장 퇴출이라는 결과는 받아 들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 코스닥 기업의 관계자는 “상장폐지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회계사들과 마찰이 잦아지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회계사에게 거액을 주고 적정의견을 받았다느니, 의견거절을 주려는 회계사를 감금하다시피 하고 있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은 충격이 크다. 투자손실에 망연자실한 채 눈물을 쏟고 있는 상황에서 상장 폐지가 최종 확정된 기업의 투자자들은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로 상장폐지가 될 줄은 몰랐다”고 토로하고 있고, 또 일부 투자자들 중에는 대학교 등록금과 생활비를 상장폐지 사유가 발생한 종목에 모두 털어 넣었다가 큰 손실을 보았다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사안이 이렇다 보니 퇴출이 확정된 코스닥 상장사의 소액주주들이 두팔을 걷어부쳤다. 소액주주들은 현 경영진 및 최대 주주의 회사 매각을 막기 위해 온·오프라인상에서 지분 모으기에 나서고 있고, 이를 통해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해 경영진 교체는 물론 민·형사상 고발도 추진 하고 있다. 특히 일부 소액주주들은 담당 회계법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소송까지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경영진의 방만경영 및 도덕적 해이로 인한 상장 폐지로 큰 손해를 보게 될 소액주주들이 방관자가 아닌 기업의 주체인 주주로서 스스로 회사를 살리고, 권리를 찾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되는데, 증권업계에 따르면 상장 폐지가 확정된 IC코퍼레이션 소액주주들의 경우 온·오프라인상 접촉을 통해 지분 모으기에 나서는 등 힘을 모으고 있다고 귀뜸하며, 가장 큰 목적은 현 경영진 및 최대주주, 주요주주가 자본감소 및 감자 이후 회사를 매각하려는 움직임을 막는 동시에 충분한 지분이 확보될 경우 임시주주총회 개최를 통해 경영진 교체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퇴출 기업 중 일부 ‘눈 가리고 아웅’식 상호변경 기승
상황이 이렇다 보니 코스닥 업체들의 상호 바꾸기가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기업 이미지 제고, 신규사업 진출 등 그럴싸한 명분을 내세우지만 실상을 뒤져보면 훼손된 기업 이미지를 감추거나 주가를 띄우려는 등 불순한 의도가 엿보여 투자자들의 주의가 요구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4월 21일 현재까지 상호변경을 공시한 회사는 49곳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관행은 과거에도 좋지 못한 실적이나 이미지를 숨기기 위해 이루워져 왔는데 투자자들의 선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이런 기업들의 상호변경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더욱더 문제가 되고 있다.
증권가의 관계자는 최근의 사명변경 기업들에 대해 투자자들이 실제 재무제표를 찾아보는 등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며 “최근 녹색성장, 바이오 등 테마에 편승하려는 사명변경이 특히 많다”며 “해당기업의 자본잠식 지속상태, 누적 적자 수준, 해당 신규사업 분야에서의 실적발생 여부 등을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지금 당장 기업의 명맥은 유지하고 있으나 퇴출이 유력시되는 회사가 사명변경을 해본들 단기간에 큰 성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여 “기업이미지 쇄신을 위한 상호변경이 다 나쁘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으나 불명예스러운 기업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얌체기업들에 대해서는 투자자들의 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스닥 기업들 ‘쪽박’두려움에 전환청구권 행사 늘어
최근 전환청구권이 행사되는 코스닥 상장사가 최근 부쩍 늘고 있다.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기존 전환사채(CB)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전환청구권을 잇따라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들이 발행한 전환사채(CB)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이 해당 상장사가 퇴출 위기에 몰리면서 전환청구를 통해 투자금의 일부라도 회수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증시에서 ‘상장폐지’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경우 회사가 연속성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사채를 만기까지 보유한다 하더라도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지적하면서 상장폐지가 되면 CB가 주식으로 전환된다 하더라도 주식 가치가 없어서 투자금을 회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장폐지 위험이 있는 기업의 CB로 전환청구권을 행사해 정리매매 기간에 투자금 일부라도 회수하려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고 말하며 “최근 전환청구권이 행사되는 CB의 경우 3월 이후 발행된 것이 대부분으로 이는 사업보고서 제출 마감을 앞두고 상장폐지 사유를 해소하기 위해 발행됐는데 해당 기업들의 상장폐지 가능성이 커면서 전환청구가 잇따르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기업의 상장적격성 유무, 거래소 판단 존중돼야
증권선물거래소의 상장폐지실질심사는 코스닥시장의 질서유지와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법원결정이 나왔다. 상장폐지실질심사제도는 증권선물거래소가 문제 있는 상장법인을 걸러내기 위해 지난 2월 도입한 제도다. 특히 법원은 이번 결정에서 실질심사를 통한 상장폐지의 요건으로 임의적·일시적 매출을 통해 의도적으로 상장폐지요건을 회피하거나, 기업의 계속성, 경영의 투명성 또는 기타 코스닥시장의 건전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상장폐지가 필요한 기업 등 2가지 요건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임의적·일시적 매출을 판단하는 데 외부감사인의 감사보고서가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며 “최근 열악한 상황에서 갑자기 기존 영업과 관련 없는 신규사업에 뛰어드는 등 신청인 회사의 2008년도 매출은 상장폐지요건을 회피하기 위한 임의적·일시적 매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거래소로서는 코스닥시장의 잠재적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장기업의 상장적격성 유무를 자율적으로 판단해 이에 따른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는 만큼 상장폐지실질심사에 회부된 기업의 상장적격성 유무에 관한 거래소의 판단은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코스닥에 새로 입성하는 우량기업들 이어져
지난 2월부터 강화된 퇴출 규정으로 코스닥을 떠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다른 한편에서는 새롭게 코스닥에 입성하려는 우량 기업들의 행렬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거래소가 상장폐지 실질심사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난 4월 17일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상장 폐지된 기업은 총 26곳으로 이들은 대부분 자본잠식이나 감사의견 거절 등을 이유로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이 확정된 상태다. 또 이 외에도 현재 20여개 이상의 기업들에 대한 실질심사 대상 여부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같은 코스닥 내 칼바람 속에서도 코스닥에 새롭게 입성하려는 새내기 기업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올 들어 메디톡스, 유비쿼스, 코오롱생명과학 등 12개 업체가 코스닥에 신규 상장한데 이어 앞으로도 에스티오, 티플랙스, 네프로아이티, 우림기계 등 우량 기업들이 신규 상장을 준비하고 있어 기존 코스닥 기업들이 떠난 빈자리를 이들 업체들이 속속 채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상장된 기업들은 기존 퇴출된 기업들과 달리 실적 면에서도 상당히 우량한 기업들이 대부분으로 이는 지난해부터 기업공개(IPO) 시장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실적이 뒷받침된 우량 기업들을 중심으로 상장을 서두르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무더기 퇴출 사태, ‘클린 코스닥’의 원년으로 삼아야
최근 자본잠식 및 시가총액 미달, 감사 의견 부정적 등으로 상장폐지의 위기에 내몰렸다 사유 해소의 이유로 주식거래가 재개된 종목들을 안심하고 투자해도 될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 종목들은 거래가 재개된 후 상장폐지를 모면했다는 안도감으로 주가가 강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증권업계에 따르면 상장폐지 관련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장중 가격제한폭까지 급등세를 보인 기업들이 많았다고 전하며, 하지만 이는 ‘착시’효과 일수도 있으며, 투자자들은 해소기업들의 상승세에 편승하지 말고, 철저한 분석을 통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4월 1일 코스닥시장 13개 상장사 퇴출을 확정했고, 48개 기업에 상장폐지 우려 통보를 내렸다. 해당 업체는 그 이유를 해소하지 못하면 상장폐지가 결정된다. 지난해 23개 기업이 퇴출된 것에 비하면 퇴출기업은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예전 같으면 퇴출 대상기업은 자구책이라도 마련하느라 애썼겠지만 올해부터 거래소가 실질심사제라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전망이어서 자구 노력도 없는 형편이다.
코스닥시장까지 힘들게 입성한 기업 대표나 직원들로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회사의 성장성과 실적을 토대로 투자했던 투자자에게도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시장의 건전한 성장을 위해선 진입과 퇴출은 불가피할 수밖에 없고, 이를 계기로 부정적 이미지의 코스닥 시장의 정화를 실현하는 것도 좋을 듯싶다. 더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들로 가득찬 변화된 코스닥 시장에서 기업과 투자자가 서로 웃을 수 있는 장으로 탈바꿈 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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