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이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은행이나 공기업에서는 퇴직금 중간정산 행렬이 이어지고, 노동시장의 체불인금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어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한 새로운 풍속도가 전개되고 있다.
경제에 가장 민감한 금융권 사람들
금융권에 따르면 고액 연봉을 받는 은행원들이 노후를 대비해 모아둔 퇴직금을 중간정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부쩍 늘었다고 밝혔다. 국민은행은 지난달 실시한 퇴직금 중간정상에서 1만 8,000명의 직원 중 절반에 가까운 8.500명이 신청을 했고, 또 기업은행 역시 노조의 요구로 지난달 7,000명 중 3,700명이 퇴직금을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움직임은 퇴직금 중간정산이 지난 2001년 은행권의 퇴직금 누진제도가 폐지되면서 한차례 실시한 뒤 8년만의 일로 표면적으로는 곧 퇴직연금이 도입될 예정인 데다 누진제 폐지로 퇴직금을 오래 묶어 두는 것이 별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후의 보루라고 불리는 퇴직금 정산을 절반 가까이 신청했다는 것은 최근 경기불황의 여파라 하겠다.
또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도 고학력 인재들이 몰리고 있다.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제2금융권과 비제도권 금융기관에 고학력의 우수인재들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업계는 이러한 현상을 반기면서도 내심 이직을 우려하고 있는 모습이다. 저축은행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올 2월까지 공채를 실시한 현대스위스·한국·토마토·동부 저축은행에 응시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출신의 지원자가 850여명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지원자의 5%에 불과한 숫자지만 1~2%에 그쳤던 예년과 비교한다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 하겠다. 이 중에는 MBA를 공부한 경영학석사 등 유학파도 200여명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대졸 초임의 평균 급여가 3,000~3,500만 원 수준이어서 저축은행 급여가 대기업 못지않은 수준으로 개선된 요인도 상당수 작용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대부업체의 경우에도 서울 소재 대학 출신 지원자가 10%에 이르고 있다. 한 대부업체의 관계자는 “서울대, 연·고대 출신자들이 지원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야기 했다.
체불임금은 증가하고, 카드 신규발급은 줄어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2월까지 체불된 임금 규모는 1,715억 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 1,002억 원에 비해 71.2% 늘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지급되지 못한 임금 455억 원까지 포함하면 2,160억 원으로 임금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4만 2,166명에 육박하고, 지난해 같은 기간 2만 4,889명보다 69.4% 증가한 것이다.
노동부는 전체 체불임금 2,160억 원 가운데 44.5%인 961억 원(2만 7,000명)을 근로감독관 지도를 통해 해결하고 31.8%인 686억 원(1만 4,000명)에 대해서는 업주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용카드를 이용해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카드사들은 카드발급을 꺼리고 있는 모습이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연체율이 증가해 고객 관리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신한·삼성·현대·롯데·BC 등 5개 전업 카드사들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3.43%로 나타났다. 하지만 카드사들은 2003년 카드대란 이후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던 연체율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카드 발급 신청을 받은 카드사들은 신청자의 소소한 과거 행적까지 모두 대조해 카드 발급을 유보하고 있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카드업이 경기후행적 업종이다 보니 카드사 입장에서 경기 침체는 아직 시작도 안한 셈이라 신규 발급을 극히 꺼리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신용등급 자체에 영향을 주지 않는 요소라도 꼼꼼하게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기불황 속…‘튀는’ 주유소 매출도 ‘쑥쑥’
지난 2005년11월 처음 등장한 셀프 주유소는 극심한 불황 속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셀프 주유족’이 늘면서 전국에 100여개가 성업 중에 있다. 업계 최초로 셀프 주유소를 도입한 GS칼텍스는 현재 70개의 셀프 주유소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1월 서울 강남권에 최초로 오픈한 셀프 주유소는 싼 가격과 고급 편의시설을 무기로 판매량이 증가하기 시작해 최근에는 개장 시점 대비 3배의 판매율을 보이고 있다. 이 주유소는 강남이라는 지역적 특수성과 셀프 주유소가 갖고 있는 서비스 부분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고객라운지도 마련해 놓았는데, 고객들이 인터넷을 하면서 엔진오일 교환이나 손세차 작업 현황을 실시간 TV를 통해 살펴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 여성 고객을 겨냥한 주유소도 차별화된 서비스로 고객들의 발길을 잡고 있다. 지난해 11월 여성 친화 주유소를 표방하고 리모델링한 방배동의 한 주유소는 최근 매출이 50% 정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은 리모델링하기 직전 3개월 평균 판매량이 1,000드럼 수준이었지만 전환 이후 평균 1,500드럼 수준으로 판매량이 향상됐다고 밝히며, 성공 비결은 여성 고객을 겨냥한 차별화된 서비스라고 이야기 했다. 외관부터 여성들이 선호하는 보라색과 깔끔한 이미지의 흰색을 조합한 감각적 디자인을 접목한 이곳은 단순하게 기름만 넣는 주유소 이미지에서 벗어나 여성 고객들을 위해 주유 서비스 외에 차량 관리 서비스와 멤버십 서비스를 함께 실시하고 있다. 특히 여성 고객들의 기피 대상이었던 주유소 내 화장실에 화장을 고칠 수 있는 파우더 룸을 설치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경기불황에 더 잘 팔리는 ‘경차’ 그것도 옛말
경기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중고차 가치를 떨어뜨리는 연식 변경 적용, 신차 메이커의 단종차 및 재고차 할인 판매 등이 맞물리면서 국산 중고차 평균 판매가격이 전 차종에 걸쳐 하락추세를 보이고 있다. 또 할부금융사들이 할부 한도를 제한하고 조적을 강화하면서 할부 이용자가 많은 고가차의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졌다. 또 지난해 말 고유가로 발생한 경차 특수로 지난해 보합세를 보였던 경차와 소형차도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한 중고차 판매상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자동차 구입 욕구가 크게 감소한데다 신차 판매 저조로 공급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거래가 위축됐고, 가격도 하락세를 나타냈다”며 “신차 메이커에 이어 중고차업체들도 생존을 위해 재고차 처리에 나서고 있어 올 하반기에도 하락세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일반적으로 경기 불황이 깊어질수록 신차보다는 중고차로 일반인들의 관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올 경제상황이 IMF 이래 가장 힘든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으면서 소비자들이 중고차시장에도 지갑을 굳게 닫아버리고 있는 것이다. 신차들의 대대적인 할인과 함께 중고차 시세는 차급에 상관없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계절적으로 비수기인점을 감안하더라도 올해 하락세가 두드러진다는 것이 관련 업계의 진단이다.
특히 중고차 시장은 지역경제의 ‘바로미터’로 불리는데, 중고차 업계에는 ‘올 것이 왔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수원지역 중고차 매매 상사 등에 따르면 올 초 업체 딜러들은 5~10대의 개인 판매량을 기록하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최근 판매량이 급감하며 이번 달 매출은 연초 대비 20~30%대로 곤두박질치고 있는 실정으로 수원지역 중고차 매매 상사들은 평균 50~70대를 판매하며 소속 딜러는 5~15명 수준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연초 50대를 판매한 상사의 경우 현재 소형차, 트럭 등 일부 차종을 제외하고 위탁판매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더구나 차를 맡기고 현금을 확보하려는 시민들은 중고차 판매상들이 기존에 해주던 현금 매입을 거절하면서 위탁판매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이마저도 힘든 상황이다. 이처럼 중고차 매매시장이 급속히 냉각되면서 차를 팔아 급전을 쓰려는 시민들은 애간장을 태우고 있으며 자동차 딜러, 판매상 등은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아파도 의료비는 아껴야지, 보건소 발길 ‘북적’
실물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간단한 진료와 성인병 검사 등 다양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보건소를 찾는 발길이 점차 늘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 따르면 덕양구와 일산동구에서 보건소를 찾는 진료환자는 각 보건소별로 예년에 비해 13~30% 가량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보건소는 한방과 물리치료실 등을 찾는 환자들이 급증하면서 대기시간을 줄이고 효율적인 진료를 위해 일반 병원처럼 진료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일산서구 보건소 관계자는 “내과진료의 경우 지난해에 비해 20~30% 정도 환자가 늘었다”며 “물리치료실을 찾는 환자도 하루 35~40명 정도여서 신속한 진료를 위해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보건소를 찾는 환자들이 늘고 있는 것은 우선 진료비가 일반병원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으로 감기 환자의 경우 일반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진료비와 처방전을 발급 받기까지 보통 3,000원을 내야 하지만, 보건소에서는 500원의 처방전 수수료만 내면 된다. 게다가 65세 이상 노인에 대한 모든 의료서비스는 무료이며 아기들의 예방주사도 역시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보건소마다 다양한 의료사업을 진행하며 환자들의 진료 만족도를 높이고 있는 것도 또 다른 이유로 보건소들은 고혈압과 당뇨 등 만성질환자들과 감기 등 일반 진료환자 등이 자주 찾는 내과진료와 침시술, 투약, 적외선 치료, 중풍 등에 대한 한방진료와 장애, 신체약화로 인한 통증완화 및 신체기능 회복을 위한 물리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노인들을 위한 치매검진과 금연클리닉, 영양 검진, 관절치료, 치과 진료 등 건강증진사업을 다양화하고 시설과 진료서비스를 개선하며 1차 진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또한 거동 불편자와 독거노인, 재활이 필요한 장애인, 재가 암환자, 결혼이민자 등을 대상으로 한 방문건강관리 서비스를 자원봉사자와 연계해 가사와 밑반찬, 이동차량, 미용, 산후조리 등 생활지원 사업도 펼치고 있다.
20∼30대 사망원인 1위, 암울한 청춘들의 자살 급증
지난해 자살자 수가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올해들어 장기적인 경기 불황에 따른 ‘사업실패’ 등으로 인한 자살자 비율은 급증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대 자살자 비율이 폭증세를 보이는 등 30세 이하와 여성 자살자의 비중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은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2004∼08년 자살자 통계’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자살 동기별로는 2만 9,047명이 ‘염세 비관’으로 자살해 45.7%로 가장 비율이 높았고, 이어 ‘병고’ 22%(1만3,982명), ‘치정·실연·부정’ 7.7%(4,861명), ‘정신이상’ 6.9%(4,419명), ‘가정불화’ 5.7%(3,588명), ‘빈곤’ 4.3%(2,721명), ‘낙망’ 4.0%(2,536명), ‘사업실패’ 3.7%(2,358명) 등 순이었다.
특히 사업실패로 인한 자살자 비율이 급증해 2004년 3.6%에서 2005년 3.3%, 2006년 2.7%, 2007년 2.2%를 보이더니 경기침체가 확산된 2008년 6.8%로 폭증했다. 연령별로는 30세 이상은 비슷한 반면 30세 이하는 해마다 비율이 높아져 20세 이하는 2004년 2.0%, 2005년 2.2%, 2006년 2.1%, 2007년 2.6%, 2008년 2.9%로 꾸준히 증가했고, 21∼30세 이하는 2004년 8.7%에서 2005년 10.2%, 2006년 8.9%, 2007년 11.6%를 기록한 뒤 2008년 12.8%로 4년 전보다 4.1%포인트 급증했다.
이렇다 보니 20∼3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모두 자살로 나타났다. 2007년 20대 사망자의 38.6%, 30대의 25.8%에 달했다. 성별로는 남성 비율이 65∼70% 수준으로 대체로 높은 가운데 여성 자살자 비율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일확천금의 달콤함에 숨겨진 패가망신 ‘도박’
경기불황이 계속되며 ‘한방 역전’을 꿈꾸는 서민들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경마·경륜장에는 합법적으로 한탕을 노리는 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주머니 속에 1만원만 있어도 ‘대박’을 꿈꾸며 달려간다. 그러나 2~3분짜리 ‘도박’이 끝난 뒤에 남는 것은 빈 주머니뿐이다. 그만큼 인생역전, 한방인생을 찾는 서민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카지노의 대명사인 강원랜드의 매출액은 2000년 개장 이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개장 첫해 910억 원을 기록하더니 지난해에는 8년 만에 1조원을 돌파했고, 올해까지 집계한 매출액만 8,815억 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2%나 증가한 것이다. 또 ‘인생역전’을 캐치플라이즈로 내건 로또 복권 역시 마찬가지다. 경기 불황이 본격화된 지난해 8월 이후만 보더라도 지난해보다 129억 원어치가 더 팔렸다.
나눔로또가 올 들어 지난달 첫주까지 모두 14주의 회차별 판매금액을 집계해본 결과 지난해 같은 시기에 비해 판매액이 12.8%나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경기불황 등으로 ‘한방’에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판매된 금액은 6,622억원 가량으로 지난해 같은 시기 5,868억 원보다 증가했다.
로또복권 판매액의 지역별 비중을 살펴보면 서울이 25%, 경기도가 24%로 로또 판매액의 절반을 수도권이 차지하고 있었고 인천(6%)까지 포함하면 60% 가까이의 로또복권을 수도권지역에서 소화해내고 있으며, 지난달 첫주까지 1등 당첨자는 모두 92명으로 회차당 평균 6명으로 서울이 24명, 경기 19명으로 나타났다.
또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컴퓨터만 있으면 얼마든지 도박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온라인 도박에 빠지는 사람들도 속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 역시 지속적으로 단속을 하고는 있지만 인터넷 도박의 진화는 끝이 없어 국경을 넘는 것은 이미 예삿일로 국내에 근거지를 둔 채 해외 사이트로 위장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지난 2006년 대대적인 ‘바다 이야기’ 단속으로 주춤했던 오락실 도박도 되살아나고 있다. 과거 불법오락실 운영자들은 지하실 같은 곳에 PC 수십대를 마련해 놓고 영업했지만 이젠 PC가 아니라 휴대용 메모리(USB)에 ‘바다 이야기’ 등 게임프로그램을 저장해 놓고 운영하기 때문에 뿌리 뽑기가 쉽지 않다. 경찰 단속이 나오면 USB만 회수해서 손쉽게 도망가기 때문이다. 거기에 전국적으로 성업 중인 성인 PC방은 단속의 사각지대다. 성인 PC방은 일반 PC방과 구별이 안 되기 때문에 단속이 힘들 뿐 아니라 게임 자체가 합법이라고 해도 사이버머니 등을 불법으로 환전하는 편법도 성행하고 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중독예방치유센터 이경희 전문위원은 “요즘 같은 불황기에는 정상적인 방법으로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탓에 일확천금을 노리거나 현실을 잊기 위한 수단으로 손쉽게 도박을 선택하게 된다”면서 “도박은 중독 폐해를 낳는다는 점에서 음주 같은 스트레스 해소책보다 훨씬 위험하다”고 말하며, 덧붙여 최근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인터넷 도박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