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국회, ‘추경예산 삭감’ 재선거와 맞물려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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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국회, ‘추경예산 삭감’ 재선거와 맞물려 ‘공방’
  • 이준호 기자
  • 승인 2009.05.06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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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임시국회 ‘한은법 개정’‘양도세 폐지’‘교육세 폐지’ 등 놓고 여·야 격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 추가경정예산조정소위는 지난 4월 24일 SOC(사회간접자본) 예산 삭감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도로, 항만 등 SOC예산 배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지만, 민주당은 토목사업의 경제 살리기 효과가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땜질처방’에 불과하다며 삭감을 요구했다. 특히 3,500억 원이 배정된 ‘4대 강 살리기 사업’을 놓고 재해예방 등 차원에서 추경에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는 한나라당과 구체적 마스터플랜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여서 전액 삭감해야 한다는 민주당 의원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추경안 편성은 크게 2가지 목적에 따라 이뤄졌는데, 세입결손 보전과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지출확대가 그것이다. 수입 면에서 2009년도 예산안 편성 당시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 하락으로 경제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세수결손액 보전액 11조 2,000억 원을 편성하고, 지출 면에서 내수경기 부양 및 민생안정 예산으로 17조 7,000억 원을 추가 편성함으로써 총 28조 9,000억 원 규모의 이른바 ‘슈퍼 추경안을 내놓았다.
통합재정수지는 당초 6조 4,000억 원 흑자예산에서 -22조 5,000억 원 적자예산으로 돌아섰다. 이는 GDP 대비 -2.5% 수준으로 이는 지난 1998년 -3.9% 이후 최저치다. 통합재정수지에서 국민연금이나 사학연금 등의 사회보장성기금 흑자와 공적자금산환 소요를 제외한 관리 대상 수지는 -51조 6,000억 원으로 이 역시 GDP 대비 -5.1%로 1998년 이후 최저치이다. 이에 정부가 밝힌 28조 9,000억 원 규모의 추경재원 확보 방안으로 추경재원의 상당부분인 22조 원을 국고채 발행으로 충당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국고채 물량 증가에 따른 시장압박을 의식해 국고채 순증 규모는 7조 3,000억 원으로 계획하고, 또 올해 발행 예정이던 국고채 중 원화외평채발행물량 5조 원을 축소하면서 시장관리용 국고채의 발행을 유보할 계획이다. 이중 시장관리용 국고채는 시장상황 개선시 발행을 검토하겠다는 단서를 달고 있어 올 국고채 발행규모가 늘어날지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이러한 추경안 편성 등에 따라 올해 발행되는 국고채 발행 총 규모는 81조 6,000억 원으로 지난 2008년에 비해 29조 5,000억 원이 증가했다.

추경, ‘재정건전성’ 우려하더니… 곳곳서 ‘증액’
당초 ‘슈퍼 추경’이라고 불리며 재정건전성 악화를 우려됐던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증액되는 모습을 보여 ‘선심성 예산’이라는 비판도 일었다. 지난 4월22일 추경안과 관련된 13곳의 상임위가 예비심사를 마친 결과, 정부 원안 28조 9,000억 원보다 7조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출 증가분은 5조 6,628억 원, 소관 기금 증가액은 1조 6,676억 원 이었다.
행정안전위는 증액된 예산이 무려 2조 2,151억 원으로 상임위 중 가장 많았다. 정부는 애초 지방재정 결손분 지원을 위한 교부금 2조 1,989억 원 삭감안을 냈지만 행안위 위원들은 이를 전액 원상복구했다.
상임위 중에서 가장 늦게 추경안을 처리한 교육과학기술위의 경우 1조 8,000억 원을 증액하면서 전체 3분의 1에 해당하는 6,158억 원을 학자금 지원에 편성했다. 또 지식경제위는 대구, 시흥, 인천의 종합비즈니스센터 건립 사업 등을 추가해 총 2조 3,580억 원을 증액했고, 국토해양위도 울릉도 일주도로 건설에 10억 원, 울진공항 건설에 49억 원을 추가 반영하는 등 3,941억 원을 증액했다. 농림수산식품위와 문화체육관광, 방송통신위도 각각 2,171억 원과 1,688억 원을 늘렸으며, 보건복지위가 919억 원, 환경노동위가 544억 원, 정무위가 500억 원, 여성위가 96억 원을 각각 순증했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당초 정부안보다 추경이 증액된데 대해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다. 한나라당은 “상임위에서는 추경안을 증액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빚더미 추경이니 재정건전성 악화라느니 ‘반대를 위한 반대의 소리’를 외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고, 민주당은 “상임위에서 증액된 내용들은 정부의 잘못된 경제예측과 부자감세로 구멍 난 지방재정 보존금, 복지관련 예산, 교육예산 등 불요불급한 예산들”이라며 맞섰다.
특히 4·29 재보선을 앞두고 인천 부평 을의 최대 현안인 GM대우 유동성 지원예산의 추경 포함 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는 등 추경 공방이 선거판으로 옮겨 붙는 양상을 보였는데, 한나라당은 제너럴모터스 미국 본사의 구조조정계획이 나오는 5월 말 상황을 봐가면서 사안에 따라 맞춤형 지원방안을 수립해야 한다면서 민주당의 6,500억 원 규모 추경 긴급편성 요구를 반대했다. 반면 민주당은 추경에 편성된 ‘4대강 정비사업 예산’을 삭감해 긴급기술개발 지원 등 6,500억 원을 GM대우에 긴급 추가 편성할 것을 주장했다.

양도세, 한은법 등 굵직한 정부안 “수정 또 수정”
4월 임시국회에서 새로운 형태의 ‘입법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여·야가 싸움 상대가 아니다. 국회와 정부부처가 오히려 맞붙는 모습을 보이며, 임시국회는 정부가 제출한 주요 법안들을 퇴짜 놓거나 아예 내용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 부처가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면 큰 이견 없이 ‘자동’ 통과됐다. 정부에선 “정부 정책이 곧 법”이라는 자부심이 있어 왔지만, 이번 국회에선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 주요 부처들이 내놓은 법안들이 국회에서 난도질당하기 일 수 였고, 또 정부안을 섣불리 발표했다간 체면 구기기 십상이어서 가히 ‘국회 전성시대’라는 말이 나돌았다.
지난해 말과 올 초 벌어진 여·야간 ‘입법전쟁’에선 해머까지 등장하며 폭력이 난무했었지만, 이번 임시국회의 풍경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화끈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대신 정부안에 대한 국회의 ‘견제’와 ‘수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폐지에 대한 사안을 살펴보면, 정부는 여당인 한나라당의 협조를 당연시했지만 정작 여당에서 정부안에 반대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당은 정부가 가져온 법안을 모두 통과시키는 거수기가 아니다”라는데 공감했다. 박희태 대표는 “유니폼적 사고를 벗어야 한다”고까지 말할 정도 였다. 또 “소관 위원회와 정부가 속닥속닥 합의해 법안을 내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는 의견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제도를 일괄 폐지하는 정부안은 어떻게든 손질될 것이 확실했다.
또 한국은행법 개정안은 해당 부처가 손 놓고 있는 사이에 국회가 주도적으로 법안을 만들어갔다. 국회 재정위원회가 본회의에 상정할 예정이었던 ‘한은법 개정안’은 한은마저 놀라게 했다. 한은이 지난 10년간 줄곧 요구해온 내용이 고스란히 담겼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강화됐기 때문이다.
개정안에는 한은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을 추가하고 금융기관에 대한 자료제출 요구권 강화와 직접조사권 부여 등 파격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한은법 개정은 시기상조’, ‘전체 금융감독 시스템을 바꿔야 하는 장기 과제’라고 주장해온 재정부와 금융위원회는 뒤통수를 맞은 격이었다. 재정위 관계자는 “한은 역할을 강화해 향후 금융위기 등에 대비하자는 취지”라며 주도적으로 한은법 개정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여기에 노후차량을 교체해 신차를 살 때 세금을 감면해주는 법 개정안의 경우 재정부 세제실과 지식경제부 사이에 미묘한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국회에서 ‘교통정리’를 했다. 재정위 조세소위는 ‘자동차업계의 강도 높은 자구노력이 없다면 개별소비세 감면 등 신차구입에 대한 세제지원을 조기 종료한다’는 내용을 법안에 부대의견으로 넣어 결과적으로 재정부 세제실의 손을 들어주었다.

상임위 중심으로 간다더니… 법안 처리 방해
지난 연말·연초 두 차례에 걸친 입법 전쟁을 거치며 여·야 원내대표들은 “4월 임시국회는 상임위 중심으로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해당 법안을 잘 이해하고 있는 상임위원들 간 건전한 논의를 통해 법안 심사에 내실을 기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4월 임시국회는 쟁점 법안 처리 과정에서 다른 상임위의 법안 처리를 방해하거나 상임위원장을 공개적으로 깎아내리는 등 상임위를 무시하는 행위가 횡행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통과가 이뤄진 4월 22일 외교통상통일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이날 오전 외통위 회의장에는 유선호 법사위원장을 비롯해 외통위 소속이 아닌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천정배·최인기·조배숙·김상희 민주당 의원 등이 대거 몰려와 박진 외통위원장석을 둘러쌌다. 회의 진행을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는 박 위원장의 거듭된 요청에도 이들은 “FTA 비준안 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고성을 지르며 여당 의원들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급기야 송영선 친박연대 의원은 이들을 향해 “남의 상임위에서 뭐 하는 거냐. 당신들 국회의원 맞아”라며 고함을 질렀다.
이런 사건은 지난 16일에도 있었다. 행정안전위 법안심사소위 회의장에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를 비롯해 심대평 대표, 권선택 원내대표와 변재일 민주당 의원 등 충청 지역 의원들이 몰려와 세종시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압박했다. 법안소위 위원 8인 중 유일한 충청권 의원인 이명수 선진당 의원을 지원사격하기 위해서다. 반면 법제사법위원회는 주택공사·토지공사 통합법, 금산분리 완화 관련 법 등 소관 상임위에서 넘어온 법들에 대해 “상임위 처리 과정이 잘못 됐다”며 트집을 잡아 처리를 미루었다. 게다가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연일 환경노동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위원회를 ‘불량 상임위’로 지목해 해당 상임위원장들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김부겸 교과위원장은 “특정 상임위를 두고 불량 위원회니 우수위원회니 평가하는 것 자체가 오만한 자세”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처럼 여·야가 민생 법안을 앞에 두고 상임위에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합의를 이루는 모습보다는 남의 상임위에 쳐들어가 억지를 부리거나 소모적인 말싸움만 벌이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경제5단체 국회에 건의서… 추경예산안 등 촉구
경제 5단체가 경제위기 극복법안의 조속한 국회통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는 4월 22일 ‘경제위기 극복 관련 입법현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 건의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추가경정예산안, 내수진작 관련법안, 구조조정 지원법안 등을 국회가 신속히 처리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경제계는 건의서에서 “한국경제의 위기극복을 위해 정부와 국회에서 다각적으로 대책을 마련했는데 이같은 대책들이 적기 시행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4월 임시국회는 여야가 서로 협력해 경제위기 극복관련 법안 처리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조속히 처리되어야 할 입법현안으로 ▲29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노후차량 교체 시 개별소비세와 취·등록세를 70% 감면해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의 소득세법 개정안 ▲분양가상한제 적용대상에서 민간택지를 제외하는 주택법 개정안 등 내수 진작 관련법안을 꼽았다. 또한 기업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기금을 신설해 부실채권과 기업자산을 인수해주는 내용의 자산관리공사법 개정안 ▲기업이 비사업용 토지를 매각할 때 법인세 30%를 추가로 중과세하는 제도를 폐지하는 법인세법 개정안 ▲채무상환을 위해 자산을 매각할 경우,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이연해 주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도 4월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한·미 간 상품관세를 철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한·미 FTA 비준 동의안, 물류시설 개발시 중요사항만 점검해 사전 승인해 주고 인허가 관련 기타 협의절차는 사후에 진행해 주는 물류시설개발법 개정안,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출자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도 처리해 줄 것도 건의했다.
특히 경제5단체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거나 기업부담을 늘리는 법안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를 촉구했는데, 경제계가 우려를 표명한 주요 법안들은 ▲2010년부터 적용 예정인 법인세 및 소득세 최고세율 인하내용을 종전수준으로 환원하는 내용의 법인세법과 소득법 개정안 ▲증권집단소송제를 확대하는 내용의 증권집단소송제 개정안 등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에 대해 기업 활동 및 정책신뢰성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보다 신중하게 검토해 줄 것을 주문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향후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V자형으로 회복될 가능성보다는 바닥상태에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더 높다”며 “극심한 경기불황에 따른 기업과 국민들의 고통을 헤아려 국회가 경기부양 및 구조조정 관련 법안을 4월 중 반드시 통과시켜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야, 재보선 말고도 할 일이 많은데…
4월 임시국회와 맞물려 4·29 재보선 득표전이 달아오르면서 여·야 지도부는 연일 주요 선거구를 돌며 지지를 호소하느라 바빴다. 5개 지역의 국회의원 선거가 각각 여야 대결이나 ‘집안 싸움’ 차원에서 눈길을 끌고, 유일한 기초단체장 선거인 경기 시흥시장 선거도 수도권의 민심을 짚어볼 수 있는 선거라는 점에서 여·야는 인천 부평 을 국회의원 선거 못지않게 공을 들이는 모습을 보였는데, 원칙적으로 과열·혼탁으로 치달아 흑색선전과 인신공격, 선거부정 등의 부작용을 부르지만 않는다면 치열한 득표경쟁은 흠잡을 일이 없다. 날로 뚜렷해지고 있는 국민의 정치 무관심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에 적극적으로 임하게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적잖은 역할이다. 그러나 좋은 일도 때가 있고, 때에 따라 그 경중이 달라진다. 이런 점에서 여·야가 4·29 재보선에 들인 공은 한국사회 전체는 물론 정치권의 현안에만 비추어도 지나쳐 보였다. 이번 재보선이 ‘집안 싸움’이나 일부 여야 대결이라는 구경거리를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선거 결과가 민심의 향방을 따지는 등의 잣대가 될 수는 없는 일이고, 또 당사자들과 앞으로 각 정당 내부의 동요 가능성에 이해가 걸린 사람들이야 분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야 모두 당의 힘을 총동원해 달려들 만한 선거는 아니었다. 그러나 추경안과 각종 민생법안을 다뤄야 할 4월 임시국회가 일주일 남짓밖에 남지 않았던 상황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매일 출석부에 도장 찍듯 인천 부평 을 지역을 비롯한 주요 선거구로 달려 나갔다. 거기에 각 당의 최고위원들도 동원되었고, 원내대표나 상임위원장조차 완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국회를 비운 국회의원 숫자도 문제지만, 당 지도부의 관심이 떠난 국회에서 제대로 정책현안에 정신을 모으기 어려웠다.
추경안과 각종 민생법안의 심층 심의, 6월 임시국회 처리가 약속된 미디어 관련법의 본격적 논의, 비정규직 문제나 청년실업 해소 대책 등 여·야가 정말 공들일 일이 너무나도 많았던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가 할 일이 기껏 재보선 지원유세 였을까라는 의문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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