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젊은 시니어 ‘샹그릴라 신드롬’
상태바
브라보! 젊은 시니어 ‘샹그릴라 신드롬’
  • 이연제 기자
  • 승인 2009.04.16 17: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이는 잊어라” 중장년층 소비혁명 바람타고 전방위 ‘영스타일’ 붐

   
▲ 평균 수명이 길어짐과 동시에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 국내 한 취업포털 사이트가 직장인 1,282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5.6%가 ‘실제 나이보다 젊게 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응답 했다.
나 20대로 돌아갈래 ‘샹그릴라 신드롬’
샹그릴라(Shangri-La)는 1933년 영국 소설가 제임스 힐튼이 쓴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소개된 티베트 전설 속의 이상향이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히말라야 산중의 ‘샹그릴라(Sangri-La)’라고 하는 마을은 티베트어로 ‘마음속의 해와 달’이란 뜻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이 마을은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청춘을 누리는 이상향이다.
세계 대공황 당시에도 황폐한 생활 속에 찌든 서구인들에게 소설 속에 묘사된 샹그릴라는 꿈에 그리던 지상낙원이었다. 히말라야산맥 중 평생 늙지 않고 영원한 젊음을 누릴 수 있는 작은 마을, 샹그릴라. 넉넉한 먹거리에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근심걱정 없이 가족 및 이웃과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바로 샹그릴라였던 것이다.
<잃어버린 지평선>은 금세 베스트셀러가 되어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와 함께 자본주의의 틀에 박히고 물질문명에 중독된 삶을 벗어나 정신세계에 몰입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고, 중장년층은 단조롭고 무색무취한 생활에게 벗어나 젊고 활력 있게 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른바 ‘샹그릴라 신드롬’이 일어난 것이다.
샹그릴라를 찾아나선 이 중에는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도 있었다. 히틀러는 샹그릴라를 ‘순수 아리안 혈통의 진원지’로 규정하고 자신의 친위부대 탐험대를 7차례나 파견하기도 했다. 샹그릴라는 실현 불가능한 이상세계란 측면에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나 플라톤의 유토피아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우리 삶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암시해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끄는 것 같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젊음’으로 나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샹그릴라 열풍’은 뜨겁다. 얼마 전 인터넷상에서 인기를 끌었던 몸짱 아줌마. 30대 후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몸매와 청순한 얼굴로 많은 이의 관심을 모았다. 이렇게 젊고 날씬하게 보이려는 현상은 거의 모든 여성들의 꿈일 것이다. 젊게 늙고 싶은 여성들의 꿈. 샹그릴라 신드롬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유통가에서도 샹그릴라 마케팅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다.

직장인 92%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게 좋아”
온라인 취업사이트 사람인이 직장인 1,282명을 대상으로 “샹그릴라 신드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설문한 결과, 91.9%가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로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서’라는 응답이 34%로 가장 높았다. 뒤이어 ‘좋아 보여서’(19.7%), ‘외적 경쟁력이 필요하기 때문에’(18.1%), ‘나이 드는 것이 싫어서’(8.9%), ‘평균수명이 길어졌기 때문에’(7%), ‘세대차이를 극복할 수 있어서’(4.4%) 등의 순이었다. 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응답자(104명)는 그 이유로 ‘나이에 맞게 사는 것이 좋아서’(60.6%)를 첫번째로 꼽았다. 다음으로 ‘철없어 보이기 때문에’(9.6%), ‘기업의 상술이기 때문에’(6.7%), ‘한때 유행인 것 같아서’(6.7%),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5.8%), ‘노력해도 바뀌지 않아서’(4.8%) 등이 뒤를 이었다.
실제로 본인의 나이보다 젊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65.6%가 ‘노력한다’라고 답했고 젊게 살기 위해 한 달에 투자하는 비용은 ‘10만 원~20만 원 미만’이 32.8%로 가장 많았다.
자신이 실제나이보다 어려 보인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절반이 넘는 56.2%가 ‘어려 보이는 편’을 선택했다. 실제 나이와 다르게 보이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여부를 조사한 결과, ‘어려 보이는 편’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응답이 11.8%인데 반해 ‘늙어 보이는 편’은 59.1%로 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소녀시대’ 아줌마들, 중년의 바람이 현실로
샹그릴라 신드롬을 타고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액티브 시니어’란 개념도 자리를 잡았다. 이들의 변신은 패션, 화장품, 식품까지 전방위 스타일 변화로 반영된다. 이들의 입맛을 맞춰가는 발빠른 업체들 덕분에 ‘젊은 시니어 스타일’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있다.
중년여인들은 ‘몸짱’이 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가 하면, 전형적인 ‘아줌마 패션’을 거부하고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의류와 화장품을 고른다.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여 외적 경쟁력을 갖추려는 이들이 늘면서 쇼핑가의 새로운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2030세대를 대상으로 만들어진 트래디셔널 캐주얼과 스타일보다는 가격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어덜트 캐주얼, 디자인보다는 기능성에 주안점을 둔 골프 또는 아웃도어룩도 인기다. 또 젊은이들이 즐겨입는 레이어드룩, 피트한 니트 재킷, 세미정장, 모자와 구두까지 소화해 한 단계 젊어진 감각이다. 롯데백화점 대구 MD개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어덜트(Adult) 캐릭터’. 드바이, 매지스, 바부도쿄, 아르테의 브랜드로 구성된 어덜트 캐릭터 존은 중년여성들의 젊은 감각을 맞추기 위해 형성된 매장이다. 이곳에는 파격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옷이 많고, 불경기에도 불구하고 평균 10% 대의 매출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일부 주부들은 아예 영존을 찾아서 딸이 입는 취향의 옷을 입기도 한다.

   
▲ 남성들도 예외는 아니다.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보여 외적 경쟁력을 갖추려는 이들이 늘면서 지난 5년간 눈 밑 지방 제거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을 내원한 환자는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총 42% 증가세를 보였다.
‘화려한 속옷’‘어려보이는 화장품’ 인기몰이
속옷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불어난 몸매를 감추고 보완하는 보정 기능과 편안한 착용감에 주력하던 속옷은 옛 이야기다. 모던하면서 화려한 디자인이 강세다. 편안함보다는 조금 불편해도 화려함을 택한 것이다.
여성들이 결혼이나 출산 후에도 몸매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고, 내의의 개념도 숨기려는 내의가 아니라 보이는 내의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다. 주 5일의 근무로 정장보다는 캐주얼복을 입는 시간이 점점 늘고 브래지어의 어깨선과 팬티의 밴드부분은 이미 노출되는 부분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영향이 30대 중후반의 여성들도 젊은 감각의 내의를 찾게 만드는 현상으로 발전된 것이다. 내의 업계에 따르면 아웃웨어와 같은 코디상품을 점점 늘리고 있고 잠옷도 실내복의 기능까지 갖춘 실용성 위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한다.
젊은 세대들을 위한 아이디어 내의가 많기로 소문난 ‘보디가드’나 내의 전문매장인 CK이너웨어를 찾는 주부들도 급격히 늘고 있다. CK이너웨어의 샵매니저는 “몇 년전만 해도 20대가 주 고객이었으나 지금은 30대 중반층이 많다. 이는 구매력이 강한 층인 30대 중·후반층이 몸매를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색조 화장은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 위주에서 자연스러운 커버로 옮겨가고 있다. ‘생얼’ ‘물광’ 메이크업 등 최근 젊은층의 화장 스타일이 영향을 미친 것이다. 한 듯, 만 듯한 눈화장과 립스틱으로만 포인트를 줘 얼굴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는 식이다.
샹그릴라 아줌마들은 생얼과 투명화장 기류에 맞춰 화장품도 진하고 두꺼운 느낌 대신 투명파우더, 미백라인 처럼 연한 피부화장품들을 선택한다. 색조화장품 전문 브랜드 ‘MAC’의 장진희 씨는 “이제는 아줌마들도 청순하고 어려 보이게 하는 화장품을 고른다. 이는 다이어트 열풍과 성형수술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의 영향인 것 같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아줌마 매장이던 ‘오휘’ ‘설화수’와 같은 한방화장품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나이가 들어 피부가 건조하기 때문에 피부를 촉촉하게 하는 보습화장품을 많이 찾던 아줌마들이 미백라인이나 스킨로션 등과 같은 산뜻함을 유지하게 하는 화장품을 많이 찾는다는 것이다.

아저씨이기를 거부한다 ‘노무(No More Uncle)족’
아저씨라고 하면 튀어나온 뱃살과 무표정한 얼굴, 다소 권위적인 표정에 판에 박은 정장차림의 남자를 연상시킨다. 칙칙한 이미지를 가진 아저씨는 가정에서 식구를 책임져야 하고, 직장에서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견뎌내야 한다. 삶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 두 어깨는 축 처져 희망이라곤 찾기 힘든 사람처럼 보인다.
이런 40~50대의 중년 남성들이 ‘아저씨’이기를 거부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나서고 있다. 20대 부럽지 않은 탄탄한 몸매를 만들고, 기능성 화장품은 물론 종종 피부관리실도 이용한다. 청바지 등 캐주얼과 밝은 색의 옷을 골라 입는가 하면, 자기계발을 위해서라면 여가시간을 아끼지 않는다.
회사와 집밖에 모르던 중년 남성들이 멋쟁이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셈인데, 요즘엔 이들을 두고 ‘노무( NOMU:No More Uncle)족(族)’이라 부른다. ‘더 이상 아저씨가 아니다’는 얘기다. 이들은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항변한다. 일본의 ‘레옹(LEON)족’처럼 센스를 중시하고 때로는 다소 불량스럽기까지 한 패션을 즐기기도 한다.
대기업 차장인 손씨(45세)는 얼마 전 젊게 보이고 싶어 눈 밑 지방 제거 수술을 받았고 직장인 김씨(37세) 역시 헬스클럽을 다니며 두툼한 뱃살을 빼고 피부과에서 정기적으로 마사지와 피부 관리를 받고 있다. 이렇듯 젊고 파릇파릇한 후배들 사이에서 살아남는 길은 자신의 외모를 조금이라도 더 젊게 가꾸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5년간 눈 밑 지방 제거수술을 하기 위해 병원을 내원한 환자는 지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총 42% 증가세를 보였다. 이중 남자의 경우 2002년부터 2005년도 까지 10~20%이었던 것이 2005~2007년도 까지 30~40%로 증가추세이며 재수술 역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남성들이 수술을 결심하게 되는 원인으로는 ‘나이가 들어 보이거나, 지쳐 보이기 때문’ 이라는 의견을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결과는 여성만의 전유물로 생각되었던 성형수술이 점차 남성들에게도 ‘동안=경쟁력’이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중년을 상징하는 신조어들의 변화도 흥미롭다. 외환위기 이후, 직장에서 내몰리는 중년들을 ‘사오정’ ‘오륙도’라 지칭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이들을 ‘와인(WINE:Well Integrated New Elder)세대’라 불렀다. IMF라는 인고의 시기를 거치면서 개인적·사회적으로 잘 숙성된 중년세대라는 뜻일 게다.
S라인을 강조하는 음료의 대명사 ‘미에로화이바’는 더 이상 젊은 여성들의 다이어트 음료가 아니다. 중년 남성들이 즐겨 찾다 보니 이들의 기호에 맞춘 페트병 제품도 나왔다. 눈치가 보여 손에 들고 다니며 마시기 부담스러워했던 중년은 없다. 그들도 페트병을 들고 젊은이들처럼 거리를 활보한다. 주니어와 시니어의 경계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노화는 생리적인 자연현상이 아니라 관리해야 할 질병’이라고까지 여길 정도다. 직장 동료나 가족들에게 젊게 보여 하등 나쁠 게 없다는 심산이다.

   
▲ 최근 젊은 세대들을 위한 아이디어 내의가 많기로 소문난 브랜드를 찾는 주부들도 급격히 늘고 있는 추세다. CK이너웨어의 샵매니저는 “몇 년전만 해도 20대가 주 고객이었으나 지금은 30대 중반층이 많다. 이는 구매력이 강한 층인 30대 중·후반층이 몸매를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왕성하게 벌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성공하는 인생의 관건은 나이와 상관없이 식지 않는 열정
수필가 피천득은 “지나간 날의 여인에 대해서는 환멸을 느껴도 누구나 잃어버린 젊음에 대해서는 미련을 갖는다”고 했다.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지고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모두 샹그릴라 신드롬에 중독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균 수명이 길어짐과 동시에 ‘젊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곧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보편화 되고 있다.
하지만 ‘40대에 들어서면 점차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는 말도 있다. 성공하는 인생의 관건은 나이와 상관없이 식지 않는 열정을 가지는 것인데, 자원봉사와 취미생활을 하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공부를 한다면 겉멋만이 아닌 속멋도 한층 깊어질 것이다.
지나친 세월의 역행을 고집하며 자신의 초라함을 숨기고 얼굴과 몸의 외양만을 추구하는 샹그릴라의 낙원뿐만 아니라, 지평선 너머 영원한 정신의 샹그릴라도 찾는 중년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