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여자가 어딜~” “여자란 자고로~” 같은 구시대적(?) 발언을 했다가는 시대를 잘못 읽는 사람으로 찍히기 십상이다. 바야흐로 여인천하가 열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대표 경선에서 당 대표로 선출된 박근혜 의원은 여성 정치인으로 중심부 진입에 성공하며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 남성 중심의 법조계에서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강금실식 카리스마’를 만드는 강금실 법무장관도 주목받는 여성 지도자다. 박영선(열린우리당)·전여옥(한나라당)·이승희(민주당)씨는 3당의’입’으로 여성 대변인 시대를 이끌며’막강 여성 파워’의 선봉에 서 있다. 그런가 하면 30세도 안된 하버드대 최연소 박사인 윤송이씨가 SK텔레콤 상무에 오르는 등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여성이 각 분야에서 속속 탄생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여성에게 선거권이 처음 주어진 것은 1893년. 우리나라는 1948년 헌법에서 처음으로 남녀 평등권과 여성 참정권을 인정했다. 그로부터 56년 뒤인 2004년 5월. 한국 사회는 허리케인급’여성 바람’이 몰아치며 여성 국무총리와 여성 서울시장, 여성 대통령의 탄생이 머지않았음을 예견하게 한다. 주변인에 머물렀던 여성, 그들이 지금 조직의 중심을 향해 지금 빠른 속도로 이동 중이다.
왜 여성 파워가 뜨는가
한국여성정치연구소는 한국 여성이 규방에서 나와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때를 1897년 대한제국 창건으로 잡고 있다. 직업인으로서 본격적으로 산업현장에 뛰어든 시기는 62년, 경공업 육성정책이 추진되면서부터다. 당시는 여성은 방직 재봉 식품 등에 종사하는’여공’이 대부분이었지만 70년대 이금순(우체국장) 주혜란(보건소장) 등 전문분야로 진출하는 여성이 생기고 교육 수준이 점점 높아지면서 사회 각 분야에 여성의 손길이 닿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꾸준히 증가했다. 70년 39.3%에서 2002년 49.7%로 10.4%포인트 늘었다. 특히 전문·관리직 종사자 비율은 남성의 증가폭보다 컸다. 95년 11.4%에서 2002년 15.2%로 3.8%포인트 증가한 반면 남성 전문 관리직 비율은 95년 19.8%에서 22.3%로 3.3%포인트 늘었다.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의 유정미 연구원(31)은”여성이 점차 조직의 핵심으로 진출하는 것은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자기 몫을 해내는’의식적인 측면’이 강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며 “불평등의 문제점을 지적해온 여성운동이 이제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20년 뒤엔 바야흐로 여인천하”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여성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최근 영국에서’미래는 여성들의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왕립연구원 원장이자 약학교수인 수전 그린필드는 BBC 다큐멘터리’여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면’에서”20년 뒤 여성이 모든 분야에서 남성을 능가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BBC가 인터넷판에서 소개한 이같은 전망의 근거는 다음과 같다.
산업구조 변화=근력을 요구하는 제조업에서 창의력을 요구하는 산업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여성은 힘을 못쓴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게 된다. 경제부문에서 여성의 성장세는 이미 뚜렷하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선정하는’미국내 400대 부호’명단에 오른 여성들이 지난해 처음으로 평균 순(純)자산 보유액에서 남성들을 눌렀다. 이베이의 멕 화이트먼 회장 등 자수성가한 인물들의 소득이 대재벌 상속녀들 재산규모를 넘어섰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맞벌이 부부 3쌍 중 1쌍 꼴로 부인의 소득이 남편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신규창업 3건 중 1건은 여성에 의한 것이다. 여성 경영관리자 비율도 1990년만 해도 12명 중 1명 꼴이었으나 2020년에는 2명 중 1명 꼴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배경에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영국 미래재단은 2010년 대졸여성 비율이 40%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출산방식 혁명=갈등을 빚는 직장과 출산, 육아문제 해결이 기술발달로 가능해진다. 그린필드 교수는”18세에 최상 상태인 난자를 채취해 냉동보관했다가 원하는 시기에 인공수정, 대리모를 통해 출산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란 다소 혁명적인 견해를 내놨다. 유전공학이 출산 및 가족 개념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란 주장이다. 먼 미래에는 신체의 어떤 세포에서든 유전물질을 추출, 난자와 수정하는 것이 가능해져 출산에 남자가 필요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성의 추락’저자 스티브 존스에 따르면 정액 1㎖당 정자수는 1940년대 1억마리에서 1990년대에는 6천6백만마리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감소세가 이어질 경우 2100년 서구 남성들은 정자를 전혀 만들어내지 못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다고 남자의 필요성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감성적인 사랑이나 육체적 관계를 기계가 대신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린필드 교수는 또 사회혁명을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오랜 구분 자체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여성 상위, 남성 하위’사회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 이상 금녀의 벽은 없다
국내화재진압대원 여성 1호인 박양지씨(30), 한국최초 철도청 여성기관사 강은옥씨(36), 여성전투기 조종사 편보라(26)·박지영(26)·장세진(25)씨, 공인 국제축구 심판 임은주씨(39), 서울법대 양현아 교수(44), 이영애 춘천지법장 등은 그동안 남성의 세계로 인식되던 분야에 처음 진출한 여성이다. 춘천에 국내 첫 지역 여자 예비군이 창설되는 등 편견 속에 높이 쳐져 있던 금녀의 벽이 무너지며 남성의 전유 분야에서 여성 1호가 속속 탄생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들어 내각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20%다. 그동안 어느 정권보다 여성 장관의 비중이 높아졌다. 하지만 장관 숫자보다 의미를 갖는 것은 질적으로 여성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정무·환경·문화 등 일부 영역에서 제한적으로 기용됐던 데 반해 참여정부에서는 핵심요직에 등용되고 있다. 법무부 장관에 40대 여성 장관을 발탁한 데 이어 새 정부에서 더 역할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부패방지위원회에 50대 초반의 여성 위원장을 기용했다.
주목되는 점은 노대통령의 개혁의지가 강한 분야의 책임자로 여성이 임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강장관의 경우 검찰개혁이라는 최대 과제가 주어졌고, 이내정자도 부패척결이라는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라는 특명을 부여받을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관계자는”노대통령은 여성이 남성보다 기존 조직이나 인맥으로부터 훨씬 자유롭다는 점에서 개혁의 적임자로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사법연수원·경찰내 女風 갈수록’强風’
지난해 사법연수원(제32기)을 수료한 새내기 법조인들은 사상 최다 수료인원(7백98명)답게 화제도 많았다. 우선 여성 연수생들의 대약진이 돋보인다. 제32기 여성 연수생은 모두 1백51명로 숫자상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던 지난해(1백19명)보다 32명이나 많다.
전체 연수생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도 작년보다 2.3%포인트 증가한 18.9%에 달했다.질적으론 남성 동료들을 단연 압도했다. 전체 판사임용예정자 1백10명중 54명, 검사 임용예정자 80여명가운데 21명이 여성이었다. 여성 연수생은 절반이 판사 아니면 검사로 임용된 셈이다.
이는 6백47명중 군입대 1백70명을 제외한 4백77명 남성 연수생의 판검사 임용비율(22%)을 배 이상 앞서는 수치다. 특히 정수진(26.여)씨가 이번 수료생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시 42회에서 수석합격 한데 이어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도 최계영(27.여)씨가 수석을 차지, 지난해에 이어’입학과 수료 수석’영예를 여성이’싹쓸이’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경찰에도 여인천하시대가 열리고 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경찰조직과 업무에서 여성경찰의 활동반경이 전방위로 팽창할 조짐이다. 과거 수사나 정보 업무는 남자 경찰들의 고유영역. 그러나 최근 여경들의 활약무대가 넓어지면서 머지않아 영화에서처럼 강도를 한손에 제압하거나 퇴폐업소에 들이닥쳐 단속을 펼치는 여경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여경들의 활동영역 확산 중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풍속담당. 경찰청은 전국 일선서 생활안전과(과거 방범과)마다 1명씩인 풍속담당직원을 모두 여경으로 교체했다. 유흥업소 등을 단속하는 업무 특성상 성상납 같은 비리가 많아 여경을 배치해 부작용을 줄이자는 취지다. 안마시술소나 룸살롱 등 거친 업소들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여경 배치에 대한 경찰조직 안팎의 관심은 지대하다.
정보보안과 역시 여경들의 새로운 진출영역으로 꼽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초 단행된 인사에서 서울 시내 31개서 정보보안과에 외근직 여경을 1명 이상 두도록 조치했다. 외근 정보형사는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정보를 캐내야 한다는 점에서’남자형사들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1994년 이후 외근 정보형사의 홍일점이었던 경찰청 정보국 강미현 경사는”여성 특유의 친화력과 섬세함이 이 일과 잘 맞아 떨어진다”며 여경들의 분발을 촉구했다.
원조교제와 청소년문제 등 민감한 사회문제를 두루 다루는 여성청소년계 역시 최근 경찰청이 남녀 성비를 동일하게 하도록 조치, 여경진출 1등 분야가 됐다. 또 서울경찰청은 교통사이드카에 여경을 동승시킨 기동순찰팀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현재 여경들은 전국적으로 수사 분야에서 550여명, 교통 500여명, 생활안전(여성청소년 포함) 1400여명, 정보 3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경찰청 손진호 인사과장은”여경이 꾸준히 늘어 현재 전체 경찰의 4% 정도를 차지하며 내년에는 5%선까지 늘어날 전망”이라며”각 지방청과 일선서의 실정을 고려해 여경들의 활동분야를 다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관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여경 업무영역 확대 조치가 불과 3일 만에 실행에 옮겨진데다 일부 경찰관들은”마치 모든 풍속담당자들이 성상납이나 받아온 것처럼 취급당하는 기분”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포털업계’여인천하’…섬세함과
치밀함이 무기
또 네티즌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업체들은 여성인력이 업체에 따라 40∼60%에 이르는 등 다른 업종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이같은 포털업체들의 여직원 비율은 10%에 불과한 제조업체에 비해서는 최고 6배, 같은 IT(정보기술) 분야인 시스템통합(SI)업체들의 20%에 비해서도 2∼3배에 이르고 있다.
실제로 대표적 포털업체 중 한곳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은 직원 309명 중 65.7%인 203명이 여성인력이다. 야후!코리아는 210명의 직원 중 42.9%인 90명, NHN은 478명의 직원 가운데 35.8%인 171명이 여직원이다. 다른 업체에 비해 포털업체에 여성인력이 많은 것은 남성선호 경향이 없고 디자인이나 서비스 기획, 웹서핑 분야에서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고보다 섬세함과 치밀함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야후!코리아의 강희선 부장은”기획력과 창의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남녀를 구분할 필요가 없다”며”IT분야는 남녀의 차이가 없어서 여성들이 능력을 펼치기 좋은 분야”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포털업체를 이끌어 가는 임원들 중에는 여성인력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NHN과 야후!코리아에는 여성 이사가 전혀 없고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사 4명 중 1명이 고작이다. 부장급 간부들을 놓고 볼 때도 3명의 부장 중 2명이 여성인 야후!코리아를 제외하고 NHN, 드림위즈, 프리챌 등 나머지 포털업체는 여성 비중이 20%를 밑돌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대부분의 포털업체가 90년대 중반 이후 설립됐고 당시 경력직 남자직원들의 IT업계 진출이 많았었다는 점에서 간부급 여성인력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의료·전문직·영화·의사·회계사·영화계서도’두각’
‘의사는 남자, 여자는 간호사?’이는 이제 옛말이다. 한국여자의사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등록된(의사 면허) 회원 6만206명 중 여의사는 1만945명으로 18.2%에 달한다. 과목별로는 소아과·산부인과·내과·가정의학과에 종사하는 여성전문의가 많다. 하지만 최근에는 정형외과·비뇨기과에 진출하는 여의사가 늘고 있다.
대학ㆍ학회에서 여의사들의 입지가 커지고 있다. 지난 1월 7일 박인숙(55) 교수가 울산대 의대 학장 선거에 출마, 61.4%의 높은 득표율로 사상 첫 여성 직선 의대학장에 선출됐다. 서울대학병원 박귀원 교수(외과), 이현순 교수(병리과), 박명희 교수(진단검사의학과) 등 여교수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정덕희 한국여자의사회 회장은”병원이 레지던트를 뽑을 때 여성할당률을 낮게 정하는 등 여성에게 불리한 게 현실이지만 박애정신으로 따뜻한 의술을 펼치는 여의사들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회계사도 여성의’접수’가 시작됐다. 1998년 전체 합격자 중 13.5%(511명 중 69명)였던 여성 공인회계사 합격자 비율은 매년 1% 안팎으로 증가하다가 지난해에는 21.6%(1003명 중 217명)를 기록했다. 지난해 공인회계사 시험 전체 수석(이상은ㆍ24)ㆍ최연소 합격(이민현ㆍ21) 모두 여성이 차지했다. 현재 전체 회계사 6601명 중 8.1%(535명)가 여성이다. 지난해 10월에는 삼정회계법인 서지희 상무가 여성으로는 국내 최초로 대형회계법인 파트너 리에 올랐다.
한국여성공인회계사회 이기화(광장 회계법인) 회장은”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치밀함은 회계 업무에 있어 큰 장점”이라며”회계사는 응시 기회도 공평하고 시험 성적으로 뽑기 때문에 여성이 불리할 게 없다”고 말했다.
남성들의 무대였던 변리사 분야에도 여성의 영역 확장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해 변리사 시험 여성 합격자 비율은 34.8%(전체 204명 중 71명)로, 2001년 24.5%, 2002년 31.2%에 이어 상승세를 유지했다. 지난해 7월 말 현재 특허청에 등록한 변리사 2433명 중 여성은 255명(10.5%)으로 10%대에 진입했다.
1979년 변리사 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김영(김&장 법률사무소), 1985년 시험에 합격하고 한국여성변리사회 회장을 맡았던 이인실(청운국제특허법인), 이지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이경란, 권남연·정은진(김&장) 변리사 등이 대표주자들.
정은진 변리사는”직접 변리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선배도 여럿 있고 임원도 늘었다”며 “변리사의 특성이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에 맞는다”고 말했다.
이른바 여성영화제작자’빅3’인 심재명’명필름’대표, 김미희’좋은영화’대표, 오정완 영화사’봄’ 대표가 없었더라면 한국 영화의 중흥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재명 대표는 1995년 남편 이은 감독과 명필름을 세웠다. 명필름은’와이키키 브라더스’ ‘공동경비구역 JSA’’접속’’해피엔드’ 등을 만들었다. 1998년’좋은영화’를 설립한 김미희 대표는’신라의 달밤’’주유소 습격사건’등을 제작했다. 오정완 대표는 1999년 영화사 봄을 설립,’반칙왕’’4인용 식탁’’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등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밖에 심재명 대표 동생 심보경 디엔딩닷컴 대표,’달마야 놀자’’황산벌’ 등을 제작한 ‘시네월드’의 정승혜 제작이사 등이 차세대 주자로 손꼽힌다. 양대 영화 홍보대행사인 올댓 시네마(‘쉬리’’러브 액츄얼리’등) 채윤희 대표, 영화인(‘태극기 휘날리며’’사마리아’등) 신유경 대표 모두 여성이다. 김미희 대표는”영화계는 성(性)이 아니라 그 사람의 자질과 성향에 따라 장단점이 구별돼 남성ㆍ여성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지금 여성인력 확보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SDS 본사에는 엄마가 젖을 짜서 보관할 수 있는 유축실이 갖춰져 있다. 이는 그동안 여성인력 비율이 증가하면서’엄마 직원’들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 이와 함께’엄마 직원’들이 아이와 함께 출근하며 맡겼다가 퇴근할 때 데려가는 탁아소도 운영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잘나가는 선진국 사례’로만 소개되던 풍경들이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MSD. 전체 임원 12명 가운데 여성이 4명이다. 과장급 이상에서는 여성 비율이 40%에 이른다.’남성들만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영업직도 50%가 여성이다. ‘여인천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구본무(具本茂) LG 회장은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신입여사원 17명과 오찬을 함께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LG 전체 여성인력은 2년 전인 2000년 말에 비해 40% 늘었다. 삼성도 여성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지론에 따라 여성인력의 채용과 육성을 확대하고 있다. 삼성에 재직 중인 대졸 여성인력은 8200여명으로 이 가운데 과장급 이상 간부가 980여명에 이른다.
이처럼 우선 기업들의’여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정보기술(IT)붐으로 지난 10년 사이 소프트웨어 개발 등 여성 특유의 감성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 통상 여성인력이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않는 일반 제조업체와 달리 LG CNS, 삼성SDS, 포스데이타 등 시스템 통합업체(SI)들은 여성 비율이 20%에 육박한다. 이 밖에 갈수록 마케팅 기법이 정교해지고 있는 금융업종, 유통업계 등도 섬세한 성격의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한 업종으로 꼽힌다.
시장이 선호하는 분야에 대한 여성인력’공급’도 크게 늘었다. 과거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금녀(禁女)’학과였던 경영학과나 공과대에 진학하는 여성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미 전국의 공대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20%를 넘었다. 공대를 졸업한 여성이 늘면서 조선 철강 등 그동안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던 업종에서도 여성 엔지니어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와 함께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면서’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노후를 안심할 수 없는’사회적인 분위기도 여성들을 직장으로 향하게 했다.
10년 뒤엔 혁명적인 변화가 온다
채용정보업체인 인크루트가 105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여성인력 현황을 조사한 결과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은 17개사로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이는 여성들의 기업진출이 본격화된 지가 얼마 안돼 현재로선 여성임원의 후보자원 자체가 적기 때문.
그렇지만 김애량(金愛良) 여성부 여성정책실장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국내 기업의 인력 지도에 혁명적인 변화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예상한다.이광석(李光錫) 인크루트 대표는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출산율 저하 현상을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연계해 풀이하기도 했다. 아직 직장탁아소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수 직장 여성들이 커리어 관리를 위해 출산을 기피하면서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姜又蘭) 수석연구원은”그동안 성차별이 문제가 됐다면 앞으로는 여성인력 저(低)활용 문제가 이슈가 될 것”이라며”여성인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 나아가 국가의 미래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의사
우리 나라 최초의 여의사는, 1900년에 미국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을 졸업한 박에스더(본명은 김점동(金點童))이다. 1876년 서울에서 태어난 박에스더가 의사가 되었을 때 나이는 24세. 에스더는 세례명이며, 성은 결혼한 뒤부터 미국식으로 남편의 성을 따랐다. 박에스더의 아버지 김홍택은 미국 선교사 아펜젤러의 집에서 잡일을 돌보고 있었고, 유달리 총명했던 박에스더가 선교사들의 눈에 띄었던 것. 결국 그녀는 10세 때 이화학당에서 들어가 공부했고, 특히 어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이후 우리나라 유일의 여성 전문 병원으로 서울 정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보구여관(保救女館: 이화여자대학 부속 병원의 전신.)에서 통역 겸 간호사로 일하게 되었는데, 이곳의 여의사 로제타 홀이 그녀에게 미국 유학을 권했고, 남편 홀 박사 밑에서 일하던 박유산을 소개시켜주어 결혼하게 되었다. 당시 박에스더의 나이는 17세였다.
그로부터 2년 뒤 박에스더는 남편 박유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학업을 마친 뒤 귀국, 보구여관에서 활동했다. 특히 신식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시골 지역으로 가마나 나귀를 타고 가서 환자들을 돌보기도 했는데, 그녀가 돌본 환자들은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박에스더는 34세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남편 박유산은 그녀가 의대를 졸업하기 반년 전에 역시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선장’에일린 콜린스’
우주선 조종간을 잡는’사상 첫 여성 조종사’
1997년 6월 27일밤 11시20분(한국시각 28일 낮 12시20분) 사상 첫 여성 우주 선장인 에일린 콜린스 대령이 우주왕복선 컬럼비아를 타고 우주로 나간지 5일만에 일정을 마치고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로 귀환했다.
그녀는 구 소련의 유리 가가린 소령이 1961년 4월 첫 우주비행에 성공한 이래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세계 우주 비행 역사에 그렇게 한 획을 그었다.
NASA는 1978년에 이르러서야 여성에게 우주비행사 자격을 부여했다. 에일린 콜린스가 최초의 우주 항공기 조종사가 된 것도 1995년이었다. 미국 뉴욕주 엘미라 출신으로 부모는 콜린스가 9살때 장기 별거에 들어갔다. 측량기사였던 아버지는 국립 글라이딩 박물관에 자식들을 데려가곤 했다. 가족들은 시영 임대주택에 살았고, 복지당국에서 나눠주는 배식카드(food stamp)로 연명할 때도 있었다. 4남매중 둘째인 콜린스는 조종사 레슨비를 벌기 위해 17살때부터 피자가게, 골프연습장에서 일했다.
19세때 조종사 자격증을 딴 그녀는 공군 학사장교(ROTC) 장학금을 받고 시라큐스대학에 다녔다. 90년 콜린스는 NASA 우주비행사 선발시험에 응시했다. 심사에 참가했던 선배 우주인 스티브 하울리(45)는 콜린스를 처음 본 순간 ‘이 여자는 언젠가 우주선 선장이 되겠다’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이번 컬럼비아 승무원중 한사람으로 뽑힌 하울리는 예언(?)대로 후배 콜린스의 지휘를 받았다.
95년 콜린스는 디스커버리호 부조종사에 임명됐다. 연구원, 엔지니어 신분이었던선배들과는 달리 직접 우주선 조종간을 잡는’사상 첫 여성 조종사’였다. 콜린스는’내가 잘못하면, 앞으로 우주선 조종사가 되려는 여성 후배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녀가 비행에 몰두하는 동안, 늦둥이 외동딸 브리지드(3)를 돌보는 일은 남편 몫이었다.
98년 3월 컬럼비아 선장으로 임명된 콜린스는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컬럼비아 발사를 앞두고 인터뷰에서”결코 나 혼자 잘 해서 여기까지 온 게아니다”고 말했다.”2차 대전 때 군수송기를 조종한 여성 비행사들, NASA여성우주인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첫 우주선장이 됐다는 사실은 정말로 명예롭다. 내 선례가 여성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빈다.”
에일린 콜린스(42)는 고도 9000m 상공부터 직접 조종간을 잡았다. 컬럼비아가 활주로에 앉은 직후, 지상 통제실-우주선 교신 담당자 스콧 앨트만은 콜린스 선장 등 승무원 5명에게 “귀환을 축하한다. 당신들 모두 멋지게 임무를 완수했다”고 말했다. 인류의 달착륙 30주년 기념일에 우주 비행에 성공했던 것이다. 콜린스 팀은 발사 직후 동체외부 연료탱크에서 액체수소가 새는 돌발상황에도 불구하고, 찬드라 망원경 설치 등 주요 임무를 완수했다.
2차 세계대전 때 군 수송기를 조종한 여성비행사들과 NASA의 여성 우주인 선배들이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처럼 그녀의 이러한 성공은 우주 조종사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희망이 되었다.
“세계속의 여성들, 역사를 바꾼다”
파워우먼, 외국의 여성지도자들
인도네시아 메가와티, 필리핀의 아로요, 스리랑카엔 쿠마라퉁가, 미국에는 힐러리…
여성정치인이나 CEO의 등장이 화제가 되던 것은 세계 무대에선 지난 세기 얘기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여성대통령과 총리가 동시에 활동하는 시대다. 이들은 이제 여성지도자들끼리 비교되기보다는 성별을 떠나 한 명의 지도자로서 냉정하게 능력과 업적을 평가받고 있다.
현재 재임 중인 여성대통령은 아시아에만도 인도네시아의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대통령, 필리핀의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 스리랑카의 찬드리카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 대통령 등이 있다. 인디라 간디 전 인도 총리, 베나지르 부토 전 파키스탄 총리, 미얀마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 여사 등을 낳은 아시아는 과거부터 여성지도자가 낯설지 않은 지역이다. 그러나 현역 여성지도자들은 순수하게 개인의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된’자수성가형’보다는 부모의 후광을 업고 떠오른’부전여전형’이 많다는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들의 정치 참여도가 높은 유럽에선 지난 100년 간 29명의 여성 국가원수 및 정부수반이 탄생했다. 여왕의 통치 속에’철의 여인’마거릿 대처 전 총리를 낳은 영국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여성 지도자에 익숙한 나라. 핀란드의’여왕’격인 타로야 할로넨 대통령은 여권(女權)의 상징적 존재로서 임기 5년째를 맞은 현재까지도 90%가 넘는 지지도를 자랑한다. 아일랜드에선 매리 매컬리스 대통령이 유엔고등판무관을 역임한 매리 로빈슨 전 대통령에 이어 여성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미국에선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정계에서 활약했고,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도 언젠가 미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될 인물로 점쳐지고 있다. 러시아 부총리를 거쳐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지사로 당선된 발렌티나 마트비옌코는’러시아의 마거릿 대처’로 불리며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여성경제인으로서 대표 인물은 휴렛패커드의 CEO인 칼리 피오리나. 포춘(Fortune)지가 선정한’최고의 여성사업가’부문에서 5년 연속 선두를 차지한 피오리나는 명실공히 여성CEO계의’대표 브랜드’다. 루슨트 테크놀로지의 패트리샤 루소, 제록스의 앤 멀캐히, 이베이의 맥 휘트먼 등도 여성CEO로서 파워를 구가하고 있다. 그밖에 소니픽처스 부사장이자 컬럼비아픽처스 사장인 에이미 파스칼은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