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의 영향으로 아껴쓰고 나눠쓰고 바꿔쓰고 다시쓰는 이른바 ‘아나바다’식 소비 패턴을 보이고 있다. 신제품을 구매하기보다 기존 제품을 재활용하거나 수선해 사용하고 있는 것.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수선, 재충전, 재활용 산업이 떠오르고 있다.
리폼으로 새 것보다 더 새 것 같은 물건으로 변신
박진영(31) 씨가 운영 중인 카페 ‘멋진리폼(stylish-JEAN.cyworld.com)’에는 미니스커트, 조끼, 아이들 옷으로 변한 청바지 모습이 빼곡하다. 박 씨 작품뿐만 아니라 6,000여 명 회원들이 아이디어를 내 올린 것들이다. ‘리폼디자이너’라 불리는 박 씨는 디자인 아이디어를 알려주거나 이들의 작품에 대해 조언해준다. 그는 리폼 초보자들에게 버린 옷이라고 생각하고 진짜 버릴 옷부터 바꿔보라고 충고한다.
현재 인테리어 리폼 동호회 카페 회장인 문미원 씨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면서 처음 리폼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재미를 붙여 이제는 리폼 작업은 생활의 취미이자, 즐거움 그 이상이라고 한다. 최근에 낡은 가구를 벽난로로 새롭게 개조시켜 장식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리폼열풍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으며 카페나 동호회 등의 활성화로 전문적으로 리폼을 하는 ‘알뜰족’이 증가하고 있다.
리폼(Reform)이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물건을 새로 고쳐 쓰는 것으로 과거 옷과 구두 등에서부터 지금은 액세서리, 속옷, 집안 인테리어까지 널리 쓰이고 있다. 리폼은 헌것을 굳이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 내가 필요한 물건을 새것처럼 만들어 쓸 수 있다는 게 최대의 장점이다. 특히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성취감에 한번 시작한 사람들은 오히려 새로 산 물건보다 낡은 물건을 고쳐 쓰는 리폼을 선호한다. 리폼은 의류분야에서 수요가 많다. 의류는 유행에 민감해서 해가 지나면 옷장에 쌓아두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새로 사기도 버리기도 아까울 때 리폼은 안 입던 옷을 새롭게 만드는 동시에 ‘나만의 개성 있는 제품’으로 재탄생 된다. 이처럼 낡은 것을 새것처럼, 다시 고쳐 쓰는 알뜰함으로 서민들의 유리지갑을 넉넉하게 채워주는 ‘생활의 지혜’가 바로 리폼인 것이다.
리폼이 뜨니 리폼산업도 뜬다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신제품과 동일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온라인을 통해 알려지면서 리폼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가장 활성화 된 의류 리폼산업의 경우 리폼 대행업체를 통해 유행이 지난 옷을 새 옷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이며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여 년간 의류 리폼을 전문으로 해 온 리폼하우스의 대표 이나연 씨는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하반기에는 15% 정도 리폼 의뢰 건수가 늘어났다”고 말했다.
최근 브랜드 매장에서도 기존 제품을 고객 취향에 맞춰 고쳐 주는 서비스까지 도입하고 있다. 게스는 명동 매장 2층에 ‘리폼 하우스’를 선보이며 기존 제품을 고객 취향에 맞춰 고쳐주자, 방문 고객이 20% 늘고 매출도 12% 이상 올랐다.
옥션에 따르면 재봉틀과 신발 밑창 관리 등 리폼 상품이 작년 12만 5,000개가 팔려 ‘옥션 2008년 히트상품20’ 1위로 뽑혔다. 옥션 홍보팀 관계자는 “리폼 상품 판매량이 전년 대비 90%가량의 상승을 이루는 등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손수 만들어 활용하는 재미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직접 리폼하는 DIY(Do It Yourself) 산업이 눈에 띄게 활성화되면서 유행이 급속히 번지고 있다. 관심분야도 실내 인테리어, 소품 만들기, 액세서리 만들기 등 다양하다.
서울시도 오는 2010년까지 서울시 자원순환 통합센터를 설치해 낡거나 오래된 물건을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는 ‘리폼산업’을 활성화할 계획이다.
리폼이라는 간단한 과정을 거치면 ‘딱 내가 원하는’ 스타일의 가구로 변신시킬 수 있다. 하지만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큰 가구라면 초보자에게 쉽지 않지만 작은 소품 가구 정도라면 붓이라고는 학창시절 미술시간 이후 한 번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이라 해도 어렵지 않다. 최근에는 대형 마트나 인터넷에서 페인트는 물론 가구 리폼 패키지를 팔고 있어 손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어 쉽게 시작할 수 있다.
박진영 씨는 “한두 번 해보면 직감이 저절로 생긴다. 또 옷을 완전히 바꿀 야심찬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부자재 붙이기로 시작하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면티나, 치마·바지 밑단에 술을 달면 히피 옷 같은 느낌을 준다. 붙여서 다림질만 하면 되는 자수나, 반짝이는 부속품도 시중에 나와 있다”고 설명한다.
호황을 누리는 산업은 이뿐만 아니다. 경기불황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자 폐업 컨설팅 업체와 폐업 정리 업체 등의 재활용(Recycling) 산업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경기 불황으로 인해 창업 시 폐업 정리 업체를 통해 중고 물품들을 이용하는 알뜰 창업주들이 많아지고 있다. 폐업 컨설팅 업체는 자영업자들의 폐업 정리와 새로운 사업으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주며 점포 정리 업체는 폐업 후의 중고 물품 정리와 거래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앞으로 폐업에 드는 비용을 최소화 하고 새로운 창업을 하기 위한 폐업 전문 업체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리필제품으로 가계 지출도 줄이고 실속 있게
최근 마트에 가보면 리필제품을 쉽게 볼 수 있다. 불황의 상징 중 하나인 ‘리필’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것. 단연 판매량이 가장 많은 리필제품은 샴푸, 세탁용 세제, 주방용 세제 등 가정 소비재다. 리필제품은 용기 값이 제외된 저렴한 가격에서 제품을 살 수 있다. 때문에 지금과 같은 경기 불황일수록 판매가 급증한다.
커피도 리필열풍에 합류하고 있다. 크리스피 크림 도넛은 스무드 커피를 무료로 리필해 주고 있으며, 버터핑거 팬케익은 일부를 제외한 모든 커피를 무료로 리필해 주고 있다. 탐앤탐스와 세븐몽키스는 아메리카노를 500원에, 할리스커피는 1,000원에 리필해 주고 있다.
리필제품은 화장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화장품 리필제품의 경우 일반 제품보다 가격이 10~20% 싸며 불황이 시작된 2008년의 경우 전년 대비 매출이 18~20% 상승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육류, 탕류, 주류 등 먹을거리 리필과 잉크 등 사무용품 리필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퓨전포차 스타일의 홍합요리 전문주점 ‘홍가’는 홍합탕을 주된 메뉴로 무한 리필 서비스를 해준다. ‘너家내家’는 다양한 바베큐(치킨)요리를 1인 7,900원으로 원하는 만큼 무한대로 즐길 수 있는 ‘무한리필’서비스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최근 삼성카드는 Gift카드의 액면금액을 다 쓰더라도 유효 기간 내에는 자유롭게 충전하여 사용할 수 있는 ‘삼성 리필 Gift카드’를 출시했다. 충전은 3만 원 이상 1,000 원 단위로 권면 금액까지 충전 가능하다.
삼성카드 관계자는 “부모님 또는 자녀의 용돈을 정기적으로 주어야 할 경우나 가족사진 셀디 Gift카드와 같이 소장가치가 있는 Gift카드를 계속해서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에 유용하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경품, 마일리지, 쿠폰 혜택 찾아
경제가 어렵다 보니 기업들은 경품, 마일리지, 쿠폰 등의 제공으로 소비자의 발길을 모으고 호주머니가 얇아진 고객들은 마일리지, 쿠폰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KB카드는 고객들이 카드 실적으로 모은 KB포인트리로 G마켓, 옥션, 신세계 몰, 롯데닷컴, Yes24 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결제할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 경품 트렌드는 뭐니뭐니해도 생활필수품이다.
홈쇼핑 업체 관계자는 “고가의 제품보다 많은 수의 고객에게 생활필수품을 경품으로 주는 추세”라고 말했다.
CJ홈쇼핑은 지난 1월 21일까지 제품 구매자 중 2,009명을 추첨해 참그린 주방 세제, 크리넥스 티슈 등 생활필수품을 주는 경품 행사를 진행했다. 현대홈쇼핑은 지난 1월 11일 상품과 액수에 상관없이 홈쇼핑 방송을 통해 상품을 구매한 모든 고객에게 삼양라면 20개들이 1상자씩을 무료로 증정했다.
서민들의 유리지갑을 넉넉하게 채워주는 ‘생활의 지혜’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시기인 만큼 불황 속 소비자들의 이러한 소비 패턴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