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부터 방송통신위원회가 국내 이동전화 단말기 ‘위피(WIPI/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 탑재의무 규정을 폐지키로 함에 따라 외산 휴대폰 수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위피는 지난 2005년 4월 정부가 의무화한 국내 휴대전화의 공통 무선인터넷 플랫폼으로 이동통신사(이하 이통사)들이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국가적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런 위피탑재 의무화 규정은 단말기 제조과정에서 국내 소비자만을 위한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부착시켜야 하고 이에 따른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외국 단말기의 국내진출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 위피 폐지로 외산폰 업체들은 발빠른 한국진출을 꾀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대만 HTC가 ‘듀얼터치폰’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상륙한 데 이어 12월에는 리서치인모션(RIM)의 ‘블랙베리’가 기업용으로 국내 시장에 들어왔다. 이미 외산 핸드폰 업체들은 터치폰 및 스마트폰을 앞세워 한국진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다.
잇따라 한국법인 설립, 스마트폰으로 한국시장 본격 진출
최근 소니에릭슨과 HTC 등이 잇따라 국내 법인을 설립하며 지난달 노키아를 비롯해 소니에릭슨, HTC, 카시오 등의 외국산 휴대폰이 SK텔레콤 등 국내 통신 3사를 통해 대거 출시하며 한국진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글로벌 로밍 초점에 강점을 둔 3세대(3G) 이통 서비스가 자국시장에 도입되면서 일본 휴대폰 업체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추진 중이다. 지난 3월10일 세계 5위 휴대폰업체 소니에릭슨은 소니에릭슨코리아 한국법인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이미 6년 전 국내 업체들에 밀려 한국에서 철수하며 자존심을 구겼던 소니에릭슨은 다시 한 번 국내 진출로 자존심을 회복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날 소니에릭슨은 아태지역 총괄 부사장이 참석한 가운데 스마트폰인 ‘엑스페리아 X1’을 선보였다. 엑스페리아 X1은 ‘소니’ 브랜드로 10여 년 만에 국내에 출시되는 제품으로 SK텔레콤 가입자용으로 나오는 엑스페리아 X1은 화면을 옆으로 밀면 컴퓨터 자판과 동일한 글자판이 나타나는 슬라이드 터치폰이다. 여기에 최근 일본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 1위인 샤프와 도시바도 4월 이후를 겨냥해 휴대전화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폰’으로 유명한 대만의 HTC는 지난 1월 말 한국법인인 에이치티시이노베이션리미티드(HTC Innovation Limited)를 정식으로 설립하며 한국 공략을 준비해 왔다. 스마트폰 전문 제조사인 HTC은 이미 지난 2월 ‘3D UI(3차원 사용자환경)’를 채택한 풀터치 스크린폰 ‘터치 다이아몬드’를 론칭, 지난 3월26일 선보였다. 터치 다이아몬드 휴대폰은 SK텔레콤 가입자용으로 화면 속 아이콘들을 입체감이 두드러지도록 3차원으로 디자인한 점이 특징이다. HTC코리아 관계자는 “전반적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올해 한국의 휴대폰 시장은 성장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며 “그런 만큼 출시 휴대폰 종류를 늘릴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오래 전 국내 법인을 세우고 한국진출을 한 모토로라도 과거 1억 대가 팔린 최고 인기제품 ‘레이저폰’을 3세대용으로 개량한 ‘레이저 룩’을 출시하며 국내 공략을 강화했다. 레이저룩은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자판 전체와 측면 버튼을 18K로 도금해 디자인이 화려하다.
세계 1위 휴대폰업체 노키아역시 ‘6210 내비게이터’로 6년 만에 한국시장에 다시 진출할 예정이다. 이어 캐나다 림의 ‘블랙베리’, 미국 애플의 ‘아이폰’, 구글 ‘안드로이드폰’ 등도 잇달아 한국 문을 두드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위피 탑재 의무가 없어져도 가격경쟁력이나 국내 소비자의 눈높이를 맞추지 않고선 시장에 뿌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나 국내 시장을 독점해 온 국내 휴대폰업체들로서는 이제 또 다른 경쟁에 내몰리게 돼 적지 않은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 저렴하고 선택의 폭 넓어진다
이들이 이토록 한국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뭘까. 이는 한국시장 진출이 갖는 시장가치 때문이다. 한 외국 휴대폰업체 관계자는 “삼성전자, LG전자가 지난해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2, 3위 업체로 부상하면서 한국은 확실한 휴대폰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면서 “가전 업체들이 미국 시장 진출에 높은 의미를 두듯이 휴대폰 분야에서는 한국진출이 중요한 상징성을 띈다”고 말했다.
현재 글로벌 시장에 팔리는 휴대폰 10대 중 4대는 한국산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국산 휴대전화의 위상은 그만큼 높다. 지난 3월2일 삼성전자는 미국의 브랜드 조사기관인 브랜드키즈의 2009년 소비자조사결과 삼성전자 휴대폰과 애플 아이폰이 휴대폰 부문에서 고객충성도가 가장 높은 브랜드 1위로 공동 선정됐다. 전 세계 휴대폰 업체 가운데 브랜드키즈의 최고 브랜드로 8년 연속 선정된 브랜드는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외국업체들의 한국진출은 무엇보다 이용자들에게 제품 선택폭을 넓히고 가격인하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소비자들로서는 한해 평균 200여 종류의 국산 휴대폰 외에 외국산 휴대폰으로 눈을 돌릴 수 있어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그동안 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 국내업체가 제조한 휴대폰을 골라야 했지만 외국산 휴대폰이 대량 수입되는 만큼 선택의 폭이 한 층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또한 작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애플의 아이폰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 돈으로 평균 20~30만 원대에 판매됐다. 반면 비슷한 성능을 갖춘 국내 휴대폰의 소비자 가격이 대부분 50~60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양진용 통신이용정책담당관은 “그 동안 국내 휴대폰 기기는 상대적으로 비싸게 인식돼 온 것이 사실이다. 이동통신업체들은 외국산 휴대폰 도입으로 국내 휴대폰 가격이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텔레콤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만 있으면 가격을 내리는데 한계가 있다”며 “외산 휴대폰은 스마트폰도 40만~70만 원대여서 국산보다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통사 관계자도 “국내 휴대폰에 비해 훨씬 저렴한 외국산 휴대폰이 들어오면 국내 휴대폰 가격도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처럼 국내 이통사들이 외산폰 도입을 서두르는 가장 큰 이유는 고객의 다양한 욕구를 만족시켜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통사를 옮기는 고객의 상당수가 휴대전화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제품 라인업 확대는 매출과 직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시장 급성장… 국내·외 스마트폰 집중 공략
외국산 휴대폰의 공격에 맞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내년 신제품 라인업을 강화하고 있다. 국내 최대 시장 점유율을 자랑하는 삼성전자의 경우, 주요 외산폰의 장·단점을 분석해 이에 맞설 경쟁폰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올해 국내시장이 고화소, 풀터치, 스마트 기능이 포함된 폰들이 주류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각각의 기능들이 차별화된 프리미엄 제품 20여 종을 선보일 계획이다. LG전자도 올해 국내 시장에 처음으로 스마트폰을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경쟁에 가세할 예정이다.
주우식 삼성전자 IR팀 부사장은 “세계 휴대폰 시장이 전반적으로 위축될 것으로 보이지만 스마트폰 시장만은 성장률이 20%대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는 10여 종의 스마트폰을 세계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LG전자 안승권 MC사업본부장은 “집에서 PC를 사용하듯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10여 종 이상 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올해 휴대폰 시장에 대해 터치스크린 휴대폰의 출시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 시장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 기관인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지난해 2억 1,100만 대에서 2012년에는 4억 6,000만 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 국내 시장조사 기관들도 지난해 6,400만 대 규모였던 전면 터치폰 시장이 올해 1억 1,400만 대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인 파이퍼제프리의 마이클 워클리 애널리스트는 “모토로라나 소니에릭슨의 시장점유율은 2009년에 더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스마트폰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는 노키아, 애플, 림(RIM) 등은 입지가 더 강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윌리엄 블레에 앤 코의 애널리스트 트로이 마스틴도 “모바일 웹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스마트폰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부분 ‘올드’ 폰, 국내 수요자들 눈높이 충족 가능할까
그러나 국내 휴대폰 업체들은 외산폰 출시와 함께 ▲내수 시장 경쟁 심화 ▲휴대폰 단말기 가격 하락 ▲플랫폼 다변화 및 이통 환경 변화 등으로 국내 시장이 다소 혼란스러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휴대폰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이통사 역시 플랫폼의 다양화 등 제반 환경 변화로 시장 전체가 다소 혼란을 겪을 것”이라며 ”프리미엄급 휴대폰과 중저가 휴대폰간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업계 전문가들은 이들이 한국 공략에 앞서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우선 외국 휴대폰의 경우 국내 이동통신 환경과 맞지 않아 불편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외국 업체 입장에선 한국시장만을 위한 제품을 만들기가 쉽지 않아 통신사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그만큼 이용자들은 서비스에 제약을 받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 휴대폰 업체 관계자도 “국내 휴대폰 이용자들의 눈높이와 만족도가 워낙 높아 이를 얼마나 충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스런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우선 이통사가 외국 휴대폰 도입을 추진한 지난 1∼2년 사이 달러와 유로, 엔화 가치가 모두 급등했다. 이통사 관계자들의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환율 상승분은 거의 출고가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엑스페리아 X1’의 도입가는 600달러 선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환율로 단순 환산하면 90만 원을 넘게 된다. 또한 한국시장은 단말기 교체 주기가 짧고 첨단 제품에 대한 호응이 크다. 그런데 국내 도입이 추진 중인 모델은 전부 출시된 지 1년 이상 된 제품들이다.
현재 HTC의 ‘터치 다이아몬드’는 작년 2월에 출시된 모델로, 유럽에서는 후속 모델인 ‘터치 다이아몬드2’의 사전 주문이 이뤄지고 있다. 소니에릭슨 ‘엑스페리아 X1’, 노키아 ‘6210 내비케이터’ 등도 정작 해외에서 출시된 지 1년가량 된 한물간 구형 제품들이다.
특히 지난 2001년 국내시장에 진출했던 노키아가 퇴출됐고, 모토로라도 ‘레이저’ 이후 국내시장에 빛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비춰 외산폰의 국내 시장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경쟁돌입에 들어간 휴대폰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두고 봐야 할 단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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