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기를 촉발한 뇌관이었던 미국 주택시장 관련 지표도 일부 호전되고 있다. 지난 2월 기존 주택과 신규 주택 판매가 전월 대비 각각 5.1%와 4.7% 늘었고, 신규 주택 착공 건수도 22%나 늘었다. 미국을 비롯한 일본, 유럽, 중국 등의 경기선행지수도 다소 나아지고 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추락하던 국내ㆍ외 경제지표들이 일부 호전되고 있음은 상당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본다면 경기가 바닥에 이르려면 앞으로 시간이 한참 더 걸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이는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는 가운데 내수 역시 극도로 얼어붙어 있을 뿐 아니라 수출 여건도 최악 상황이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올해 세계 교역 규모가 9%나 줄어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을 기록할 것이라 보고되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 성장의 엔진 구실을 해온 미국이 오바마 대통령 TV 연설대로 ‘차용과 소비에서 저축과 투자 시대’로 옮겨간다면 이는 대외시장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 경제의 조기 회복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달러 내림세 이어지며 국내 주식시장 생기 되찾아
달러가격이 내리고 있다. 1달러를 사려면 한때 1,600원을 줘야했지만 지난 3월24일 이후 1,300원대까지 떨어졌고 이후 달러가격은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주식시장에서는 키코피해주·항공주 등 고환율 피해주가 생기를 되찾아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급락세를 이어왔던 국제유가도 서서히 꿈틀대고 있다.
3월24일 1달러값은 전날보다 달러당 8.10원 하락한 1,383.5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틀간 29원이 떨어지면서 지난 2월 10일(1,382.90원) 이후 40여 일 만에 처음으로 1,380원대로 떨어졌다. 이날 1달러값은 한때 1,376.70원까지 밀려 내려가기도 했고,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약세를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달러가격이 내림세를 보인 것은 우리나라 주가가 강세를 보이고 있고, 또 외국인이 3,600억 원 이상 주식을 순매수하면서 원화 강세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원화가치가 오랜만에 회복되면서 이른바 키코피해주와 항공주 등 고환율 피해주가 오랜만에 웃었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성진지오텍을 비롯해 선우ST, 씨모텍, 우주일렉트로, 헤스본, 모나미, 엠텍비젼 등 키코 피해주가 상승세를 나타냈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등 항공주,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전기ㆍ가스주도 강세를 보였다.
이러한 국내 주식시장의 활기는 고환율 피해주들의 강세로부터 시작되어 원ㆍ달러 환율이 계속 떨어지면서 안정된 모습을 보인데 따른 것으로 환율이 하락하면 키코로 인한 환손실이 줄어들고, 해외여행 비용부담이 감소, 원부자재 값이 떨어지데 기인한 것으로 해당 종목들에 호재로 작용했다.
환율 하락, 국내증시에 ‘양날의 칼’
코스피지수 1,200선 회복을 앞두고 달러·원 환율이 ‘양날의 칼’로 작용할 전망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양적완화정책으로 글로벌 달러가 약세 기조로 돌아서면서 국내 외환시장에서도 원ㆍ달러 환율이 장 중 1,600원을 육박하던 고점 대비 300원 가까이 급락하는 등 하락세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23일 증권업계는 글로벌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 조정 국면을 보이긴 했으나 원ㆍ달러 환율이 ‘오버슈팅’을 해소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당분간 하락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환율의 급등세가 증시를 비롯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해왔던 만큼 환율 하락은 국내 증시에서도 우선 긍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원ㆍ달러 급등은 동유럽발 금융위기 가능성과 미국 자동차업체 파산 우려 등 대외적인 요인이 컸지만, 국내 달러 부족에 대한 우려가 대내적인 요인으로 작용해 이에 따른 3월 대란설을 야기 시키는 국내 금융시장의 위험요인으로 평가됐다. 따라서 환율 하락은 증시를 비롯해 국내 금융시장 안정에 촉매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투자심리를 호전시키는 재료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수급적인 측면에서도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로 본격 유입되기 위해서는 환율 하락이 반드시 필요한 조건으로 꼽히고 있다. 투신을 비롯한 기관의 매수 여력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외국인 매도세가 완화될 경우 국내 증시의 상승탄력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내 증권사의 연구원은 “원ㆍ달러 환율 상승이 수출주를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있지만, 상승의 탄력이나 연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며 “시장 전체적인 상황에서는 지금은 원ㆍ달러 환율이 일단 하향 안정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반면 수출 중심의 전기ㆍ전자와 자동차 업종의 경우 고환율이 환차익에 따른 수익성 개선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율 하락은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연초 이후 코스피지수가 4% 상승하는 동안 전기전자업종은 20% 이상, 자동차가 포함된 운수장비업종은 13% 상승률을 기록해 환율 급등에 따른 주가 상승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그러나 원ㆍ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서 내려오며 하락세를 뚜렷하게 나타낸 지난 11일 이후 이들 업종은 코스피 상승률 7%에 미치지 못하는 6%대에 그치며 상승세 둔화를 보였다.
또한 달러 강세의 반대급부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수출 감소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를 상쇄해왔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점도 부정적인 영향으로 분석됐다.
환율 오르면 수출 증가! 이젠 옛말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늘어나는 게 통례였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고환율을 활용하면 수출 증대의 동력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고환율이 수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세계경제 위축과 각국의 보호주의 부활로 국제무역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 우리나라 수출품이 가격 탄력성이 작은 기술집약 제품이라는 점도 환율의 수출 영향력을 축소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우리경제는 ‘환율상승 = 수출증가’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서는 이런 공식은 옛말처럼 느껴진다. 금융연구원 장민 연구위원이 지난달 내놓은 ‘향후 수출 관련 대외 여건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세계경기 동반 침체와 국제 금융시장 불안으로 국내 기업들의 수출 감소세가 상당기간 이어질 전망”이라며 “환율상승에 따른 수출 확대 효과도 크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기업들의 수출 실적이 환율보다는 세계경제 성장률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 들어 2월까지 수출 감소율(전년 대비)은 25.6%를 기록했고, 선진국뿐 아니라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기술력이 높아지면서 주력 수출품이 달라졌다는 점도 환율상승 효과가 제한되는 요인이다. 장 연구위원은 “전체 수출의 60%가량은 고 기술 집약상품으로 환율상승에 따른 가격 탄력성이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라며 “올해 우리나라 수출변동분의 80%가량은 세계경제 성장률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 변화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중국이나 아세안(ASEAN) 국가에 대한 수출 비중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도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정보기술(IT)업체 관계자는 “환율보다는 제품 경쟁력이 훨씬 중요한 요인”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출 기업도 각종 장비와 원재료는 수입을 하는 경우가 많아 환율상승이 경상수지 개선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자동차업체 관계자도 “해외 생산기지 생산량이 많아 수출에는 별 도움이 안되고, 해외 매출을 원화로 환산할 때 착시효과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환율 편승 가격인하 ‘부메랑효과 가능성’높아
엔화강세로 인해 일본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면서 국내기업들이 수혜를 보고 있지만 ‘포스트 엔고(高)’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그 이유로는 당분간 일본기업들의 경영난은 지속되겠지만 위기를 조기에 극복할 것이란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 3월24일 보고서를 통해 “일본 수출기업의 경영난이 올 전반기(9월)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히며, 보고서를 통해 “엔 캐리 청산에 의한 엔화의 ‘나홀로 강세’ 흐름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경제의 펀더멘털 측면에서도 엔화강세의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향후 엔화는 약세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내다보며, 다만 세계경제 침체와 수요감소로 일본 수출기업들의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보고서는 일본 기업들이 과거 수차례 엔고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만큼 현재 엔고에 대한 대응력을 빠른 시일내에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대규모 손실을 감수하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한 만큼 엔고에 따른 경영난은 점차 해소될 것이라 설명하고 환율요인을 통한 수출경쟁력의 상대적 강화에 안주하지 말고 ‘포스트 엔고’에 대한 대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고환율에 편승한 가격인하는 원화강세가 진행될 경우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와 수익성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하고, 지금 시점을 기업체질 개선의 기회로 인식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高환율 현상으로 관광수지 4개월 연속 흑자
글로벌 경제 위기 중에도 우리나라 방문 외국인 수 증가와 고환율에 따른 외국인 1인당 지출액 증가로 지난 1월 관광수지는 흑자를 기록, 4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갔다. 지난 3월 23일 한국관광공사와 여행업계에 따르면 1월의 내국인 해외여행자 수는 지난해 1월보다 38.6% 감소한 81만 2,901명을 기록해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인 반면, 방한 외국인 수는 25.3% 증가한 60만 7,659명에 달했다. 특히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쇼핑이나 관광 등을 즐기기 위해 지난 1월 한국을 찾은 일본인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55.3% 증가한 23만 7,816명에 달했고, 구정 특수로 인해 중국(15.3%)을 포함해 대만(15.0%), 홍콩(160.6%) 등 중화권 아시아 국가들의 관광도 크게 증가했다. 성별로는 일본인 여성들의 방한 쇼핑관광이 크게 늘면서 여성 외국인관광객 증가율이 58.1%에 달해 남성(11.9%)보다 5배나 높은 증가세를 기록했다.
이러한 추세는 지난 1월 국내 관광수입은 지난해 1월의 5억 5,830만 달러보다 63.1% 늘어난 9억 1,080만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면 내국인 해외여행객들이 해외에서 지출한 돈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5% 감소한 5억 7,870만 달러에 그쳤고, 1월 관광수지는 3억 3,21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국내 관광수지는 경제위기로 인한 해외여행 격감으로 지난해 10월 7억 66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이후에도 11월 5억 8,690만 달러, 12월 2억 3,90만달러 등 4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고환율의 영향으로 방한 외국인 1인당 지출액이 내국인 해외여행자의 1인당 지출액의 2배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여행객은 지난해 1월보다 30.2% 증가한 1인당 1,499달러를 지출한 반면 내국인 해외여행객은 환율과 경제사정 악화 등으로 최소한의 지출을 해 전년 대비 35.6% 감소한 1인당 712달러를 쓰는데 그쳤다.
한국경제 ‘바닥론’ 아직은 성급한 판단
최근 경제지표 호전을 경기하강 속도가 완화되는 신호로 받아들이는 게 현명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가 조만간 바닥을 탈출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얘기다. 설사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경기가 회복 궤도에 진입한다고 해도 대내외 여건을 감안할 때 회복되는 모습이 지루하고 긴 L자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때문에 우리 정부는 낙관론을 펼치기보다는 규제 완화나 노사관계 개선 등을 서둘러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 기업은 고환율의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는 한편 체질 강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며, 금융회사들은 기업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나서 스스로 군살빼기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최근 미국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금융위기가 확대ㆍ재생산되면서 추가적인 경기후퇴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사태 이후 한국 경제에 엄습했던 ‘글로벌 디레버리징(Deleveragingㆍ부채축소)과 달러 선호→주가ㆍ부동산가격 하락과 외화 유동성 부족→기업ㆍ가계부실 확대→수출 둔화와 고용 악화→내수 침체 가속화’라는 악순환이 재연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기존에 정부가 예측했던 시나리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금융위기가 작년 2분기 이후 실물경제로 전이됨으로써 7~8분기 동안 경기 침체가 지속되겠지만, 올해 하반기께 경기가 바닥을 찍고 대략 2010년 3분기 이후에는 추세성장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2차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는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는 2007년 3분기부터 불거지기 시작한 1차 금융위기에 대한 세계 각국의 ‘처방’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심과 불안감 때문”이라며 “속단하긴 이르지만 세계 경제 회복 전망 자체가 또다시 후퇴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IMF가 작년 4월에 내놓은 2009년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은 3.8%였지만, 이후 네 차례 수정을 통해 지난달에는 전망치를 0.5%로 낮춘 상태지만 특히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 더욱 취약한 구조를 갖고 있어 2차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은 미국과 한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에 달려 있음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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