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모르는 닌텐도, 올 매출ㆍ순익 사상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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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모르는 닌텐도, 올 매출ㆍ순익 사상최대
  • 이준호 기자
  • 승인 2009.04.0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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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사원 1인당 매출액 도요타의 5배로 1인당 순이익만 무려 8배 달해

지난해 글로벌 경제위기로 인해 세계 초일류 기업들 역시 마이너스 성장을 피해가지 못했다. 미국의 GE나 씨티뱅크 등 굴지의 대기업들은 유동성 위기에 빠져 불황의 늪에 빠져 들었고, 일본의 도요타, 마쓰시다, 도시바, 소니 등도 마이너스 성장을 맞으며, 설립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닌텐도는 5% 성장한 1조 8,000억엔(약 27조원)의 매출을 올리며 5,000억엔(약 8조원)이 넘는 이익을 냈다. 소니와 마이크로소프트에 밀려서 게임기 업계 3위로 밀려나 한 때 적자에 허덕이던 닌텐도가 세계적인 위기에서도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특별한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창업 120년, 소비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기업

   
▲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소프트웨어인 슈퍼마리오를 개발한 미야모토는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의 스토리를 게임에 반영했다. 슈퍼마리오의 원형은 그가 개발한 ‘동키 콩’이라는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였다. 동키 콩에서 마리오는 목수였으나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면서는 그를 배관공으로 바꾸었는데 자신이 어렸을 때 동네 길을 거닐다가 ‘맨홀 뚜껑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해 했음을 깨달고 배관공인 마리오가 터널 속의 새로운 세계를 모험한다는 스토리의 게임을 만들었다.

닌텐도는 얼마 전 열린 기업설명회에서 2008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 말) 매출 전망을 당초보다 11.1% 증가한 2조엔(약 20조 원)으로 높였다고 발표했다. 영업이익도 22.6% 늘어난 6,500억 엔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회사 발표대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달성되면 각각 전년 대비 19.6%, 33.4% 증가해 모두 사상 최대를 경신하게 된다. 회사 관계자는 “해외에서 ‘닌텐도DS’와 ‘닌텐도위(Wii)’의 판매가 호조를 보여 실적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고 설명하고 ‘닌텐도DS’는 올 판매목표를 2,800만대에서 3,050만대로 늘려 잡았다. 이로 인해 닌텐도의 올 회계연도까지 누적 판매대수는 1억대를 돌파할 게 확실시된다. 또 체감형 비디오게임기로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닌텐도위’ 역시 올해 예상보다 150만대 많은 2,650만대를 팔아 누적판매 대수가 5,000만대를 돌파할 것으로 회사 측은 내다봤다.
올해로 창업 120주년을 맞은 닌텐도를 세계적인 게임기 업체로 만든 일등공신 이와타 사토루 사장은 “좋은 기업은 기업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닌텐도는 주주, 고객, 협력사는 물론 지역사회에도 즐거움을 주는 회사를 지향하고 있다”고 성공 비결을 밝히며, 히트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는 데 성공한 요인으론 “우리 회사에는 20년 이상 게임을 개발해 온 개발인력이 많으며 게임에 대해 오랜 철학을 가진 경험 있는 사원들이 젊은 개발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전통’과 ‘기술’의 조화가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디오 게임의 가능성을 발견한 ‘야마우치’
닌텐도의 전 경영자 야마우치가 아버지로부터 회사를 물려받았을 때, 닌텐도는 화투와 트럼프 등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러나 야마우치는 ‘비디오 게임’ 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1983년 첫 게임기 ‘패미컴’을 출시하며 닌텐도를 게임업체로 변신시켰다.
그 후 닌텐도는 마이크로소프트, 소니 등의 회사들과 경쟁하며 위기를 겪다가 2004년,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DS를 출시. 차별화와 창의성을 두루 갖춘 게임과 캐릭터의 닌텐도DS는 성공을 거두었고 뒤이어 가정용 게임기 ‘위’를 출시하면서 닌텐도는 성공가도를 걷게 되었다.
사실 닌텐도 게임기의 하드웨어 성능은 경쟁업체인 마이크로소프트나 소니의 게임기에 비해 한참 떨어지고 가격도 저렴하다. 그러나 닌텐도는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창의성 있는 경쟁력을 갖추었고 이것은 소비자들에게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닌텐도는 1889년에 교토에서 화투를 파는 구멍가게로 시작했다. 창업자는 야마우치 후사로라는 화가로 그는 그림도 잘 그리고 손재주가 좋아서 자신이 그린 그림으로 오락용 카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화투이다.
야마우치는 1년 12달을 상징하는 그림을 각 월마다 자연 현상과 스토리를 카드에 그려 넣어 각 월마다 4장으로 만들어서 광(光)과 피로 구분해 총 48장을 한 세트로 구성하고 여기에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서 오락 도구를 만들었다. 아마우치는 화투라는 하드웨어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 게임의 규칙인 소프트웨어를 같이 개발했을 뿐만 아니라 닌텐도라는 유통점까지 만든 매우 창의적인 사람이었다. 특별한 놀이 기구가 없었던 시절이라서 화투는 날개 돋친 듯 팔리기 시작하였고, 교토뿐만 아니라 일본 전역에 퍼져 나갔다. 이렇게 화투 회사로 시작했지만 닌텐도는 계속해서 오락 산업에서 변신을 거듭해 왔다.

기네스북에 오른 게임소프트웨어 ‘슈퍼마리오’
닌텐도는 1980년에 세계 최초로 휴대용 게임기를 개발하게 되는데 이는 한 사원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요코이라는 개발실 직원은 교토와 도쿄를 오가면서 신간센 기차를 탔다. 당시 샤프전자에서 휴대용 계산기를 개발해 사무직 직원들이 이용하고 있었는데 신간센을 탄 사람이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재미있게 노는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를 휴대용 게임기로 만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를 사장에게 이야기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장은 즉시 샤프전자와 협력해 휴대용 게임기를 개발하라고 지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요코이는 휴대용 게임기인 ‘게임&워치’를 개발했고, 향후 닌텐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며, 기네스북에 오른 슈퍼마리오 게임의 모티브가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 소프트웨어인 슈퍼마리오를 개발한 미야모토는 자신의 어린 시절 추억의 스토리를 게임에 반영했다. 슈퍼마리오의 원형은 그가 개발한 ‘동키 콩’이라는 게임의 주인공 캐릭터였다. 동키 콩에서 마리오는 목수였으나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면서는 그를 배관공으로 바꾸었는데 자신이 어렸을 때 동네 길을 거닐다가 ‘맨홀 뚜껑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궁금해 했음을 깨달고 배관공인 마리오가 터널 속의 새로운 세계를 모험한다는 스토리의 게임을 만들었다. 이후 슈퍼마리오는 패미콤의 킬러 콘텐츠가 되어 수천만 카피가 팔리게 되었고, 이후 닌텐도는 항상 하드웨어 개발과 함께 재미있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고객을 사로잡았다.

   
▲ 닌텐도는 게임산업이 완전히 붕괴되어버려 누구도 쳐다 보지 않던 미국시장에 상륙을 시도했다. ‘비디오게임’이라는 말 자체가 터부시될 정도로 누구도 선뜻 협력업체가 되려 나서지 않았지만 미국 지사의 특공대원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통업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게이머들과 부딪치면서 게임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시연대를 고안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을 시도하였고, 결국 미국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컨텐츠로 성공신화 이뤄
산업연구원은 KIET 산업경제에 게재된 ‘비디오 게임기 시장에서 닌텐도의 성공요인 분석과 시사점’에서 닌텐도는 닌텐도DS와 가정용 비디오게임기 위(Wii)의 출시로 경쟁사인 소니의 제품을 압도하는 판매실적을 보이며 세계 게임기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데 닌텐도의 성공요인은 소비자 니즈에 부합하는 제품개발, 합리적인 가격,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이 복합적이면서 조화롭게 추진되었다는 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특히 닌텐도의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것이 휴대용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소비자의 범위가 잠재적으로 크게 확대되었다는 점이다. 새로운 디지털기기 구입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하고 가격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하여, 단순한 기능만을 탑재한 저가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또한 휴대하기 간편하고, 소비자 오감에 가깝게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차별화하였다는 점도 닌텐도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와 함께 게임을 하지 않는 대중을 소비자로 설정하여, 남녀노소 쉽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이용하여 게임의 대중화를 공략했던 닌테도의 마케팅전략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러한 닌텐도의 성공요인은 비단 휴대용 게임기 업체뿐 아니라, 각종 휴대용 디지털기기 개발업체들의 경영전략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닌텐도DS의 성공요인을 분석해 보면 첫째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기기의 대중화로 비디오 게임 시장의 잠재적 소비자층이 크게 확대됨에 따라 고객을 세분화하여 계층에 맞는 특화된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 것이다. 두 번째로 휴대용 디지털기기의 경우 제품가격은 시장진입에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제품의 가격을 낮춰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했다. 세 번째로 유저 인터페이스의 활용이다. 닌텐도는 기존 게임기의 천편일률적인 모습에서 휴대용 디지털기기의 하이테크와 동시에 하이터치를 실현하면서 유저들을 위한 인터페이스의 혁신을 이루며 차별화를 도모했다. 마지막으로 콘텐츠의 중요성이다. 닌텐도는 콘텐츠의 개발에 앞서 콘텐츠의 불법복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고객에게 지속적으로 쉽게 제공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도 구축했다.

닌텐도, 게임과 동의어로 쓰여
2008년 5월 8일 미국의 포브스(Fobes)지가 발표한 일본의 갑부 명단에서 닌텐도의 전 사장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1위(78억 달러)를 차지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오늘날의 닌텐도를 만든 인물이다.
100여 년 전 교토의 한 허름한 가내수공업 공장으로 출발한 닌텐도는 현재 연간 25조 원의 매출을 내다보는 한 산업의 세계적 대표기업이 되었다. 그렇다고 수많은 제품군을 거느린 것도 아니고, 그 상품들의 개당 판매가가 높은 것도 아닐뿐더러 더욱이 생활필수품인 것도 아니어서 닌텐도의 성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09년 현재 세계적으로 극심한 경기 침체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게임산업은 성장세를 지속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 가운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공히 닌텐도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스카치테이프나 제록스의 경우처럼 하나의 상품명이 대표명사화되는 것은 최초로 등장한 상품이 누리던 특혜였다. 하지만 게임산업을 최초로 만들어낸 것은 닌텐도가 아니다. 아타리에 의해 퐁이라는 오락실용 게임기가 미국에서 산업을 일으켰고 이후 전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한 바 있다. 닌텐도의 게임기는 그 아타리에 의해 미국의 게임산업이 한차례 쓰나미를 겪고 완전히 붕괴된 때에 미국에 상륙했다. 그리나 지금 영어권에서 게임과 동의어로 쓰이는 말은 ‘Atari’가 아니다. 그들은 “Let’s play Nintendo”라고 말한다.
닌텐도가 미국에 진출할 당시인 20여 년 전 지금보다 더욱 ‘미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득세하고 있던 상황에서 닌텐도의 게임을 미국에 성공적으로 진출시킨 ‘동키 콩’이나 ‘패미컴’ 등과 함께 출시된 게임 소프트웨어의 캐릭터들은 그다지 미국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상륙과 함께 ‘미키마우스’를 제치고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로 자리 잡았다.

어수룩한 주인공 마리오, 세계 게임기의 주인공이 되다
닌텐도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든 작품 ‘패미컴’에는 히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소프트웨어가 있었다. 그 소프트웨어의 캐릭터들은 당시의 어떤 게임과도 다른 모습이었다. 총격이나 살상, 또는 기껏 해야 레이싱게임 정도가 전부였던 당시 게임시장에 ‘얼간이 고릴라’와 그에 못지않은 ‘얼간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게임이어서 당연히 게임업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서 혹평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 모두와 닌텐도 자신조차, 놀랄 정도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닌텐도는 게임산업이 완전히 붕괴되어버려 누구도 쳐다보지 않던 미국에 상륙을 시도했다. ‘비디오게임’이라는 말 자체가 터부시될 정도로 누구도 선뜻 협력업체가 되려 나서지 않았지만 미국 지사의 특공대원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유통업자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게이머들을 직접 만나기 위해 누구나 직접 게임을 해볼 수 있는 시연대를 고안했으며, 시연대 설치 기회를 얻기 위해 어떤 곳이라도 쫓아다녔고, 숱한 외면과 냉대도 모두 참고 견뎠다. 게임을 소개하는 잡지를 발간하거나, 다른 업체들이 시도하지 않던 월 스트리트 공략, 다른 산업의 대기업과 제휴하는 방식 등 다양한 마케팅 시도를 이뤘고, 그리고 결국 모두 성공을 이뤘다.
당시 닌텐도가 처음으로 시도했던 마케팅 활동들의 일부는 현재 누구나 당연히 진행시키는 판매촉진 전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후 닌텐도가 닦아 놓은 게임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수많은 기업들이 합세했고, 기술력이 발달한 대기업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게임 자체도 발달하기 시작했다. 즉, 요란한 사운드와 현란한 그래픽, 복잡한 조종 방식과 득점 방식 등으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변화해갔다. 닌텐도 역시 처음에는 이 기술경쟁에 뛰어들어 몇 가지 상품을 내놓았다. 하지만 닌텐도는 이 추세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게임은 무엇인가?’에 대한 애초의 고민을 진행한 후에 그 추세는 올바르지 않다고 결론내렸다. 이후 닌텐도는 ‘게임은 즐거움이고,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가치’라는 모토아래 게임산업의 새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닌텐도에게도 불안감은 있었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닌텐도의 관점을 수호하기 위해 개발 방향을 일제히 수정했고, 그리하여 탄생한 것이 ‘닌텐도DS’와 ‘닌텐도Wii’이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라’ 이것은 닌텐도의 오늘을 만든 모토이지만, 그러한 도전에는 항상 엄청난 리스크가 동반된다. 하지만 그 리스크와 원칙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는 닌텐도만의 고집은 지금의 성공을 이끈 최고의 원동력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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