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체력 기준 포함한 채용방법 개선을 통해, 여성 소방공무원 비율 늘려라’ 권고
여성 체력검정, 이미 남성의 60% 수준 vs 체력 기준 낮은 만큼, 경쟁률은 훨씬 높아
[시사매거진 제270호] 지난달 1일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는 2019년 실시한 ‘특정성별 영향평가’ 결과를 근거로 소방청에 ‘소방공무원 채용 관련 제도’ 개선 검토를 권고했다. 여가부는 소방공무원 공채시험에 성별 분리 채용방식을 채택해, 여성의 진입 장벽이 높다고 지적했다. 소방업무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성별 분리 선발의 격차가 과도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시·도별 소방분야 선발 예정 인원 3,358명 중 여성은 168명으로 5.0%에 불과했다.

여가부의 ‘공개경쟁에 처음부터 특정성별을 배제한 채용’에 대한 지적은 응당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지난 2019년 상반기, 총 210명을 선발하는 서울시 소방대원 채용에서 남성의 경쟁률은 11.9:1이었으나, 여성의 경쟁률은 39.4:1이었다. 2018년 하반기 서울시 소방대원 채용시험에서는 4명의 여성 소방공무원을 선발하는데 603명의 지원자가 몰리면서 여성 경쟁률은 150.8:1까지 치솟았다. 반면, 같은 채용에서 남성 경쟁률은 39.8:1이었다.
소방공무원의 필기시험 합격선 역시 남성보다 여성의 커트라인이 더 높게 나타났다. 선발 인원 자체가 적어, 필기시험에서 여성 지원자 간의 경쟁률이 높아진 것이다. 2018년 상반기 기준 서울시 소방대원 필기시험의 커트라인은 남성이 68.35점, 여성이 80.43점이었다.
이에 여가부는 성별 균형을 고려하여 소방공무원을 채용할 수 있도록 체력 기준을 포함한 채용방법 개선 방안 마련을 검토할 것을 소방청에 권고하였다.
소방공무원 채용은 젠더갈등으로 번졌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현재에도 이미 성별의 차이를 두고 있는 체력검정 기준을 무엇을 어떻게 더 손보느냐’로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국내 소방공무원 채용
국가의 정사를 돌보는 공무직에 체력을 요하는 직무는 네 가지이다. 경찰 공무원, 해양경찰 공무원, 교정직 공무원 그리고 소방공무원이다. 소방공무원은 인명 구조·구급활동과 화재 예방·경계 활동 등의 업무를 맡게 된다. 화재현장에서는 화재진압과 동시에 국민의 신체와 생명, 동료와 자신까지 보호해야 한다.
따라서 소방공무원은 강인한 신체 요건을 필수로 한다. 특히, 심폐 지구력과 근력·근지구력이 강하게 요구된다. 이미 해외의 다양한 연구에서 실험을 통해, 소방관의 체력수준이 높을수록 업무 수행 확률이 높아진다는 결과가 확인되었다. 소방조직의 체력 저하는 화재 대응과 소방 서비스의 질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이 문제는 모든 국민에게 중요한 화두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소방직 공무원 채용은 필기시험, 체력검증, 면접의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여기서 남녀의 격차를 두는 것은 채용인력의 성비 정원과 체력검증 2가지다.
체력검증은 악력, 배근력,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 제자리멀리뛰기, 윗몸일으키기, 왕복 오래달리기까지 총 6종목이다. 각 종목의 최고점은 10점이고 최저점은 1이다. 이때 각 종목의 합이 30점 이상이 되면 체력검증에서 합격을 받을 수 있다.
체력검증 6종목 중, 유연성을 검증하는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를 제외한 다섯 종목에서 여성의 합격 기준은 남성의 합격 기준보다 낮다. 다섯 종목의 합격 기준 차는 여성 만점의 기준이 남성 최하점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종목은 20m 코스를 지칠 때까지 왕복하며 달리는 ‘왕복 오래달리기’이다. 남성 지원자의 만점 기준은 78회, 최하점은 57회인데 반해 여성 지원자의 만점 기준은 43회, 최하점은 28회로 남성 기준에 55% 수준이다.

해외 소방공무원 채용
현재 미국 주 정부에서는 소방공무원 채용 시 체력검사로 CPAT(Candidate Physical Ability Test)를 채택하고 있다. CPAT에는 계단 오르기, 호스 끌기, 장비 옮기기, 사다리 올리기, 강제진압, 길 찾기, 인명구조, 천장치고 당기기 등 8가지 테스트를 실시하고 이때 테스트에는 남녀 구분 없는 기준이 적용된다.
미국 외에도 독일, 유럽 내 다수의 국가에서는 남녀 동일 기준으로 체력시험을 치르고 있다. 때문에 해외에서 역시 남성 소방공무원의 수가 여성 소방공무원의 수를 크게 웃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성비가 아니라, 소수이지만 여성 소방공무원도 남성 소방공무원과 동일 기준의 체력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점이다. 남성과 여성의 기본적인 체력 차이가 있음에도,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해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현장에서 보는 여성 소방공무원
지난해 1월 정문호 소방청장은 기자단간담회에서 “재난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라며 “남성 대비 55~80% 정도의 여성 체력 기준을 80~90% 수준까지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남녀 구분 채용에 대해 “성별 구분 채용을 폐지한다면, 체력 기준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며 “폐지 시 여성 소방공무원의 합격률이 지금보다 더 낮아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러면서 정 청장은 “다만 여성 소방공무원이 필요한 분야도 있으며, 채용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행정요원, 응급구조사, 체험관 교육 등의 분야에서 여성 소방공무원을 더 선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해 현재 7.5%인 여성 소방관 비율을 10%까지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 청장의 말은 여성 소방공무원을 늘리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체력을 필요로 하는 업무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 보인다.
실제 현장 의견도 정 총장의 의견과 대동소이하다. 경기대학교의 2008년 '여성소방공무원 역할증진방안 연구'논문에서는 소방공무원 203명을 대상으로 여성 소방공무원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에 참여한 소방공무원 203명은 남성 소방공무원이 163명(80.3%), 여성 소방공무원이 40명(19.7%)이다.
논문에 따르면, 남녀 소방공무원 모두 앞으로 소방조직에 여성 소방공무원의 비율이 증가할 것이며, 증가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현장 활동 시 여성과 남성의 능력 비교에 대해서는 '남성의 50% 미만이다'라는 답변이 남녀 그룹 모두에서 가장 높았다.(202명 중 102명) 다음으로 '남성의 50% 정도이다'가 뒤를 이으며, 두 집단 모두 여성 소방공무원의 현장 활동에서 어려움을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소방조직에서의 여성의 비율을 일정한 수준 이상이 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여성 소방공무원을 화재진압요원이나 구조요원 보직에 채용할 경우 체력 기준을 현재 수준보다 높이거나, 남성 지원자와 동등하게 채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경기대학교 행정대학원, 김수희 ‘여성소방공무원 역할증진방안 연구’ 논문 인용)

해당 논문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현 소방공무원 채용절차가 누구에게 유리하느냐는 질문에 여자 소방공무원은 ‘남성에게 유리하다’는 답이 가장 높았으며, 반대로 남자 소방공무원은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성별 차등, 차별? 역차별?
소방직무에 사무직 인력은 분명 필요하지만, 대부분의 인력은 현장에 출동하게 된다. 소방조직은 유사시 전 인력이 투입 가능하도록 순환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17년 6월 기준, 여성 소방공무원의 직무별 분포 현황은 구급 1584명, 행정 954명, 화재진압 488명, 상황관리 238명, 화재조사 9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소방공무원 중 77%가 구급과 행정에 쏠려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소방조직이 여성 소방공무원의 임무 배치에 있어 주로 내근직 위주로 보직을 배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보직 배정에 대해, 여성의 입장에서는 핵심 업무에서 배제되고 국한된 보직만을 부여받아, 차별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남성 역시 체력 소모가 큰 현장직 위주의 보직 배정을 역차별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여성 소방공무원 지원자들은 절대적으로 적은 채용인원에 차별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으며, 반대로 남성 소방공무원 지원자들은 체력검정기준에 있어 여성의 기준이 남성 기준에 비해 지나치게 느슨하다고 생각하여 차별받고 있다고 느낄 수 있다.
체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직종에 체력에 차등을 둔 결과, 양쪽 성별 모두 불공정을 느끼고 있다.
현재 소방청은 내근직, 현장직의 구분 없이 소방공무원을 채용하고 있으며 체력검정 기준도 획일적으로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이 보직별 채용기준 마련하고, 채용 단계에서 직군을 구분해 인력을 채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현장 배치인력에 대해서는 업무 수행 시 필요한 신체능력과 체력 조건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직군별 채용을 통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해외의 경우처럼 남녀 구분 없는 채용이 가능하다.
소방공무원이 화재진압 시 착용하는 기본 장비의 무게는 20kg이 넘는다. 소방공무원은 기본 장비를 착용하고 강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소방호스를 들어야 하며, 의식이 없는 요구조자를 끌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켜야 한다. 여기에 화재현장의 뜨거운 열기까지 더해져, 건장한 소방공무원들도 진압 작전이 끝난 후 탈진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남성과 여성은 평등하다. 그러나 남성과 여성은 분명 신체적 특성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평등과 차이는 반대어가 아니다.
업무의 특성상 성비 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직종에 여성 비율을 억지로 끌어올림으로써 여성 인권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성별과 전혀 무관한 업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자리가 부족한 업무가 무엇인지 파악해, 해당 업무에서 여성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함이 여성인권 신장에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당장의 성비라는 '숫자'에 집중하기보다, 고유의 능력과 체력적 차이는 인정하면서 평등을 논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호수 기자 hosoo-121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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