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 올바른 방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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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 올바른 방향인가
  • 박희윤 기자
  • 승인 2020.12.02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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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의 입법 독주에 속수무책 야당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야당의 빈자리(사진_시사매거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야당의 빈자리(사진_시사매거진)

[시사매거진 제270호] ‘미래 입법 과제’를 제시하고 이번 회기에 통과를 목표로 밀어붙이던 민주당이 ‘입법 독주’ 비판을 피하기 위해 쟁점 법안과 관련해서는 입법 속도를 조절하며 명분 쌓기에 나섰다. 하지만 법안을 심사하고 본회의로 올리는 모든 상임위에 여당 위원들이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 단독으로 표결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겠다는 공수처법 개정안, 간첩 잡는 대공수사기능을 경찰에 넘겨주는 국정원법 개정안,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 등 민주당이 최우선 통과 대상으로 꼽은 15개 법안은 하나같이 논란이 많은 것들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의원총회에서 화상 연결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개혁·공정·민생·정의 입법 처리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다시 소집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우리대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선의 절차를 진행해야겠다.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론을 펼쳤다.(사진_공동취재단)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온택트 의원총회에서 화상 연결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표는 개혁·공정·민생·정의 입법 처리를 재차 강조했다. 그는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다시 소집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우리대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선의 절차를 진행해야겠다.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론을 펼쳤다.(사진_공동취재단)

민주당이 미래 입법 과제로 15개 법안을 제시하고 이번 정기국회 회기 안에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민주당은 내년 하반기엔 본격적인 차기 대통령선거 국면에 돌입하게 될 것을 감안하면 올해 정기국회가 마지막 입법의 기회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최우선 통과 대상으로 꼽은 15개 법안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과 국가정보원법, 경찰법, 기업규제 3법 등 하나같이 논란이 많은 것들이다.

이낙연 대표의 ‘입법과제’

이낙연 대표는 지난달 24일 화상으로 참여한 의원총회에서 개혁·공정·민생·정의 입법 처리를 재차 강조했다. 이 대표는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다시 소집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우리는 우리대로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선의 절차를 진행해야겠다. 공수처 출범을 방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경론을 펼쳤다.

이낙연표 입법 과제는 '미래입법과제'로 4개 분야 15개에 달하는 법이다. 개혁 분야로는 공수처법, 국정원법, 경찰청법, 일하는 국회법, 이해충돌방지법 등 정부 여당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과제들이 포함됐다. ‘공정’ 분야에는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이 대표적이다. 정부 여당이 사활을 건 공수처장 연내 임명과 개혁 입법 등은 대권 주자로서 이재명 경기지사와 여론조사에서 각축전을 벌이면서 이 대표가 선점할 수 있는 과제다.

이 대표는 개혁 입법과 더불어 중점 과제로 ‘민생’ 과제를 꼽았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고용보험법, 필수노동자보호지원법,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 등이 속한다. 이 대표는 추석 명절부터 택배노동자와 요양사 등 일명 '필수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하면서 메세지를 내왔다.

민주당의 ‘입법독주’ 시동

민주당 소속 국회 법사위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심사를 앞두고 기자들과 만나 “상법 일부개정법률안부터 심사한다”고 밝혔다. 여당 단독으로 법안소위 일정을 진행한다고 알린 것이다.

법사위 법안1소위에서는 공수처법 개정안,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소비자의 권익보호를 위한 집단소송법안, 중대재해처벌법 등 법 통과시 정치·경제 분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법안들이 안건으로 올라왔다.

당 지도부가 강조한 ‘일하는 국회법’도 조만간 관련 상임위에서 법안심사가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김태년 원내대표는 지난달 26일 “지체해서는 안되는 개혁 과제”라면서 “야당의 전향적 협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2일 본회의까지 법안심사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여당 내부에서는 상법과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등 일부 이해관계가 복잡한 법안을 제외한 대부분의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당의 입법 독주에 야당은 속수무책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강경투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 역시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국회에서 다수 의원이 재판에 넘겨진 패스트트랙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다 재판을 받고 있는데, 전과 같은 방식을 기대하기 어렵다”면서 “국민여론으로 여당 폭거를 저지하는 방법밖에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를 반영하듯 주 원내대표는 지난달 26일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민주당을 향해 경고의 메시지를 날렸지만, 결국 “냉정함을 되찾고 역사에서 민주당과 정권이 하는 일들이 헌정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다시 한번 차분히 돌아보기 바란다. 역사와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며 여론에 기댔다.

여기에 전임 지도부를 연상시키는 삭발이나 단식에 대한 당 안팎의 비호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장외투쟁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오히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국민의 불안감이 커져가는 상황에서 심각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의힘이 공수처장 후보와 관련해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면서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민주당과의 협상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데도 이런 현실 인식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도읍 국민의힘 간사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오후에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에서는 전날에 이어 국민의힘이 참석하지 않았다. 여당만 참석한 법안소위에서는 공수처법 개정안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됐지만 최종적으로 의결되지는 않았다.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오늘 의결한 법안은 없다”고 밝혔다.(사진_공동취재단)
윤호중 법제사법위원장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간사, 김도읍 국민의힘 간사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이날 오후에 열린 법안심사제1소위에서는 전날에 이어 국민의힘이 참석하지 않았다. 여당만 참석한 법안소위에서는 공수처법 개정안과 관련된 논의가 진행됐지만 최종적으로 의결되지는 않았다. 민주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오늘 의결한 법안은 없다”고 밝혔다.(사진_공동취재단)

민주당의 입법 속도 조절

민주당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개정안, 기업규제 3법(공정경제 3법) 등 쟁점 법안과 관련해 입법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일단 법적 처리 시한이 얼마 남지 않은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야당과 합의 처리하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이 ‘입법 독주’ 비판을 피하기 위한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열린 전체회의에서 국정원법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민주당은 당초 전체회의에 법안을 상정한 뒤 곧바로 통과시킨다는 방침이었다. 지난달 24일 열린 정보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야당의 대공수사권 이관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독으로 개정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전체회의에서는 국가정보원 예산안만 처리했을 뿐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해서는 야당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법안 처리를 미뤘다.

민주당은 이에 앞서 지난달 25일과 26일 연이어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에서 공수처법 개정안을 논의했으나 처리하지는 않았다. 함께 법안심사소위에 올라온 상법 개정안도 처리를 미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달 25일에는 국회에서 민주당 국정원법 개악 긴급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또 다시 숫자의 힘을 앞세운 막무가내 입법 폭주가 재연되고 있다”며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는 건 국정원 존재 이유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_공동취재단)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2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달 25일에는 국회에서 민주당 국정원법 개악 긴급기자간담회를 열고 “민주당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을 밀어붙이면서 또 다시 숫자의 힘을 앞세운 막무가내 입법 폭주가 재연되고 있다”며 “대공수사권을 폐지한다는 건 국정원 존재 이유를 없애는 것”이라고 말했다.(사진_공동취재단)

‘입법 독주’ 우려에 대한 전략적 고려

공수처 연내 출범을 목표로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반드시 처리한다는 민주당의 방침은 유효하다. 그러나 ‘3차 재난지원금’이 쟁점이 된 내년도 예산안과 ‘경제3법’ 등 주요 법안 처리 등을 위해 전략적 고려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민주당이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하는 방향으로 개정 방침을 굳히고도 공수처법 개정안을 의결하지 않은 것은 ‘입법 독주’에 대한 비판 여론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174석’이라는 거대 의석을 통해 주요 입법 과제들을 순차적으로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여야의 ‘강 대 강’ 충돌이 임박하면서 정치권에선 “부동산 입법 때와 같은 충돌이 또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지난 7월 민주당은 국회 기획재정위·국토교통위·행정안전위 등 3개 상임위에서 야당의 반대에도 부동산 관련 법안을 ‘기립 투표’ 방식으로 밀어붙이기도 했었다.

특히 이번엔 역대 최대 규모인 556조 원대 내년도 예산안 심사가 진행 중이다. 국민의힘이 공수처법 강행을 이유로 예산안 심사를 거부하거나 지연하면, 민주당 입장에선 556조 예산안도 강행 처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권 일부에선 “쟁점 법안도 예산안도 공수처도 계속 밀어붙이면 견제 심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은 선거를 앞두고 긍정적으로만 해석하긴 어렵다”며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5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또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에서 야당의 일방적인 거부권 행사를 들어 법안 단독처리도 충분히 명분이 쌓였다고 보고 있지만 “(패스트트랙을 통한 공수처 도입 의결) 1년도 지나지 않아 말을 바꿨다”는 비판에선 자유롭지 않은 점도 고민 지점이다.

야당의 비토권을 삭제하겠다는 공수처법 개정안은 시행도 해보기 전에 재개정을 하는 것으로 명분이 없다. 공수처의 수장을 사실상 여권이 마음대로 낙점하는 구조가 된다면 공수처는 출범부터 권력보위기관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간첩 잡는 대공수사기능을 경찰에 넘겨주는 국정원법 개정안은 수사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면 안보 위기를 불러올 수 있고 경찰법 개정안은 비대해지는 경찰조직에 대한 통제와 견제 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등 기업규제 3법은 다른 나라에도 선례가 없는 급진적인 규제 조항들을 담고 있다. 경제위기 속에서 해외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아 경쟁력을 잃게 하는 법안들이 어떤 역풍을 불러올지 걱정이다. 민주당은 7월 임대차 3법을 입법 독주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다면서 강행 통과시켰다. 하지만 그 결과가 과연 어떠한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박희윤 기자  bond003@sisamagazin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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