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我河) 김두경의 15번째 개인전, ‘I am’ 알파벳 문자 추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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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我河) 김두경의 15번째 개인전, ‘I am’ 알파벳 문자 추상전’
  • 이용찬 기자
  • 승인 2020.11.06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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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자에서 찾는 상징과 조형미, 서예로 열어 가는 문자 추상성
김두경 작가가 영어 'I am'에서 찾은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김두경 작가가 영어 'I am'에서 찾은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시사매거진/전북] 한국 서예계 최초로 영어알파벳을 서예작품으로 표현한 알파벳 문자 추상작품전이 열렸다. 한국 서예계의 파격 작가로 통하는 서예가 아하(我河) 김두경 씨(60)의 15번째 개인전 ‘I am- 알파벳 문자 추상전’이 그것이다. 이번 전시는 5일 개관과 함께 오는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백악 미술관에서 1차로 개관됐다. 

이번 ‘영어알파벳 문자 추상전’에는 영어알파벳을 소재로 한 서예작품과 문자 추상 작품 50여 점이 전시됐다. 특히 ‘영어’ 문자를 소재로 한 서예작품의 전시는 서예계 최초다.

김 작가가 영어 'god(신)'에서 찾은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김 작가가 영어 'god(신)'에서 찾은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일반적으로 그동안의 서예작품들은 대부분 동양의 옛 고서 등에서 발췌한 한문이 주를 이루어왔다. 반면, 이번 전시 작품은 서구 영문자로 대표되는 알파벳에서 우리의 정서에 맞는 상징성과 조형성을 찾아내고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돼 남다른 감회를 준다.

우리나라 서예작품에는 늘 ‘동양예술의 꽃’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최근 한자 사용이 줄어들게 되면서 서예의 깊은 맛을 아는 이들도 줄어드는 추세다. 그래서 막연히 ‘어렵다’는 인식도 많았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는 서예라는 장르로 영어, 한글 등을 친숙한 문자와 결합해 표현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뤄 일반 대중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작품들이 걸렸다.

김두경 작가가 영어 'AMOR'을 줄여서 만든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김두경 작가가 영어 'AMOR'을 줄여서 만든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이뿐만이 아니라 이번 전시에서는 서예와 사진, 컴퓨터그래픽이 융합된 새로운 실험작 ‘트리니티 아트(Trinity art)도 선보였다. 트리니티 아트는 진회색이나 검정의 무채색 예술로 인식되던 서예의 화려한 변신으로, 서예의 현대적 장식성과 디자인적 요소를 결합한 장르의 서예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 'LOVE YOU'를 줄여 만든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의 서예작품(사진-김두경 작가)
영어 'LOVE YOU'를 줄여 만든 한국적 상징성과 조형미의 서예작품(사진-김두경 작가)

김두경 작가는 한국 근현대 서예계의 큰 기둥인 강암(剛菴) 송성용(1913~1999) 선생과 하석(何石) 박원규(73) 선생을 사사하며 정통 한문 서예를 섭렵했다. 이후 한글·영어 등으로 서예의 범위를 끊임없이 확장해 나가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한문과 한글, 영어 등 각기 다른 문자를 막론하고 ‘보는 글씨, 읽는 그림’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디지털을 결합해 현대 디자인에도 서예를 응용하려는 시도에도 앞장서고 있다.

영어 'YOLO'를 줄여 만든 서예적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영어 'YOLO'를 줄여 만든 서예적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김 작가의 이번 서울 인사동 전시는 2015년 개인전 이후 5년여 만이다. 그는 앞선 개인전 등에서 ‘상형(象形) 한글’ 서예를 하나의 장르로 개척해 온 바 있다. 김두경 작가의 작품은 한글 자체의 상징성과 조형성, 추상성 등을 찾아낸 작품들로 한글 서예사에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왔다. 이 때문에 한글 한류산업화 가능성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에 따라 이전의 개인전에서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도 “그동안 한글의 기능성을 찬미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한글의 조형적 예술성에 대해서는 새로운 발굴 등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김두경 작가는 기존 서예의 한계를 벗어나 파격적 회화기법을 도입, 한글의 상징과 조형성을 재창조해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김두경 작가는 “최근에는 세계화의 추세 때문인지 우리에게는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알파벳이 일상 속으로까지 깃들어 있다”며 “영어알파벳은 상형문자는 아니다. 하지만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을 이미지화해 ‘표정이 있는 글씨’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한자이건, 한글이건, 영어이건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창작 배경을 밝혔다.

한글 '물'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융합해 만든 새로운 실험작 ‘물 트리니티 아트(Trinity art)(사진-김두경 작가)
한글 '물'을 컴퓨터그래픽으로 융합해 만든 새로운 실험작 ‘물 트리니티 아트(Trinity art)(사진-김두경 작가)

덧붙여 “예컨대 ‘God’이라는 작품에서는 신의 모습이 보일 수 있도록 획을 조합해 획 하나하나에 표정이 있는 영어 문자를 쓰고자 했다. 그렇다고 그림처럼 보이기 위해서 문자를 왜곡하거나 기이하게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영문 알파벳 글자체에 상징과 표정을 더했을 뿐”이라고 알파벳 문자의 상징과 조형성의 의미를 설명했다.

18~19세기 초의 제국주의 시대를 돌아보면, 이 시기 동양의 미학적 가치는 서구 문화와 비교하여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되며 서구적 가치를 의미하는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만연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이후부터 서구 중심적 문화에 반대하며 새로운 동양적 가치를 발견하고 서구 미래의 희망 또한 동양의 무한하고 다양한 문화적 가치가 비로소 서구적 가치를 돋보일 수 있는 가치로 거듭나 왔다.

하지만 그동안 동양에서 서구의 고유한 가치를 동양적 가치로 거듭나게 하려는 노력은 일찍이 시도된 바 없다. 특히 그중에서도 서구의 문자를 우리의 고유의 문화적 가치인 문자적 상징성을 서구적 조형미와 어우러지게 하였던 시도는 더더욱 없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문자 '휠레'를 줄여 만든 서예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문자 '휠레'를 줄여 만든 서예적 상징성과 조형미(사진-김두경 작가)

김두경 작가의 이번 전시는 이런 점에서 영어알파벳에서 우리의 한글에 나타나는 조형미와 문자적 상징성을 융합한 것이었다는 점과 작가가 영문 알파벳을 서예작품의 테마로 잡았던 이유도 우리나라 서예의 세계화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남다른 의미를 준다.

김두경 작가는 “이런 생각은 오래전부터 했지만, 막상 영어알파벳을 서예로 표현하는 게 쉽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것은 한자서예보다 한글이나 영어서예가 어렵다고 느낀 건 표기 문자의 단순성 때문이었다”고 새로운 문자 상징성을 찾고 만들어 왔던 과정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김 작가는 또  “목숨 수(壽), 복 복(福)자만 해도 수백 개에 달하는 한자에 비해 한글이나 영어는 각각 24개, 26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쉽게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라며 “단순한 글자체, 같은 철자의 반복, 연속되는 동그라미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였지만, 물고 늘어지기를 반복하는 일을 통해 ‘길은 어디에나 있고 또 아무 데도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확인하게 해줬던 시간”이었다고 그간의 사정을 밝히기도 했다.

서예계 최초로 영어알파벳을 한국적 문자 서정성과 조형적 서예 작품으로 열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 김두경 작가(사진-김두경 작가)
서예계 최초로 영어알파벳을 한국적 문자 서정성과 조형적 서예 작품으로 열다섯 번째 개인전을 연 김두경 작가(사진-김두경 작가)

김두경 작가는 그에게 외종조가 되는 강암 선생 댁과 외숙 아산 송하영 선생 댁을 드나들며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좋아 가슴에 새겨 놀았다가 26세 때부터 붓글씨에 인생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의 나이 서른이 되던 1988년 8월 하석 박원규 선생에게 입문하게 되면서 오늘날의 서예가로 활동하게 된 바 있다.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김 작가는 “구상한 전시 테마는 많다. 앞서 시도했던 ‘상형한글’ 이나 이번 전시의 ‘알파벳 서예’는 결코 두 문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문, 한글, 영어, 일본어, 힌디 등 세계의 어떤 문자도 서예로의 표현이 가능해 향후 더 많은 언어의 서예 표현을 시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있는 만큼, 하나씩 정리하며 구체화해보려 한다”며 “언어는 문자이지만, 그 자체로 추상성을 가지고 뜻을 모르더라도 감상할 수 있는 서예의 세계가 열릴 것이며 동시에 ‘한글을 현대 생활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와 ‘어떻게 한글이 한류를 주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며 한글과 서예가 한류를 주도 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전시는 서울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의 1차 전시 이후, 13일부터 30일까지는 전라북도 섬진강 물 테마관에서 2차 전시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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