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좌절... 경제위기와 함께 온 고용대란
최근 미국에 금융위기가 닥치고 그 여파로 한국의 실물경기가 급락하면서 ‘고용대란’이 현실로 다가왔다. 통계청이 1월 14일 발표한 ‘2008년 12월 및 연간 고용동향’에 따르면 2008년 12월 취업자는 2324만 5000명으로 2007년 12월에 비해 1만 2000명이 줄어들었다. 이러한 고용상황 악화는 국가의 성장동력인 청년층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어 국가의 장기적인 경쟁력 향상에 저해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2007년 12월에 7.3%였던 청년인구 실업률은 2008년 12월 7.6%로 0.3% 포인트 늘었고, 비경제 활동인구 중 구직 단념자가 전년보다 50% 가량 증가했다. 한국은행은 2007년의 28만명에서 14만명으로 줄었던 작년 신규 취업자 수가 올해에는 4만명으로 더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매년 대학졸업자 수가 56만명에 육박하는 현 시점에서 이러한 예상의 현실화는 젊은이들의 좌절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월은 통계청이 집계하는 고용동향에서 연중 실업률이 가장 높은 달이다. 지난해 2월 전체 실업률은 3.5%로 연평균 3.2%를 웃도는 수준이었고, 2007년에는 3.7%까지 치솟기도 했다. 청년 실업률도 2007년 2월에는 7.8%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2월이 졸업시즌이라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재학 동안 실업자 통계에 포함되지 않던 학생들이 2월 졸업을 통해 취업자나 실업자, 아니면 대학원 입학이나 취업 준비 등으로 비경제활동인구로 속하게 되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는 통상 15일이 낀 한 주간 조사를 벌여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를 실업자 통계에 포함시킨다고 설명한다.
특히나 곧 돌아오는 2009년 2월은 청년 실업난이 최고조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해 말 본격화된 수출과 내수 위축에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꺼리면서 고교?대학 졸업자들의 시장 진입통로가 닫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희삼 연구위원은 “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에는 기업들이 상용근로자의 대량감원을 단행해 핵심 근로연령대인 30~50대의 고용부진현상이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정규직 중심의 고용 감소보다는 청년층 신규 채용이 급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년 실업, 피할 방도 없나
이러한 고용대란을 피하기 위해 대학 재학생들은 시간 벌기 목적으로 휴학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고,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사회 진출을 미루려는 목적으로 대학원 진학에 나서고 있다. 휴학생 비율은 수년째 30% 안팎으로 꾸준히 기록되고 있고, 대학원 지원율은 수직 상승 추세를 보이며 평소 지원률이 낮은 학과도 학생들이 몰려 수년만에 정원 초과의 경사(?)를 맞았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갈 곳이 이처럼 없다보니, 청년들은 파트타이머, 계약직, 일용직, 임시직, 파견 근로직 등의 고용형태를 띠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단기간(1~2년) 계약을 하고 그 계약을 고용자가 연장하는 방식이여서 정규직에 비해 열악한 대우 및 불안정한 고용환경으로 현실적으로 많은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많다. 최근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와 기자출신의 박권일이 쓴『88만원 세대』라는 책이 주목을 받으면서, 청년취업난과 맞물려 ‘세대간 불균형’이 이슈화되고 있다.
유럽에서는 한달에 700유로(약126만원)를 받고 임시직으로 일하는 30살 미만의 청년 세대를 일컫는 ‘700유로 세대’가 심각한 사회 문제이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의 전체 실업률은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7.1%이지만, 25살 이하 청년들의 실업률은 평균 15.9%로 두 배가 넘는다. 한국에는 그보다 못한 ‘88만원 세대’가 있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의 평균적 소득 비율 74%를 곱해 나온 수치가 바로 88만원이다. 현재 20대 세대보다 이전 세대인 386세대는 0점대 학점을 받아도 직장을 골라가며 취직을 했지만, 지금의 10대와 20대는 기껏해 주유소나 편의점을 떠도는 ‘아르바이트 인생’이거나 비정규직 신세이다. 우석훈 박사는 위 책에서 20대의 95%가 비정규직 노동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정부의 분주한 일자리 대책 마련
이러한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을 경기방어 최우선 과제로 삼고 대책 마련에 분주한 정부의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정부가 급하게 내놓은 일자리 창출대책은 얼핏보면 다양하고 화려하다. 우선 정부는 일자리 창출 관련 예산을 상반기에 70%까지 집행하고, 17개 신성장 동력 분야에 10년간 97조원을 투자해 352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계획을 마련하였다. 또한 2012년까지 36개 건설?에너지?환경개선 사업을 ‘녹색뉴딜’(저탄소 친환경 사업)이라고 이름 붙이고 4년간 이 사업에 50조원을 투입해 약 96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내놓았고, 해고 대신 휴직 등 고용을 유지한 기업에게 지급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수준도 임금의 4분의 3까지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각 중앙정부 및 지자체, 공공기관 등에서 2만 3000명의 행정인턴 채용이 진행중이며 2만 5000명의 중소기업 청년인터에게도 임금의 절반을 국가가 지원하기로 했다. 이러한 대책을 내놓으면서 기획재정부는 “향후에도 고용여건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현재의 일자리가 최대한 유지될 수 있도록 그간 마련한 일자리 대책을 신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러한 화려한 일자리 창출대책들이 효율적으로 운영되어 청년들에게 희망의 선물이 되어줄지,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빈 선물상자에 불과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알 일이다. 정부가 내놓은 청년인턴제가 매년 50만명을 넘는 대학졸업자와 60만~70만명 수준인 고교 졸업생 수요를 과연 감당할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되며, 구체적인 계획 없이 진행될 경우에는 3달에서 많게는 1년 정도 사무 보조원으로 일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그렇게 될 경우에는 단순 아르바이트 계획을 청년 일자리 대책으로 내놓은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부문인 사회적 일자리 대책에는 소극적이라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리나라의 사회서비스 고용 비중은 전체 서비스업 가운데 20.2%에 그치는데, 이는 스웨덴의 43.9%나 미국의 32.4%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산업연구원의 보고서를 보아도 건설 부문 보다는 교육과 보건 부문에 투자할 경우 소득창출액이 더욱 많기 때문에, 사회적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증가에 정부가 예산을 투자한다면 소외계층의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효과까지 볼 수 있다.
정부-기업-노조 함께 지혜를 모을 때..
일명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의 기대 속에서 지난 2008년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연간 6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러나 작년 한해 동안 만들어낸 일자리는 고작 7만 7천개이다. 7.2%의 청년 실업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약속 또한 0.3% 줄어든 6.9%에 그치는데 불과했다.
물론 기획재정부 관계자의 말처럼 “경기회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이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뜬구름 잡기식의 대책보다는 다각적인 고려를 통해 청년들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효율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지자체 및 기업, 노조가 함께 일자리를 지키고 나누는 노력을 기울이는 지혜를 모은다면, 아직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지자체는 각종 프로젝트의 조기 실행과 함께 취약계층의 생계 구호를 위한 직접 고용에 나서야 하고, 기업은 고용안정에 도움이 되는 정부의 각종 제도와 정책들을 찾아 적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도 실질적 임금 삭감이 뒤따르더라도 일자리 나누기 등 적극적인 고통 분담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젊은이의 좌절은 국가의 좌절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좌절감과 공포에 사로잡혀 사회에 첫발을 내딛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