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재단 둘러싼 ‘남매전쟁’, 확대일로 치닫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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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재단 둘러싼 ‘남매전쟁’, 확대일로 치닫아
  • 신현희 기자
  • 승인 2009.02.09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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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복지재단에 때아닌 용역직원 출몰

 

청소년을 위한 열린 공간이 되어야 할 곳, 하지만 지리한 법정공판이 이어지면서 그 의미가 퇴색된 지 오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녀들이 순번을 바꿔가며 운영하고 있는 곳, ‘육영재단’이 바로 그곳이다. 잊혀질만 하면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육영재단에 이번에는 용역회사 직원들이 출몰해 집기를 부수는 등 웃지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육영재단 사무실에 용역회사 직원 난입, 재단 사무국 직원들과 몸싸움 벌여 
세 남매의 분쟁으로 육영재단은 매년 7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 씨의 추천으로 새 이사장이 선임되면서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던 육영재단이 또다시 분쟁에 휘말렸다.
지난 1월 4일 오후 9시 40분경 50여 명의 용역회사 직원이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회관 내 육영재단 사무실에 난입했다. 이들은 재단 사무국 직원들과 몸싸움 끝에 유리창을 부수고 사무실에 들어가 5일 오전 7시경 철수했다. 사무국 관계자는 “회계경리 관련 서류와 함께 컴퓨터 본체 8대가 사라졌다”며 “박지만 씨의 추천으로 선임된 임시이사 9명이 임명한 새 사무국장의 지시로 용역 직원이 난입했다”고 말했다.
경찰과 재단 측 인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날 사태는 신임 사무국장인 옥모 씨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추측된다. 임시이사회 관계자는 “사무국 직원들이 이사회 진행을 방해하는 등 의도적으로 협조를 하지 않아 업무 파악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재단에 대한 정황파악과 재단 정상화를 위한 서류를 확보하기 위해 최후의 수단을 동원해야 했고 새 사무국장이 이 일을 수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안양대 석좌교수인 이원우 신임 이사장은 “사무국장에게 사무실 질서유지를 당부한 것이 오늘의 결과로 나타난 것 같다. 절차상 문제는 없지만 대화가 우선이기 때문에 일단 사무실에서 철수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사무국 노조는 “박 씨가 재단에 대한 3억4000여만 원의 채권을 근거로 임시이사를 추천했지만 자기쪽 사람만 심으려 해 직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지만 씨는 2007년 11월 박근령 이사장측을 축출하고 임시 이사진 9명 전원을 물갈이 하면서 3개월 여만에 ‘지만천하’를 이룬데 대해 빈축을 사고 있는 것이다. 
반면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사회가 구성됐기 때문에 재단의 인사·운영권 행사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이 이사회 측의 입장이다.
이번 사태는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이 서울 성동교육청으로부터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을 받고 이에 불복하는 소송을 진행하다 지난해 5월 기각된 뒤 동생 지만 씨가 재단 정상화에 나섰지만 또다시 마찰이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 전 이사장 측도 임시이사회와 대립하고 있다. 박 전 이사장 측은 “새 이사진 선정에서 우리의 의사가 배제됐다”며 최근 임시이사등기금지가처분 신청, 이사장승인취소처분에 대한 취소청구, 위헌제청신청서 등을 법원에 낸 상태다.

 

박근령 전 이사장, 육영재단 사무국장 직함으로 출근투쟁,
남매의 본격 ‘2라운드’ 돌입

육영재단을 둘러싼 남매의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12월 초 어느 날 밤, 서울 광진구 능동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주변에 검은 양복 차림의 괴청년이 여기저기 포진했다. 법령에 어긋난 운영을 시정하라는 교육청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사유로 이사장 승인이 취소되자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던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하지만 항소심에서도 패소하자 박 전 이사장과 측근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있을 때까지 이사장직이 유효하다면서 이사장실에 머물며 재단 운영에 개입, 사무국 직원들과 운영권을 두고 마찰을 빚어왔으며 이 과정에서 각종 신고와 고발이 난무했다. 이날도 양측은 사설경호원들을 동원해 용접기로 출입문을 막느니, 소화전으로 이를 끄느니 하며 이사장실 확보 싸움을 전개했다.
양측의 대치가 거듭되고 관할 광진경찰서가 양측의 충돌을 막기 위해 수십 차례 출동한 끝에 그달 11일, 결국 박근령 전 이사장은 어린이회관 이사장실을 떠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2008년 5월 박근령 육영재단 이사장에 대한 이사장 승인 취소 처분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육영재단 사태는 진정되는 모양새를 띠었다.
그러나 박 전 이사장은 2008년 11월 1일부터 재단 사무실에 다시 출근하고 있다. 법정 소송 중이던 2007년 12월부터 중단한 출근을 10개월 만에 재개한 것이다. 지금은 이사장이 아닌 ‘육영재단 사무국장’ 직함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상태. 이유는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의 측근 인사들이 속속 육영재단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으로, 재단 운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이다.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정희 전 대통령 자녀들의 분쟁이 ‘2라운드’에 본격 돌입한 것이다.
하지만 박 전 이사장측은 이번 사건이 동생인 박지만 회장과의 남매간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부담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박 전 이사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싸움은 나와 성동교육청 간의 대립이지 동생과의 갈등이 아니다. 자꾸 그런 쪽으로 부각시키지 말아달라”며 “교육청은 표면적인 이유로는 재단 운영을 부실하게 했고 미승인 사업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세금을 한 푼도 받지 않는 공익재단에 대해 왜 교육청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들이
박 전 이사장 쪽으로 입장 바꾸어

박근령 전 이사장과 재단 측도 반발하고 있다. 1990년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박근령의 난’ 이후 또다시 ‘박근령-박지만’의 대립이 부각되면서 경영 정상화는 물 건너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에 깊숙이 관여했던 인물들이 입장을 바꾼 탓이 크다. 2007년 11월 물리적 충돌을 주도해 박근령 전 이사장을 내쫓고 육영재단의 요직을 꾀차고 앉았던 박 회장 측근들이 박 회장과 사이가 멀어지면서 지금은 되레 박 회장 측에게 비수를 들이대고 있는 것. 그들이 지금은 박 전 이사장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분위기. 어차피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 중 하나가 재단을 맡을 것이라면 박근령 전 이사장이 적임자라는 판단에서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10일자로 동부지검에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과 관련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핵심 내용으로는 첫째,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은 박지만 회장의 주도로 2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된 것이며 둘째, 박 회장 측 인사들이 용역 및 폭력배들을 동원해 재단을 불법으로 점거했으며 셋째, 임시 이사 선임과정에서 공무원들과 사전 모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박지만씨가 법원에 임시이사진을 추천할 수 있는 자격은 재단 채권인이기 때문. 1990년대 초반 이사직을 수행한 것 외에 그동안 육영재단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던 박지만씨가 재단 측에 빌려준 3억4200만 원에 대한 차용증을 앞세워 임시이사회를 추천해 만들고 재단을 통째로 먹으려 한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차용증에 따르면 2008년 2월 29일 4200만 원과 4월 24일 3억 원을 어린이회관 관장 이름으로 빌린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차용증 어디에도 빌려준 사람은 기명돼 있지 않다. 당시 재단을 장악했던 사무국장과 관장이 개인적으로 써준 차용증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금싸라기 땅 개발이익 노린 ‘남매의 전쟁’이라는 뒷말 터져나와
문제는 재단을 둘러싼 분쟁의 핵심에 ‘재산’이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회관의 면적은 약 13만2000㎡(4만 평). 인근에 있는 건국대 야구장을 주상복합으로 개발하면서 남긴 5000억 원보다 큰 개발 차익이 나올 것이라는 게 주변 부동산업계의 판단이다. 3.3㎡당 최저 2500만 원을 잡아도 1조 원의 수익이 남는다는 게 노조 측 설명. 하지만 이는 상당히 보수적인 계산이고 3.3㎡당 8000만 원으로 계산해 3조 원이 넘는다는 게 부동산업자들의 분석이다.
 재단 측 한 인사는 “임시이사회가 꾸려진 이후 벌써 서편 운동장 1만3200㎡에 대해 실측이 들어갔다”면서 “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의결기관이 필요한데 이번에 꾸린 임시이사회가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대와 건국대 사이, 게다가 지하철역까지 끼고 있는 이곳은 길 건너편 낙후한 로데오거리를 대체할 수 있어 크게 주목받고 있다.
현재 누나 박근령씨와 동생 박지만씨 양측이 서로 제기한 소송만 폭행, 출입금지가처분신청, 통장 가압류 등 20여 건에 달한다. 근령씨 측은 최근 임시이사등기금지가처분 신청, 이사장승인취소처분에 대한취소청구, 위헌제청신청서 등을 법원에 낸 상태다.
이에 대해 동생 지만씨 측은 “말려들지 않겠다”는 분위기다. EG 측 한 관계자는 “법적으로 결정난 일을 가족 간 분쟁으로 비쳐지게 하려는 목적”이라며 “육영재단 정관은 사무국장을 이사장이 선임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박 전 이사장의 사무국장직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근령씨가 최근 신동욱 백석문화대 교수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틀어졌다는 분석, 신 교수 ‘제2의 최태민’이란 비난 받기도
육영재단에 대한, 구체적으로 누나 근령씨에 대한 동생 지만씨의 공격은 여러 수로 읽힌다. 그중 근령씨가 최근 신동욱 백석문화대 교수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틀어졌다는 분석이다. 측근에 따르면 큰 누나인 박근혜 전 대표가 정치권에서 승승장구할 때 둘째 박근령과 막내 박지만 사이는 돈독했다고 한다. 주인공의 그림자에 가린 두 사람으로서는 동병상련의 정이 있었던 것. 하지만 이번 결혼건을 두고 반대한 누나에 대해 반감이 커졌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국 근혜씨와 지만씨는 근령씨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10여 년 전만 해도 박지만 회장이 자신의 이미지에 해를 끼쳤다면 최근엔 박근령 전 이사장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2007년 2월 신 교수는 육영재단 감찰실장의 직함을 맡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제2의 최태민’이라는 비난을 쏟아냈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이사장을 하고 있을 당시 가장 큰 파워를 행사했던 최태민씨는 이사장실 옆에 책상을 두고 재단에서 올라오는 모든 서류를 구두로 결재했다는 후문이다. 결국 최씨의 전횡이 심하다는 것이 안팎으로 알려져 ‘숭모회’가 반기를 든 것이다. 이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표와 최태민씨는 육영재단에서 물러나고 박근령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하게 된 것이다.

 

故 육영수 여사의 숭고한 설립취지 퇴색, 하루빨리 재단 정상화 기원
재단의 한 관계자는 “재단이 안팎으로 시끄러워지면서 부대 수익사업이 제대로 안돼고 있어 매년 70억원의 적자를 보고 있는 상태다. 어린이회관 과학관에는 언제 설치된 것인지도 모르는 286 컴퓨터를 전시해 놓고 있다”며 울분을 토로했다.
또한 육영재단 직원들은 얼마전 선임된 임시 이사들이 박지만 회장의 꼭두각시라며 출근을 저지하고 있다. 박 회장 측 인사들이 폭행 및 횡령 등으로 고소를 당한 상황이라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은 당분간은 마무리되기 어려워 보인다. 한편 육영재단 관계자들은 사태가 여기까지 오게 된 데는 성동교육청의 책임이 크다며 180억 원가량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남매들의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故 육영수 여사의 숭고한 설립취지가 퇴색될 뿐 아니라 소속 직원들의 생계마저 앗아가게 되었다며 하루빨리 재단이 정상화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육영재단 관련 일지
 
1969. 4. 재단법인 육영재단 설립
1970. 7. 어린이회관 준공개관(남산)
1974. 10. 새 어린이회관 부지 3만 1,238평 사용 허가(서울시)
1974. 10. 새 어린이회관 기공식 거행(현대건설)
1975. 10. 새 어린이회관 준공, 개관 (현 위치)
1976. 12. 서울시로부터 어린이회관 부지 매입(3만 1,238평)
1982. 10. 박근혜 이사장 취임
1990. 12. 박근령 이사장 취임(박지만 이사 1990~1994)
1994. 6. 서울동부교육청, 육영재단 편법 운영 조사 착수
2001.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2002. 5. 박근령 이사장, 취임 취소 관련 소송 패소
2004. 7.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 박근령 이사장 복귀
2004. 12. 성동교육청, 박근령 이사장 취임 재취소
2007. 1. 성동교육청, 육영재단 이사진 7명 취임 취소
2007. 6. 서울고법,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5. 대법원, 박근령 이사장 해임 정당 판결
2008. 11. 박근령 전 이사장 사무국장으로 출근 시작
2008. 11. 서울동부지법, 박지만 추천 임시이사 9명 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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