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수당이라도 챙겨야....” 우울한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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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수당이라도 챙겨야....” 우울한 자화상
  • 이연제 기자
  • 승인 2009.02.09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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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만들기’보다 ‘지키기’가 더 어렵다

 

실업수당 받기 위한 행렬로 고용센터는 ‘인산인해’
전국에 위치한 고용지원센터에는 20대 중후반에서 30대 초반 젊은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을 찾은 이들 대부분은 작년 연말에 1년 단위, 적게는 9개월 단위의 고용계약이 만료되면서 실업신세가 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서울 관악구 고용지원센터에는 이번 달 들어 하루 평균 1,400여 명의 실직자들이 몰려들고 있다. 전달에 비해 5백여 명이나 늘어났다.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구조조정이 본격화하고 있고 재취업이 어려워짐에 따라 예년에는 ‘안 받아도 그만’이라고 간주됐던 실업급여의 실질가치가 상승했기 때문.
관악구 고용지원센터 주평식 소장은 “지난해 말에 해고된 계약직들이 많아 상담자들이 늘고 있다”면서 “특히 최근들어 실업수당을 찾으러 오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실업급여 신청자는 9만 3000명으로 전년도 같은 달과 비교해 83%나 급증해 5년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실업급여 지급액도 577억 원이 늘어난 2487억 원을 기록했다. 경기 불황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이들 실직자들은 지루한 불황의 터널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실직자 도우미들 업무폭증으로 ‘서비스질’ 저하 우려
실업대란의 조짐이 나타나면서 전국 고용지원센터는 업무폭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실업급여와 고용유지지원 신규신청은 두 배 가까이 늘면서 고용지원센터 직원들이 격무에 시달리면서 서비스질 저하의 우려마저 낳고 있다.
경영악화에 따른 해고를 자제하려고 기업이 신청하는 고용유지계획 신고 또한 지난해 10월 469건에서 11월 1천 329건으로 증가한 데다 12월에는 7천 464건까지 뛰어올라 직원들을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전국 82군데 센터 중 아주 작은 도시의 출장센터를 제외한 대다수 센터가 거의 죽어나고 있다”며 “특히 실업급여 신청자들을 위한 교육장이 좁아 시설을 늘리도록 재정을 지원해달라는 요청도 빗발치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런 가운데 업무 폭증으로 취업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심층상담 등 주요 업무의 서비스질이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표적 업무인 실업급여 수급자격 신청의 경우 실업자 유형을 분류하고 상담내용을 입력하며 취업지원계획을 세워주는 데 최소 10분이 걸리지만 최근 들어서는 심층상담이 거의 이뤄지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것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특히 장애인과 장기실업자 등 취업이 어려운 사람들은 심층상담을 하는 데 보통 1시간 이상이 걸리지만 인력이 부족해 30분만에 끝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노동부는 올해부터 저소득층 취업패키지 지원사업, 중소기업청년인턴제, 청년층 뉴스타트 프로젝트 등 새로운 사업을 선보이는데 이도 고용지원센터가 실무를 맡는 만큼 과부하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독일은 851개 센터의 직원 9만 명, 영국은 1천 144개 센터의 직원 7만 4천 명, 일본은 639개 센터의 직원 1만 8천 명을 각각 보유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82개 센터에 직원 3천 명에 불과,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돼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고용서비스인턴 420명과 행정인턴 64명을 추가로 투입했는데도 버겁다”며 “올해 추경예산을 편성할 때 고용서비스인턴 400여 명을 추가로 채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이 고용대란의 1차 희생양
최악의 경기 침체 속에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일자리 역시 더욱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지난 1월 27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48.8%로 10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지난해 2월에 48.5%를 기록한 이후 12월에 여성의 경제 활동 상황이 가장 좋지 않았다는 의미다. 전달인 11월의 50.4%와 비교하면 무려 1.6% 포인트가 빠진 것이다.
작년 12월 남녀 전체의 경제활동 참여율은 60.4%로 11월보다 1.4% 포인트가 하락하고, 남성의 경우 11월 73.7%에서 12월 72.5%로 1.2% 포인트가 낮아진 것과 비교하면 여성의 고용상황이 더 나빠졌음을 알 수 있다.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된 9월에 50.4%였고 10월과 11월에도 50.7%와 50.4%로 50%대를 유지했지만 실물 경제로 위기가 전이되면서 결국 12월에 40%대로 내려앉았다. 2007년 12월의 49.3%와 비교해도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0.5% 포인트 떨어졌다. 지난해 12월 여성 경제활동인구는 992만 9천명으로 전년 동기의 994만5천명에 비해 1만 6천명 줄었다.
여성 고용률도 작년 12월 47.5%로 11월보다 1.7% 포인트 낮아졌다. 이 또한 지난해 9월 49.2%, 10월 49.4%, 11월 49.2%를 기록했다가 12월에 급락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여성 일자리 감소에 대해 기업들이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성 인력을 먼저 감축하는데다 자영업체의 부도가 속출하면서 식당 등 단순 일자리마저 사라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특히 지난해 12월 신규 취업자 수가 5년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한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고용 사정이 최악에 이를 것으로 보여, 일자리를 잃는 여성이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여성 일자리 보호 및 창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정규직 등 안정적인 일자리 마련은 엄두도 못내는 실정이다.
정부는 올해 여성 일자리 확대와 경력단절 여성의 직업 교육 및 취원 지원을 위해 780여억  원의 예산 중 60%인 470여억 원을 상반기에 집행할 계획이다. 경력 단절 여성의 직업훈련과 취업 지원 중심 기관인 ‘여성새로일하기센터(새일센터)’를 산업단지 인근에 50개 지정해 중소기업 취직을 유도하기로 했다.
‘여대생커리어개발센터’를 운영하는 대학에 대한 지원도 올해 20개 대학으로 늘리고, 중장년층 여성들이 사회 서비스와 정보화 분야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직업 훈련 과정도 확대하기로 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올해 경기 악화로 고용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면서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경우 고용대란의 일차적인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커 다각도로 지원책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2, 3년만 버티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지난 1월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신규취업자는 전년 동월대비 1만 2000명 감소, ‘카드대란’이 있었던 2003년 10월(-8만 6000명) 이후 62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단순히 ‘취업문이 좁아졌다’는 정도가 아니라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이너스 고용’이 현실화되면서 실업자뿐 아니라 청년층들 역시 동분서주하고 있다. 대학 재학생들은 시간벌기용 휴학이 일상화되다시피 했고, 대학 졸업예정자들은 사회 진출을 미루기 위해 대학원 진학에 나서고 있다. 대졸 미취업자들이 늘면서 임시 직장으로 선호되는 사설학원가에서는 강사 공급 과잉까지 벌어지고 있다. 직장인들 사이에는 실직·이직에 대비한 ‘샐러던트(sallary student·공부하는 직장인)’가 늘고 있다.
이번달 모대학 영문학과 졸업예정인 김모(27·남)씨는 실업대란을 피하기 위해 대학원에 지원했다. 김씨는 “고용 시장이 얼어붙었는데 지금 무작정 졸업하면 백수 신세를 못 면한다”라며 “학문에 뜻을 둔 건 아니지만 영문학 석사라도 따면 학원 교사나 과외 일자리를 따는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아직 방학기간인데도 불구하고 경북대 중앙도서관은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졸업생 이동우(30)씨는 “방학중인데도 오전 10시를 넘으면 모든 층의 좌석이 다 찬다”고 했다. 대학생 10명중 3명은 휴학생이다. 경북대 경우 2006년 27%이던 휴학생 비율은 지난해 10월 기준 29%로 늘어났으며, 수년째 30% 안팎의 휴학률을 꾸준히 기록하고 있다.
대학원 지원율은 수직 상승 추세다. 영남대 일반대학원 경우 지난해 568명 모집에 765명이 지원(1.54대1)한 데 이어 올해도 전기모집에만 503명이 지원했다. 2005년 580명 모집에 516명이 지원, 0.89대 1의 지원율을 보였던 것과는 격세지감이다. 지역의 한 대학원 행정학과의 경우 수년만에 정원을 초과하는 경사를 맞았다. 올해 1.43대 1(7명 정원에 10명 지원)의 경쟁률을 보였기 때문이다. 행정학과 대학원은 재학생들이 행정고시나 공무원시험 등에 매달리면서 진학률이 낮은 대표적인 학과로 알려져왔다.
학원가에는 강사로 일하려는 대졸자들이 줄을 서고 있다. 교사 1명을 뽑아 2, 3개월 정도 지켜본 뒤 능력이 부족하면 내치기도 한다. 대구 성서에서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김모(45)씨는 “고용 한파를 피해 보습학원 등에서 단기 일자리를 얻으려는 대졸자들이 몰리면서 오히려 학원가가 혼란을 겪고 있다”며 “임시로 거쳐가는 곳으로 인식될 경우 수강생이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옥석을 고르는데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직장인들 사이에는 자격증 취득이나 사이버대 진학에 눈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다. 2년제인 영진전문대사이버대 경우 올해 800명 모집에 2천 692명이 지원, 3.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3.2대 1이었다. 대학 입학담당자는 “사회복지과, 경영학과, 부동산학과 등의 학과 경쟁률이 전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며 “승진이나 실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지원하는 30대 직장인들이 주축”이라고 밝혔다. 지난 1월 4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구의 지난해 4분기 청년실업률은 8.9%로 전국 1위로 조사됐다. 이는 2007년에 비해 1% 늘어난 수치였다.

 

묘안도 없이 말뿐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부가 경기침체에 따른 일자리와 소비감소의 악순환을 끊으려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모든 경제활동의 근간이 되는 고용상황에 관한 지표는 ‘환란’ 이후 최악의 상황을 예고하고 있다. 고용감소와 실업증가가 겹치면서 일자리를 새로 만들기는커녕 있는 일자리를 지키는 것마저 어려운 형편이 됐기 때문이다.
보다 큰 문제는 이같은 취업·실업의 공포가 이제 막 시작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끝이 어디쯤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다. 실제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이렇다 할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자리 창출 노력을 수차례 강조했지만 어디까지나 말 뿐이다.
고작해야 정부가 추진하는 인턴사업 확대계획에 따라 6개월~1년 정도의 단기 일자리를 제공하는데 그칠 전망이다. 이러다 일자리 창출은커녕 현 상황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특히 고용에 앞장서야 할 공공부문에 감원 바람이 부는 것도 취업난을 가중시키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미 한국농촌공사가 15%, 한국전력이 10% 등 직원을 줄였듯이 공기업 채용시장은 사실상 문을 닫은 상태다. 공무원 역시 올해 정원이 동결됐다. 전체 채용인원은 2만 3793명으로 국가공무원이 1만 7277명, 지방공무원이 6516명이다.
사기업도 별반 다를 바 없다. 기업들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기는커녕 오히려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 새로운 실업자를 양산해 낼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는 참담한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한 취업포털이 주요 대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곳 중 2곳이 올해 채용계획조차 결정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또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61.1%가 올해 신규 채용을 줄이겠다고 응답했다.
뿐만 아니라, 경기가 조속한 시일 내에 회복되지 못하면 현재 근근이 버티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잇따라 폐업·도산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그들마저 실업자 대열에 합류하게 될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 같은 실업대란을 통해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듯 보인다. 실제 이 대통령은 “방송통신 융합이 잘 돼야 고급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올해 들어 첫 정례 당청 조찬회동을 가진 자리에서 “미디어가 최대 산업이고 성장 동력”이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는 것. 잘 알다시피 이명박 정부는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 ‘방송통신 융합’이라는 미명 하에 ‘미디어 법’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한나라당도 2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미디어 관계법을 비롯한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전의를 다지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정부와 여당이 ‘언론장악을 위한 MB악법’을 강행처리할 테니 국민여러분은 반대해서 실업자로 남든지 아니면, 가만히 있다가 조중동이 만드는 방송국에 인턴으로라도 취업하라”는 으름장처럼 들린다. 국민들의 실업사태를 내 일처럼 가슴 아파하지는 못할망정, 그 같은 처지를 악용해 반대여론을 봉쇄하려 드는 대통령에게 국민의 실망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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