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장 사수 및 ‘MB악법 저지’라는 전략적 대국민 홍보전으로 민주당이 야당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며 자체적인 승전보를 울렸다. 이에 반해 172석 거대 한나라당은 팔이 안으로 굽을 거라는 김형오 국회의장에 대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면서 고배를 마셔야 했다. 한나라당은 패전의 책임소재를 놓고 내홍에 휩싸여 있는데...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여야 최종합의 다음날인 지난 1월 7일 대변인 사퇴 성명을 통해 “지도부는 무릎을 꿇었다. 불법을 향해 타협의 손을 내밀고, 소수폭력의 결재가 있어야만 법안을 통과하겠다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몇 시간 후 친이재오 성향의 57명 의원으로 구성된 당 내 최대모임인 ‘함께 내일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원내 지도부의 각성과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다. 이들은 공교롭게도 친이재오 성향이라, 이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앞두고 ‘힘 실어주기’가 아니냐는 일각의 곱지못한 시선이 있다.
약골 한나라당의 해결사로 돌아올지
한나라당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거취가 여권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의 ‘3월 귀국설’는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때마침 한나라당 지도부는 법안전쟁 후폭풍에 흔들리고 있고, 친이재오계 의원들은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이렇듯 ‘이재오 귀국’에 대한 폭발력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 그의 복귀가 거대 야당이지만 정국의 주도권을 잃고 끌려다녔던 약골 한나라당 지도부의 답답함을 해갈시켜 줄 대안이 될 것이라는 희망에 차 있다. 시국이 어려울 때마다, 정국이 막힐 때마다 해결사, 전략가의 면모를 보여준 그가 과연 이번에도 명쾌한 해답을 줄지에 정치권의 이목이 쏠려있다.
실제로 그동안 여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개혁 작업을 선봉에서 이끌어갈 포인트가드가 없다"는 탄식과 함께 끊임없이 그의 복귀 시기를 저울질해온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한나라당 내부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 지도부가 중대 사안마다 청와대와의 소통에서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복심'(腹心)인 이 전 최고위원만이 정국을 정면 돌파할 수 있다는 의견이 분분하다. 비록 그가 이 대통령의 야심찬 프로젝트였던 ‘대운하’의 멍에를 쓰고 떠났지만, 지금 이렇게라도 총대를 멜 사람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현 경제 위기 상황과 맞물려 "이명박 대통령의 '고심'을 해결해줄 사람은 역시 그밖에 없다"는 평가도 나온다. '권력 1인자'에게 충언을 할 수 있는 주변 인사는 여전히 이 전 최고위원뿐. 지난 3월 총선 직전 민심을 감안, 이른바 '55인 항명 파동'을 주도하며 대통령 친형의 공천 불출마를 촉구한 것도 바로 그다. 특히 역학구도상 차기 권력의 잣대가 될 전당대회가 다가오는 점을 감안하면,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할 수 있는 '친이'의 구심점도 결국 그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지난 1월 17일 베이징 서우드 공항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만나 봄이면 귀국하겠다고 했으니, 3월이면 돌아올 것을 밝힌 셈이다. 어쨌든 이 전 최고위원은 4월에 귀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5월에 비자 갱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 박자 쉰 이재오 정치인생, 어떤 구상 있을까
그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건 지난해 4월이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장면이 매스컴을 통해 소개되면서 이른바 ‘귀양살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되새기게 했다. 이 전 의원은 미국으로 간지 얼마되지 않아 자신의 홈페이지에 ‘워싱턴에 온 지 20일째입니다’라는 제목의 편지를 통해 자신의 근황을 소개했다. 그는 “정상에 오래 머무르고 싶었지만 하산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을 타는 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면 산을 다 왔다고 하지만 사실 정상은 전체 등산일정에 반을 왔을 뿐 온만큼 다시 돌아가야 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정상에서부터 하산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인생도 고생을 해서 성공을 했거나 좀 살만 하다고 생각했는데 예상치도 못한 어려움으로 다시 고난의 길로 접어드는 수가 있다며 등산도 인생도 하산을 잘 해야 한다”는 묘한 여운을 남겼다. 자신의 정치인생을 등산에 비유한 시기적절한 말이다.
워싱턴의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이 전 최고위원은 집과 대학을 오가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평소 자전거 마니아로 소문난 그는 매일 1시간 10분 정도의 거리를 자전거로 오간다. 방학 중이라 강의는 없지만 달리 소일거리가 없는 그는 연구실에서 독서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측근의 말이다. 골프도 술도 못해 가끔 바둑과 장기를 두며 타국에서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 유난히 추운 이 전 최고위원의 겨울이 그를 비상하게 만드는 재충전의 시간이 될지, 그의 가슴 속에는 어떤 구상이 있을지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돌아온 이재오, 어떤 선택할 것인가
그의 복귀설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정가에서는 재보권 선거 출마, 청와대 입각, 한나라당 당직, 조기 전당대회 출마 등 다양한 각본이 제시되고 있다.
친박 진영에서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의 귀국을 두고 경계경보를 발령한 상태. 당내 화합도 이루지 못하면서 그를 끌어들인다는 것은 무능력 정치, 회피성의 전형이라며 비난했고,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 정두언 의원 측도 그의 귀국을 떨떠름하게 여기고 있는 입장. 이 전 최고위원의 성향을 볼 때 어떤 모습으로든 여권구도를 움직이는 입김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친이계 의원들 사이에서도 3월에 귀국해도 딱히 할 일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로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이 사실이다. 대통령과 말이 통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돌아온 이재오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첫째, 친이명박파를 이끌고 독자노선을 지향하는 것이다. 대권 도전 가능성도 있다. 둘째, 정몽준 최고위원 또는 김문수 경기도 지사와 러닝메이트 관계를 맺는 것이다. 자신은 당권을 맡고 정몽준 또는 김문수를 내세워 대권주자로 만든다는 것이다. 셋째, 박근혜 및 친박 세력과 대타협을 이뤄 동반자 관계를 맺는 것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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