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기축년 새해가 밝았다. 무색무취의 시간은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지만 그 시간을 1년 단위로 토막내어, 연말에는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계획을 세운다. 그 계획은 삶의 목표가 되어 사람들을 전진하게 만든다.
이러한 국민의 삶에 추동력을 부여하고 꿈과 희망을 간직하게 하는 것이 정치의 힘이요, 정치의 기능이다. 국민은 정치가 국민의 꿈과 희망을 실현시켜 줄 것이라고 믿을 때 기대하고 지지한다.
하지만 지난 2008년은 그렇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미국 쇠고기 수입재개 결정으로 인한 이른바 촛불시위는 무능한 정치의 표본이었다. 촛불시위로 많은 인명과 재산이 손실을 입었고, 나라는 큰 혼란을 겪었다. 국민과의 소통을 소홀히 한 결과였다. 이 기간 동안 나라는 온통 촛불로 밤을 지샜다. 정치가 국민과의 소통이 물 흐르듯 원활하지 못할 때 국민은 결코 좌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또한 치솟는 국제유가로 국제수지에 빨간불이 켜졌고, 미국발 세계경제 위기는 전 세계를 강타했다. 달러 환율의 급등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생산업체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렇다고 해서 새해전망이 결코 밝은 것만도 아니다. 세계 각국 연구기관들은 2009년의 경제상황이 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국면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우울한 잿빛전망들이다. 이명박 정부도 금년의 GDP 성장률을 3%정도로 잡고 있다. 이것은 현상유지 아니면 경기후퇴를 의미한다. 일부 관측자들은 마이너스 성장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덩달아 물가고, 소비위축, 외환관리의 어려움, 늘어나는 가계부채, 이 모두가 새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정치·경제 상황인 것이다. 또한 정치가 해결해야할 현안이다.
국가를 경쟁력 있게 하는 일은 국민을 잘살게 하는 일이며, 그 시작도 끝도 정치에 달려있다. 정치인이 先公後私(선공후사)의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국정에 임할 때 국민도 정치에 기대를 걸고 협조한다. 이런 국민에 대해 국가와 정치는 미래의 비전과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 세계대공황 때 루즈벨트는 뉴딜정책으로 국민의 희망을 일으켜 세웠다. 미국민이 루즈벨트 대통령을 역사상 위대한 대통령으로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은 2차 세계대전 중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영국민에게 승리를 약속하며 국민의 인내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런 처칠에게 국민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며 참고 기다렸다. 2차 대전 후 서독 아데나워 수상은 독일 부흥의 꿈과 확신을 심어주었고 마침내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이처럼 정치 지도자에게는 용기, 인내심, 높은 이상과 확고한 목표, 결단력이라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는 국민과의 소통에 기반해야 가능한 일이다. 일반적인 독주는 촛불시위와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깊은 강물이 소리없이 흐르듯, 높은 수준의 정치는 조용하다. 무조건 국민더러 따라오라고 하지 않더라도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얻으면 국민은 정치를 믿고 정치인이 설정한 목표를 따라간다. 이것이 물 흐르듯 하는 정치이다. 또한 정치의 도리는 설령 화가 될 수 있더라도 이를 잘 이용하여 복이되게 하고, 실패를 돌이켜서 성공으로 이끌고, 일의 경중과 선후를 잘 알아서 균형을 얻는데 신중해야 한다.
2009년 새해의 국내외 정치적?경제적 상황은 낙관을 불허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위기에 강한 나라이다. 6.25 한국전쟁 때, 전쟁으로 폐허가 된 국토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세계 역사상 최단시간에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만약 이러한 위기에 주저앉았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러한 위대한 성공의 뒤안길에는 우리 국민의 잡초와 같은 저력이 있었다.
이제 다시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어서야 한다. 서로 격려하고 남을 배려하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 ‘모두 다 함께’의 정신이 필요하다. 국가적 정책이 제시되었을 때 비판할 것은 하고 따질 것은 따지되, 일단 그것이 옳은 것으로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부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이제 역사 앞에서 우리는 방관자가 될 것인가 참여자가 될 것인가 선택해야 할 엄숙한 순간에 처해있다. 국가의 주인공은 국민이고 역사의 주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2009년은 12간지를 따져 기축년, 소의 해다. 소의 특성은 주인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봉사하는 데 있다. 소는 뚝심 있고 순하다. 우리 국민은 이런 특성을 가진 정치인의 등을 타고 열심히 나아가야 한다. 정치가와 국민이 하나가 되어 가열차게 시련을 극복하고 역사를 개척해야할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