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전북] 지난 15일, 고창군에서 동리(桐里) 신재효(申在孝, 1812~1884)가 남긴 판소리 사설집(辭說集)을 1906년경 필사한 ‘청계본’이 발견된 가운데(본지 15일 기사), 18일, 이 ‘청계본’이 고창군에 공식 기탁돼 100여 년 만에 필사본 전체가 세상 밖으로 처음 공개됐다.
18일 오전 군청 2층 상황실에서 진행된 기탁식에서는 소장자 박종욱씨 가족을 비롯해 유기상 고창군수와 고창문화원장 등이 참석했다.
고창군에 따르면, ‘청계본’에 대한 기록은 시조(時調) 시인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1891∼1968) 선생의 ‘가람일기’ 가운데 1932년 8월 17일 기사에서 처음 언급됐다. 여기에는 “고창군 고수면 평지리의 박헌옥(朴憲玉) 씨의 집에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이 모두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이후 가람의 제자 김삼불(金三不)이 박헌옥씨가 소장하고 있던 필사본 「옹고집전」을 1950년에 출판하기도 했지만, 추가로 박헌옥씨 소장본 필사본에 관한 연구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이 ‘청계본’의 존재를 꾸준히 수소문해왔던 판소리 연구자 김종철 교수(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가 고창의 향토사 연구자 이병렬씨의 소개로 박헌옥씨의 손자인 박종욱씨를 만나게 되며 이 같은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이들 일행은 전 고창군 교육장이자 현재 고창군 예총회장직을 역임하고 있는 박헌옥씨의 장손(長孫) 박종욱씨의 자택을 찾아가 ‘청계본’ 사설 완질이 온전하게 소장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청계본’ 명칭은 고수면 평지리 청계동에서 따온 것으로 김삼불이 붙인 이름이다. ‘청계본’은 박헌옥씨의 부친 박경림(朴坰林, 1864~1932, 字는 處五)이 주로 필사한 것으로, 1906년 「심청가」를 시작으로 1910년 전후로 필사가 이루어졌다. 필사 시기는 신재효 사설의 「읍내본(邑內本)」, 「성두본(星斗本)」, 「와촌본(瓦村本)」과 비슷한 시기라고 고창군은 밝혔다.
‘청계본’의 가장 큰 가치는 신재효 사설본을 모두 갖춘 ‘완질(完帙)’이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현재 고창판소리박물관에 보관된 「읍내본」과 「성두본」에는 그 일부가 빠져 있는 형태고, 고창문화원에 소장된 「와촌본」 역시 작품은 2편뿐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에 발견된 「청계본」은 「춘향가(동창)」, 「춘향가(남창)」, 「심청가」, 「적벽가」, 「토별가」 등 신재효의 판소리 사설 전부가 필사본 형태로 남아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오섬가」, 「허두가」, 「도리화가」 등의 작품까지 모두 갖추어져 있고, 김삼불이 출판했던 「옹고집전」도 온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고창군 관계자는 “일부 작품은 보존 상태가 좋지 않으나 전반적으로 상태가 양호하며, 내용의 탈락 없이 달필(達筆)의 필체로 필사된 선본(善本)이라는 점에서 ‘청계본’의 가치는 매우 높다”고 밝혔다.
한편 유기상 고창군수는 “이번에 청계본이 발견됨으로써 고창이 낳은 동양의 셰익스피어 신재효 선생의 판소리 연구는 새로운 전기(轉機)를 맞게 됐다”며 “고창을 사랑하는 소장자의 후의로 청계본을 위탁 관리하게 된 고창판소리박물관 역시 전국 유일의 판소리박물관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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