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전북] 코로나-19 감염병의 추가 확산을 막기 위한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정부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코로나 전염을 막는 대안이라는 주문에도 불구하고 일부 교회와 신도들이 진행한 8·15 광화문집회 이후 확진자가 전국에서 속출하고 있다.
직면한 위기상황에 대한 문제인식과 위기극복을 위한 범사회적 협력이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팬데믹(pandemic) 시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인간의 탐욕이 현재의 상황을 걷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이끌고 있다. 한마디로 극과 극의 대립이다.
우리의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드리워졌던 위기극복의 역사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근대기 망국의 상황 속에서도 민족적 자의식을 잃지 않았고, 자주적 광복을 위해 수많은 희생을 치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민족적 자의식을 고양(顧養)시켜 왔다.
근대기 선지자들이 위기극복의 시대정신으로 고양시켰던 사상은 ‘원시반본(元始反本)’을 기저에 둔 시대적 주문이었다. 하지만, 우리 근대기의 선지자들은 그 시대정신을 한사코 ‘풍류(風流)’라 일컬었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 민족에게 닥친 매 순간의 위기 때마다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적 통합과 화합적 상생이 이러한 ‘풍류’의 본질이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풍류’의 문자적 의미는 ‘바람의 흐름’이다. 어디에도 매인 바 없는 자유로운 정신, 탈속의 경지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또한 이것은 노장의 도가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의 철학과 예술 그리고 취미생활의 전반으로 통하는 미학적 개념이기도 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말기의 고운(孤雲) 최지원(崔致遠, 857~미상)은 이 사상의 내용을 “삼교를 포함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군생(群生)을 접하여 화(化)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를테면(且如), 집에 들어와서는 집안에서 효도하고 나아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으로, 노사구(魯司寇)” 즉, 공자(孔子)의 주지(主旨)와 같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것이 “무위(無爲)로써 세상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하게 하는 것으로, 주주사(周柱史)” 즉, 노자(老子)의 종지(宗旨)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게 하는 것으로 축건태자(竺乾太子)” 즉, 석가(釋迦)의 교화(敎化)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치원은 이렇듯 사상적인 면에서 ‘풍류’의 현묘한 도(道)는 공자의 주지나 노자의 종지와 같고, 석가의 교화와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 “교(敎)를 설(說)한 근원”이 이미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려”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한 거름 더 들어가 살펴보면 사상적인 면에서는 유·불·선의 사상을 모두 지닌 것이 바로 ‘풍류’이겠지만 이런 점에서 이런 ‘풍류’를 ‘풍류’가 아닌 다른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근대기의 선지자들 역시 이러한 통합적, 화합적 상생의 의미를 ‘원시반본’이라는 하나의 의미로 표현하는 대신 ‘풍류’라는 용어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사상적 개념에서는 유·불·선이 하나의 사상으로 통합되어 설명될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면에서의 유·불·선은 극명하게 다른 사상으로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사상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용의 부연으로 최치원은 선사(仙史)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보았던 선사는 바로 우리가 허무하거나 허망한 것으로만 생각하던 단군신화를 말함일 것이다.
세계의 다른 민족들과 달리 우리 민족의 단군사화의 역사는 이미 알려져 있듯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철저하게 기존의 역사가 신화로 둔갑한 역사다. 우리의 역사는 다른 민족들의 신화가 말하는 섞여 있음으로써 혼돈의 카오스 상태에서 각각의 객체로 분리되며 시작되는 신화와 달리 전혀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하늘과 땅이 서로를 원해서 만나는 신화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점에서 최치원의 선사는 설명된다.
이러한 점에서 포괄적인 민족적 자의식을 엿볼 수 있는 곳이 바로 한국의 ‘피렌체’라고 할 수 있는 전라북도 정읍 지역의 역사다. 최치원의 ‘풍류사상’은 시대사 속에서 고려시대 이규보(1168~1241)와 이색(李穡, 1328 ~ 1396), 백운화상(白雲和尙) 등의 사상으로도 이어졌지만, 그의 사상을 가장 잘 계승하였던 이는 바로 불우헌(不憂軒) 정극인(丁克仁, 1401 ~ 1481)이었다.
최치원의 풍류가 선사 선대의 사상을 섞일 수 없는 유·불·선의 사상으로 이끌어 낸 것이라면, 최치원이 머물던 곳에서 살았던 정극인은 중국의 향약(鄕約)을 이곳의 향촌규약으로 만들어 한 단계 더 구체화 시키는 풍류로 만들었다. 이것이 다시 김약회(金若晦, 1481~미상)를 거치며 이곳의 강학소 한정(閒亭)으로 거점화 되었고, 일재(一齋) 이항(李恒, 1499~1576)을 거치며 사상적 정립까지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항의 사상적 정립 이후, 이곳을 가리켜 어떤이는 “호남 선비문화의 1번지”, 어떤 이는 “한국 선비문화의 고향”이라 불렸다. 이렇듯 이곳의 역사는 김약회가 지은 ‘한정’이 주요 거점화되며 다시금 선대의 ‘칠광(七狂)’과 후대의 십현(十賢)에 이어 후대의 수많은 애국지사들로 이어지는 문화사적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선대 정신문화가 후대로 이어지며 기존의 ‘풍류’는 이곳의 ‘선비정신’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이들의 선비정신은 후대로 이어지며 국난극복의 방향을 실천적 삶으로 이끌어 왔다. 그리고 앞서 칠광으로 활동하다 후대 십현으로 활동하였던 난곡(蘭谷) 송민고(宋民古, ?~?)의 정신을 고스란히 잇고자 했던 김직술과 함께 활동했던 석지(石芝) 채용신(蔡龍臣, 1850~1941)의 그림이 이들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이렇듯 시대사를 거치며 고대의 사상이 최치원을 통해 ‘풍류’로 거듭난 것이라면, 정극인은 이것을 ‘향약’으로, 김약회는 이곳의 문화로 ‘송정’으로 거점화 하였고, 이항은 이곳의 사상으로 자리매김 시킴으로써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이 지켜질 수 있었으며, 이후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배출하는 선비문화의 고향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선비란 공자가 말한 “마음은 정한 것이 있어야 하고, 꾀함은 지키는 것이 있어야 한다.”는 절의(節義)와 교양(敎養)을 갖춘 사람을 일컫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 1489~1546)은 ‘인수대비내훈(仁粹大妃內訓)’에서 선비의 자세에 대해서 “몸을 닦아 행실을 깨끗이 하고 구차한 이득을 바라서는 안 되며, 정(情)을 다하고 실(實)을 다하여 남을 속이는 일을 하여서도 안되고, 의롭지 못한 일을 마음으로 헤아리지 아니하며, 사리에 어긋나는 이득을 집에 들여놓지 않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렇듯 선비란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부를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의 사람”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로부터 선비는 충의(忠義)의 관념 속에서 예(禮)와 의(義)를 위해 지조(志操)를 지키며 불의(不義)와는 타협하지 않는 정신의 소유자를 선비의 표상으로 인식해 왔다.
우리가 직면한 팬데믹(pandemic) 상황에서 이러한 난국을 시대적 위기로 인식하는 것은 ‘시대정신’이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불러온 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자각하고 이제라도 그것이 과거의 ‘풍류’이건, 아니면 ‘선비정신’이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본래의 우리 모습을 돌아보는 것으로부터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근대기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1880~1936)는 고대의 ‘풍류’를 우리나라의 민족종교 ‘대종교’로 만들어 한민족의 민족정신으로 삼고자 했다.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1824~1864) ‘풍류’의 접화군생을 포와 접으로 묶어 사상적 회귀를 도모한 바 있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직면한 위기상황의 극복 또한 이런 민족적 자의식을 계승하는 것에서 그 해법이 찾아질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속한 교회나 종파, 다른 개념의 사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 민족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코로사 사태가 종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종교가 민족보다 중하고, 종교가 우리 민족의 미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이미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고, 종교나 종파보다 우리 민족의 민족적 위기라는 위기의식이 가동될 수 있을 때, 코로나도 종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용찬 기자 chans000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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