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급차 1대당 응급구조 인력 7.12명인데 비해, 사설구급차는 1.25명
제도권 편입과 재정지원 등 감시체계 확립필요 목소리 높아져
[시사매거진 266호=여호수 기자] 지난 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응급환자가 타고 있는 구급차를 막아 세운 택시기사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원글과 함께 당시 상황이 녹화된 블랙박스영상이 올라왔다. 블랙박스 영상 속 택시기사는 생명보다 사고처리를 우선 시 여기는 듯한 이기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고, 여론은 크게 분노했다. 이에 해당청원은 73만 명(8월 5일 기준)이 넘는 국민들의 동의를 얻게 된다.

청원인에 따르면 사건 당일, 평소 지병을 앓고 계시던 어머니가 몸 상태에 이상이 생겨 구급차를 부르게 된다. 어머니를 병원으로 이송하던 중, 구급차는 영업용 택시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다. 이에 구급차 기사는 택시 기사에게 ‘환자 먼저 이송하고 사건 처리를 해주겠다’고 말했으나, 택시 기사는 ‘사건 처리 먼저 끝내고 가라’며 응급차를 막아 세운다. 결국 다른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환자는 도로 위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고, 응급환자였던 어머니는 병원에 도착한지 5시간 만에 숨을 거둔다.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땐 단순히 개인의 이기심에서 비롯된 사건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영상 속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면, 이기심에 국내 응급차 시스템 문제가 더해지면서 발생한 사건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영상 속에서 택시 기사는 '여기(사설구급차) 응급환자도 없는데 일부로 사이렌 켜고 빨리 가려고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다가, 구급차에 환자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구청에 신고해서 진짜 응급환자인지 아닌지 따져보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택시기사는 '내가 사설구급차 안 해본주아나, 여기(사설 구급차) 응급구조사는 있느냐'며 규정을 따져 묻기도 한다. 택시 기사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로 '환자가 급한 거 아니잖아, 지금 요양병원 가는 거죠?'라고 물었고, 보호자가 응급실에 가는 길이라고 답하자 '응급실 가는 건데 급한 거 아니잖아요, 뭐 죽는 사람 아니잖아요.'라고 받아쳤다. 그러면서 '환자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니까'라는 말을 몇 번이고 확신에 차서 반복했다.
영상 속에서 택시 기사는 자신이 과거 사설 구급차를 운전했다고 주장한다. 영상으로 사설 구급차를 운전했다는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는 사설 구급차 업무 실태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논란의 중심, 사설구급차는 뭐가 다른가?
택시 기사는 평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설 구급차에 대한 편견으로 응급환자를 일명 ‘나일론 환자’라고 굳게 믿었다. 이 때문에 그는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환자의 소중한 골든타임을 도로 위에서 허비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상 속 택시 기사가 가지고 있던 ‘사설 구급차에 대한 편견’은 무엇이며, 어떻게 생기게 된 것일까?
구급차는 크게 소방서에서 출동하는 119 구급차와 지방자치단체 허가를 받은 사설 구급차로 나뉘게 된다. 소방서의 119 구급차는 각 지역 소방서 소속으로, 다음 출동을 위해 관할 지역을 벗어나기가 어렵다.
이에 비해 사설 구급차는 장거리 이동이 가능하며, 비교적 급하지 않은 환자 이송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119구급차의 보완책이 되고 있다. 또한 사설 구급차는 환자를 이송하는 주 업무 외에도 알코올중독자나 정신질환자 등의 환자를 강제 이송하거나 고인 이송 혹은 행사 의료지원, 행사 대기, 행사 구급차, 보호자 응대 등 다방면의 업무를 하고 있다.
분명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지만 사설구급차에게 ‘가짜’라는 불신이 이어지고 있다.
사설구급차가 미움 받게 된 이유

이 같은 불신은 일부 사설구급차가 좀 더 빨리 가겠다는 요량으로 빈 구급차의 사이렌을 켠 채 운행하거나 난폭운전을 일삼는 추태를 부리며 시작됐다.
실제로 사설 구급차가 교통법규를 위반한 사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8,968건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던 중 한 연예인이 행사 이동을 위해 사설구급차를 이용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설 구급차에 대한 여론의 불신은 더욱 깊어진다.
여기에 일부 영세업체에서는 기본적인 의약품이나 의료장비 심지어 링거를 맞힐 설비조차 없는 모양만 그럴싸한 ‘깡통 구급차'를 출동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48조에 따라 구급차가 출동할 때에는 응급구조사나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동행해야 한다. 그러나 응급구조사가 동행하지 않는 구급차가 늘어나면서 이송 중에 환자의 상태가 손쓸 수 없이 악화되거나, 심지어 목숨을 잃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에 2013년, 정부는 기존 사설구급차업체가 특수구급차 10대당 고용해야 하는 응급구조사의 수를 기존 24명에서 16명으로 축소한다. 이어서 2016년에는 도로교통법에 '구급차를 긴급한 용도로 운행하지 않을 때는 경광등을 켜거나 사이렌을 작동해선 안 된다'는 조항도 신설한다.
국내 구급차 시스템 문제점
이러한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당수의 사설구급차는 응급구조사 인력 충원을 하지 않은 채 운영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8년 응급의료 통계연보에 따르면, 구급차 1대당 응급구조사 인력은 의료기관 구급차가 3.85명, 119구급차가 7.12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민간이송업체는 1.25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점들을 모두 사설업체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말한다. 법률이 요하는 기준의 인력을 채용하고 유지하기에 사설구급차업체의 수입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구급차 기준 및 응급환자 이송업 시설 등 기준에 관한 규칙 등에는 '환자이송업체는 보유한 특수 구급차의 80%에 한 대당 운전자 2명과 응급구조사 2명을 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응급환자이송업은 규정상 특수 구급차를 5대 이상 운행하기 때문에 최소 16명의 직원을 채용하고 고용을 유지해야 한다.
사설구급차는 특수구급차와 일반구급차로 나뉜다. 특수구급차는 차량 외부에 붉은 띠와 ‘응급출동’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일반구급차는 차량 외부에 녹색 띠와 ‘환자이송’ 혹은 ‘환자후송’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24시간 수시로 출동하는 119구급차와는 달리 병원 간 이동, 장거리이동이 잦은 사설구급차업체는 주간 출동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현행법은 사설구급차에도 24시간 교대 대응체제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
사설업체에 정부개입, 과연 필요한가

우리나라 의료 서비스는 가희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응급구조 지식을 갖춘 소방공무원 2명과 운전기사 총 3명의 전문 인력이 365일 24시간 대기하며, 환자 발생 시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신속하게 병원으로 이송한다.
이 훌륭한 서비스는 얼마짜리 서비스일까? 소방본부 소속 119 구급차가 한 번 출동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보통 40만 원 정도로 볼 수 있으며, 여기에는 전문 인력들의 인건비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40만 원대의 구급차 출동비용은 모두 정부가 부담한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서비스 질과 비용은 비례한다. 심지어 그것이 의료 서비스라 할지라도 이 공식에 예외는 거의 없다.
사설구급차의 1회 출동비용은 이동거리와 구급차 종류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기본요금이라 불리는 10km이내를 이동할 경우 일반구급차의 경우 3만원 특수구급차의 경우 7만 5천원에 요금이 부과된다. 그리고 여기에 정부지원금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관리는 어떨까? 지역의 소방본부 소방서에서 관리되는 119구급차와는 달리 사설구급차는 각 지자체에서 환자이송업체를 관리한다. 이마저도 신고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실태조사는 2년에 한 번꼴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설 구급차의 중요도와 공공성을 재평가해야 할 때
전문가들은 사설구급차에 명확한 기준마련하고 재정지원과 함께 지원업체에 대한 점검을 통해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의 사회통념은 사설구급차업체와 환자를 단순히 서비스제공자와 서비스이용자로 보았기 때문에 둘의 계약에 정부의 지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둘은 서비스제공자와 서비스이용자이면서 동시에 환자이송업자와 환자이다. 환자이송업자의 서비스 질이 저하될 경우 피해를 받는 것은 결국 환자다.
국내 의료서비스는 날로 향상되고 있다. 사설구급차는 119구급차의 보완책이 되기 때문에 사설구급차의 수요는 앞으로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사설구급차의 공공성재평가 역시 필요해 보인다.
환자도 없이 사이렌을 켜고 다니는 일부 몰지각한 사설구급차가 사회문제로 떠오를 때면 죄 없는 사설구급차업체까지 손가락질 당해야 했다. 그러나 양심을 지키며 일하는 이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사설구급차 중에서도 특수구급차는 주로 위중한 환자를 이송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일반구급차는 비교적 위급정도가 중하지 않은 환자를 이송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러나 청원인의 어머니가 타고 있던 구급차는 사설 업체의 일반구급차였다.
결국 환자의 위급정도는 구급차의 겉모습으로 판단할 수 없다. 구급차량 외부 표기나 외부 띠색을 보고 선택적으로 양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리나라에는 119구급차와 사설구급차 외에도 보건소 구급차, 군용 구급차, 경찰 소속 구급차, 법무부 소속 구급차 등이 있다. 사이렌을 켰다면 종류를 불문하고 모든 구급차에게 양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