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서부지법은 지난달 11월 18일 식물인간상태에 빠진 어머니에 대해 “고통받지 않고 죽음을 맞이 하고 싶다고 하셨던 평소 말씀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며 김모(76) 할머니의 가족이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연명치료 장치제거 소송(2008가6977)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번 존엄사 판결의 경우 환자측 가족이 비약상고(비약상고란 1심 판결에 대해 양측 모두 법원의 사실판단을 인정하지만 해당 사건에 대한 법률적 해석에 대해 의견이 다를 경우 항소심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하는 법률적 절차를 말한다. 양측 모두의 합의가 있어야 하며 일방의 신청으로는 비약상고를 할 수 없다)에 동의하지 않음에 따라 통상절차인 항소심으로 넘어가게 됐다.
존재하는 자에 대한 모욕인가, 존엄하게 죽을 자기결정권 인가
얼마 전 희귀성 근육병의 합병증으로 폐렴이 와서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는 식물인간 상태인 아들의 인공호흡기를 떼어내어 사망케 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적이 있었다. 고통 속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아들이 차라리 죽음을 통해 그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랐던 아버지의 뼈아픈 부정(父情)은 많은 사람들의 눈시울을 자극했지만 현행법상 자식을 죽인 살인자로서 처벌을 피해갈 수는 없다고 한다.
이처럼 말기암, 근육병 등 결국 사망할 수밖에 없는 질환을 가진 환자가 병세가 악화되었을 때 고통을 유발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인공호흡기, 기관 내 삽관, 인공투석 등)로 일시적인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포기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는 경우를 우리는 존엄사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은 아직 죽음이 임박하지 않은 만성 불치병 환자(예를 들면 혈압 같은 생명증후가 안정적인 식물인간)를 약물 등을 사용하여 사망케 하는 적극적 안락사와는 구분되는 개념이다. 또한 존엄사를 행하게 된다면, 합법적인 장기이식으로 인해 많은 생명들을 살리며 좀 더 보람 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회복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치료를 받으며 고통의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말기 암 환자의 80% 이상이 치료 없이 집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기를 원한다고 한다. 이런 환자들은 모두, 희망 없이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간다.
지난 1심 판결에서 법원은 환자가 사전에 가족 등에게 구두로 표현한 의사와 타인의 치료를 보고 보였던 반응, 평소 생활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환자의 존엄사 의사를 추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으며 환자 김 씨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을 의사를 표시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인공호흡기 제거 판결을 내렸다.
안락사 소송 일지
· 2004년 6월 29일: 대법원, 퇴원할 경우 사망할 가능성 있는 환자를 퇴원시킨 가족과 보라매병원 의사에게 살인방조죄 선고
· 2008년 1월: 근이양증으로 입원중인 윤모씨(남, 27세)의 인공호흡기를 떼고 집으로 데려 와 사망케 한 부모에게 집행유예로 선처
· 2008년 2월 16일: 김모씨(여·75),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기관지 수술받던 중 폐혈관 터 져 뇌사상태
· 2008년 5월 9일: 김씨 가족, 서울서부지법에 연명치료장치 제거 등을 청구하는 소송 및 가처분 신청 제기
· 2008년 7월 10일: 법원, 김씨 가족이 낸 가처분 신청 기각
· 2008년 9월 1일: 재판부, 신촌세브란스병원 방문 현장 검증
· 2008년 11월 28일: 1심 선고(법원, 사실상 소극적 안락사 인정 첫 판결)
· 2008년 12월 18일: 세브란스병원 ‘존엄사 1심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항소
환자의 존엄사 의사(意思)를 어떻게 볼 것이냐가 쟁점
세브란스병원의 비약상고 방침이 무산되면서 존엄사 사건의 항소심 진행 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세브란스병원은 환자 측이 동의를 하지 않아 곧바로 대법원의 판단을 구하지 못하게 되자 항소심 단계를 밟는 쪽을 택했고 곧 고등법원에서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12월 19일 법원에 따르면 사건은 1심인 서울서부지법을 관할하는 서울고법으로 올라오며 기록이 넘어오는 대로 재판부 배당이 이뤄진다. 기록이 올라오는 데는 보통 열흘에서 보름 정도의 시간이 걸리며 서울고법 의료전담 재판부인 민사9부와 민사17부 가운데 한 곳에 배당될 가능성이 높다.
서울고법은 내년 2월 중순에 법관 정기인사가 있기 때문에 사안이 중대한 점과 재판부에 인사로 인한 변동이 있는지 등을 검토해 배당을 결정할 예정이다. 항소심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1심이 5개월만에 선고를 마치는 등 상대적으로 신속하게 사건을 심리했던 점을 고려하면 항소심 결과도 일반 사건 결과보다 앞당겨질 수 있다.
게다가 환자 김모(76.여) 씨의 기대 여명이 수개월 정도라는 점도 항소심 재판부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1심과 같이 항소심에서도 환자의 존엄사 의사(意思)를 어떻게 볼 것이냐가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환자가 자신의 질병과 치료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가진 상황에서 명시적으로 표시한 의사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재판부가 존엄사 의사를 ‘추정’해내야 하는 형편이라 상급심의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다.
환자 측 대리인인 법무법인 해울은 지난 12월 18일 “헌법이 정한 3심 제도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받겠다”며 “재판은 1심이든 상급법원이든 판결의 무게가 다르지 않을뿐더러 법률적 판단만 하는 대법원보다 사실심리와 법률판단을 같이하는 고등법원이 존엄사 기준을 더 구체적으로 결정해 줄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세브란스병원 관계자는 “항소는 하지만 자칫 법리논쟁이 길어져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아닌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연세대 측의 불복으로 최종 판결이 나기까지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해 달라는 유사한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
종교계 “단어만 다를 뿐 타인이 생명을 빼앗는 것은 마찬가지”
존엄사 판결이 새로운 국면을 맞은 가운데 ‘존엄사’ 자체에 대해 종교계에서는 크게 반대하는 입장이다. 기독교교단협의회 박용웅 생명윤리위원장은 “기독교계에서는 안락사나 소극적 안락사, 존엄사를 다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어만 다를 뿐 타인이 생명을 빼앗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해석합니다. 판결에서는 환자가 평소 연명치료 거부 의사를 밝힌 점을 들어 일명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 자기결정권이라는 말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생명의 주권은 하느님에게 있습니다.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순간 신을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살문제, 장기매매 등과 같은 생명윤리문제에도 악용될 수 있습니다”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종교계는 선진국에서 보편화되고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를 존엄사의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란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 대신 편안한 임종을 맞도록 위안과 안락을 최대한 베푸는 봉사활동 또는 안식처를 말하는 것으로 환자는 물론 환자 사망 후 충격을 받을 가족들까지 보살피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도 호스피스완화의료제도를 안락사를 예방하는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윤영호 국립암센터 기획조정실장은 “타이완, 미국 등이 제정한 자의결정법, 자연사법, 호스피스법과 같이 환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와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서도 존엄사, 안락사 찬반 논란 팽팽
미국·일본 소극적 허용, 프랑스·독일 엄격히 금지
비단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존엄사와 안락사 논란은 미국과 유럽 등 선진 각국에서도 해묵은 논쟁 거리다. 하지만 뇌사상태 등 소생 가능성이 없는 경우 소극적 안락사(존엄사)는 대체로 인정하는 추세다.
미국은 50개주 가운데 44개주가 안락사를 불법으로 규정하지만 나머지 주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06년 연방대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한 이후 엄격한 조건 아래 대체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네덜란드는 존엄사에 관용적인 국가로 꼽힌다. 2000년 네덜란드 하원은 세계 최초로 불치병 환자의 존엄사를 인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벨기에도 이듬해 합법화 행렬에 동참했다. 스위스는 불법으로 규정하지만 사실상 묵인하고 있으며, 이웃나라 일본도 판례에 따라 관행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캐나다는 소생 가망이 없는 환자에 대해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있고, 호주는 1996년 안락사를 법제화했다가 6개월 만에 폐기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영국은 안락사를 금지하고 있지만 한 해 3000여 명이 안락사 한다는 보고가 있다. 운동신경장애 질환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중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59살 영국 남성의 ‘생애 마지막 순간’이 얼마전 영국 TV를 통해 방송되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안락사에 비교적 엄격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프랑스는 치료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생명연장을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레오네티 법’을 제정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올해 3월 프랑스에서는 전직 교사인 샹탈 세비르(52.여) 씨가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는 자신의 요청이 법원에서 기각된 지 이틀 만에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을 계기로 안락사 논쟁에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세비르 씨는 당시 비강 부위에 생긴 악성종양이 커져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지자 “더이상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디종 지방법원에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고 소송을 낸 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도 죽을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독일은 반(反) 안락사 여론이 우세하다. 나치가 장애인 7만 여명에 대해 안락사를 악용해 살해한 전례 탓이다.
소송이 제기된 시점부터 격렬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존엄사 사건은 이제 ‘2라운드’로 접어들었지만 항소심의 판결이 어떤 식으로 나더라도 한쪽이 상고할 것이 분명해 결국은 마지막 ‘3라운드’로 이어져 대법원 판결로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판결이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존엄사를 판단하는 기준이나 구체적인 지침 등 입법 마련이 시급하다.
피부과·성형외과가 밀집된 서울 압구정동의 한 피부과 의원. 지난 12월 17일 이 의원 대기실 환자 수는 2명에 불과했다. 예년 같으면 대입 수능 시험이 끝난데다 성탄절 특수와 맞물려 환자로 북적일 때지만 지금은 환자 한 명만 오면 전 직원 나와 반갑게 맞을 정도다. K원장은 “하루 환자 10명도 못 볼 정도여서 매출이 반 토막 났다”며 “수익은커녕 직원 월급도 못 줄 판”이라고 했다. 그는 2명의 고용 의사 중 한 명을 내보낼 예정이다.
불황, 엔高에 줄도산..... 얼어붙은 병원들 매출 반토막에 빚은 두배로
웬만한 크기의 의원 한 달 임대료가 1500만~2500만 원인 서울 강남역 주변은 ‘의원 엑소더스’가 일어나고 있다. 불황으로 환자가 줄면서 고액의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안과 개업의 L모 원장은 “라식 등 시력교정술을 하는 안과들이 포화상태”라며 “임대료가 절반 수준인 강남 외곽으로 이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올 하반기 이곳 200여 개의 의원 중 30~40여 개가 임대료가 저렴한 양재역, 선릉역, 신사역으로 빠져나갔다. 압구정동에서 청담동으로 이어지는 ‘성형 벨트’에도 의원을 접겠다고 나온 매물이 70~80개 이른다. 한 성형외과 개업의는 “매물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접고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질병 치료보다는 미용의료에 치중한 성형외과, 피부과, 안과가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경기 침체로 우리 국민이 아파도 병원을 가지 않고 참는 바람에 국민건강보험 재정이 2조 원 가량 남을 정도니 미용의료 쪽은 오죽하겠냐는 것이 개원가의 반응이다. 한 달 매출이 20억 원이 웃돌던 소위 ‘빅(Big) 5’ 성형외과 중 한 곳이 조만간 부도가 날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이른바 ‘엔화’ 자금을 빌려 쓴 병·의원은 ‘이자 폭탄’으로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불과 1~3년 전, 일본 돈을 끌어다 쓰는 ‘엔화’ 대출 자금의 이자율은 2%대로, 국내보다 저리(低利)였다. 당시 많은 의사들이 5억~20억 엔화 자금을 빌려 개업하거나 병원을 확장하는 것이 붐을 이뤘다.
하지만 당시 800원대이던 환율은 지금 2배로 뛰었고 대출이자마저 6%대로 치솟았다. 갚아야 할 원금은 두 배, 이자는 3배가 됐다. ‘엔화 자금’으로 프렌차이즈 치과를 늘린 A원장은 “여기에 불황까지 겹쳐 엔화 자금을 쓴 의원들 사이에 도산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상황”이라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일부 병·의원이 진료비를 덤핑하고 과대광고를 하는 등 유통질서도 혼탁해지고 있다. 200만~300만 원 하던 치아 임플란트는 120만 원대까지 떨어지고 150만~200만원 하던 라식 시술을 70만 원에 해주는 안과도 나타났다. 쌍꺼풀 수술을 30만 원에 하는 의원도 등장했다.
인터넷 상에서는 5~10명이 한꺼번에 라식을 받으면 한 명치 분을 무료로 해주는 ‘공동구매 이벤트’도 벌어지고 있다. 이는 진료비 할인을 통한 환자 유인 행위로 의료법상 금지돼 있다. 안과의사회 등에 따르면 이들 의원들에게 과대광고를 중지하라는 경고장을 보내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의원들은 아예 고(高)환율 특수를 노리고 미국·일본 등 해외 교포 환자 유치로 방향을 틀고 있다.
신규 개원 시장은 얼어붙었다. 개원정보 ‘포털’을 운영하는 ‘오픈닥터스’ 나정욱 대표는 “올 하반기에 개원 컨설팅을 의뢰했던 의사의 절반이 개업을 유보했다”며 “최근에 열린 개원박람회 참가 인원도 예년의 절반이었다”고 말했다. 내년 1월에 전문의를 취득하고 개업가로 진출하려던 의사들도 대학병원 임상강사나 종합병원 봉직의(奉職醫)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K대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예년 같으면 임상강사 구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요새는 먼저 찾아와 문의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 같은 상황을 두고 그동안 지나치게 과대 경쟁했던 거품이 빠지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피부과·안과·성형외과 등은 이미 포화 상태였는데 ‘건강보험 환자’ 진료에 큰 수익이 나지 않자 ‘비(非)보험’ 분야로 너무나 많은 의사들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병·의원 마케팅 전문회사 ‘톨리브’ 김백남 대표는 “겨울방학 특수가 지나면 살아남는 곳과 없어지는 곳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자연스레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거품이 빠질 것에 대비해 되레 병원을 확장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