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통한 현금 확보와 효율성 제고라는 기본전략과 함께 유연역량의 4가지 유형별로 맞춤형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첫째 재무유연성과 소프트경쟁력이 모두 양호한 그룹은 시장지배력 강화를 위한 M&A와 호황기에 대비한 선행투자를 확대(시장지배력 강화). 둘째 재무유연성은 강하나 소프트경쟁력이 취약한 그룹은 브랜드와 원천기술 확보 등 소프트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에 주력(체질강화). 셋째 재무유연성과 소프트경쟁력 모두 부족한 그룹은 생존을 위한 재원확보가 최우선이며 제휴 파트너를 물색(생존 최우선). 넷째 소프트경쟁력이 강한 그룹은 무형자산을 활용한 수익성 제고에 주력(수익확보). 이 네가지의 전략과 함께 불황기를 겪고 우리 기업들에게 꼭 필요한 생존전략으로 불황을 극복하고, 글로벌 재계판도변화의 주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우선 불황의 파고를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한국기업이 처한 상황이 글로벌 경쟁사보다 결코 불리하지 않고 과거 몇 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역량도 크게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대표기업의 유연역량은 글로벌 경쟁사와 대등한 수준이며, 재무구조와 실적도 우수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에 그치지 않고 경쟁 환경과 기업의 유연역량을 고려한 ‘맞춤형 불황극복전략’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이미 한국을 대표하고 있는 기업들은 자사의 내부역량 패턴에 맞춰서 불황극복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CEO는 불황기라는 현재의 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Grand Designer’로서의 통찰력을 가지면서 위기극복을 위한 헌신과 협력의 조직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10년간의 불황을 겪은 일본의 교훈
미국발 ‘D(디플레이션)의 공포’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디플레이션 원조’는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이웃나라 일본이다.
90년대 초 성장엔진이 꺼지는 조짐이 감지되자 일본 정부는 총 9차례, 110조2000억 엔에 달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등 재정투입을 통한 총수요 확장 정책에 주력했다. 그러나 예산 분배에 관한 기득권 경쟁, 정치적 이해관계 등으로 내수 진작에 효과를 내지 못하고 1000조 엔에 달하는 재정적자만 누적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또 버블 경제를 차단하기 위해 89년 5월 2.5%였던 정책금리를 2년 동안 6.0%까지 인상했고, 부동산융자 총량규제를 실시하는 등 초강도 긴축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무리한 수요억제 정책 탓에 90~91년 4%대였던 실질 GDP 성장률이 92년 1.0%로 하락했고, 이후 10년간 저성장 국면 속에서 자산 디플레이션이 확대되는 ‘잃어버린 10년’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실제로 95~96년 지방 중소 은행들이 도산하는 ‘경고등’이 켜졌는데도 일본 정부는 이를 방치하였고, 98년 이후 5년간 일본에서 폐업을 하거나 통폐합된 금융회사는 20여 곳에 달했다. 때문에 일본 정부는 15조 엔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재정투입을 통한 부양책은 결국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금융회사 부실채권만 누적되는 악순환이 지속되자 일본은 90년대 중반 정책금리를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낮추는 ‘제로금리’ 정책으로 전환했다. 일본 통화당국은 1999~2001년 사이 정책금리를 0.02%대에서 인위적으로 억제했는데 이는 1930년대 대공황 당시보다 더 낮은 수준이었다. 일본 정부가 뒤늦게 98년 총리부 산하에 금융감독청을 설립하고 ‘가교은행(브리지뱅크)’ 제도를 도입하는 등 금융위기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 신뢰를 상실한 대책들은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무급·유급 휴가 실시 등 자체적 근무일수 조정
수출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내수시장까지 위축되는 경기 불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국내 산업계가 연초에도 움츠러든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작년 연말 특별상여금과 성과급을 없애거나 줄이는 것은 물론 비용 절감을 위해 생산라인을 멈추고 직원들에게 무급 또는 유급 휴가를 강제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전자업계는 수출 급감과 반도체 및 LCD 공급과잉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말에 재충전 휴가를 적극 권장하는 등 자체적인 근무일수 조정에 들어갔다. 그 대표적인 기업인 삼성전자는 전사 차원의 연말 장기휴가 계획은 없지만 총괄별, 사업부별, 팀별로 연월차 범위에서 재충전 휴가를 권장토록 했다. 하지만 통상 성과에 따라 연봉의 최대 50%까지 지급해온 이익분배급과 반기에 한 번씩 기본급의 최대 150%까지 주던 생산성격려금은 크게 줄어들었다.
LG전자의 경우에는 ‘샌드위치 데이’인 12월 31일과 올해 1월 2일 연차가 남아있는 직원들에 한해 재충전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2008년 최고의 영업실적을 보인 만큼 성과급에 대한 기대감도 높았지만, 올해의 경제상황이 더욱 어려울 것이란 전망 때문에 실제 지급액은 기대에 못 미쳤다.
한편 현대ㆍ기아를 제외한 자동차 업계는 자동차 판매 격감으로 1위 업체인 현대ㆍ기아차를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라인을 멈추고 장기휴무 유급휴가를 실시했다. GM대우는 12월 22일부터 근무일수 기준으로 8일간 전 공장 가동을 정지한 채 일부 필수 인력만 남기고 생산직과 사무직 모두 유급휴가를 보냈다. 르노삼성과 쌍용차 역시 생산라인을 멈추고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장기휴가에 들어갔다.
건설업계와 운송업계는 인건비 절감을 통해 고비를 극복하려는 대표적인 업종들이다.
대한항공은 정기 상여금만 지급 했고, 매년 실적에 따라 특별상여금을 지급했던 아시아나항공 역시 상여금이 기대치에 못 미쳤다. 그룹의 대북 사업이 어려움을 겪는 현대상선도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직원들에게 연차 휴가를 쓰도록 했다. 대우건설, 현대건설, GS건설, 대림산업 등 상당수 대형 건설사들은 성탄절과 주말 사이에 낀 26일에 전체 휴무를 실시하는 등 직원들이 연차 휴가를 소진하도록 조치했다. 이는 해마다 특별 상여금을 지급해온 건설업체들도 어려운 사정 때문에 ‘연말 보너스’를 주기 어렵다는 입장이 수렴되었기 때문이다.
2008년의 끝자락에 부는 구조조정의 칼바람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외환위기 당시 너무나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그 개혁과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2009년을 마무리하는 상황에서 다시 불어오고 있다. 그동안 구조조정의 무풍지대로 보였던 공기업은 이명박 대통령이 공기업 개혁 작업의 부진과 부실을 질책하며, 속도를 내라고 다그치자 정부 부처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고 평가를 받는 기관은 모두 110곳으로 ‘미흡’ 판정을 받은 기관장은 옷을 벗게 될 전망이다. 기관장을 압박해 공공기관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공기업 사장 인선을 두고 온갖 혼란을 겪다 흐지부지되는 듯 했던 공기업 개혁과 구조조정이 세모(歲暮)에 삭풍을 맞게 됐다. 눈치 빠른 일부 공기업은 연령을 기준으로 몇 %를 잘라내기로 방침을 정했고, 다른 기관들도 자산매각ㆍ경비절감 등을 서두르고 있다. 산하 공기업의 성적이 부진하면 그 책임은 해당 부처 장차관과 고위직 인사에게까지 튈 수밖에 없으니 관가에도 인사태풍이 예상된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자 당국은 정년퇴직 등 자연감원과 희망퇴직 등을 통해 인력감축을 최소화한다는 방침이지만, 해당 공기업 임직원 26만 명 가운데 적어도 3만여 명은 이런저런 명분으로 자리를 떠나야 한다.
민간기업은 더 심각한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은행ㆍ증권 등 금융권은 희망퇴직과 점포축소 등 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에 임직원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 금융위기의 충격이 실물경제로 급속히 전이되면서 가동을 멈춘 산업현장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 설상가상으로 외환위기 이후 다시 민간구조조정기구가 설립된다는 이야기는 곧 실업대란의 광풍이 조만간 불어올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구조조정은 비효율과 낭비요인을 제거해 경영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업의 생존전략이다. 전대미문의 경제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구조조정과 개혁이 불가피하지만, 지금 공기업과 민간기업이 벌이는 구조조정은 대부분 비용절감에만 초점을 맞춘 소극적인 전략으로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러나 개혁과 구조조정의 최종목표는 경영효율의 제고여야 한다. 일률적으로 몇 명을 자르는 식의 개혁과 구조조정은 효과도 오래 가지 못하고 부작용이 적지 않다. 특히 지금과 같은 경제난 속에서는 무엇보다 고용안정이 중요하다. 공기업ㆍ민간기업할 것 없이 노사 모두 고통을 분담함으로써 경영효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하며, 임시방편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보다는 먼 안목으로 공생할 수 있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업은 해고를 최대한 자제하고, 노조는 임금동결ㆍ임금삭감ㆍ생산성제고 등을 통해 수익을 배가하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경제위기의 극복 시기는 그만큼 앞당겨질 수 있을 것이다.
新사업 진출 친환경 · 디자인 소비심리 공략
“기업 환경이 악화할 내년에는 업체별로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갖춰 살아 남아야 한다.” 최근 삼성전자는 최근 협력사들에 공문을 보내 “내년엔 삼성 만 바라보지 말고 자체 경쟁력을 높이라”며 ‘독자 생존’을 강조했다. 삼성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들은 급속히 나빠지는 경영 환경에 대비해 사업구조 개편과 제품 차별화, 불황기 소비패턴 활용 등 각자의 생존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불황기일수록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신사업 진출이 기회가 될 수 있다. 조선 업체들은 성장세가 둔화하는 조선업에서 탈피, 정부의 신(新)재생에너지 사업 지원책을 등에 업고 풍력발전설비 등으로 사업구조 개편을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삼성중공업은 최근 풍력발전설비 실무 추진팀을 꾸렸다. 풍력발전설비의 핵심 장치인 블레이드(바람을 전기로 바꾸는 장치)와 선박 프로펠러에 쓰이는 기술이 비슷한 점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또 현대중공업도 최근 전북 군장국가산업단지와 충북 음성에 국내 최대 규모의 풍력발전설비 및 태양전지 생산공장을 각각 완공하며 신사업 진출을 통한 불황탈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밖에도 친환경 제품이나 개성이 톡톡 튀는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통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끄는 마케팅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불필요한 기능을 줄여 값을 낮춘 ‘디버전스(본래 기능에만 충실)’ 제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효성은 친환경 이미지와 수익성을 높이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주력하고 있다. 석유화학 및 화섬업체들의 경우 수익성이 악화되자 제품 재활용과 신공정을 통해 제조원가를 낮춘 고수익 차별화 제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낡은 어망을 회수해 환경 친화적 공정으로 만든 ‘마이판 리젠’이 대표적이다. ‘디버전스’ 제품 출시도 잇따르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최근 1만원 대의 MP3 플레이어가 한 달에 3,000개씩 팔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음악 재생 기능만 갖춘 저가 제품이지만, 깜찍한 디자인으로 구매욕을 자극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상은 불황기에는 ‘가치 소비적’ 경향이 뚜렷하기 때문인데 일상 용품은 저가품을 사는 대신, 패션이나 취미, 기호품은 고가품을 선호하는 것이다. 기업들은 이런 소비의 양극화 현상을 활용해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롯데제과는 저가 위주의 제품 구성 탓에 취약한 브랜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최근 벨기에 초콜릿 회사 ‘길리안’을 인수, 프리미엄급 초콜릿 제조라인을 확보했다. 명품 초콜릿 길리안의 해외시장 판로 확대와 인지도 제고를 통해 불황 타개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특히 위기 의식이 팽배한 의류업계는 ‘양수겸장’ 전략에 무게를 실고 있다. 제일모직은 스페인의 대표적인 중저가 브랜드 ‘망고’와 미국의 고가 진 브랜드 ‘세븐진’을 도입키로 했다. 김근영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불황 타개를 위해선 저수익 생산라인을 축소하되, 전략적으로 투자를 늘릴 부분을 찾아야 한다”며 “단순한 인력 감축이나 마케팅비 절감은 미봉책에 불과하며, 기업 체질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공정 개선 및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 재편이 포스트 불황기를 대비한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쟁기업은 더욱 어려에 직면해
글로벌 경쟁기업이 상대적으로 더욱 극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의 제조기업들은 심각한 불황에 시달리고 있으며, 제조와 금융업을 대표하는 GM과 시티그룹은 파산 일보직전에 다다랐을 정도다. 특히 미국의 제조업 경기를 보여주는 ISM 제조업 PMI가 2008년 11월 36.2로 26년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유럽도 자동차를 비롯해 화학, 운송, 철강과 서비스 등 전 산업으로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유로존의 ISM 제조업 PMI와 서비스업 PMI는 35.6과 42.5 (2008년11월 기준)로 지수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최저치를 보이고 있고, 일본도 엔고현상까지 겹치면서 자동차, 전기·전자 등 주력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1위 자동차기업 도요타는 2008년 결산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73.6% 감소할 것으로 자체 전망하고 있으며, 소니의 2008년 상반기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60%나 감소한 것을 봐도 그 심각성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경쟁기업의 어려움은 한국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기업은 환율효과 덕분에 글로벌시장에서 일본기업에 비해 상대적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품포트폴리오 구성에서도 해외 경쟁사에 비해 유리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산업 역시 SUV와 픽업 트럭 등 중대형 모델 비중이 높은 미업체에 비해 한국기업은 불황기에 수요 증가가 예상되는 소형모델 비중이 높아 생산설비 변경 등 전환비용이 적은 이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기업으로서는 최근 경쟁환경과 기업의 역량을 고려한 ‘맞춤형 불황극복전략’을 수립함으로써 지금의 불황을 글로벌 판도변화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외환위기 당시 기업들이 받았던 충격과 대응역량을 기준으로 불황의 여파를 심층 분석한 후, 역량의 유형별로 바람직한 전략을 도출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