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는 득표율 48.7%를 얻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사상 최대의 표차로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는 지난 10년간 지속됐던 진보 내지 좌파 성향의 정부가 물러나고 보수정부가 들어서는 이른바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셈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경제살리기에 대한 획기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국민적 지지와 믿음이 큰 기대치로 작용했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시절에도 가장 눈에 띄는 슬로건이 ‘경제는 반드시 살리겠습니다’였다. 그가 CEO로서 걸어온 길을 알았기에 국민들은 “다른 건 몰라도 경제살리기 하나만큼은 똑 부러지게 할 것”이라고 기대를 했던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 역시 선거인단 과반수인 매직넘버 270을 훌쩍 넘긴 338대 162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승리했다. 몰락하는 경제위기에 대한 절실한 변화가 대선 때마다 작용했던 기득권층의 헤게모니를 능가한 것이다. 그는 당선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 회생을 위한 ‘오바마노믹스’만의 처방전을 살포했다. 이 정책의 화두는 ‘경기부양’. 이는 ‘신뉴딜 정책’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두 후보자는 어려운 국가 경제 회생을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이나 모험이 따르더라도 변화와 개혁이 필요하다는 슬로건을 내세웠고, 국민들을 이러한 열망을 이뤄주기 위한 선봉장으로 ‘이명박’과 ‘오바마’를 선택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가난하고 순탄치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는 점, 운동을 좋아한다는 점, 변화를 기치로 내걸었다는 점이 매우 닮았다. 더불어 본선보다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여성 후보자와 경합을 벌였다(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힐러리 클링턴 상원의원)는 점과 본선에서 사상 최대의 표차로 승리했다는 것도 이 둘의 연결고리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최대의 관심사였던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은 ‘MB노믹스’와 ‘오바마노믹스’가 확연히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에 즈음하여 인수위 시절부터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과 잣대에 대해 짚어보자.
‘이명박호(號)’ 승선 1년, 정치적 좌절과 위기탈출 의지
전 정부의 실책으로 인한 반사이익 때문인지 국민 기대를 한몸에 받고 ‘경제대통령’이라 칭송되었던 ‘이명박호’가 승선한지 1년이 지났다. 좌충우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지난 1년, 인수위 때부터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홍역을 치르기 시작해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촛불시위’는 전대미문의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며 이명박호의 지지율을 10%대까지 추락시켰다. 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객 사망사건으로 북한과의 관계가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핫라인마저 끊어진 상태고, 미국에서 몰아닥친 금융위기는 국내 경제를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넣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새해 업무보고도 연말로 앞당기는 등 경제위기 극복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으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故 정주영 회장의 회고처럼 대한민국의 성장동력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의지를 다지며 남은 임기동안 경제에 올인하겠다고 피력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부시 정부로부터 쇠고기 추가협상, 한국의 G20 가입, 통화스와프 체결 등과 같은 선의의 결정을 받아내며 국내 정치 위기에서 일부 탈출했다. 레임덕에 빠진 부시 정권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기란 실상 어렵다고 보며, 이는 부시의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된다. ‘진보적 자본주의’를 내세운 오바마 정권에서는 이와 같은 선의를 기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명박 정부는 원활한 한미관계를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MB노믹스 VS 오바마노믹스, 유사점과 차이점
미국의 재채기에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경제정책이 더 이상 물건너 불구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당장에 ‘오바마노믹스’가 미치는 영향력이 우리 피부에 와 닿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MB노믹스’와 얼마나 코드가 맞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궁극적으로 친기업성향, 자유무역, 규제완화를 내세우는 정책을 펴고 있는 반면 오바마 당선인은 노동자 중심, 공정(보호)무역, 규제강화를 제시한다. 하지만 ‘실용주의 적 경제살리기’라는 점은 노선을 같이한다.
오바마노믹스의 실체는 ‘중도 자본주의’다. 특히 고소득자의 증세와 중산, 서민층 감세가 중심이 되는 세제 개편은 오바마 재정 정책의 키워드다. 또한 금융회사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전면전을 치를 전망. 하지만 금융회사의 모럴해저드만은 간과하지 않겠다는 것이 의지다. MB노믹스는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감세정책 등을 내세우며 성장에 역점을 두고 있으나, 최근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지출 확대 등 정부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점은 두 사단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인 모두 ‘녹색성장’을 국가경쟁력 강화의 패러다임으로 설정하고 있다. 오바마 당선인은 첨단제조업 집중 투자를 통해 500만 그린(green) 일자리를 창출하고 2015년까지 하이브리드카 100만대를 보급하는 등 녹색성장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는 필요에 따라서는 무한개방과 자유무역을 무제한으로 실시하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글로벌 경제의 필요악이라는 자유무역협정(FTA)에 급제동을 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대통령 역시 신재생에너지개발, 그린홈, 하이브리드카 보급 등을 내세웠지만, ‘4대강 정비사업’을 한국형 녹색뉴딜이라고 함으로써 과대포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새로운 시대의 화두인 녹색성장과 경제위기 극복의 한 방향인 일자리 창출 등의 신념은 오바마 당선인이나 이 대통령이 똑같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바마의 인사탕평책, 이 대통령 상생의 리더십 보여달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을 즈음해 각계 전문가들이 가장 목소리를 높여 주문한 부분은 ‘상생?포용의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민주당 경선 당시 최대 라이벌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국무장관에 임명, 로버트 게이츠 현 국방장관을 유임시키고, 해병대 4성 장군 출신인 제임스 존스 전 나토(NATO) 사령관을 안보보좌관에 임명함으로써 심지 굳은 오바마 1기 내각의 단면을 보여준다. 또한 이번 인선은 연령, 인종, 성별로 균형감있는 배합을 하면서 행정과 의회 경험이 풍부한 인사들을 전진배치하고, 공화당 인사도 2명 지명하는 초당적 배치를 함으로써 ‘역시 오바마’라는 평을 들었다. 미국의 위기를 진화하는데 누가 가장 큰 역할을 할 것인가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것이다. 경험 있는 인사를 입각시키고 권력의 파이를 나눠가지는 탕평책을 과감히 단행함으로써, 정치 경험이 짧은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겠다는 당선인의 의지는 대국민적 신뢰를 구축하기에 충분했다. 국민들에게 안심과 희망을 안겨줌으로써 오바마호의 성공적인 신호탄을 쏘아올린 셈이다.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 역시 업무 개시시 ‘노 홀리데이(No Holiday)’를 선언하며 강행군했고, 경호실의 격을 낮추어 기존의 비서실과 통합해 대통령실을 만들어 ‘일하는 대통령’을 표방했다. 하지만 각료의 조기인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나마 엄선된 인사에 대해서도 청문회를 통해 ‘강부자’, ‘고소영’ 등의 냉혹한 평가로 순탄치 못한 길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또한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도록 선거 유세당시의 구상에서 크게 진전된 복안이나 전략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도 인수위의 무능력을 질책하는 것이다. 이것이 MB정부 첫 평가의 잣대였고 ‘인사가 만사’였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더 이상 ‘나홀로 리더십’은 의미가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친박·친이를 떠나 포용하고 상생하는 정치만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미관계 파트너십 정립을 위해
하지만 지난 10년간 이어오던 정권이 몇몇 브레인만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1년,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쓴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남은 4년‘경제대통령’의 위상회복을 위해 매진해야 할 때다. 지난 1년간의 실패와 좌절, 혹독한 시련이 향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훌륭한 경험과 자산이 될 수도 있다.
특히 한미관계에 대한 섣부른 예측은 아직 이르다. 성장과정이나 당선배경이 닮았다고 해서 이 대통령과 오바마 당선자의 노선이 같은 것이 아니듯, 한미FTA, 대북정책 등으로 볼 때 우리 정부와 그리 편한 관계만은 아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취임 전부터 글로벌무대에서의 역할 증대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고, 그의 의지대로라면 미국과 새롭고 공고한 동반자적 관계도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명박 정부가 대외정책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국내정치가 안정되어야 한다. 국민의 여론을 등에 업고 국민의 지지가 뒷받침되어 줄 때 신바람 나는 외교가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이 원하는 정치, 상생과 화합의 리더십을 보여줄 때다.
지난 2008년 12월 16일 오전(미국 시각)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의 주례연설에서 “어제, 미국 경제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새삼 뼈아프게 확인했다. 11월에만 모두 53만 3,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월별 기록으로는 30여 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다. 올 들어 경기 침체가 시작된 이래 모두 2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했다. 이는 전날 발표된 11월 고용시장 통계였으며, 이어 경기부양책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언급했다.
오바마의 뉴딜은 미국민들의 미래다
먼저 공공기관 건물의 에너지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고 했다. 연방정부 청사 건물의 냉난방 장치를 교체하고 전구를 바꾸는 등 에너지 낭비를 최소화하여 예산을 줄이겠다는 말이다. 또한 각급 학교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확충하고, 인터넷망도 대폭 확충하겠다는 의중을 밝혔다. 학교와 도서관은 물론 각급 병원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의료진이 어디서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병원 간 전산망 연결은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자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며 “미국의 모든 의사와 병원이 의료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의료사고도 줄이고 의료비용도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부분은 대대적인 사회기반시설(SOC) 확충사업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1950년대 연방 고속도로 시스템 건설 이후 최대 규모의 전국 단위 인프라 구축사업을 통해 수백만 개의 신규일자리를 만들어내겠다”고 했다. 금융위기가 불러온 경제위기를 막대한 재정 지출을 통한 사회기반시설 확충사업으로 만회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오는 1월 의회가 개원하면 이와 같은 계획안이 즉각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 200만~25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긴박하게 움직여야 할 시점이다. 그동안 일자리를 잃은 200만 미국민들이 자신에게도 미래가 있음을 알게 해줘야 한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이러한 사회기반시설을 골자로 한 경기부양책은 재정지출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사회기반시설 확충으로 미국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하고자 함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꿈을 현실로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진보적 싱크탱크 ‘미국의 진보를 위한 캠페인(CAF)’은 “향후 5년 동안 미국의 무너진 사회기반시설을 세우는 데 약 1조 6,0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이며 “학교 시설의 개?보수 및 신설을 포함한 교육?인적자원 투자에 약 4,000억 달러가 더 필요할 것”이라 했다. ‘아폴로연맹’은 “차세대 청정에너지 기술 개발에 약 5,000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보이며, 이를 통해 5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고 해, 오바마 당선자의 경기부양책이 어림잡아 2조 5,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