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율산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예와 춤과 음악의 만남 타묵퍼포먼스를 펼쳐 이미 많은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서예를 통해 전통문화 보급에 앞장서 의식향상과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알리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계층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있는 율림서도원 율산 리홍재 선생. 새로운 서예 기법, 타묵퍼포먼스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1월에 인사동에서 열린 그의 개인전을 보러 가는 길, 문득 어릴 적 미술시간에 서툴게 붓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코끝에 알싸한 먹물향기가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먹의 향기와 가을바람은 근사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몇 번이고 ‘서예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물음이 그치질 않았다.
전통서예에 새로운 변화 시도로 눈길
율산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예와 춤과 음악의 만남 타묵퍼포먼스를 펼쳐 이미 많은 매스컴을 통해 알려져 대중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월드컵, 유니버시아드 세계적 대회와 중국, 일본, 몽골 등 국제적 행사에 공연으로 율산 선생의 타묵 퍼포먼스는 우리나라 서단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왔다. 50㎏이 넘는 대 붓을 들고 버선발로 덩실덩실 춤을 춰가며 커다란 화선지에 글씨를 쓰는 타묵퍼포먼스인 것이다.
그는 종종 전시장 밖에서도 자신의 서예를 사람들 앞에 선보인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른 키만 한 크기의 붓으로 글씨를 쓰는 서예 퍼포먼스가 바로 그것이다. 그에게 서예 퍼포먼스를 하게 된 이유를 물으니 ‘서예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글씨를 쓴 사람의 생각과 생활, 일상, 학문 등 모든 것이 즉흥적인 붓 끝에 다 담겨지기 때문이란다. 밀실에서 하던 작업을 벗어나서 사람들 속에서 ‘붓이 움직이고 먹물이 튀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고 같이 호흡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율산 선생은 내면이 느껴지지 않는 글씨는 서예의 정신과 가장 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예의 정신은 ‘자신을 가꾸어 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형적인 행위에 치우친 글씨는 형식만 남고 내용은 없는 꼴이라고 말했다. 정신이 살아있는 글씨야 말로 진정한 생명력을 갖게 된다고 믿는 그다.
그는 철저한 전통 서예에서 출발했지만 그의 관심은 늘 그 틀 밖에 있었다. 이런 까닭에 전통 서예에 대한 획일적 모방은 그에게 극복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전통 서예를 극복하는 과정은 현대 서예를 모색하는 여정이기도 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율산 선생은 “고여 있는 물은 반드시 썩기 마련입니다. 항상 남이 걷지 않은 길을 걸음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선각자가 될 수 있는 발전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전통적인 서예관을 탈피해 흑백의 서예 작품에 오방색의 화려한 컬러를 사용하거나 한글·한문·영어를 혼용해서 표현하는 등의 새로운 시도에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의 이러한 도전이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서예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라고 말했다.
세계 최대의 반야심경 64폭 병풍 ▲ 율산 선생은 “흑백의 서예 작품에 오방색의 화려한 컬러를 사용하거나 한글·한문·영어를 혼용해서 쓰는 새로운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기 때문에 사람들이 제 작품은 특이하다고들 합니다. 저의 이러한 도전이 대중들의 시선을 끌어 서예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게 만들 수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림과 글씨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정신으로 작업하고 있다. 굳이 영역을 따진다면 서(書)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는 것 같다. 한마디로 말해 율산 선생의 작품은 서예면서 그림이고, 그림이면서 서예다. 그의 평소 작업관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나무는 보면서 숲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는 오늘 이 시대에 한국의 전통적인 서예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모색하는 동시에 동시대 감수성과 문화적 기호에 부응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울산 선생이 많은 열과 성을 쏟아 준비한 전시회가 지난 11월 11~24일에 인사동에서 ‘율산 리홍재 미친서예자고전’이란 제목으로 열렸다. 전시회는 회화와 서예의 경계를 넘나들고, 아우르며 새로운 창작의 세계를 찾아가는 서예가 율산 선생의 내면세계와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서예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자 노력한 그의 시도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많은 사람들을 요청에 의해 11월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한국미술관에서 앵콜 전시회가 열리는데, 이때 세계 최대의 반야심경 64폭 병풍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돼 뜻 깊은 시간이 되고 있다.
작품 하나에 혼을 담아내
율산 선생이 그려낸 그림은 누구든 그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그리고는 감상자의 마음을 잡아끈다. 바로 감정이입의 정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무릇 그림은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의 붓은 그야말로 한판의 신나는 붓놀이 판을 연출한다. 그저 갖다 대기만 하면 그림이 된다.
율산 선생의 작품에서는 유구한 옛스러움의 멋과 현대적 파격미를 동시에 볼 수 있다. 그는 전통에서 오는 멋을 현대적으로 바꿀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는 그림은 항시 고전과 현대를 적절하게 아우르고 있다. 시각에 비쳐드는 사물의 형태는 그야말로 외형 우선이 아니고 본질 우선으로 나타난다. 필요에 따라서 간단한 그림 속에 긴 이야기를 그려 넣는다. 그래서 누구든 좋아지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듯하다. 크지 않는 화면에 가득 담은 이야기는 그것이 그림이든 글씨든 상관하지 않고 그리는 이의 생각을 더듬게 한다. 다시 말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이는 이야기를 형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더러 읽어지는 것이지만 해 하나로 가을의 정경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를 한꺼번에 아우르고 있기 때문에 더욱 정감이 느껴진다. 이러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원하고 있는 시대에 부응하는 서예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