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우들은 머리도 열려 있고, 바닥도 열려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하지만 그 속에는 마음에 담아두는 것 없이 남은 삶을 자유롭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토암 선생의 빈자리 메우며 살아간다
故 토암 서타원 선생은 30년간 부산을 중심으로 도예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위암이라는 모진 고통을 짊어져야 했고, 더 이상 힘에 부쳐 온전한 도자기를 만들 수 없게 되었다. 투병생활을 하며 그가 혼을 다해 만든 것이 바로 2002개의 토우(土偶)들이었다. 월드컵 당시 한국축구의 우승과 더불어 모든 이들의 승리하는 삶을 기원한다는 뜻에서 제작되었다. 토우들은 귀가 없다. 암이 발병했다는 소문이 퍼진 후, 많은 사람들이 암에 대한 비책을 들고 찾아왔다고 한다. 환자를 홀리는 솔깃한 말들이 싫어서 그는 아예 안 듣겠다는 마음으로 귀 없는 토우를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토우들은 머리도 열려 있고, 바닥도 열려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 하지만 그 속에는 마음에 담아두는 것 없이 남은 삶을 자유롭고 즐겁게 살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토암 선생은 살아생전 부인 방경자 대표에게 찻집이라도 해보라며 권유했고, 토암도자기공원을 손수 만든 후 9년간의 투병생활을 마치고 2005년 세상을 떠났다.
방 대표는 “제가 잘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고 했다.
토암 선생이 떠나간 후에 그녀는 정신없이 일했다. 공원 이곳저곳을 재정비하고 반듯한 식당건물을 지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토암도자기공원에는 손님이 끊이질 않게 되었고, 토암선비식당도 조미료를 넣지 않은 자연식 밥상으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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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경자 대표는 “제가 잘하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고 했지만 이미 그녀는 많은 일을 해내고 있었다. |
사람이 정말 귀하고 고마운 존재라는 것을 느끼다
방 대표는 “이 자리를 빌어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뒤에도 잊지 않고 찾아와 주시고 연락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고 말했다.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그녀는 해 년마다 ‘시월의 마지막 밤 토암음악회’를 열고 있다. 이 음악회는 토암 선생이 처음 주최했지만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계속 이어져 올해 횟수로는 열 번째 음악회가 열렸다. 약 1500명 정도의 손님들이 왔다간 이번 음악회에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료로 국밥을 제공하고, 무대에 서는 게스트들 역시 출연료를 받지 않고 공연을 했다.
토암선비식당에서도 사람을 좋아하는 그녀의 정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평소 손님이 올 때마다 밥을 지어 먹이던 그녀였기에 나중에는 밥을 얻어먹었던 사람들의 권유로 토암선비식당을 하게 되었다. 모든 음식은 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자연식 밥상으로 차려져 먹는 손님의 건강까지 염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토암 선생이 그리워진다는 방 대표. 그녀는 어느새 그의 자리를 메우고 사람들을 다시 찾아들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