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시장에 자리 잡고 있는 거원제화 매장은 복승진 대표의 부인이 관리하고 있다. 이 매장에는 하루에 최대 100명의 손님이 찾아온다.
36년 간 구두 제작해온 이 시대의 구두장인
복승진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 큰 형을 따라 구두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36년 동안 그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구두를 만들어 왔다. 단지 기술을 배우려고 시작했던 일이 어느새 그의 인생이 되어있었다. 복 대표는 오랜 세월동안 구두를 만들어 왔지만 단 한 번도 그 일이 싫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구두제작은 제 천직인 것 같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거원제화가 설립된 시기는 1987년. 이 즈음에는 대기업이 생산한 기성화가 유행을 타면서 동네 마다 있었던 작은 양화점이 줄줄이 폐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복 대표는 맞춤구두를 제작하는 것을 고집했고 몇 년이 지나자 여성 고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틈새시장을 노려 스포츠댄스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스포츠댄스가 대중화 되고 있었지만 전문적으로 스포츠댄스화를 만드는 곳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댄스화는 질이 좋은 데다 가격도 저렴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영남권 일대 시장을 장악했다. 이에 힘입어 복 대표는 2004년 자체 브랜드인 ‘하이원’을 만들어 일반 구두와 스포츠댄스화를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현재 거원제화의 매출액 중 스포츠댄스화의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최근에는 대전에도 대리점을 개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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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승진 대표는 초등학교 시절 큰 형을 따라 구두일을 시작해서 36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구두를 만들어 왔다. 그는 “구두제작은 제 천직인 것 같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
거원제화의 성공요인
우선 맞춤식 구두를 제작한 것이 첫 번째 성공요인이다. 그는 사람들이 모두 다른 발과 개성을 가진 만큼 구두역시 신는 사람에 맞게 제작해야 한다고 했다. 굽 조절, 색상, 디자인까지 모두 고객맞춤이다.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는 공장에는 한창 제작중인 부츠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인상 깊은 점은 부츠마다 종아리 부분의 통이 다 다르다는 것. 요즘처럼 몸에 딱 맞는 부츠가 유행일 때는 고객의 다리에 꼭 맞는 맞춤식 부츠가 제격이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맞춤식 부츠를 찾는 손님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복 대표가 맞춤식 여성구두를 만드는 이유는 그만의 뛰어난 기술력 덕분이다. 남성구두는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1년이면 제작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여성구두는 종류가 다양하고 섬세한 기술을 요하기 때문에 최소 10년은 배워야 제작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갈고 닦아온 뛰어난 기술력 덕분에 그는 ‘맞춤식 여성화‘라는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철저한 고객 관리다. 이곳은 애프터서비스가 꼼꼼하기로 유명하다. 고객들이 자신이 산 구두가 마음에 안 들거나 불만을 표하면 무료로 다시 제작해 주거나, 그 자리에서 고쳐준다. 복 대표는 색상, 발 치수, 디자인 등 고객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그는 두꺼운 공책 한 권을 꺼내 보이며 “이 공책 한 권에 빽빽이 고객들의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관리 중인 고객 수만 1천명입니다”고 했다. 또, 저렴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계절이 바뀔 때 마다 균일가격으로 세일을 해 재고를 없애고 단골손님들에게는 실속 있는 구매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세 번째는 끊임없는 디자인 개발이다. “디자인 개발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늘 트랜드를 읽고 명품 구두를 보며 디자인 연구를 하고, 시간이 날 때 마다 디자인 작업을 합니다.” 여성 구두는 그 무엇보다 디자인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기능이 좋고 발이 편하더라도 디자인이 좋지 않으면 그 구두는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복 대표는 기능과 디자인이 잘 조합된 구두야말로 최고의 구두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자체 브랜드 개발이다. 복 대표는 자체 브랜드인 ‘하이원’을 제작하면서 안정적 인 사업 운영을 할 수 있었다. 제작에서 판매까지 같이 하다 보니 유통비가 줄어 상품의 가격을 낮출 수 있었고, 덕분에 손님이 더 늘어날 수 있었다.
장인정신으로 후진양성 할 것
1990년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신발대국’이었다. 그러나 이젠 중국이 한국을 대신해 전 세계 신발시장의 65%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수제 구두를 만들고자 하는 젊은이들은 전무한 실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합니다. 후진양성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도 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지금 이쪽 계통의 사람들은 모두 노후화되었기 때문에 개발이 뒤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수제화 계통이 점점 힘들어질 것 같습니다. 기술전수가 정말 필요합니다.” 복 대표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그는 우리나라도 명품 구두로 유명한 이탈리아처럼 전문구두학교가 생겨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후진양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 역시 이탈리아 못지않은 명품 구두를 만드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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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원제화의 모든 제품은 수작업으로 제작되고 있다. |
재래시장에 대한 인식 변화 필요
복 대표는 평화시장번영회의 부회장이기도 하다. 그는 재래시장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재래시장 이라고 하면 나이 많은 사람들만 이용하는 옛날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평화시장은 의료와 신발 특화 시장으로서 3층에는 젊은 층이 입는 옷을 팔고 있습니다.” 평화시장은 1969년 철물시장으로 출발하여 2년 뒤 복합시장으로 바뀐 후 지금까지 40년을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해오고 있으며 관록과 기술, 평화시장만의 노하우가 있다. 가격 경쟁력은 대형마트에 비해 40%가 저렴하다. 복 대표는 재래시장이라는 이름 때문에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어서 깨지기를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복 대표를 만나면서 36년간 구두 장인으로 살아온 그의 삶이 결코 순탄치는 않았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지금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골손님들이 찾아와 이 집 신발이 최고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복 대표. 이 사람이야말로 부산의 마지막 장인이 아닐까 싶다.
문의: 051)645-3932 http://www.hionesho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