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매거진=임지훈 기자] 〈요하문명〉과 〈레지 사료〉, 그리고 고조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다. 작년 ‘아스달 연대기’와 같은 드라마가 제작된 것 역시 이러한 대중적 관심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중심에는 국내 <요하문명> 최고 권위자인 우실하 교수(한국항공대, 58)와 300년전 프랑스 레지 신부의 <레지 고조선 사료: RHROJ> 기록을 제대로 해제/사료교차검증/사료상호보완 해서 대중화시킨 역사학자 유정희(동양고대사 전공, 38)가 있다. 2020년을 맞이하여 때마침 이들의 대담이 성사 되었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 관련분야에 대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보고자 한다. 다음은 이들의 ‘고조선 대담 총 4부작’ 중 ④부이다.
◆ 누구도 알 수 없었던 거대한 <요하문명>이 발견된 이후 이미 반세기 가까이 지났는데... 그렇다면 이제 우리 학교에서도 이를 가르쳐야 하는가?
우실하 : 현재 중국에서는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2004-2015)’을 주도했던 중국고고학회 이사장 왕외(王巍)의 건의로 2015, 2016년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두 차례에 거쳐서 ‘중화문명전파(선전)공정(中華文明傳播(宣傳)工程)’이 제안되어 있다. 그는 중국고고학회 이사장이면서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소장을 겸하고 있고, 또한 인민대표이기도 한 역사-고고학계의 최고 실력자이다.
‘중화문명전파(선전)공정’의 핵심적인 내용은 요하문명과 도사유적의 발견 등으로 중화민족 5000년의 역사가 증명되었으니, (1)관련 유물들을 전 세계를 순회하며 전시하고, (2)초-중등-대학의 역사교재를 새로 쓰고, (3)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100부작 다큐멘터리, 100권의 소개 책 시리즈, (4)어린이들을 위한 30-50부 작의 만화영화와 100부작 만화책 등을 통해 중화문명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선전’하고 ‘전파’하는 것이다. 그의 무게감으로 보면 조만간 새로운 공정이 시작될 것이고,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의 여러 검인정 역사교과서 가운데 ‘홍산문화’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소개하고 있는 것은 단 1종뿐이다. 그것도 본문이 아니라 참고 사항처럼 박스 처리되어 있다. 이것이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는 홍산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유일한 국내 역사교과서이다.
필자는 항공대에서 2017년부터 ‘요하문명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에서 요하문명과 관련해서 개설된 유일한 과목일 것이다. 요하문명을 바탕으로 동북아시아 상고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이제는 우리나라 초-중등-대학에서 요하문명에 대해서 가르쳐야 하고, 역사교과서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요하문명의 발견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fact)이기 때문이다.
◆ 요하문명을 중국 측의 일방적인 입장이 아닌 새로운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어 보이는데....
우실하 : 요하문명을 중국인의 시조라는 황제족(黃帝族)의 문명으로 끌고 가려는 시각 변화는 한-중 간의 새로운 상고사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중국 고고학의 대원로인 (고)소병기(蘇秉琦: 1909~1999) 선생은 요하문명과 황하문명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서 ‘Y자형 문화대’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Y자형 문화대’ 이론은 요하문명과 중원과의 관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 한반도와의 연계성을 설명할 수 없다.
필자는 ‘제10회 홍산문화 고봉논단’(2015.8.11.-12 내몽고 적봉대학)에서 「요하문명과 ‘A자형 문화대’」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A자형 문화대’ 이론은 요하문명을 ‘동북아시아 공통의 시원문명’으로 삼아서, (1)요하문명 지역에서 서남방으로 중국의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는 노선, (2)요하문명 지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연결되는 노선, (3)장강 하류 지역에서 해로(海路)로 한반도 남부와 일본으로 연결되는 노선을 상정하고 있다. 필자의 이론은 발표 당시 많은 중국학자들도 동의하는 관점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자들은 아직도 이런 관점을 지니고 있지 않다. 필자는 ‘A자형 문화대’ 이론의 근거로, (1)옥결의 분포, (2)빗살무늬 토기의 분포, (3)각종 적석총의 분포, (4)비파형동검의 분포, (5)치(雉)를 갖추 석성의 분포 등을 제시하였고 중국학자들도 대부분 동의하는 것이었다.
필자는 요하문명은 중국만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고 본다. 많은 요소들이 고대 한반도, 일본, 몽골 등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요하문명의 발견이 새로운 역사 갈등의 단초가 아니라, ‘동북아 공통의 시원문명’이라는 인식 아래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를 향한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
◆ 마지막으로 이건 본래 역사학자인 유(Yu) 선생에게 묻는 건데... 혹, 고조선에 대해 마지막으로 학계에 바라는 것이 있나? 또한 추가적으로 하고픈 말이 있나? 더불어 앞으로의 본인 계획은?
유정희 : 고조선에 대해 말인가? 이미 눈치 챘겠지만 나는 고조선에 대해 주류 역사학계에 바라는 게 없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실 알고 보면 학계에 정말 착실하고 성품도 좋은 분들도 많다. 속된 말로 돈도 안 되는 것 하면서 누가 뭐라해도 묵묵히 학문에만 정진하시는 점잖은 분들도 옆에서 많이 봐 왔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고조선에 대해 학계에 바라는 게 없다. 인정 받으려는 마음도 없다. 학계에 인정받아 뭐하냐? 학계가 노벨상, 퓰리처상, 필즈상 이라도 주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당연히 바라는 것도 없다. 고조선에 대해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 해서 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사실 ‘역사(history)’란 학문은 포스트 모더니즘의 헤이든 와이트(Hayden White) 교수의 말을 굳이 빌리자면, 어느 정도 각색된 역사적 기록(사료)을 ‘plot’을 구성하여 ‘narrative’ 방식으로 살을 붙이는(beef up) ‘픽션(fiction)’인데1) 사료가 워낙 적은 고조선학(古朝鮮學)에 대해서는 이것이 그대로 적용되긴 힘들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의 기초인 그 ‘뼈대’를 만드는 작업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고조선학은 사료가 극도로 적긴 하지만, 위서(僞書: forged books)들을 제외하고도 그 뼈대복원 정도는 가능하다. 가령 내가 이미 작업한 것처럼 300년전 <레지 고조선 사료(Regis’s historical records on Old Joseon, RHROJ : 일명 ‘레지 사료’)>와 100년 전 김교헌 등의 <신단민사/실기>와 교차검증(cross-examination)하고, 이를 <삼국유사>, <후한서>, 더 나아가 <서경>의 기록과 상호 교차검증, 상호보완(reciprocal complementation)하면 충분히 고조선학의 신실(信實)한 뼈대 정도는 살릴 수 있다. 사실 위의 우실하 교수님 주장이나 나의 주장은 누가 들어도 합리적인 주장이다. 흔히 masstige(대중적 명품)를 지향한다는 인문학, 그중 역사학에서 이 정도면 왜곡은커녕 과장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의아하기도 한 게 740년전 일연, 300년전 프랑스인 레지 신부, 100년전 독립운동가 겸 국학역사학자(國學歷史學者)인 김교헌 등 모두가 우리 고조선이 유구하다는데, 우리 특정학계만 자꾸 아니라고 한다. 몇 년전 지리산 근처 암자의 어느 스님이 지리산 폭포수가 절경이라고 극찬하더라. 그렇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과 연계되는 것은 크게 가치를 높이는 편이다. 그러함에도 고조선의 유구성은 도리어 우리나라 특정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필요한 건 시간일 뿐이라고 최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대중이나 합리적인 사람들은 충분히 나나 우 교수님 주장을 납득 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나의 앞으로 계획은 그냥 내가 좋아하는 역사, 그 중 우리 역사를 순수하게 좀 더 연구해 보고 싶다. 꼭 고조선이 아니더라도 그냥 다른 고대사도 좋고, 중세사(고려)도 좋다. 고대, 중세면 아무거나 괜찮다.
- 이상으로 이들의 고조선 대담을 마친다. 추후 필요 시 2차 대담도 기대해 본다.
각 주
1) Hayden White, Metahistory: The Historical Imagination in Nineteenth-century Europe (Baltimor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