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분쟁, 유혈사태까지 이어져
오리사 주의 종교 분쟁은 60여 년 전 선교사들이 들어와 주민들을 크리스천으로 개종시키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이들이 본격적으로 충돌한 것은 지난 8월 23일 칸드하말 지역에서 힌두 민족주의 단체인 세계힌두위원회(VHP) 지도자였던 스와미(Swami) 락스마난다 사라스와티가 살해되면서부터다. 당시 인도 경찰은 스와미가 극좌파인 마오주의자들에게 살해됐다고 밝혔지만, 힌두교도들은 그가 크리스천의 선교 활동을 반대해 왔다는 점을 들어 가톨릭교회를 살인 사건의 배후로 지목,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오리사 주 누아가온 마을에 가서 폭동을 일으켰다. 흥분한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교회가 운영해온 고아원과 신자들의 집 등에 잇따라 불을 지르는가 하면, 신부와 수녀들의 옷을 벗기고 마을을 행진하게 했고, 수녀 한 명은 집단 성폭행을 당했다. 이후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오리사 주에서 교회나 성당, 신자들의 집을 파괴하고 크리스천에게 개종을 강요했다.
힌두교 정당 RSS의 관계자는 “사라스와티가 인도의 힌두교도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반대해 왔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에게 8번 넘게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면서 “기독교도들이 우리 스승을 살해한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라이키아 마을에는 집이 다 불에 타 한 채도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힌두교도들은 교회와 기독교 신자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산채로 불태워지며 총과 칼로 위협하는 등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다.
기독교도의 한 피해주민은 “70~8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우리 집에 불을 질렀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한 채 입고 있던 옷 빼고 전부 다 타버렸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폭력의 위험이 남아 있는 지역에 교인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는가 하면 피신할 곳이 마땅치 않은 몇몇 교인들은 정부가 마련한 피난캠프에서 조차 보복사건이 잇따르자 아예 밀림지역으로 몸을 숨겼다. 힌두교도와 가톨릭 신자들 간 충돌이 본격화하자 당국은 해당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경찰과 보안군 병력을 배치했지만 양측 간 충돌을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도 영자지 더 힌두는 “힌두교와 가톨릭 신자들 간의 충돌이 심각해지자 당국은 해당 지역에 통행금지령을 내리고 경찰과 보안군 병력을 배치했지만,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있다”고 가 보도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사태로 오리사 주의 칸드하말 지역에서만 약 5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정부가 마련한 7개의 피난 캠프에 긴급 대피해 있으며, 아직도 밀림 지역에 흩어져 지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재림교회 뉴스네트워크인 ANN은 최근 인도에서 발생한 힌두극우주의자들의 박해로 기독교인에 대한 위협이 지속적으로 가해지고 있다며 “현지 경찰들이 폭도들을 진압하고 폭등을 잠재우기 위해 수시로 순찰을 돌고 있지만 아직 사태가 끝난 것은 아니”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오리사 경찰은 로이터통신을 통해 “경찰들이 현재 교회 몇 곳에서 벽을 만들어 힌두교도들을 차단하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청은 지난 9월 26일 “이번 폭력 사태는 신과 인간성에 대한 죄악”이라고 강력 비난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 인도의 만모한 싱 수상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해 기독교 박해중지 명령을 내렸지만 이후 사태가 진정되지 않자 인도 정부는 ‘주정부가 중앙정부 수상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주의 모든 권한을 중앙정부 연합기관과 수상이 갖게 된다’는 ‘1355인도법’ 법률 조항을 발표했다.
개종 문제 두고 기독교들과 크고 작은 마찰 빚어
오리사 주에서 두 종교간 갈등으로 폭력사태가 발생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999년에는 기독교로 개종을 권유한다는 이유로 호주의 신교사와 두 아들이 과격 힌두교도에 의해 살해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엔 힌두교도들의 방화로 기독교 10여 명이 사망했고 900여 명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대규모 폭력사태를 일으킬 정도로 힌두교도들이 기독교도를 증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힌두교 정당 RSS의 관계자는 “소를 죽여서 고기를 먹고, 힌두교 시상을 부수고, 기독교로 개종을 시키며 우리 문화를 없애고 있습니다. 또 힌두교도를 앞에서 흰두신들을 존중하지 않고 사탄이라고 부르는데 누가 가만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신을 믿는 힌두교는 유일신을 가진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우상숭배의 전형인 셈, 힌두교도들은 기독교도들이 자신들의 신을 부정하고 나아가 인도의 전통문화까지 말살하려고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더 직접적인 것은 개종 문제다. 기독교도가 3% 남짓인 인도 전체에 비해 칸드하말은 기독교가 15%가 넘기 때문. 이에 힌두교도들은 기독교도들이 그 곳에서 가난한 하층민들을 돈으로 매수해 개종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힌두교도들은 “기독교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돈을 주고 강제로 개종을 시킨다”면서 기독교들과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 왔다.
그러나 기독교 측의 주장은 다르다. 오리사 주 YMCA 대표는 “힌두교도들의 개종은 믿음에 의한 자발적인 것”이라며 “우리가 강제로 개종을 시키고 있다면 오리사 주 조례에 의해 처벌을 받아야하는데, 우리는 처벌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반박했다.
힌두교 정서가 강한 오리사 주는 인도에서 반개종법이 가장 먼저 제정될 정도로 보수적인 곳이다. 힌두교에서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 자체를 법으로 금지시킨 이곳에서 강제개종은 불가능하다는 게 기독교단체의 얘기다.
과거 인도에서 종교분쟁은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일어났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교회와 선교사들에 대한 힌두교 강경세력의 공격이 급증하고 있다. 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은 선교사와 교회 사역자들이 회유나 협박, 부당한 뇌물 제공 등을 동원해 최하층 카스트에 속한 힌두교인 수백 명을 매월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카스트에 의한 정치 갈등이 종교 갈등 원인
그렇다면 인도인들은 왜 힌두교를 버리고 기독교로 개종을 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인도의 종교 갈등은 종교에 의한 갈등이 아닌 카스트에 의한 정치 갈등”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1950년 카스트에 의한 차별이 법으로 금지됐지만, 카스트의 근간이 되는 힌두교가 여전히 인도를 지배하고 있고, 시골에는 여전히 그림자만 스쳐도 오염이 된다는 최하층, 불가촉천민들에 대한 차별이 남아있다. 이들이 최하층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은 교육을 받아 경제적으로 성공하거나, 자신들을 불가촉천민이라 규정짓는 힌두교에서 벗어나는 두 가지 외엔 다른 길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가난한 불가촉천민들이 개종을 택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로 개종한 한 사람은 “지금도 많은 불가촉천민이 힘들게 살고 있다. 희망도 없이 고생하며 살고 있어요. 저도 개종 전엔 힌디어조차 한 마디도 배우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힌디어와 운전을 배워 운전기사를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힌두교 원리주의 단체 관계자는 “개종을 시킨다고 해서 카스트제도가 없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을 천천히 설득해서 자연스레 없애야 하는데 기독교도는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어떤 종교를 믿든 상관없지만 기독교도들이 인도에 남으려면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 그러나 오래전부터 종교 갈등 빚어와
인도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종교간 갈등을 빚어왔다. 인도의 헌법에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대통령도 이슬람교도 중에서 선임되지만, 지방에서는 때때로 양 교도간에 유혈참사를 일으킨다. 펀자브 지방을 중심으로 하는 시크교는 이슬람교의 박해에 대항해서 일어난 힌두교의 개혁파로서, 무장단결하고 순교(殉敎)정신이 강하다. 신도는 전인구의 약 2%이다.
지난 2002년 2월에는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도들을 태우고 가던 열차를 습격, 방화함으로써 최악의 종교분쟁이 일어났으며, 이후 서로간의 공격으로 인하여 2002년 4월 말까지 무려 850여 명이 사망하였다. 지난 2006년에는 마디아 프라데시주에서 힌두교도들이 세프르성경친교(SBF) 교회에 난입, 자왈리 담임목사 등 기독인들에게 하키 스틱을 휘두르고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종교분쟁은 힌두교와 기독교간에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2002년 4월 말부터 6월 5일에는 인도 최대의 종교 분쟁지역인 서부 상업도시 아메다바드에서 힌두교와 이슬람교 충돌로 900여 명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지난 7월 26일 이 지역에서 무려 17개의 폭탄이 잇달아 터져 140여명이 숨지거나 다쳤다. 이에 AP통신은 “1947년 영국에서 독립할 때부터 불거진 힌두·이슬람 갈등이 폭동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화한 것”이라며 이를 뒷받침했다. 인도 정부도 이 지역의 오랜 종교 갈등에 비춰 인도이슬람학생운동(SIMI)과의 관련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부 잠무카슈미르주에서 힌두교 성지 인근 삼림 용도변경 문제로 촉발된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간의 분쟁이 2개월 넘게 지속되고 있다. 특히 시위가 이슬람 분리독립 운동으로 확대되자 경찰이 통금령을 내리고 발포 명령을 내리면서 카슈미르에서는 매일 3∼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8월 27일에는 파키스탄쪽에서 넘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무장단체 세력까지 주민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하면서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힌두교도와 기독교도 간에 팽팽한 대립은 좀처럼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폭력 사태 발생 후 한 달이 넘게 인도에는 불안한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오리사 주에서 발생한 장기간에 걸친 소요 상황이 다른 주의 힌두교 광신자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리사 주의 상황이 조기에 차단되지 못할 경우 앞으로 인도 전체의 힌두교 광신자들이 고무 받아 인도 교회 전체가 큰 생존의 위기를 만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인도 인구 82.6%가 힌두교, 태어나면서부터 종교에 속해
힌두교를 비롯해 이슬람교, 시크교, 자이나교, 불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섞여 살고 있는 인도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종교에 속한다.
인도 인구 82.6%가 힌두교를 믿을 정도로 힌두교는 인도 사람들의 종교인 동시에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힌두교도들은 집안에도 힌두교 신들을 모셔놓고 가족의 안녕과 행운을 기언하는 기도를 올린다. 힌두교는 원래 아리안족의 원시종교인 브라만교에서 발달했다. 사제계급 (司祭階級)으로서 브라만이 많은 자연신(自然神)을 숭배하였으나 그 후 점차 철학적으로 정리되었다. 깊은 철학을 가진 힌두교는 종교생활에서도 난행(難行)과 고행(苦行), 엄격한 계율을 갖는 것에서부터 성(性)의 숭배로 신(神)에의 접근을 모색하려는 것 등 여러 갈래이며, 인도 민중의 모든 계층을 포괄한다. 전국의 여러 곳에 성지와 사원이 있고, 농한기에는 마을 도사(導師)를 따라 순례길에 나선다. 인종적·언어적으로 서로 다른 사람들이 동일한 힌두교도로 귀일(歸一)함으로써, 인도의 정신적 풍토가 조성된다고 할 수 있다.
외래 종교 중에서는 이슬람교가 전체 인구의 11%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지고 있다. 유럽인의 내항(來航) 이래 로마 카톨릭교, 프로테스탄트가 전도되었으며, 영국 식민지시대에 각 도시에 그리스도교 교회가 세워졌다. 그리스도교도는 전인구의 약 2.4% 정도이다. 인도전통의 자이나교도는 약 0.5%, 불교도는 약 0.7%에 불과하다.
프랑스 ‘독도’ 공식명칭으로, 한국문화 정규 수업 개설 프랑스의 상당수 중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에 실리는 지도에 독도가 공식 명칭으로 처음 사용된다. 프랑스 초·중·고 교과서 제작사인 아티에 출판사는 자난 11월 11일 “다음 개정판부터 중학교 교과서에 실리는 지도에 ‘독도’를 공식 명칭으로 싣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티에는 프랑스 교과서 제작사 10여 개 가운데 2∼3위에 해당하는 대형 출판사로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경우 전국에서 80만 명이 이 책으로 공부한다.
현재 프랑스 교과서에는 일본식 표기인 다케시마(竹島)가 공식 단일 명칭으로 쓰이거나 독도가 부속으로 병기돼 있다. 그러나 아티에 출판사는 “한국 정부가 독도 문제를 지적하는 편지와 함께 자료를 출판사에 보내와 조사한 결과 독도가 한국 영토로 확인돼 고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일본 역사를 소개하는 지도에 실려 있는 독도의 이름에 대해 한국 측 주장을 수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결정은 프랑스 내 다른 교과서는 물론 유럽의 교과서 제작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아티에의 중등 교과서 편집장 마리 파스칼 비드만은 “역사 교과서 제작팀의 의견은 독도를 공식 명칭으로 단독 사용하는 것이지만, 일본 역사를 소개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일본식 표기를 독도 밑에 병기할 수도 있다”면서도 “독도가 한국 영토라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또한 프랑스 북부 루앙 교육청은 “다음 달부터 교육청 산하 4개 고등학교에서 한국문화·한국어 정규 수업을 매주 3시간씩 실시하고 점차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교육청은 주당 30시간으로 짜인 정규 수업 시간 가운데 1시간을 ‘한국문화·한국어’ 수업으로 하고, 나머지 두 시간은 학생들이 자율 선택하는 방과 후 문화 수업으로 구성키로 했다. 루앙의 명문고인 카미유 생상스가 정규 수업 개설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여러 학교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고교의 도미니크 드제스(58) 교장은 지난 11월 10일 “정규 수업 1시간 이외에도 한국인 강사와 협의해 프랑스 문학·역사 수업 시간에 한국문학·역사와 비교하는 내용을 포함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루앙 교육청 마리오 드마지에르 부교육감은 “일단 ‘한국 문화·한국어 강좌’로 출발한 뒤 나중에 한국어만 떼어 내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문화와 언어를 병행하면 어린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노르웨이어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라고 말했다. 또 “학생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한국 고교와 자매결연을 해 학생들의 e-메일 교류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루앙 교육청은 조만간 주 프랑스 한국 대사관 측과 '한국문화·한국어 수업에 관한 협정서'를 교환한다. 루앙 교육청이 공개한 협정서에 따르면 루앙 시내 4개 고등학교에 수업을 개설하고 강사는 한국 정부 측이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