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의 도시, 핏빛 넘실대는 지옥

[시사매거진=여호수 기자] ‘요크셔 리퍼’를 모티프로 한 소설 ‘1977’이 발간됐다. 요크셔 리퍼는 1970년대 영국 북부의 리즈 지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실제 연쇄살인범이다. 신작의 저자인 ‘데이비드 피스’는 아찔하고 강렬한 시적 문체로, 난폭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이미 수없이 소비된 범죄소설 장르도 혁신이 가능함을 보여주었다.
1977년 여왕 즉위 26주 년 기념식을 앞둔 리즈시, 외곽 공원에서 심하게 훼손된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거리의 여자를 노린 범행은 이번이 벌써 세 째로 과거의 폭행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그 수는 더 늘어난다. 북부 지역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경찰도 언론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축제 분위기에 들뜬 주민들 사이에도 불안과 공포가 스며든다.
그 사이 스타 기자였던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전처의 죽음에 사로잡혀있는 ‘잭 화이트헤드’는 다시 한번 사건을 파고들어 범인에게 요크셔 리퍼라는 이름을 붙이고 기사를 쓰기 시작한다.
한편 ‘밥 프레이저’는 유명한 경찰의 딸과 결혼해 어린 아들을 두고 있지만 채플 타운의 매춘부 '재니스'와 관계를 가지며 이중생활을 하고 있다. 매춘부 살인사건 수사대 일원이기도 한 그는 동료들과 아내에게 자신의 이중생활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매춘부를 노리는 범인의 손에 재니스를 잃을까 봐 두려움에 시달리며 사건에 매달린다.
범인 체포에 혈안이 된 수사대가 잔인한 폭력과 불법을 서슴없이 저지르며 용의자들을 압박하지만 사건 해결에는 진척이 없는 가운데, 잭 앞으로 리퍼의 편지가 도착한다.
경찰은 매춘부로 보이는 여자들에게 병적인 증오를 품은 사이코패스로 범인상을 파악하고 수사에 매달리지만, 매춘부가 아닌 피해자가 더 나오자 지역주민들은 사형 제도를 부활시키라며 탄원서를 내기 위해 서명 운동을 시작한다.
끝나지 않는 악몽 같은 혼란이 요크셔를 집어삼키고, 잭과 밥에게도 그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소설은 마지막까지 무엇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독자들은 그저 지옥 같았던 요크셔의 과거와 부패의 근원을 들여다볼 뿐이다.
소설은 실화를 모티프로 한 연쇄살인 이야기, 매춘부들을 노리는 살인마, 범죄자와의 경계가 모호할 만큼 폭력적이고 여자관계로 얽혀 있는 경찰들, 무겁고 어두운 20세기 영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우익성이 강했다는 대처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며 스릴러 장르의 틀에 당시 사회 분위기를 담았다.